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 기각돼 돌아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25일 "헌재 결정이 어떤 결과로 귀결되더라도 존중돼야 한다"며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는 현행범 체포 원칙으로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지난 18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재판소의 어떠한 결정도 수용해주실 것을 국민께 간곡히 호소드린다"며 "공권력에 도전하는 행위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한 바 있다.
말은 그럴듯하다. 그런데 왜 정작 자신들은 법을 무시할까.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때 헌법재판관 임명은 헌법상 의무라는 게 헌재 결정에서 이미 확인됐다. 한덕수 결정문에도 "헌법과 법률 위한 정도가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헌재도 이상하다. 결정문에 분명 위헌이고 헌법질서가 손상됐다고 말해 놓고 무려 세 명을 임명 거부한 한덕수의 행위가 중대한 위헌은 아니라며 기각했다. 이 도대체 뭔가?
행정부도 황당하고 사법부도 이상하다. 윤석열 석방, 김성훈 경호차장 영장 기각, 한덕수 복귀, 헌재의 하염없는 결정 지연 등 내란세력만 신이 났다. 이러다 내란수괴가 다시 군통수권자가 되는 기막힌 현실을 맞이하게 되는 것 아닌가? 왜 세상은 상식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도대체 그놈의 법이란 무엇인가.
육법당 시대에서 서울대 독재 시대로
'서울대 위에 육사, 육사 위에 이대.'
군부독재 정권인 전두환·노태우 시절 떠돌던 우스갯소리다.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 출신만 하는 줄 알았던 시절, 전두환의 아내가 이화여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육법당'이란 말이 있었는데 육사 출신 정치군인들과 이들과 결탁한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국민의힘 전신) 민정당과 행정부 요직을 독차지하며 나라를 쥐락펴락했다.
세월이 흘러 드디어, 최초의, 서울대 법대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육사? 과거 서울대 사람들을 아랫사람처럼 부리던 육사 출신들이 지금은 윤석열이 주는 술 받아마시며 충성을 맹세했다가 국방부 장관부터 육군참모총장 등 10여명이 감옥에 가 있다. 육군은 지도부 붕괴 상태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린 대통령은 풀려나 집에서 김치찌개에 술 마시고 있다. 덧없는 세월, 인생무상이다.
21세기 지금 무대의 주인공은 서울대 법대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 최상목 현 경제부총리 모두 학교 후배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도 거기 출신이다. 사실 윤석열 내각 그 자체가 서울대 졸업생들의 덩어리라고 보면 된다. 한덕수 총리는 물론 교육부총리, 과기부, 외교부, 통일부, 행안부, 산업부, 복지부, 고용부, 국정원 등 내각 핵심은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한민국의 서울대 의존도는 더욱 심해졌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헌법재판소를 보자. 현 8인 중 부산대 출신 한 명을 제외하면 모조리 서울대 법대다. 대법원 역시 조금도 다르지 않다. 현 12명 중 한양대와 포항공대(졸업 후 고려대 편입) 2명을 제외하면 모두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다.
여기서 잊으면 안 될 인물이 있다. 대통령을 풀어준 지귀연 판사. 서울대 법대 후배다. 그렇다면 검찰은? 심우정 총장도 서울대 법대다. 판사 후배가 풀어주고, 검찰 후배는 당연히 해야 할 항고를 포기하고. 이게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그들의 실력, 시켜보니 어떻든가요?
여기서 중간 결산 한 번 해보자. 이렇게 서울대 또는 서울대 법대가 완벽하게 지배하는 행정부와 사법부를 경험해보니 어떻던가. 권영길이 던졌던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지금 대한민국의 처지가 딱 그들 실력이다.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서울대 출신과 법조인이 똑똑하다는 착각이다. 교수 노릇하며, 사회생활하며 서울대 나온 사람들과 법조인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도 있지만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사람도 많이 봤다. 두리번거릴 것 없이 그냥 윤석열 보면 된다.
그럼에도 왜 이들이 국가를 이렇듯 (정치, 행정 능력도 없으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주무르는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기득권 카르텔은 재벌, 언론, 노조, 의료 등 다양하다. 그런데 그중 건국 이래 가장 흔들림 없는 카르텔이 바로 서울대 카르텔이다. 행정, 사법, 입법 전 분야에 걸쳐 있다. 재벌, 언론도 내부적으로 순위가 변하고, 노조와 의료는 출신 성분이 다양하다. 반면 서울대는 단 한 번의 부침도 없었던 단일대오다.
실제 서울대 법대, 경제학과, 정치·외교학과, 교육학과 교수들은 법무부, 기재부, 외교부, 교육부의 잠재적 장관 후보자다. 이들은 서울대 출신 관료들과 함께 내각을 거머쥔다. 사법부는 더 이상 가관일 수가 없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등 최고위직에 오르려면 '서울대 출신'이거나 (자기들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서울대 출신들이 동의하는 타 대학 출신'이어야 한다. 후보 추천위원회부터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머릿속엔 '모든 서울대 출신들이 그 외 모든 대학 출신들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이 들어앉았다. 그래서인가 이들이 마음에 담고 있는 선민의식, 엘리트의식은 놀라울 정도다. 체득한 교육과 교양의 힘으로 자제할 뿐 이들이 자기들끼리, 또는 취했을 때 내뱉는 타 학교, 특히 지방(대)에 대한 비하는 듣기 힘들 정도다. 이들의 선민의식이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의 행정부와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가 저지르는 헌법 유린의 밑바탕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법 위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와 기회주의자의 차이
원조 보수라 할 조갑제는 "계엄사태 본질은 민주공화국에 대한 공격"이자 "역사발전에 대한 반동"이라 했다. 강성 보수 김진은 "8대0 파면은 명약관화"하고 "그 반대 때는 제2의 4·19가 일어나는 건 명명백백"하다고 했다. 보수 논객 정규재는 윤석열의 주장은 "전부 음모론으로 구성"되어 있어 아무런 근거가 없고 오히려 이재명 대표가 처음부터 무죄라고 했다. 보수주의자와 기회주의자는 마땅히 식별하고 구별해야 한다.
윤석열은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라는 국회 답변으로 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에 복무할까. 권력이다. 그와 그의 아내 김건희는 오직 권력을 위해 사고하고 행동하고 전화한다. 심우정의 검찰이 김건희 주가조작 조사에 나섰을 때 검찰로 부르지도 못하고 경호처 영내로 들어가 자신들의 핸드폰도 빼앗긴 채 조사해야 했다. 특수부 칼잡이들이 경호처 총잡이들에게 무릎 꿇은 것이다. 검사로서의 기개도 없고, 권력 앞엔 그저 순한 양이다.
그렇다면 헌재는? 판사들은 살짝 다르다. 이들은 기득권에 충실히 복무하는 자들이다. 2004년 헌재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관습헌법'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개념을 창조해 위헌 결정을 내려 수도 이전을 좌초시켰다. 법조인들조차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그 근거가 무엇? 헌법이 아니라 경국대전이었다. 거기에 한성이 수도라고 써있단다. 이들은 기득권 수호를 위해서라면 경국대전까지 들여다보는 이들이다. 지금 헌재의 정치적 의도가 뒤섞인 '고의 지연'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그렇다. 이들은 또 무엇을 창조해서 우길지 모른다.
군부독재 시대가 가고 지금 서울대독재 시대를 지나고 있다. 그야말로 혼군, 그리고 무도한 정부다. 독재가 과한 표현이라고? 특정 1인 또는 소수가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하는 게 독재다. 대충 맞지 않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독재의 가장 큰 특징으로, 국민이 어리석기 때문에 똑똑한 지도자가 이끌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 위에 기반한다는 점을 꼽았다. 그렇다면 윤석열이 이끄는 지금의 독재체제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첫째, 우리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둘째, 윤석열을 위시한 지금의 국정 세력은 똑똑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능력도 없다. 셋째, 무엇보다 법기술 가지고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싸우다 엉뚱하게 국민에게 승복을 강요한다. 그러나 우리는 독재에 승복한 역사가 없다. 너희가 무슨 장난을 치든 윤석열 체제는 무조건 무너진다.
니가 해라 승복
최근 권성동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정치인들과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일제히 이재명에게 '탄핵 결과 승복'을 연이어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조갑제는 "탄핵 승복은 가해자 윤석열 몫"이라며 "이재명이 계엄 선포했나"라고 반문한다. 최상목에 이어 한덕수가 또 '헌재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승복'을 강조한다. 승복이 풍년이다. 체포, 무관용 원칙, 수사 등 살벌한 언어까지 동원한다. 자기들이야말로 법과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으면서 무슨 염치로 국민에게 승복을 강요하나. 나의 답은? "너희들 하는 거 봐서." 아니라면? "니가 해라 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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