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7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 회의에서 지금은 내란 극복이 훨씬 더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당부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개헌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하루 전인 4월 6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권력구조 개편 개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개헌 논의가 봇물처럼 터질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신속한 조치였습니다.
이재명은 2월 27일 탄핵 후 개헌 논의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탄핵이 되자 입 싹 씻고 손바닥 뒤집듯 이재명 식 발바꾸기를 다시 선보였습니다.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또다시 이재명의 말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을 각인시켰습니다.
국힘당 의원들을 비롯해 정치인들의 말바꾸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재명의 헌법 개정에 대한 말바꾸기는 그가 늘 주권자 국민이 주인이고 자신을 포함한 정치인은 머슴이라며 국민주권을 입에 달고 다니던 정치인이기에 특히 그 파장이 남다릅니다.
이재명 대표는 다음 날인 4월 8일 당 대표직을 사퇴하고, 6월 3일 치르는 5년 단임의 6공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화했습니다. 윤석열처럼 6공 체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제왕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내란 극복 우선의 논리는 1987년 4월 13일, 전두환이 '평화적 정권 이양과 서울 올림픽 성공'을 위해 호헌 선언을 한 것과 똑같은 논리입니다. 호헌 선언 2개월 후인 1987년 6월 10일 노태우가 민정당 대선 후보로 선출됩니다. 맞습니다. 그날 바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수십 수백만의 시민들이 전국에 걸쳐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6월 항쟁의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40여 년 전인 그때와 지금은 세상도, 시민들도, 시민들의 의식도,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의 상황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럼에도 기시감이 듭니다. 기득권자들의 권력에 대한 탐욕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재명과 민주당 정치인들은 이미 6공 구체제 기득권자들입니다. 그것도 윤석열-국힘당과 적대정치로 공생하는 탐욕스런 기득권 권력자들입니다.
내란 극복 우선의 논리는 심지어 윤석열이 12.3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이재명의 민주당이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행위"를 했기 때문이라고 강변하던 바로 그 어처구니없는 논리이기도 합니다.
이재명은 왜 헌법과 법률의 제-개정을 300명만이 하는 6공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일까
이재명이 개헌 논의를 '입틀막'하고 윤석열과 똑같은 6공 제왕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고는 다음 일정을 위해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던 그날 월요일 그 시각. 저는 충남 공주 마곡사 아래 마을에서 시내버스, 고속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허위허위 국회 의원회관으로 갔습니다. 볼 일을 보고 국회 문을 나서 건널목에 서 있는데, 심하게 눈이 나쁜 제 눈에 확 들어오는 현수막이 횡단보도 건너편에 걸려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의 정당한 합법 파업에 대해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노조를 와해시키거나 노조 활동을 억압하는 경영자들이 한국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이 때문에 자살한 노동자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지금도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조차 한국 정부에 노조법 2-3조 개정을 강력하게 권고할 정도입니다.
명태균이 2022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비정규 노조 파업 당시 회사 측의 청탁을 받고는 윤석열에게 부탁해 파업을 진압했다는 사실이 2024년 뉴스토마토의 취재로 밝혀졌습니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라 서슬퍼런 공권력의 협박과 공갈 아래 노조는 빈손으로 파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기사 보기: 최용락, 명태균, 대우조선 파업 특사로... 권력 사유화, 윤 끌어내려야, 프레시안, 2014. 10. 31.) 한화오션 비정규 노조는 지금도 여전히 47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게 대한민국입니까? 이런 법 개정을 도대체 왜 3백 명의 국회의원에게만 맡겨야 합니까? 대한민국의 주권, 곧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은 엄연히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 제1조에 명시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국회의원들보다 수십 수백 배 똑똑하고 일 잘하는 AI 비서진(Agents)이 곧 주권자 국민 개개인의 스마트폰 속에 들어가 있게 됩니다. 지금도 스마트폰은 이재명이나 국회의원 어느 누구보다도 법에 대해서는 훨씬 더 정확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줍니다.
노조법은 노동자들이 법안 개정을 발의하고 국민투표로 통과시키면 되는 일입니다. 다수 국민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해서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 노동자들은 국회의원들에게 애걸복걸 매달리고 청원할 게 아니라 새로운 접근 방법, 새로운 설득 논리와 증거들로 또 다시 대국민 캠페인을 벌이면 됩니다.국민발의제 개헌은 위와 같은 20년의 해마다 반복되는 현수막 비용도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도 살릴 수 있습니다.
내란 극복을 왜 이재명과 민주당만이 할 수 있다고 오만하게 착각할까?
내란 극복도 마찬가지입니다. 6공 헌법과 법률로 내란 세력을 단죄하는 것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미 경험했듯이 6공 구체제 아래에서는 검사건 변호사건 경찰이건 자칫 또다시 윤석열같은 영웅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국민발의제 헌법 개정이 되면 곧바로 국민이 발의해서 국민투표로 내란 세력이 아예 싹도 틔울 수 없도록 발본색원 단죄해야 뒤탈도 없고 국민화합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내란 세력을 감옥에 보내도 다음 대통령이 사면하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6공 구체제 헌법으로는 뿌리까지 잘라내는 내란 극복은 불가능합니다. 국민발의와 국민투표를 통해 사면권이니 긴급조치권이니 뭐니 왕정 시대의 유물인 대통령 권한도 없애버려야 합니다.
국민발의제 개헌은커녕 2022년 대선 당시 공약이었던 4년 중임제 개헌조차 내팽개친 이재명과 민주당은 지금 윤석열과 똑같이 4만여 개에 이르는 억대 연봉의 공직 회전의자와 각종 이권을 놓고 달려드는 마적떼 도둑 정치의 길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표현이 다소 거칠고 많은 분들이 거북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윤석열과 그 일당을 마적떼 도둑이란 표현 말고는 더 적합한 말을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재명과 민주당이 그런 마적떼 도둑정치를 하겠다고 달려드는 것만 같아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란 극복을 왜 이재명과 민주당만이 할 수 있다고 자만합니까. 왜 윤석열과 똑같은 왕 이재명이 되어야 사회대개혁이 완수될 수 있다고 착각합니까. 마적떼 제왕 권력의 힘으로는 절대로 혐오와 적대정치를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요?
내란 종식이 중요한 과제라는 이재명과 이재명을 지지하는 많은 미디어 정치 평론가들의 지적도 맞는 말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핑계로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스스로 윤석열과 똑같이 마적떼 도둑 패거리 두목의 길로 가겠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게는 이재명이 신왕(新王) '윤재명'이 되겠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벌써 이재명 캠프에는 이른바 6공 기득권의 엘리트 귀족들, 교수들, 기자들, 관료들, 경영자들의 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물론 있을 것입니다만 각종 이권과 공직 회전의자를 보고 달려드는 탐욕의 파리떼처럼 보입니다.
유권자들은 선거 때는 90도로 깍듯하게 절하던 후보자들이 선거만 끝나면 목에 철근을 박은 것처럼 표변하는 것을 익히 많이 경험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재명과 민주당 의원들의 목에는 벌써부터 철근이 심어져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위험한 신호가 아닐 수 없습니다.

6공 구체제 선거로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당선되는 그날부터 이재명 탄핵 집회가 열리고 한국 정치는 또다시 주구장창 적대와 혐오 정치로 점철되고 말 것입니다.
내란 극복을 위해서는 대선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민발의제 개헌입니다. 적대정치를 해소하는 거의 유일한 길이 국민이 서로를 인정하고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경청과 대화, 토론과 타협의 정치입니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이재명을 또다른 윤석열로 바라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윤석열 정권이 이재명 주위를 마구잡이로 먼지 하나까지 털고 또 털어 덮어 씌운 이미지의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 부분 이재명 본인의 말과 행동 탓도 큽니다. 이를 탈피하고 그야말로 사회통합과 개혁의 길로 나아가는 거의 유일한 길이 국민발의제 개헌입니다. 사회대개혁의 출발점이자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솔론의 길이기도 합니다.
축구 경기에서 상대 팀 선수들이 자신들의 연고지 극렬 응원단이 오른쪽에만 있다는 이유로 맨 오른쪽으로만 몰려들어 공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왼쪽에는 한 선수도 없고, 중앙에도 한두 명만 보이고 텅 비어 있다면 우리 팀은 어떻게 공격해야 할까요?
이건 하나마나한 질문입니다. 이 경기는 전략도 필요 없고 유치원생도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는 뻔한 경기입니다. 6월 3일 치러질 21대 대선 경기 모습이 지금으로서는 꼭 이렇습니다. 결과는 '어대명, 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입니다.
주권자 국민들만이 이재명을 솔론의 길로 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대명'으로 시야가 가려진 이재명과 민주당이 간과하는 난제가 하나 있습니다. 중도층 민심이 이재명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주권자 국민들은 이미 8년 전인 2016/2017년 박근혜 탄핵 이후 '죽쒀서 개 준' 경험을 잊지 않고 있는 시민들입니다. 윤석열의 쿠데타를 맨몸으로 막아냈고, 지금도 막아내고 있는 위대한 장삼이사 보통 사람들입니다.
문재인이 박근혜-최순실을 구속시키고 떠들썩하게 적폐 청산할 때 문재인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계속했고, '문빠'로 불리던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제는 개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재인이 개헌한다는 시늉만 하다 흐지부지 무산시켰다는 사실도, 적폐청산과 함께 윤석열을 제왕 대통령으로 키운 사실도, 부동산 값만 천정부지로 올리고 개혁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전 대표가 개헌 반대 입장을 천명하자 뒤이어 일어난 일련의 사태도 우려스럽기만 합니다. 민주당 의원들과 이른바 친명 미디어와 유튜브에서는 일제히 이구동성으로 지금은 내란 극복이 우선이라는 주장을 이어나갔습니다. 심지어 우원식 국회의장에 대해서는 비판을 넘어 조롱까지 해댔습니다. 디지털 미디어의 '키워드 납치' 현상으로 거의 모든 뉴스와 정보지에는 한 목소리로 내란 극복 우선의 단선 논리와 단어들만이 좍 도배되다시피 했습니다. 수령의 교시에 뒤이어 이루어지는 북한의 선전선동 방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 목도했던 윤석열과 국힘당의 행태와 똑같습니다.
이재명과 여야 정치인 감별법, 국민발의제 개헌
22대 국회의원 3백명 가운데 지금 여기 오늘의 시점에서 국민발의제 개헌을 입에 올린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만큼 국회의원은 자신들의 기득권 권력을 조금치도 내놓을 생각이 없습니다. 4년 중임제 개헌이니 이원집정부제니 중선거구제니 하는 권력구조 개편과 선거구제 개편도 국회의원 권한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 강화하는 개헌안들입니다. 때문에 국민발의제 개헌은 권력구조 개편과 함께 묻어가거나 또는 원플러스 원의 투 포인트 개헌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박승옥, <주권자 국민이 만든다, 제7공화국>, 기적의마을책방, 2025.)
6공 구체제에서 헌법 개정은 국회의원 2백 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재명을 비롯해서 국민 주권을 말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선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 지금, 대선 후보자들이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마적떼 두목 제왕인지 아니면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머슴 솔론인지 그 속내와 본심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감별법이 하나 있습니다. 국민발의제 헌법 개정입니다.
어차피 '어대명'인데, 대선 구도 자체를 뒤흔들기 위해서라면 국힘당 대선 후보가 국민발의제 개헌을 먼저 치고 나와 선점할 수도 있습니다. 국힘당의 대주주인 태극기부대가 국민저항권을 부르짖고 있어서 더 그럴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이재명 후보는 난처한 처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거부하면 그동안 수없이 국민이 주인이고 정치인은 머슴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제왕 대통령병 환자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폭로하게 됩니다. 찬성하면 그 순간 국민의힘 후보와의 대선 경쟁은 예측 불허의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1897/1898년 폴 고갱은 원시 부족들이 살고 있던 타히티에서 극심한 궁핍을 견디며 1년여에 걸쳐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완성한 뒤 그는 자살합니다. 그림 제목은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나는 어디서 왔는지를 묻지 않고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를 묻습니다. 나와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지 않고 우리는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다!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파면이 선고되고 광화문의 민주노총 농성장으로 행진하던 응원봉연대의 시민들이 맨 앞에 펼쳐 들고 가던 현수막 구호입니다. 앙시앙 레짐의 6공 구체제, 기득권 귀족 엘리트 권력자들의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너희들' 속에 이재명과 민주당이 포함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끝.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