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육아 분야 활동 시범사업'에 서울시가 참여한다. 시범사업을 통해 활동 허가를 얻은 외국인은 개별 가정과 '사적 계약'을 맺고 최저임금법 등 노동관계법의 사각지대에서 일하게 된다. 노동계에서는 "외국인을 노동관계법 적용을 받지 않는 일자리에 묶어두겠다는 것은 인종차별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시는 지난 23일 보도자료에서 "법무부와 함께 서울에 체류·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가사·육아 분야 활동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며 "24일부터 국내 체류 외국인을 대상으로 모집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어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가사·육아 부담을 경감하는 동시에 사업에 참여하는 외국인의 체류 안정성 확보에 도움이 돼 시민과 외국인 모두 혜택을 받는 사업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시범사업 모집대상은 서울 소재 학교에 다니는 유학생(D-2), 졸업생(D-10-1), 외국인 노동자의 배우자(F-3), 결혼이민자 가족(F-1-5) 등 합법 체류 특정 비자를 보유한 성인이다. 서비스 신청이 가능한 가정은 6세 이상 18세 이하 미성년자를 양육하는 서울 소재 가정이다.
법무부는 선발된 이들에게 활동 허가·교육 프로그램 제공 등을 지원하고, 서울시는 수급 매칭·교육 운영·민원 응대 등 행정 절차를 담당한다.
문제는 이번 시범사업에서 활동 허가를 얻은 외국인이 서울시가 정한 "민간 매칭 플랫폼 기업"을 통해 개별 가정과 '사적 계약'을 맺고 일하는 가사사용인으로 일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경우 가사관리업을 영위하는 회사가 고용 계약을 맺은 가사노동자와 달리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 노동관계법 대부분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
이는 지난해 서울시가 시행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비해서도 노동조건 면에서 후퇴한 것이다. 해당 시범사업을 통해 입국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서울시와 협약을 맺은 회사에 고용돼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시급(지난해 9860원, 올해 1만30원)을 받으면서도 1.5평 숙소비 53만9000원 등 70여 만 원이 월급에서 공제된다며 어려움을 호소한 바 있다. (☞관련기사 : "1.5평 숙소비 54만 원", "주말에도 일해"…필리핀 가사관리사의 눈물)
노동계에서는 이번 사업이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발상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영섭 이주노조 활동가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이주 가사돌봄노동자에게 최저임금법 등 노동관계법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건 인종차별적 발상"이라며 "가사관리업에서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사례를 만들면, 다른 업종에서도 비슷한 요구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서울시가 민간 플랫폼 기업을 통해 가정과 가사사용인을 매칭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인력공급업체와 이번 시범사업에서 운용되는 플랫폼 업체 간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며 "법무부와 서울시가 허가를 주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면 노동자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도 "2022년 회사가 고용한 가사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등을 적용하게 한 가사근로자법을 제정해 가사노동자를 법 적용을 받는 공식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흐름이 있었는데, 법무부와 서울시가 나서 비공식 영역을 늘리려 하는 것 자체가 문제적"이라며 "임금체불이나 갑질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시범사업에 참여한 가사사용인이 적절한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무부와 서울시가 이번 사업에서 가정과의 사적 계약을 통한 가사사용인 활동 허가만 내주겠다고 한 데 대해서도 "보통의 가사노동자는 회사에 고용돼 일할 수도, 가정과 계약을 맺고 일할 수도 있다"며 "외국인에게만 반쪽짜리 허가를 내주는 것은 차별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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