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 해 한국에서 자살한 사람이 2011년 이후 가장 많았다.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률도 인구 10만 명당 28.3명으로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잠정치이며, 이후 정확한 통계가 나오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가운데 한국은 2003년 이후 20년 넘게 자살률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자살률 수치는 OECD 평균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선다. 한때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했지만, 가입 당시에는 자살률이 감소하여 한국이 1위를 유지했고, 두 나라 간 격차는 오히려 벌어지고 있다.
자살률이 떨어지기는커녕 다시 오르는 모양새를 보인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도 주목할 만하다. 정치권에서는 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이며, 사람들 사이에서도 큰 이슈로 다뤄지지 않는다. 언론 역시 자살 문제보다는 차라리 부동산 관련 뉴스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높은 자살률이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닌 듯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이에 익숙해져 무감각해졌거나 체념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더욱 씁쓸하고 암울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저출산 정책처럼 무분별하게 자살 예방 정책을 쏟아내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저출산 대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 못할뿐더러, 종종 기득권층에 혜택을 주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잘못된 방향으로 관심과 자원이 집중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살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대응 방향은 역시 근본적인 문제를 겨냥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차례 자살 예방 정책이 정신병리학적 접근에 치우쳐 고위험군 관리에만 집중한다고 비판했다. 캠페인, 상담 전화, 전문 심리상담과 같은 정책만으로는 장기적인 자살률 감소를 기대하기 어렵다.
2022년 자살률이 전년 대비 0.8명 감소하자 보건복지부 장관은 <2024 자살예방백서> 발간사에서 정부, 지자체, 민간 기관이 협력한 덕분이라며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된 2023년 통계에서는 자살률이 2.1명 증가했고, 2024년에도 약 1.1명 늘어나며 근래 최악의 수준을 기록했다.
자살률이 다른 OECD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간다면, 이는 단순한 정책 효과가 아니라 사회적 요인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개인의 자살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의 상호작용 결과이며, 자살'률'은 사회적 경향의 산물이다. 각 사회의 자살률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며 서서히 변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어떤 사회적 구조가 언제, 어떤 집단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 자살로 이어지는지를 규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응하는 것이 과학적이고 윤리적인 접근일 것이다. 자살을 유발하는 사회적 구조는 단순한 한두 가지가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규범 등 다양한 영역들에 위치하고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예를 들어, 불안정 노동과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한 구조가 자살을 유발하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故 오요안나 씨의 죽음은 너무나 비극적이지만, 방송 현장의 대다수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나도 같은 일을 겪었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고 말하는 노동자들이 방송 현장에 많습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러한 사회적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자살예방 정책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반도체특별법, 국민연금 개혁, 노조법 2·3조 개정 등도 자살 예방과 무관하지 않다. 사람들이 건강하게, 생존에 필수적인 재화 및 서비스에 쉽게 접근 가능하며, 모욕 당하지 않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자살 예방과 어찌 관련이 없겠는가. OECD에서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을 감안한다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것이 노인의 존엄한 삶과 자살률 감소에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좀처럼 자살 문제와 이러한 제도적 변화들을 연결 짓지 않는다. 자살 예방을 논의할 때는 고위험군 관리와 캠페인 등 직접적인 정책에만 집중하고, 각종 사회 정책들은 별개의 문제로 다룬다. 이처럼 모든 문제를 개별화하고 개인화하는 접근 방식이 결국 자살 문제조차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켜 버린다. 그 결과, 한편에서는 자살 고위험군을 가까스로 살려놓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한편 사회 전체에서는 자살 고위험군을 양산하고 있는 것 아닌가.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단순한 통계적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높은 자살률은 우리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충분한 삶의 질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단순히 정신(마음)건강 예산을 늘리고 상담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자살이 감소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방식은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거나 또 다른 산업적 이해관계를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진정한 자살 예방은 자살률 통계를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조성한 삶의 조건을 반영하는 거울로 읽어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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