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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전쟁'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시민주의'를 상상하기

[시민건강논평]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

미국발 관세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일단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하기로 하면서 전 세계가 한숨 돌리게 됐지만, 여전히 향후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트럼프는 무역 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번 사태가 근본적으로 미중 패권 경쟁에서 기인했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초강대국 간 패권 싸움으로 약소국과 그 민중들만 피해를 입는 게 아니다. 고율의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미국 내 생활 필수품 가격이 급등하며 자국민 또한 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고통의 크기는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추진하는 건 쇠락한 공업지대의 가난한 백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함일텐데 역설적이게도 무리한 관세 정책은 이들의 삶을 먼저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

지난 반 세기, 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 물결은 극심한 불평등을 낳았다. 그로 인한 대중의 좌절과 불만이 트럼프 정권을 낳았고 또 많은 국가에서 극우 정치세력의 주류화를 추동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심화되는 지금 트럼프 한 사람이 사라진다고 해서 글로벌 대혼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기 힘든 이유다. 어쩌면 이번 관세 전쟁은 '거대한 전환'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될지 모른다.

이러한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며 냉철하게 변화를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여기에는 특히 한국은 수출 중심 경제 구조와 분단 국가라는 구조적 조건 때문에 글로벌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안보 위기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덧붙여진다. 오직 힘만이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 현실을 주시하며 '똘똘 뭉쳐' 자국의 안전과 이익을 지켜내자는 것,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서사이다.

하지만 우리는 군비 증강 또는 자유무역 질서 수호가 국경을 초월하는 팬데믹과 기후 위기, 그리고 정치적 극우화를 불러오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 현상은 체제의 한계가 표출된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경제적 민족주의에 편승하는 것도 이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질서를 고수하는 것도 지금의 총체적 위기에 맞서는 올바른 접근으로 보기 어렵다.

비록 이런 접근이 규제적 이념에 불과할 뿐이라고 누군가 힐난할지라도 우리는 모두가 안전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국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절박한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민국가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주장한다. 국가 생존과 이익이 국제 정세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점이 되는 한, 평화로운 공존의 시대를 열기 위한 상상과 연대의 실천은 그만큼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기형에 따르면, 현재는 주류 국제정치학에서 유포하는, 국민국가 중심의 지정학적 사고에 갇혀 "강대국 간 패권 경쟁과 위기 서사를 중심으로 국제 관계를 설명하는" 담론이 통용되고 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그 결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가 양산하는 글로벌 불평등과 착취, 억압의 문제는 국제 정세를 둘러싼 담론장에서 체계적으로 소외되고 있다.

또한, 민주화와 기후 정의, 국제 평화 등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진보적 사회운동과 투쟁들 역시 비가시화되거나 주변화되고 만다. 특히 지금 가자 지구에서는 21세기 가장 중대한 반인도적 범죄인 집단 학살(제노사이드)이 벌어지고 있고 동시에 이를 자행하는 이스라엘을 규탄하며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에 연대하는 시민사회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배 담론에 가려진 채 이런 사실들이 국제 정세 담론장의 중심에 파고들지 못하는 현실이다.

담론 지형이 바뀌어야 실제 정책 방향도 변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탈-국가중심적 관점, 즉 세계시민주의에 기초한 대안 담론이 주류화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한 한 가지 전략적 모색으로 박기형은 위기 서사와 공포의 정동 순환에 맞서는 해방 서사와 희망의 정동 정치에서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아래 참고문헌). 희망의 감정(정동)이 사람들 사이를 순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효과를 기대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정동 정치의 실현과 더불어 우리는 더 급진적인 세계시민주의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구체화할 수 있으려면 국민국가 단위로 국제 질서를 바라보는 인식 체계뿐 아니라 욕망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이 되는 근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역시 넘어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독립적 주체(국가)란 것은 실상 근대 서구 국가들에서 연유한 하나의 세계관일 뿐이다.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글로벌사우스'의 지식과 문화를 배제해 온, 전 지구적 '인지적 부정의'의 역사를 조명한 사상가 산투스는 바로 이 억압의 공간에서의 새로운 대안적 인식론의 발견 가능성에 주목하며 "시장중심적 탐욕과 개인주의를 넘어 공존과 연대, 생명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추구"하는 "아래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세계시민주의"를 제안한다.

이는 우리 모두 서로 연결되고 의존하는 존재라는 '보편적 취약성'의 윤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정치 윤리의 강화는 민족과 종을 뛰어넘는 변혁적 세계시민주의의 출현과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국제 정세를 새롭게 인식하려는 담론 투쟁도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말이 가진 수행적 힘을 믿자.

*참고 문헌

박기형. (2024). 변화하는 국제질서 다르게 상상하기-정동, 취약성, 주권을 중심으로 한 국제정세 지배담론 비판. 경제와 사회, (143), 107-154.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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