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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일 게 너는 늘려라'는 트럼프, 동맹과 우방에 된통 당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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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일 게 너는 늘려라'는 트럼프, 동맹과 우방에 된통 당할라

[정욱식 칼럼] "힘에 의한 평화"? 미국만의 평화, 애초부터 달성 불가능한 목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군 지휘관들에게 향후 5년에 걸쳐 매년 8%씩 국방부 예산을 감축하라고 지시했다고 <CNN> 등 미국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회계연도 2024년 펜타곤의 예산은 850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러한 계획이 실행되면 5년 후 펜타곤 예산은 5600억 달러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21세기 들어 국방비 증액이 '뉴노멀'처럼 되어온 미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파격적인 계획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전후 흐름이 이상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월 19일에 국방비를 1000억 달러나 늘리겠다는 하원의 계획을 승인한 바 있다. 또 헤그세스 본인도 2월 중순 독일 방문 중에 "나는 미국의 군사력에 투자를 작게 한 바이든 행정부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지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이는 앞서 소개한 헤그세스의 메모와는 상반된 얘기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엇박자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선 다양성·평등성·포용성(DEI)과 기후 변화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부정적 태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헤그세스는 "나는 국방부 조직과 각군이 전시에 맞는 역량과 준비태세를 갖출 수 있도록 자원을 확보하고, 불필요한 DEI 및 기후 변화 프로그램과 같이 영향이 적은 항목들을 줄여 그 요구를 상쇄할 것을 요청한다"고 메모에 적었다.

또 일론 머스크가 주도하는 '정부 효율부' 차원에서도 분석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 정부 예산과 직원을 대폭 감축한다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국방 분야도 이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3년 기준으로 국방예산은 8160억 달러로 연방 정부의 재량 지출(Discretionary budget)에서 무려 48%를 차지했다. 또 국방부는 현역 군인 130만 명을 포함해 29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는 연방 정부 전체 인력의 32%에 해당한다.

이렇듯 트럼프 행정부는 공룡처럼 비대해진 펜타곤을 수술해 연방 정부의 효율성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거꾸로 군산복합체는 물론이고 이들과 유착관계를 맺어온 의회·언론·싱크탱크 등의 강한 반발을 초래할 것을 예고해준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다. 트럼프는 동맹·우방국들을 상대로 방위비 대폭 인상을 압박해온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미 일본을 상대로는 1기 트럼프에 비해 2배로 올리겠다는 다짐을 받아냈고,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을 상대로 6월 나토 정상회의 이전까지 모든 회원국이 GDP 대비 2%를 달성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그 이후에는 GDP 대비 5%까지 올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 GDP 대비 2.5% 수준인 대만을 향해서는 5∼10%까지 높여야 한다고 요구해 대만 정계에 일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을 상대로는 방위비 자체보다는 주한미군 주둔 경비, 즉 방위비 분담금을 문제삼고 있는데, 트럼프는 대선 유세 때 100억 달러를 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현재보다 9배나 높다.

트럼프의 기이한 언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3대 핵보유국들은 미국·러시아·중국이 "비핵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또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우리 사이가 좋아지면 그런 돈(군사예산)을 더 좋은 목적에 쓸 수 있다"며, 시진핑 주석 및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만나면, "나는 '우리 군사예산을 절반으로 줄이자'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비에 대한 접근에도 "미국 우선주의"가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국은 국방비를 줄이고 동맹·우방은 국방비를 크게 늘리면 동맹을 상대로 한 미국의 안보 부담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제 무기 수출도 대폭 늘릴 수 있다.

또 미·중·러가 트럼프의 제안대로 핵군축 및 국방비 감축에 나서면, 미국의 안보 수요는 줄어들고 트럼프는 "피스메이커"로서의 위상을 확보해 노벨평화상에 다가설 수 있다.

그런데 군비에 대한 트럼프의 접근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처럼 아시아의 동맹·우방이 국방비를 크게 늘리면 중국도 맞대응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대폭 늘리는데 러시아가 군축을 단행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난망하다. 즉, 트럼프의 발제는 미국은 쏙 빠진 상태에서 유럽과 동아시아의 군비경쟁이 격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동맹·우방은 군비 부담은 부담대로 커지고 미국에 대한 의존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또 거의 모든 나라가 민생 위기와 미국발 관세 폭탄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부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군사력에 투입하면 각국 내부의 위기도 증폭될 우려가 크다. 극우의 득세를 수반하면서 말이다.

이게 트럼프의 노림수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의 동맹·우방이 적대 국가들과의 관계를 재설정하지 않으면 된통 당할 수 있다. 트럼프가 말한 "힘에 의한 평화"는 미국만의 평화라는 점을 깨닫고, '적대국과의 대화와 군비통제를 통한 평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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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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