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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자산금융 규제가 가계부채 문제의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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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은행 자산금융 규제가 가계부채 문제의 해법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 가계부채 문제의 이중 구조와 해법의 복잡성

가계부채 증가를 이론적으로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1980년대 이후 주요 나라들은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축적되는 현상을 경험했다. 사실 가계부채뿐만 아니라 기업부채, 공공부채도 나란히 증가했다. 가계부채의 이면이라 할 수 있는 금융자산도 마찬가지였다. 금융 부문의 성장 속도는 실물 부문의 그것을 훨씬 앞질렀다. 금융의 성장이 두드러지는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 발전과정의 한 특징적인 면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다. 출발은 뒤늦었지만 그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랐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이제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매우 큰 수준에 이르렀다. GDP 대비 비율이나 상환 능력에 대비한 비율과 같은 여러 지표들은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수준이 주요 나라들 가운데 최상위권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가계부채는 왜 계속 증가해 온 것일까? 먼저 가계부채의 증가 현상을 이론적으로는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보기로 하자.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이유에 대한 대부분의 설명 방식은 "생애주기가설"에 바탕을 둔다. 이 설명에 따르면 개인들이 생애 전체에 걸친 예상 소득을 기초로 소비를 고른 수준으로 유지하고자 할 때 가계부채가 발생한다. 소득이 적은 청년기나 노년기에는 빚을 내서 소비를 하고 소득이 많은 장년기에는 과거의 빚을 갚거나 앞날을 위해 저축을 늘린다는 식이다.

이 설명에서는 가계부채를 소비를 고르게 하고, 이를 통해 개인들의 효용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가계부채 증가를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으로 여기기까지 한다. 이 설명 방식의 한계는 가계부채의 증가 원인을 개인의 의사결정 수준으로 축소시키고 있다는 점과 세계시장 맥락이나 가계부채의 내부 구조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무엇보다 가계부채가 주요 나라들에서 왜 1980년대 이후에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했는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이유를 다르게 설명하는 대안의 방식이 등장했다. 하나는 소득 불평등의 심화를 바탕으로 가계부채의 증가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소득 불평등의 심화로 저소득층의 소득이 감소하고 그에 따라 저소득층이 부채를 통해 소득 감소분을 보충하는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시장 맥락에서 설명하는 방식인데, 가계부채의 증가가 세계시장의 달러 자본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아짐에 따라 생긴 소득 불평등의 증가를 가계부채의 팽창과 연결시키는 견해를 보자. 프린스턴 대학의 미안(Atif Mian)과 시카고 대학의 수피(Amir Sufi)는 소득 불평등의 확대와 가계부채의 증가를 연결해서 설명한다. 하버드대학 총장과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고 케인스주의 정책의 지지자로 자처하는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는 미안과 수피가 쓴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을 극찬한 바 있다. 이 책과 다른 논문들을 통해 미안과 수피는 1980년대 이후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고 더 많이 저축하는 데 비해, 가난한 가구는 더 적게 받고 따라서 더 많이 빌려야 했기 때문에 가계부채가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안과 수피의 주장은 가계부채를 축소하기 위해서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함의한다. 실제로 미안과 수피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선결 조건으로 소득 재분배를 통한 불평등의 완화를 주장한다. 이들은 불평등의 완화를 위해서는 표준적이지 않은 거시경제정책이라 할지라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이들은 가계의 너무 많은 빚은 이를 탕감해 주어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부자들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덧붙인다.

소득 불평등 때문에 가계부채가 증가한다는 주장은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여러 연구자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가계부채 문제의 해법으로 소득 불평등의 완화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진보적인 경제학자인 스톡해머(Stockhammer E.)는 신자유주의 시기 자본 친화적인 정책으로 임금 몫이 축소하여 소득 불평등이 심해졌고, 그 때문에 저소득 계층은 부채로 소비를 메워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임금주도 성장(wage-led growth)' 전략(우리나라의 소득주도 성장)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함으로써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조절학파 연구자들이나 미국의 진보적인 잡지인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를 중심으로 형성된 연구자 그룹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일부 주류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가계부채의 증가를 소득 불평등의 확대와 연결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시기에 가계부채 증가와 나란히 소득 불평등이 함께 높아졌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양자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렇지만 이들은 저소득 가구가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고소득 가구의 소비 수준을 무리하게 따라가려다 가계부채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이른바 'Keeping up with the Joneses' 가설). 여기에는 가계부채의 증가 원인을 저소득층의 "과소비"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배어 있다.

소득 불평등의 확대가 가계부채의 증가, 나아가 금융위기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주장은 "라잔 가설(Rajan hypothesis)"로 알려져 있다. 라잔 역시 1980년대 이후 소득 불평등이 확대하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실질 소득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 정부가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탓에 가계부채가 증가했다고 설명한다. 라잔도 가계부채 축소의 대안으로 소득 분배의 개선을 제시한다.

소득 불평등으로 가계부채 증가를 설명하는 방식은 그것이 제출하는 대안의 진보성과 무관하게 많은 한계를 드러낸다. 여러 나라의 사례를 보면 저소득층이 임금 감소를 보충하는 과정에서 늘린 가계부채는 전체의 작은 부분만을 차지한다. 가계부채의 훨씬 많은 부분은 부동산, 주식, 채권과 같은 청구권 자산이나 가상자산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증가한 것이다. 임금 정체에 따른 소득의 감소를 가계부채의 증가로 연결하려는 시도에는 무리가 따른다.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을 일국적 차원이 아니라 세계시장 맥락에서 찾는 또 다른 설명 방식이 있다. 이 설명 방식의 특징은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을 개별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이 아니라 세계시장의 자본 운동에서 찾는다는 사실에 있다. 이는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을 수요 쪽이 아니라 공급 쪽에서 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설명에서는 자본의 흐름뿐만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금융기관의 행태, 가계부채를 늘리기 위한 자산가 계층의 다양한 이데올로기 등이 강조된다.

던컨(Duncan R.)은 가계부채를 포함한 전체 부채의 증가 계기를 달러와 금의 교환 중지에서 찾는다. 미국은 외부의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주겠다는 약속을 1971년에 일방적으로 깨트린다. 이후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축소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그것을 달러 발행을 늘려 메우는 전략을 선택한다. 이에 따라 이른바 글로벌 불균형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면 주변국들에서는 경상수지 흑자가 그에 비례해서 쌓인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증가는 주변국 기업의 수출 대금이 예금 형태로 미국의 은행 시스템에 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예금은 어딘가에 운용되어야 한다. 흑자국에서는 은행 시스템에 쌓인 달러 청구권 자산을 배경으로 신용창출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해서 글로벌 불균형이 흑자국과 적자국의 금융자산과 금융부채의 팽창을 불러온다는 것이 던컨의 설명이다. 유명한 발전경제학자인 웨이드(Wade R.)도 이와 유사한 설명을 한다.

이러한 방식의 설명에서는 은행의 역할이 강조된다. 여기에서 은행은 소극적인 자금 중개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출을 확대하기 위해 나서는 전략적인 행위자로 간주된다. 은행들은 전통적인 영업 기법 외에도 대출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금융 기법들을 발견해 내려고 노력한다. 이는 금융 혁신의 원천으로 기능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은행들은 새로운 대출처도 찾아 나선다. 은행들은, 청구권 증서(주식, 채권, 부동산 대출채권과 같은) 매매 시장이나 가계부문에서 유망한 대상을 발견했다. 은행들은 이 부문에서 적극적인 대출 전략을 펼쳤는데, 그 과정에서 가계대출도 증가했다.

자산금융이 주도하는 가계부채 증가

그렇다면 가계부채는 실제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증가하는 것일까. 예금과 지급, 대출과 차입 등 금융활동의 증가는 금융자산과 금융부채의 증가로 나타난다. 금융의 사전적 의미는 자금의 융통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금융은 플로우 개념이다. 금융활동은 일정한 시점에서 그 스톡을 측정할 수 있는데, 이것이 금융자산과 금융부채라 할 수 있다. 플로우인 금융활동이 증가하면 그 결과로서 스톡인 금융자산과 금융부채가 증가하는 것이다.

은행은 대출을 통해 이윤을 얻을 수 있는 한, 그 대출처가 어디인지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은행의 대출은 기업으로 향할 수도 있고 가계로 향할 수도 있다. 1980년대 이후에 주요 선진국에서는 기업대출보다 가계대출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가계로 향하는 대출은 청구권 자산의 거래를 중개할 수도 있고, 가계의 소비생활을 중개할 수도 있는데, 편의상 전자를 "자산금융"으로 후자를 "생활금융"으로 부르기로 하자.

자산금융과 생활금융의 구분은 일찍이 케인스(Keynes J.M.)가 <화폐론>에서 화폐 순환을 산업 순환과 금융 순환으로 구분한 것과 맥락이 닿아 있다. 산업 순환은 상품의 생산, 유통, 분배, 소비를 거치는 재생산과 관련한 활동, 곧, 기업의 사업이나 가계의 소비 활동과 관련하여 발생하는데, 그 거래 금액은 명목 GDP와 안정적인 함수관계를 갖는다. 금융 순환은 화폐자본이 금융시장을 통해 움직이는 과정을 나타내는데, 기존 부(주식, 채권, 부동산, 가상자산)에 대한 청구권의 거래가 중심이며, 실제 생산 활동의 요구를 넘어 훨씬 멀리 확장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투기성 상품(원유, 곡물, 1차 산품 등)이나 청구권 자산의 매매를 중개하는 금융 순환은 실물 경제와 아무 연결 없이 독자적으로 팽창할 수 있다.

산업순환의 일부를 나타내는 "생활금융"이 지배적일 때는 앞서 설명한 라잔 가설이 성립할 것이며 거꾸로 "자산금융"이 지배적일 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경험 연구들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가계부채 증가의 지배적인 부분은 "자산금융"에서 발생한다. 자산금융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대출은 1990년대 이후 급속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국의 사례를 조사한 한 연구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은행 대출 가운데 부동산과 무관한 기업대출은 14%, 생활금융은 7%에 지나지 않았으며, 상업용부동산 대출은 14%, 주택 모기지는 65%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대부분이 가계부채가 자산금융 활동과 관련하여 발생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계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외환위기 이후 가격이 떨어진 자산을 매입하기 위한 외국자본이 대량으로 유입되어 은행 시스템에 쌓였다. 둘째, IMF 요구로 기업들이 부채 비율을 낮춰나갔는데, 이에 따라 은행들은 기업 아닌 다른 곳에서 대출처를 찾아야 했다. 셋째, 위기 이후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진 대형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가계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영업전략을 선택했다. 넷째,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IMF가 BIS 자기자본비율 8%의 즉시 준수를 요구한 조항도 가계부채를 늘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정부는 내수를 부양하기 위해 부동산 부문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폈는데, 이는 담보대출 중심의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증가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특징을 읽을 수 있다. 먼저, 소득이 많은 계층이 가계부채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고소득층이 돈을 빌려주고 저소득층이 돈을 빌린다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계부채 가운데 소득이 높은 5분위는 45.0%를 차지하는 데 비해 소득이 낮은 1분위는 4.3%만을 차지한다. 자산 분위별 기준으로 보더라도 보유 자산이 많은 가구일수록 부채의 규모가 더 크게 나타난다. 자산이 적은 1분위의 담보대출은 전체의 4.2%를 차지하는 데 비해 4분위는 24.7%, 5분위는 38.3%를 차지한다.

가계대출 가운데 신용대출만을 떼서 보더라도 이의 대부분을 고소득층이 보유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24년 기준으로 소득이 적은 1분위의 신용대출은 전체의 4.1%를 차지하는 데 비해 소득이 많은 4분위는 25.6%, 5분위는 42.3%를 차지한다. 신용대출 가운데 고소득층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은 이 계층이 생활비 이외에 자산 취득을 위해 신용으로 돈을 빌렸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자금 용도별 분류 현황을 보면 신용대출의 30%가량은 주택 관련 대출이며 그 밖에도 가상자산 투자나 유가증권 투자를 위한 차입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가계대출 증가의 대부분은 부동산, 주식, 채권, 가상자산 등 자산의 매입과 관련하여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생활금융보다 자산금융과 관련하여 증가했는데, 그 결과 전체 가계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은행의 <2024년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3/4분기 말 기준으로 전체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개별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과 집단대출의 합계)이 차지하는 비중은 61.9%이다. 전체 가계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54.6%에서 상승하는 추세이다. 신용대출 가운데서도 주택 구입과 관련된 대출이나 기타 자산 구입과 관련된 대출이 있으므로 실제의 "자산금융" 규모는 더 클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다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다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가계부채 관련 정책수립을 위한 중요한 정보이지만 정기적으로 공표되지는 않는다. 과거의 자료를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는데, 한국은행이 2016년 3월에 국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주택담보대출의 총규모는 630.8조 원이었고 그 가운데 2건 이상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가계의 대출 규모는 199.9조 원(31.7%)이었다. 이 비율이 유지되고 있다면 2024년 3/4분기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1112.1조 원 가운데 353.3조 원은 2건 이상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가계의 몫일 것이다.

가계부채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비율이 높고, 또 가계대출이 고소득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다음의 사실을 함의한다. 곧, 은행에 맡겨진 국민 전체의 신용을 소수가 독점하여 자산(특히 주택)을 늘리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얘기지만 가계부채가 부유층의 자산 형성과 관련 속에서 증가한다는 것이다.

▲지난 9일 서울 시내의 아파트. ⓒ연합뉴스

가계부채 증가를 어떻게 멈춰 세울 것인가?

자산금융과 생활금융의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가계부채의 증가가 전혀 다른 원인에 의해 증가할 수 있고, 따라서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대안도 어느 쪽이 지배적인가에 따라 전혀 달라야 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문제의 대부분은 생활금융이 아니라 자산금융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도 자산금융에 맞춰져야 한다. 가계부채는 부유한 계층이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 돈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증가한 것이 아니라 금융부분에서 생성된 신용을 부유한 계층이 독점하여 자산 구입을 늘리는 데에 활용했기 때문에 증가한 것이다.

과다한 가계부채는 여러 문제들을 일으킨다. 여러 경험 연구들은 과도한 가계부채가 소득 불평등을 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곧, 소득 불평등 때문에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가계부채가 증가하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이 증가한다는 얘기다. 가계부채의 증가는 자산 불평등을 키우는 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금융부문에 집중된 신용에 대한 처분권은 그것이 어떻게 배분되느냐에 따라 불평등을 키울 수도 완화할 수도 있다. 신용에 대한 처분권이 고소득층에 집중적으로 배분되어 자산을 늘리는 데 활용된다면 당연히 자산 불평등은 심해질 것이다. 그 밖에도 과도한 가계부채는 금융위기 가능성을 키울 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에도 불리한 영향을 준다.

따라서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정책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그 대응의 핵심은 은행 영업 행태에 대한 규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가계부채가 갖는 이중구조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계대출을 "억제"하면서 동시에 "지원"해야 하는 모순적이고 복잡한 정책적 과제 상황을 만들어 낸다. 재생산과 관련 없이 진행되는 청구권 자산의 거래는 부가가치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생산적이기 때문에 사회의 신용이 그곳으로 향하는 것을 정책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재생산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생활금융은 오히려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가계부채의 대부분은 자산금융과 관련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가계부채의 총량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특히 투기적인 대출을 규제해야 한다. 투기적인 대출을 엄밀히 규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다주택자·미성년자·고가주택의 주택담보대출, 가상자산을 구입하기 위한 가계대출 등은 투기적인 대출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생활금융과 관련한 가계부채는 재생산 규모(예컨대 GDP)에 의해 제한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기 때문에 이를 규제하지 않더라도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생활금융을 확대하여 금융에서 배제된 계층을 제도 금융으로 끌어들이는 대책이 필요하다.

자산금융과 생활금융을 구별하지 않는 일률적인 대책은 자산 가격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이끌리기 쉽다. 예를 들어 채무자를 지원한다는 정책금리 인하는 가계부채 문제 해법의 길과 어긋나는 방향착오일 수 있다. 정책금리 인하가 자산가격을 유지·부양하고 이자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가계부채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고소득, 고신용 계층에게만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 금융권에서 밀려나 있는 계층이나 또는 주로 제2금융권을 이용하고 있는 계층에게는 정책금리 인하가 별다른 좋은 소식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하우스 푸어"나 "영끌" 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그로 인해 누가 혜택을 보게 될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가계부채 총량을 줄이는 데에서 무엇보다 우선으로 삼아야 할 과제는 다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 규제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2주택 이상 보유자의 주택담보대출은 350조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현재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는 담보인정비율(LTV)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강화해야 한다. 현행의 담보인정비율(LTV) 제도는 규제지역 다주택자에 한해 30%를 적용하고 있다. 2020~21년에는 규제지역 다주택자에 대해 담보인정비율(LTV) 0%를 적용한 바 있다. 신규 대출분부터 다주택자의 담보대출이나 미성년자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는 예외 없는 LTV 0%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 거액의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도 그 초과분에 대해 LTV 0% 적용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수단으로서 현행의 BIS 자기자본 규제 방식을 재검토해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계부채가 증가한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BIS 자기자본 규제이다. BIS 자기자본 비율 규제가 자본의 안정성에 목표들 두다보니,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다고 인정되는 가계부채 증대에 영업력을 집중하게 된 것이다. BIS 자기자본 비율을 계산할 때 은행들은 보유 자산별로 각기 다른 위험가중치를 적용한다. 그런데 실제의 위험가중치를 보면 가계대출이 기업대출보다 훨씬 낮게 나타난다. 이를 최소한 기업대출 수준으로 올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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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강

임수강 금융평론가(linsk@hanmail.net)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독립 연구자이다. 증권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했고 은행 경제연구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를 다룬 <바젤탑>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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