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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할 수 있다

[거인들의 발걸음] 세종호텔지부 고진수 지부장 고공농성에 부쳐

지난 2월 13일 새벽 5시, 세종호텔지부가 고진수 지부장이 하늘 감옥으로 오르며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고진수 지부장이 올라간 곳은 세종호텔 앞 도로에 설치된 10m 높이 철제 구조물이다. 키가 180cm가 넘는 고진수 지부장이 그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의 폭은 채 1m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구조물이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위에 있어 안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에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은 더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고공농성을 벌이는 구조물 위치 자체도 위험하지만 공권력이 마구잡이로 투입될 경우 안전을 더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진수 지부장은 고공농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13일 고농농성을 시작하며 고진수 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15년간 싸워왔습니다. 정리해고 투쟁은 3년을 겨우 넘었지만 노조 탄압에 맞선 투쟁은 15년간 이어졌습니다. 회사는 복수노조법을 활용해 교섭권을 앗아가고 부당전보와 각종 괴롭힘으로 노조의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그렇게 임금은 개악되고 정규직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급기야 세종노조의 위원장이었던 김상진 동지를 해고해 차근차근 노조를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12월 10일 민주노조 조합원 12명만 표적 정리해고하며 노조파괴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습니다.

이 상황이 솔직히 답답합니다. 노동자들이 유리한 판결은 10년 가까이 시간을 질질 끌지만 우리 세종호텔처럼 노동자에게 불리한 판결은 속전속결로 처리됩니다.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증명하려면 고공농성이라는 극한의 투쟁으로 저 자신을 몰아넣어야 합니다."

고진수 지부장이 고공에 오른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7년 박근혜 탄핵 이후 고진수 지부장은 정리해고법 폐지,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광화문 사거리 광고탑에서 고공단식농성을 벌였다.

ⓒ김경미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을 비롯한 온갖 노동악법을 철폐하자

2021년 세종호텔 사측이 조합원들을 정리해고하면서 든 근거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이었다. 그리고 대법원은 2024년 12월 12일, 세종호텔 사측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선고했다. 하지만 세종호텔 해고자들은 경영상의 어려움은 허울 좋은 구실일 뿐이고 민주노조 조합원을 표적 해고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세종호텔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물론이고 지금껏 많은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 이에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은 원직복직을 주장하면서 나아가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을 비롯한 온갖 노동악법을 철폐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세종호텔 동지들의 처절한 사투에 화답하듯 최근 많은 말벌동지들이 세종호텔지부 농성장과 고진수 동지를 함께 지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월 15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주최한 탄핵집회 광장에 모였던 참가자들이 행진을 세종호텔 농성장에서 마무리하며 연대의 커다란 힘을 보여줬다. 이후에도 민주노총 조합원 대열을 중심으로 많은 말벌동지 대오가 주말 탄핵집회 마무리를 세종호텔 농성장에서 이어가고 있다. 3월 1일에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자들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22일간 350km 여정으로 진행된 '희망뚜벅이' 대오가 세종호텔 농성장을 찾기도 했다.

'나'는 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할 수 있다

지난 2월 22일, 고공농성 10일 차를 맞이한 고진수 동지는 행진 대오들 앞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을 비롯한 온갖 노동악법의 철폐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데 앞장섭시다. 먹고사는 문제를 정치권이 아닌 노동자들의 힘으로 해결합시다. 총파업을 조직하고 당당하게 노동악법 철폐를 요구합시다. 총파업 투쟁으로 전국의 투쟁사업장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합시다."

윤석열 계엄령 이후 우리는 광장에서 '나'는 아니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느끼고 또 발휘하고 있다. 점점 커지고 있는 그 잠재력을 광장에서뿐 아니라 현장과 더 넓은 공간으로, 조직된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에게로 확장하자. 그 힘으로 세종호텔, 옵티칼, 한화오션, 이수기업, 서면시장, A학교 등 여러 공장과 일터,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진정으로 노동자들이 웃을 수 있는 노동자 세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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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글을 쓰고 외국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책을 만들며 개와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의 대한문 분향소 농성을 계기로 잠시 잊고 있던 사람들과 사건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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