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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지 않는' 정치원로 유시민이 원하는 정치는?

[정희준의 어퍼컷] '정치 보복'이 한국 정치의 미래인가?

유시민. 지식인 중 '천재'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다. 최고의 글쟁이이고 맞상대를 찾을 수 없는 논객이다. 그런 그도 정치엔 '젬병'이었나보다. 2013년 "내가 졌다"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대구 출마, 경기도지사 도전 모두 실패했다. 너무 많은(?) 정당을 창당했고 결과는 허무했다.

그는 언제나 비주류였다. 대통령의 왼팔이니 오른팔이니 이야기를 들어도 그 위세로 주류가 되기보다는 다시 새로운 당을 만들러 뛰쳐나갔다. 그래서 정계 은퇴한 후 한 인터뷰에서 "괴상한 놈 하나 왔다 갑니다"라며 스스로를 자조했다. 대학 동기인 한홍구 교수는 그를 '철들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맞는 말 같다.

'철들지 않는' 정치원로 유시민

지난주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서 유시민이 한 발언이 논란이 됐다. 김부겸, 김동연, 김경수, 임종석 등 비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내 잠재적 대권주자들을 모조리 불량품(?)으로 만들어버렸다. 내가 아는 알량한 정치 상식으론 이런 이들을 '우리 당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보호하고 응원한다. 그러나 그는 "(김부겸) 형이 공개적으로 하니까 나도 공개적으로 하는 거야"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김부겸이 공개적으로 대권 도전 선언을 했던가. 아니면 공개적으로 유시민 험담을 했던가.

그 영상은 조회수 300만을 넘겼고 그 일부를 편집해 조회수 수십만을 기록한 클립 영상은 개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방송 이후 온라인에서 이들 네 명을 향한 비난은 글로 옮기기 힘든 수준이다. 그는 스스로를 '데카당(decadent)하다'고 표현했던데, 자신의 동지들을 들개들에게 던져 준 것이나 다름 없다. 민주당 안팎에선 '취지는 알겠는데 발언 방식이 문제'라는 평이 많던데 나는 취지조차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그 인물평보다 다른 발언에 더 주목한다. 유시민은 지난달 <손석희의 질문들>에 홍준표 대구시장과 함께 출연했다. 역시 유시민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을 통쾌하게 해줬다.

"(차기 대선에서) 민주당에서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어 가지고...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에게 한 것처럼, 야당이 된 국힘당의 주요 인사들과 대통령 후보의 모든 생활을 탈탈 털어서, (홍준표) 시장님 같으면 관용차 사용 내역이든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든 싹 다 뒤져서, 나중에 무죄가 나든 유죄가 나든 상관없이, 기소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기소해서, 일주일에 세 번 네 번씩 법정에 출입하게 만들고, 그리고 그 사람을 향해 저거 봐 저 사람은 사법리스크가 있어, 이렇게 하고 싶은 거예요."

듣고 있으면 속이 다 시원하다. 그렇지만 위험하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미래일까? 마치 정치 보복의 선언 같다. 이거야말로 정치가 죽는 길로 가는 것 아닌가.

상대는 저주하고 동지는 저격하고: 한국 정치의 미래?

한국사회는 지금 정치적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내전 상태다. 지금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탄핵 인용) 불복을 위한 빌드업 중이고 대선 결과(패배)조차 부정할 기세다. 이미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헌재, 선관위 등 국가 5부 전체가 군으로부터, 폭도들로부터 공격당하고 습격당했다. 언젠가부터 대선이 정책보다는 혐오에 힘입어 치러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지지 후보 당선이 아니라 상대 떨어뜨리려 투표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어느 당을 탓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적폐청산'이 일상어가 되면서 정치는 이미 살벌한 곳이 되었고 이는 사회 전반으로 번져나갔다. 순진하게 상부의 지시를 이행한 공무원들이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직장인들은 상사에게 보고 들어갈 때 녹음기를 켠다. 사회로부터 배신당한 젊은이들은 분풀이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이를 멈추고 바꾸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나. 특히 유시민처럼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면?

네 명의 잠룡들을 저격한 논란의 유튜브 방송 말미 유시민은 1983년 여름 김부겸과의 추억을 회고한다. 흑백TV 시절 온 국민에게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을 안겨준 '청소년축구 4강'의 시기였다. 유시민이 "제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날"이라 표현한 바 있는 제대 직후, 대구에서 복사집 하던 김부겸에게 "밥 얻어먹으러 놀러" 가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어린아이가 된 듯 말한다.

"시민아 시민아 우야면 좋노. 전두환 생각하면 응원하기 싫고, 아들(선수들) 저래 열심히 뛰는 거 보니 이겼으면 좋겠고."

"전두환 미워도 응원은 해야지."

"그래야 되겠제."

김부겸은 배가 터지도록 밥을 사줬을 것이고 아마 유시민 손에 용돈도 쥐여줘 보냈을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시절

밥. 꽃처럼 아름다운 화양연화의 시절, 그들에게 밥은 너무나 많은 것을 의미한다. 수배 중 피신한 친구 하숙방에서 얻어먹는 라면, 도망 다니다 만난 선배가 사주는 자장면, 취조당하면서 먹는 아욱국, 고문당한 채 쓰러져 있으면 들이미는 고깃국.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유시민은 서울대 대의원회 회장, 김부겸은 복학생회 총무였고 총학생회장은 심재철이었다. 신군부 5·17내란의 시작인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함께 이들은 곧 수배된다. 체포가 일상이고 고문은 덤이던 시절이다.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생들은 혹시 체포되어 고문당하더라도 일주일만 버티자는 다짐을 하곤 했다. 그래야 자신이 체포된 사실이 알려지고 동지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게 되나. 다짐을 왜 했겠는가.

전국의 아파트 현관마다 이들의 수배전단지가 나붙던 그때 심재철은 서울의 유시민 누나 집을 찾아간다. 1층 현관에 수배전단지 못 봤느냐며 웬일이냐는 누나의 질문에 심재철이 한 말.

"누님 밥 좀 주세요."

마침 저녁을 준비 중이던 누나는 급하게 상을 차렸는데 밥이 아직 되지 않아 김치찌개와 김치전부터 내놨다. 심재철이 며칠을 굶은 듯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모습에 누나는 전을 한 장 더 부쳤다. 심재철이 먹는 사이 누나는 집 이곳저곳 책갈피에 숨겨놨던 지폐들을 탈탈 털어 돈을 모았다. 밥 없이 전과 찌개만 먹은 그는 "태어나서 제일 맛있는 김치전입니다"라며 고마워했다. 혹시 경찰이 들이닥칠까 불안하기만 했던 누나는 "어서 가"하며 그의 손에 돈을 쥐여줘 보냈다. 이렇게 떠난 그는 십여 일 후 체포되고 다른 구금자들과는 유달리 수경사 헌병대로 끌려가 가장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광주 출신인 그가 신한국당에 입당해 정치를 시작한 것은 어쩌면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후 모진 고문에 김대중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죄책감일 수도 있고 그런 그를 민주당이 탐탁지 않아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당시 함께 했던 그 누구도 심재철을 배신자라 비난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는 법

화양연화는 가고 추억만 남았다. 누가 잡혀가면 바로 옆의 동지를 의심하던 시절도 이제 먼 옛날이 되었다. 유시민 말대로 총리도 하고 장관도 했다. 언제나 비주류였던 유시민이 이제 나이 들어 주류가 되려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유시민처럼 그 네 명을 들어 "이건 아니"라며 "대중의 소망을 거슬러 가는 것"이라 단언하는 것엔 동의하기 어렵다. 또 그 네 명이 자신의 지나온 삶을 가벼이 여김 당할 뭔가를 한 것도 아니다. 유시민 기준에 따르면 뇌가 썩기 시작하는 시기에 진입한 나에게도 작은 소망(올해 마라톤 완주)이 있듯 모두에겐 꿈과 소망이 있다.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꿈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이고 판단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윤석열이라는 재앙적 인물로 인해 국가가 위기에 처한 이 격한 시기에 정치인이 나라를 위해 일해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본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혹시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밥상 앞에 두고 서로 마주 앉아 해줬으면 한다. 헤어질 땐 밥값도 좀 쥐여주고. 그중 셋은 요즘 백수다.

▲최근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유시민 전 장관(오른쪽)과 홍준표 대구시장.ⓒMBC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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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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