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현승은 '가을엔 기도하게 하소서'라 했다. 그랬다. 하지만 혼돈의 한 겨울을 지나는, 지금이야말로 기도가 필요한 때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시인 이문재가 편집한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의 마지막 문장이다. 실천적 신학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이 지난 세기 중반에 남긴 메시지.
기도는 한없이 허약하고 불쌍한 정치적 초상에 대한, 구원을 청하는 기도가 아니다. 그저 나 자신에 대한 기도이어야 한다.
한동안 여의도에서 일할 때, 세상을 바꾸겠다는 욕심과 열정이 넘치다 못해 거칠고 상처 안기던 나 자신을 달래기 위한 기도문이 있다. 후배들이 정치하겠다며 자문을 구하러 왔다 떠난 다음엔 반드시 보내주었던 기도문.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지혜를 구하는 기도'다. 고맙게도 이문재의 책은 이 기도문으로 열어간다.
"하느님,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주소서.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무엇보다 저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주소서."
평생을 세속적인 직업에 종사해온지라 종교적 삶과는 거리가 멀다. 반성적 성찰일까. 회사 근처에 있는 기도처를 종종 찾게 된다. 한 군데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지하에 있는 세례자 요한 성당. 참회하기 좋은 곳이다. 다른 한 군데는 새문안교회 1층에 있는 새문안홀. 언더우드 선교사가 1908년에 심었다는 둥근잎느티나무로 제작된 십자가가 걸려 있다. 평화를 갈구하는 곳이다.
요즘들어 거의 매일 단 몇 분이라도 기도처를 찾는다. 자신에 대한 구원보다는 우리에 대한 구원을, 역사와 이 땅의 시민에 대한 구원을 구한다.
시집은 기도를 대신한다. 최대한 더딘 호흡으로 낭송하듯 읽어나가면 어느새 시는 기도가 된다. 기도의 성스러움과 향기로움은 서울 하늘을 감싸게 될 것이다. 시집에 있는 독일 시인 라이너 쿤체의 <은銀 엉겅퀴>가 "바람보다 먼저 울지만 바람보다 먼저 웃"는 우리 시대의 시민들을 상징한다.
"뒤로 물러서 있기/ 땅에 몸을 대고// 남에게/ 그림자 드리우지 않기//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기//"
방학을 마치고 다시 공부길에 오른 두 딸들 가방에 한 권씩 넣어주었다. 기도문을 엮어준 시인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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