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복귀로 세계는 다시금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최근 발표된 관세정책은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지난 9일, 미국은 전면적인 상호 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밝혔지만, 보복관세를 단행한 중국에는 125%로 인상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였고 미·중 간 갈등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기후 위기의 징후도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4월 중순 눈과 우박이 내리는 이례적인 기상이 관측됐다. 지난달에는 경북 지역에서 건조한 날씨와 강풍 속에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이 발생했고 지역사회는 물론 산림 생태계가 큰 피해를 보았다. 이러한 재난이 앞으로 더 자주, 더 강력하게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문득 떠오른 이미지가 있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 당시 전 세계적으로 회자된 한 만평이었다. 한 도시를 향해 몰려오는 첫 번째 파도는 코로나19였고, 사람들은 "손만 잘 씻으면 괜찮을 것"이라며 안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더 큰 파도, 경기침체가 밀려오고 있었고, 이후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붕괴라는 세 번째, 네 번째 파도가 추가되며 그림은 점점 더 복합적이고 거대한 위기의 구조를 드러냈다. 당시 이 네 개의 파도는 위기의 확산과 중층성을 보여주는 '최종 버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 흐름을 다시 뒤흔드는 또 하나의 파도가 등장했다. 가장 거대한 파도, 바로 '트럼프'다.

이 만평이 상징하듯, 트럼프의 귀환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이라는 인류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국제적 노력을 약화할 수 있는 파급력을 지닌다. 그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한 사실은 이 상징을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첫 번째 임기 당시 파리협정에서 탈퇴한 전례가 있다. 2017년 탈퇴 선언 이후, 2020년 11월 공식적으로 탈퇴가 완료되었고, 2021년 초 바이든 행정부가 복귀하기 전까지 약 4개월간 미국은 협정에서 이탈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여파는 작지 않았다. 세계 2위 탄소 배출국인 미국의 탈퇴는 기후 위기 대응이 가장 시급한 시점에서 국제사회에 혼선과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기후재원(climate finance)에 대한 압박이 심각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했던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은 재생에너지 확대, 기후 적응, 회복탄력성 있는 인프라 구축 등을 위한 핵심 재원으로 설계되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가 약속했던 30억 달러 중 일부만 출연하고 지원을 중단했다.
첫 번째 탈퇴가 남긴 충격을 고려하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재탈퇴는 개발도상국이자 기후변화 취약 지역인 동남아시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동남아는 지경학적 요충지로 미국과 중국이 주도권을 놓고 경쟁해 온 핵심 무대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동남아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와 영향력 증대를 견제하기 위해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파트너십(JETPs; Just Energy Transition Partnerships)'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JETPs는 2021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출범한 국제 기후재원 프로그램으로, 석탄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을 가진 개발도상국들의 탈석탄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동남아에서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이 이 파트너십에 포함되었다.
동남아 국가들은 사실상 미·중 간 '녹색 경쟁(green competition)'의 흐름 속에서 상당 부분 혜택을 받아왔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JETPs에서의 탈퇴를 공식화하며 기존의 재정 지원 약속을 철회했다. 미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일본 등 다른 국제 파트너들은 JETPs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의사를 밝히며 미국의 공백을 메우려 하고 있지만, 기후재원의 축소는 동남아 국가들의 에너지 전환 계획에 제약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의 리더십 후퇴는 중국의 동남아 역내 영향력 확대라는 또 다른 파급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BRI) 프로젝트를 통해 동남아에서 인프라 투자를 강화해 왔다. 특히 메콩 지역에서는 수력발전 댐 건설로 인해 어업과 농업에 의존하던 지역 주민들이 생계와 생존에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생태계 역시 파괴되고 있어 국제사회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견제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면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분류되고 있는 수력발전 댐 개발의 부정적인 영향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순히 에너지 공급 방식을 전환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류 생태계 파괴, 어족 자원 고갈, 주민 생계 기반 붕괴와 같은 구조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와 기후재원 축소는 동남아 국가들에 분명한 도전이지만, 그것만으로 전환의 가능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실제로 아세안은 2024년 제42차 에너지장관회의에서 2026~2030년 아세안 에너지협력 행동계획(APAEC)의 주제를 "에너지안보 확보 및 탈탄소화 가속화를 위한 역내 협력의 진전"으로 정했다. 또한 올해 1월, 아세안에너지센터(ASEAN Centre for Energy)는 옥스팜과 공동으로 <A Guide to a Just and Inclusive Energy Transition in ASEAN>을 발표하며 정의롭고 포괄적인 에너지 전환은 아세안 시민을 보호하고 역량을 강화하며, 에너지 안보와 회복력을 높여 지속가능한 에너지 미래를 실현하는 과정임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계획과 비전은 궁극적으로 기후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트럼프의 귀환과 같은 외부의 충격이 점점 더 심화하는 상황에서, 동남아 국가들의 에너지 전환의 방향성을 잡아줄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자금 조달이 아니라, 각 정부의 의지와 정책적 일관성,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참여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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