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오요안나 씨의 죽음은 너무나 비극적이지만, 방송현장의 대다수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나도 같은 일을 겪었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고 말하는 노동자들이 방송현장에 많습니다."(진재연 엔딩크레딧 집행위원장)
문화방송(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씨가 직장 내 괴롭힘과 보호장치 부실로 사망한 가운데,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불안정한 고용, 여성 차별적인 환경 등 방송 프리랜서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당사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27일 더불어민주당 김태선·이용우, 엔딩크레딧, 공공운수노조가 주최한 '제2 오요안나 사건 방지를 위한 방송노동자 긴급 증언대회'에서 방송 프리랜서들은 방송업계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갑질'이 바뀌지 않는 한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20여년간 방송계에서 근무한 김기영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은 "소수에 불과한 정규직 방송사 직원들이 프리랜서 방송노동자들에게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거기에 자신들이 쓰기 편한 사람들에게 권력을 주고 마름 역할을 시키기도 한다"며 "방송계에서 비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관리하게 하는, 오요안나 씨와 같은 경우가 많다"고 증언했다.
또한 그는 "방송 프리랜서들은 방송사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았다거나 용역계약이라는 이유 등으로 일하다 다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방송사 정규직들은 한국 재벌들의 착취를 뉴스에서 비판하면서도 본인들은 프리랜서들에게 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한수정(가명) 방송작가는 "외주 방송작가로 일해온 지난 16년간 (근로)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사무실에는 내 자리가 있으며, 방송사 직원들의 허락 하에 업무를 진행함에도 관행이라는 이유로 계약서 작성을 미룬다"며 "계약서조차 없으면 불법해고나 임금체불과 같은 부당대우를 당해도 증명할 길이 없다"고 했다.
이어 "10년 전 한 방송사의 국장이 욕설과 성희롱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음에도 외주 제작사 직원들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견디지 못하는 직원이 그만두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며 "방송에서는 공정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방송사가 공정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도 이런 현실을 안다면 방송작가를 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요안나 씨와 같이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겪은 방송 프리랜서의 비율은 일반 직장인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다. 방송 프리랜서 문제해결을 위한 단체 엔딩크레딧이 2023년 8월 방송 프리랜서 4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비율은 73.2%로 지난해 12월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35.9%)의 두 배를 넘는다. 특히 따돌림·차별을 겪은 방송 프리랜서의 비율은 39.8%로 직장인 평균(15.4%)에 비해 2.6배 높았다.
정규직은 남성이, 비정규직은 여성이 맡는 성차별적 관행도 여전하다. 진재연 엔딩크레딧 집행위원장은 "2020년 보고서에 의하면 방송 프리랜서 10명 중 7명은 여성이며 그 중 75%가 2030 청년 여성"이라며 "여성만 프리랜서로 활용되는 직무가 16개나 돼 방송사가 청년 여성들을 착취해서 굴러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프리랜서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는 것과 더불어 정부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단순히 MBC뿐 아니라 많은 방송사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관리감독 기관들은 단순히 법 제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을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토론회에 참여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사안을 굉장히 엄중히 바라보고 있으며 MBC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관계법 전반을 살필 뿐 아니라 근로자성이나 괴롭힘에 대한 사실관계,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실태 파악을 병행하고 있다"며 "조사결과에 따라 개선사항을 찾고 방송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등 후속조치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