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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판 '총여' 폐지? 대한변리사회, 대한여성변리사회에 "명칭 사용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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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판 '총여' 폐지? 대한변리사회, 대한여성변리사회에 "명칭 사용 말라"

남성 주축으로 폐지 폭압적, 오히려 여성단체 필요성 부각"…내부 지적

3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온 대한여성변리사회가 하루아침에 사실상 폐지됐다. 대한변리사회가 별도 단체인 대한여성변리사회의 명칭 사용을 금지하는 안건을 가결한 것이다. 대한변리사회의 이번 결정은 뿌리 깊은 남성 중심 문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그간 대학가에서 전개되어 온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프레시안> 취재를 종합하면, 대한변리사회는 지난 21일 제64회 정기총회를 열고 "대한여성변리사회는 그 명칭 사용을 금한다"는 긴급 안건을 가결했다. 별도 단체인 대한여성변리사회가 대한변리사회와 이름이 유사해 유관기관으로 여겨지거나 대표성을 가진 조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다.

앞서 대한변리사회는 이날 총회에서 대한여성변리사회를 내부 조직으로 편입하는 회칙 개정안을 상정했으나, 해당 개정안은 출석 회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지 못해 부결됐다. 그러자 김두규 변리사회장은 여성변리사회의 명칭 사용을 금하는 긴급 안건을 상정했다. 안건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내부 의견이 나왔으나 앞선 안건에서 함께 토론됐다는 이유로 바로 표결에 부쳐졌고, 다수 투표자 찬성으로 가결됐다.

대한변리사회는 내부에서 대한여성변리사회의 명칭 사용에 대한 비판이 있었으며, 대한여성변리사회와의 협의를 거쳐 이번 의결을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김두규 회장은 25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총회에서 문제제기가 나와 논의가 시작됐으며, 대한여성변리사회가 공식적으로 대한변리사회에 들어오면 이름을 유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름을 쓰지 않는 것으로 서로 합의했다"며 "명칭 사용금지 안건에 투표자 80~90%가 찬성해 중의를 따라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대한여성변리사회 입장은 다르다. 대한변리사회의 내부 기구로 들어가는 방안은 협의한 바 있지만, 명칭 사용금지 안건에 대해선 협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소현 대한여성변리사회 회장은 <프레시안>에 "대한변리사회로의 편입 자체는 반대할 수 있고 대한여성변리사회의 존재 이유를 모를 수도 있다"면서도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하는 건 여성변리사들을 대표하는 단체가 아니라고 하는 것인데, 그러면 공적 단체로서의 정체성은 없어지기에 사실상 대한여성변리사회가 폐지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세윤 전 대한여성변리사회 회장도 "다른 모든 전문직은 여성단체가 있는데 우리만 유사 명칭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무작정 이름을 쓰지 말라는 건 문제적"이라며 "1993년부터 30년 넘게 유지된 단체에게 명칭 사용을 금지하는 건 실질적으로 협회를 폐지하라는 뜻이다. 별도 단체의 폐지를 결의하는 것은 비민주적이고 위헌적"이라고 했다.

▲대다수 전문직종에는 여성 종사자들을 위한 별도의 단체 또는 내부조직이 존재한다. ⓒ대한변리사회 안건지 갈무리

김 전 회장의 주장처럼 여러 전문직종에서 여성단체가 존재하며, 유사성을 이유로 명칭 사용을 막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공인회계사 직종에는 '한국공인회계사회'와 '한국여성공인회계사회'가 있으며, 세무사 직종에는 '한국세무사회'와 '한국여성세무사회', 건축사 직종에는 '대한건축사협회'와 '대한여성건축사회'가 있다. 이외에도 '대한변호사회 여성변호사 특별위원회'나 '한국세무사회 여성세무사위원회' 등 여성 종사자들을 위해 협회에 내부 조직을 설치한 사례도 많다.

결국 이번 결정은 남성 중심 문화가 지배적인 변리사 사회에서 여성단체의 존재 자체가 불편하게 여겨진 탓이란 해석이 나온다. 변리사 시험 합격자 중 여성의 비율은 매해 증가해 2023년 40%대까지 올랐지만, 사업장을 차린 변리사 중 남성은 93%, 여성은 7%(국세청, 2022년 말 기준 100대 생활업종 업종별 성비 차이)일 정도로 변리사는 대표적인 남초(남성 중심) 직종으로 꼽힌다. 실제로 여성변리사회를 향한 비판 중에는 "여성 변리사가 많은데 왜 여성회가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2023년 국세청이 발표한 2022년 말 기준 100대 생활업종 업종별 성비차이. ⓒ국세청

이번 총회에 참석한 손영현 변리사는 "총회 회의에서 발언한 변리사 중 여성은 대한여성변리사회 회장뿐이었다. 토론장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단체 스스로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몰라도 남성이 주축이 되어서 폐지하는 건 대단히 폭압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손 변리사는 "내가 다녔던 연세대학교에서 벌어진 총여학생회 폐지와 비슷한 모양새"라며 "남성 중심 문화로 인해 벌어진 세태 때문에 대한여성변리사회가 생긴 것인데 남성에 의해 없어지는 건 더더욱 대한여성변리사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격"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여성변리사회는 직종 내 성차별을 넘어 여성 변리사들의 역량 향상 및 대외교류를 위해서라도 여전히 여성단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전 회장은 "여성의 리더십,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으며, 박 회장은 "기업 또는 정부기관에서 여성변리사회에 강연을 부탁하는 등 사회적 수요가 있고, 선배 변리사와 후배 변리사 간 대화 또는 다른 전문직 여성단체와의 교류 등 소통 창구 역할도 하고 있어 여성변리사회가 필요하다는 변리사들이 있다"며 "대한변리사회의 안건 의결에 대해 추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대한여성변리사회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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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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