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사실상의 의대증원 철회,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사실상의 의대증원 철회,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

[시민건강논평] '추계'의 정치를 넘어 '과학'적 정치로

지난 주 내란 수괴 윤석열에 대한 구속 취소 청구가 황당한 이유로 인용되면서 그가 석방되는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내년 의대 모집 정원을 증원 전 수준으로 되돌린다는 정부 발표는 우리 마음을 더욱 참담하게 만들었다. 3월말 의대생 복귀를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사실상 의사 증원 정책을 철회한 것이나 다름 없다.

이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윤석열이 탄핵 소추된 이후 정부와 의사 집단 간의 팽팽했던 대립구도에 균열이 갔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의사 증원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독단적인 대통령 리더십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정책 당국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책을 추진할 의지와 자원, 동력을 상실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애초부터 졸속으로 추진되는 시장친화적 의사 증원 방식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관련논평 바로가기). 하지만 정부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이들이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중증환자 치료 기능이 위축됐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한 환자단체 대표의 말처럼 "그럼 뭘 위해서 이렇게 견뎌온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언제까지 의정갈등 국면을 지속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양측 모두 시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불편의 문제에 책임감을 느끼고 한 발씩 물러나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 결론이 지금처럼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진짜 위기는 그대로 있는데, 이를 해결하겠다며 불필요한 위기를 만들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해 놓고 이제 와서 무책임하게 발을 빼려는 것인가.

이번 사태로 생명과 건강을 잃은 시민들에게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면 뭐라도 유의미한 개혁 방안을 도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즉, 증원을 보류하더라도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예컨대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 도입 등 의사 인력의 왜곡된 분포를 다소나마 교정할 수 있는 대안들에 대해 의사 집단의 원칙적 동의라도 받아내야 한다.

물론 정부는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은 다시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에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고서도 그때 가서 증원 결정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정부와 의사 집단 모두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과학적 추계'를 강조하며 의사 증원의 정당성과 부당함을 주장해오지 않았던가.

과학적 접근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과학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적정 의사 인력 수 산출과 같은 연구의 경우, 인구 구조나 의료이용 행태의 변화, 의사 근무시간 변화, 기술 발전과 간호사 등과의 업무 분담에 따른 역할 변화 등 여러 불확실한 변수들을 추계 모형에 어떻게 포함(제외)하는지에 따라 예측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필시 연구자의 가치판단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이는 사회과학이 수많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하는 개방체계를 분석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에서 사실판단은 늘 가치판단과 결합되어 있으며, 사회과학의 객관성을 훼손하는 것은 가치의 개입이 아니라 바로 '나쁜' 가치의 개입이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과학적 추계 기구만 설치되면 누구나 납득할만한 근거가 만들어져 증원 논란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국회에 제출된 추계위 설치 법안을 보면 의사들이 위원의 과반을 추천하도록 돼 있다. 즉, 정치권은 실상 의사 집단에 백기투항하면서도 증원 여론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익숙한 과학주의를 명분 삼아 골치 아픈 상황을 무마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면 조만간 또 다시 추계 결과의 타당성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계산하기'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과제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보건의료체계의 가치와 원칙에 대한 더 넓고 열린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의 구체적 방안으로, 이를테면 '보건의료 대개혁 위원회'나 '시민 건강 의회' 등을 제안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핵심은, 자기 이해관계의 덫에 갇혀 있는 의료 전문가나 주류 정치권이 아니라,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개혁의 키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 가치에 부합하는 보건의료개혁의 대원칙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러한 사람 중심 보건의료개혁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비판적 사회과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즉, 나와 공동체의 고통과 불안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규명하고 이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과학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관료, 전문가 관점에서 포착되지 않았던, 새로운 개혁의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비판적 사회과학 연구는 경험적 현상만을 좇는 실증주의 과학관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최근 연구자들 사이에서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의료공백에 따른 초과사망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지난해(2~7월) 3000명 넘는 초과사망이 발생했다는 김윤 의원실의 발표가 논란을 촉발했는데, 통계적 유의성이 확인되지 않았고 한국의 빠른 고령화 추세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실제로 최근 공개된 다른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3~12월) 초과사망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주제에 대한 기존 국외 연구들과 맥을 같이 하는 결과이면서, 보다 정교한 연구 설계라는 점에서 초과사망이 없었다는 가설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연구진도 밝혔듯이 초과사망만으로 의료공백이 야기한 사회적 고통의 크기를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망률은 가장 기본적인 보건지표이지만 동시에 총합적 결과만을 중시하는 공리주의적 산물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사망의 불평등도, 6개월 생존가능한 암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2개월만에 사망하는 문제도, 기약 없이 미뤄지는 수술 일정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환자들의 애달픔도, 그리고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초과노동을 감수해야 했던 병원 노동자들의 고충도 반영되지 않는다.

초과사망이 없으니 그만큼 사회적 고통이 크지 않았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초과사망은 어디까지나 '실재'하는 사회적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도록 돕는 부차적 근거일 뿐이다. 하지만 실증주의 패러다임에서는 측정(계량화)되지 않는 고통은 간과되기 일쑤고, 그러다보니 초과사망을 막은 정부 대응이 성공적이었다고, 또는 의료진(주로 의사)의 노고와 희생 때문이라는 아전인수식 해석 싸움이 벌어진다.

우리는 이 결과를 비판적 실재론에서 말하는 '반현상성(counter-phenomenality)'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겉으로 드러난 현상과 문제의 본질(구조적 실재)이 불일치 혹은 반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공백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초과사망의 위험을 높이는 기제를 작동하고 있지만 다른 여러 기제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 영향력이 상쇄되어 불완전하게 실현된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초과사망을 유발하는 구조적 경향성과 힘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드러난 현상과 통계적 연관성에만 몰두하는 연구로는 사회적 고통을 양산하는 인과기제로서의 구조의 문제를 규명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과학은 보건의료체계의 시장화·영리화가 보건의료 위기를 만드는 핵심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사람들이 이러한 구조의 변화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기여하는 활동이다.

이를테면, 숫자가 가지는 힘을 활용해 이러한 연구를 해볼수 있지 않을까. 지금처럼 시장형 의사 인력 수급체계를 지속할 경우 향후 얼마나 많이 수가와 인건비를 올려줘야 필수·지역의료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 또는 지금처럼 공공병원 확충과 기능 강화를 위한 예산 투입에 소극적일 경우 또 다른 강력한 팬데믹이 닥쳐왔을 때 민간의료기관에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재정을 쏟아부어야 할지 추계하는 연구 말이다.

연구자들 역시 기존 체제의 제약과 압력을 받는 존재라는 점에서 이런 연구가 가능하려면 결국 정치적 주체로서의 성찰과 관점의 전환이 중요할 것 같다. 이를 통해 국가와 자본의 논리가 아닌, 생명과 인권 중심의 보건의료개혁을 추동하는 도구로 연구를 활용하는 '과학적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민건강연구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

(사)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비영리독립연구기관입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연구소가 발표하는 '시민건강논평'과 '서리풀 연구通'을 동시 게재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