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동덕여자대학교 학생들은 대학본부의 일방적인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비판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해를 넘긴 2025년 봄에도 학생들은 여전히 학교의 비민주적 행정과 싸우고 있습니다. 투쟁 과정에서 학생들은 시위를 향한 외부의 오해와 비난으로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켜켜이 쌓인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학생들이 직접 투쟁 과정과 의미를 말합니다. 편집자.
지난해 12월 이후로 동덕여대 시위를 다룬 뉴스들을 찾아보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다만, 기고문을 작성하기에 앞서 최근 학교가 어떤 이미지로 비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오랜만에 '동덕여대'를 검색하고 연관 검색어를 보자마자 결론은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전히 시위 본질에는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덕여대의 '수준'은 대체 왜 궁금한 것이며, '갤러리'나 '디시'는 왜 검색창에 버젓이 올라와 있나. 황당한 검색창은 지금도 동덕의 학우들과 내가 '폭도'로 악마화되고 있다는 걸 알려줬다.
우리를 '폭도'라고 부르고 싶다면 적어도 피해 보상액은 54억, 100억, 800억 중 하나로 협의한 후 주장하길 바란다. 배달원의 음식을 탈취했다거나, 박테리아를 기르던 교수님이 감금을 계기로 연구를 망쳤다는 소설도 그만 쓰길 바란다.
조금이라도 허위사실 유포와 허무맹랑한 날조가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기고문을 통해 "54억 기물파손설"의 진실을 소명하고자 한다.

'래커칠 피해액 54억'의 진실
일부 언론은 우리를 폭력을 저지르고 기물파손에 가담하는 극악무도한 폭도로 몰았으나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 '54억 원 상당의 기물파손'이라는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며, 동상을 '때려 부순' 것도, '유리창을 깨부순' 것도 아니다.
실제로 학내에서 발생한 기물파손은 단 한 건뿐이다. 취업박람회에 걸려있던 현수막 한 장이 항의의 의미로 찢어진 것이다. 취업박람회에서 책걸상을 파손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학생들은 책걸상 위에 '공학 반대' 문구가 적힌 종이를 올려놓고 책걸상은 모두 기울인 후 엎어놨을 뿐이다. 이 외에 건물이나 기물이 심각하게 파손된 정황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54억 원'이라는 피해추산액의 출처는 지난해 11월 15일 동덕여대 포털에 게시된 "동덕여자대학교 학내 사태로 인한 피해금액 현황(추정액)" 공지다. 해당 표에는 건물 보수 및 청소 비용이 '20억~50억 원'으로 기재돼 있으며, 이를 포함한 총 피해 추정액을 24억에서 54억 원으로 산정했다고 명시돼 있다.
파손과 폭력의 정도가 극히 심했던 서부지방법원의 사례와 비교하면, 우리 학교의 피해추산액이 보수비용이 20억 원 이상이라는 책정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그 어떤 업체의 견적서나 시세조사도 없으며, 30억이라는 터무니없는 편차를 가진 금액이 근거도 없이 피해추산액으로 기재해 신뢰할 수 없다.
특히 훼손 부위의 교체비용을 전체 마감재 교체비용으로 산정한 것은 현실적인 수리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계산방식이며 결과값을 부적절하게 부풀린 것이다. 학내 커뮤니티(에브리타임)에서 이에 반발해 '세무조사를 받게 하자'며 다 함께 민원을 신청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학교는 게시된 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해당 공지를 조용히 삭제했다.

지워진 평화적 시위들과 외면된 목소리
아무도 동덕여대의 오랜 투쟁과 역사를 알지 못한다. 대중이 '평화롭게 시위하라'고 비난하기 전, 동덕여대 학생들은 이미 몇 년 동안 침묵시위, 본관 점거, 피켓시위 등 평화적 수단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간의 평화시위는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지속적인 보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래커칠 시위가 있고 나서야 우리는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아주 부정적이고, 아주 비참한 방식으로.
래커칠 시위는 학측의 일방적인 면담 취소에 의한 항의의 뜻으로 일어났다. 시위가 일어나자 언론은 앞다퉈 자극적인 보도를 터트렸다. 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본질을 알리고 싶은 건지, 그저 여대 학생들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사람들이 욕하는 것을 부추기는 것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동덕여대의 사안이 외부로 알려진 뒤에야, 평화 시위할 때는 무관심하다가 래커 칠을 하고서야 '왜 평화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들을 보며 참 혼란스러웠다.
대부분의 언론은 해당 시위의 본질이나 사실보다는 '54억원', '폭력사태'라는 특정 단어에만 주목하며 근거 없는 정보와 과장된 내용을 유포했다. 오염된 조동식 설립자의 동상이나, 래커 칠이 상대적으로 난잡하고 넓은 부분에 칠해진 후문 근처의 사진은 집중적으로 보도돼 "래커 칠"과 "여대생의 폭력성"을 강조했다. 언론사들의 받아쓰기식 보도와 날조는 심각한 수준이었으며, 정정 요청을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특히 동덕여대 학우들의 악마화에 가장 앞섰던 모 언론사의 경우, 과장과 허위보도의 수준이 다분히 악의적이고 저열했다. 알고 보니 동덕여대의 이사진 중 한 명이 해당 언론사의 대표였다.

학생들에게 남겨진 상처와 책임
공학전환은 아이디어 차원이 아닌 이미 학생들 몰래 진행됐던 사안이며, '공학은 내 평생의 꿈이었다'는 황당한 소리 외엔 구체적 계획이나 대책도 없었다. 학생 의견 수렴은커녕, 학생을 대등한 존재로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래커 칠 세 글자에 이런 본질들은 쉽게 가려졌다. 처장단 및 이사진은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폭도'로 프레이밍하며 본인들의 실책을 교묘히 가렸다.
학교의 언론플레이가 야기한 마녀사냥은 점차 인격모독, 성희롱, 성폭력 예고 및 살해 협박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위협과 공격으로 확장됐다. SNS·매체 어디든 학우들을 향한 비난과 조롱이 쇄도했다. 학내 커뮤니티에선 정신적 고통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글이 미어터졌다.
오프라인 공간도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각종 유튜버들과 남성들이 교내에 침입을 시도하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얼굴을 촬영했기에 학생들은 마스크를 쓰고 머리 스타일을 바꾼 채 반드시 무리 지어 등하교를 해야 했다.
학교는 몇 주간 지속적으로 위협받은 학생들의 고통을 묵살하고 회피했다. 암묵적인 동조였다. 학교의 선택적인 침묵은 학내의 신뢰 관계를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상태까지 무너뜨렸다.
우리는 시위의 본질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목소리는 단지 학내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평범한 요구였다. 그러나 언론과 학교는 이를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학생들을 탄압하는 데만 집중했다. 54억원 기물파손이라는 허위 사실을 앞세워 학생들을 폭도로 몰아간 행태는 더이상 묵과할 수 없는 문제다.
학측은 본교와 학생들의 명예를 적극적으로 실추시키고, 교육기관으로서 학생들을 보호할 기본적인 의무조차 지키지 않았다. 학생들을 기만하고, 대책 없이 학사운영을 한 후 '철회하겠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아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동덕여대 대학본부에 묻는다. 탄압과 인권침해를 수단으로써 당신들은 대체 무엇을 쟁취하려는 것인가.
당신들은 무고한 학생 21명을 고소했다. 부당한 내용증명을 발송해 진술을 요구하고, 징계위 출석을 강요했다. 법원에 '평화 시위를 할 시 하루에 100만 원'이라는 가처분을 뻔뻔스레 신청했다. 대자보를 찢어내는 전문 인력을 고용하고, 언론을 탄압하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
동덕여대 24학번인 나는, 이제 정신과를 다닌다.
이것이 당신들이 원하는 동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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