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의 문턱에서 헌신하는 장기요양요원들이 현장에서 겪은 희노애락을 직접 글로 써냈습니다. 이 중 서울시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가 주최한 '2024 나의 좋은 돌봄 이야기'에서 수상한 다섯 작품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안녕하세요. 어르신, 저 왔어요. 주말 잘 보내셨어요? 오늘은 날씨가 맑고 따듯해요"
"어서 와요. 잘 쉬었어? 날씨가 좋다고?"
주말을 보내고 어르신 댁을 방문하면 늘 그렇듯이 어르신은 저를 항상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주말 내내 방 안 침대에서만 계셨으니 얼마나 갑갑하셨을까 싶어 부지런히 어르신을 모시고 밖에 나갈 채비를 합니다. 어르신은 제가 안 오는 주말 동안 혹여라도 당신 몸에서 냄새라도 날까, 자식들한테 민폐라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에 방 밖을 나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오는 오후 시간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꼭 밖에서 산책 겸 운동을 시켜드립니다.
두툼한 바지와 잠바를 입혀드리고 목에는 스카프도 메어드립니다. 어르신들은 조금만 추워도 감기에 잘 걸리셔서 따듯한 가을 날씨도 방한에 신경을 써드려야 합니다. 단단히 채비를 갖추고 워커에 몸을 의지하신 어르신은 문 밖을 나서십니다.
"내가 움직여야 해, 안 움직이니깐, 다리가 말을 안 들어"
"네 어르신 오늘은 두어 번 더 돌다 들어가요"
라고 말씀을 드리지만 한 바퀴도 돌기 전 다리 아프시다고 벤치에 앉으십니다.
저만치 먼저 나오신 앞동 어르신과 요양보호사님이 보입니다. 1년 전 이맘때쯤 산책길에 만난 두 분이 인연이 되어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시는 벗이 되었습니다. 앞동 어르신은 파킨슨병을 앓고 계셔서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하시고, 우리 어르신은 귀가 어두우셔 크게 말씀드리지 않으면 목소리를 듣지 못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 요양보호사들은 두 분의 통역사가 되어드립니다. 말씀이 어눌하여 서투르신 어르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잘 관찰하여 전달해드리고, 귀가 어두우신 어르신께 최대한 또박또박 말씀드리고 다른 분의 말씀도 알아들으실 있도록 잘 표현해 드려야 합니다. 가끔 우리 요양보호사들은 영화에 나오는 소머즈나, 맥가이버가 되어야 합니다. 어르신의 안전을 위하여 이동하던 워커의 높낮이도 맞춰드려야 하고, 핸들의 브레이크도 고쳐드려야 합니다.
그런 두 분이 친구를 맺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나란히 벤치에 앉아 어깨를 기대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두 분은 충분한 대화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만났구나. 반가운 내 친구" 라고요.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두 분은 닮은 듯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십니다. 똑같이 지나가는 사람의 발자취를 끝까지 시선이 쫒아가고 다시 새로운 사람이 지나가면 또 같은 행동을 하십니다. 사람이 그리우신 두 어르신은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으신 것 같습니다.
산책길에 만난 강아지와 길고양이들 모두 어르신의 관심사입니다. 가끔 저는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노래도 즉석에서 불러드립니다. 옛 가락은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박수를 치시며 어르신은 제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십니다. 산책 시간을 마치고 두 어르신은 내일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각자의 집으로 향하실 때는 서로 포옹도 하시고, 손도 잡아보십니다. 어르신들의 이런 모습을 보니 포근하기도 하고 정이 있어 보여 마음이 따듯해지고 뭉클해집니다.
사람의 정이 늘 그리우신 어르신은 한 달에 한 번 방문하시는 복지사님을 보시면 무척 반가와하십니다. 어르신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염려해 주시는 말씀 한마디에도 어르신은 큰 위안을 받으십니다. 그런 어르신이기에 길지 않은 3시간을 최선을 다해서 돌봐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르신과 앉아 티브이를 시청할 때는 어르신 궁금하신 것이 많아지십니다. 저 노래하는 가수는 나이는 몇 살인지? 결혼은 했나? 하고 물어보실 때는 저는 바로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알려드립니다. 어제 봤던 가수도 오늘 보면 새로운 사람처럼 또 물어 보시지만 그때도 새로 들은 듯 다시 천천히 알려드립니다. 때때로 잊지 않고 가족의 이름, 나이, 주소,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우리 어르신 차근차근 생각하며 답을 해 주십니다. 어쩔 때는 손자 이름이 기억안난다 하시며 밤새 손자들 이름을 공책에 한자 한자 적어 꼭 잊지 않게 기억하려는 모습이 무척 예뻐 보이십니다. 소파에 앉아 어르신과 도란도란 담소도 나누고, 허리가 다쳐 며칠째 방문 못하시는 둘째 따님의 안부를 물어봐드립니다.
가끔 곤욕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어르신이 베푸시는 '음식 사랑'입니다.
고구마, 감자, 계란 등 어르신 드실 간식거리를 해드리면 어르신은 제가 배가 고플 거라고 생각하셔서 계속 먹으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밖에서 든든히 점심을 먹고 와서 괜찮다고 말씀드려도 자꾸 먹으라고 하십니다. 안 먹으면 왜 안 먹냐고 토라지듯 역정을 내십니다. 어르신은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고 싶고 주고 싶은 마음이 역력하신데 제가 그걸 소화를 다 못하니 이때가 제일 난처한 시간입니다. 그럴 때에는 어르신 마음을 편안히 해드리는 것이 낫다 싶어 제일 작은 고구마 하나를 집어 어르신께 보여드립니다. "어르신 이거 집에 가서 저녁 먹고 간식으로 꼭 먹을게요." 라고 말씀드리면 어르신 그제야 환하게 웃으시며 몇 개 더 가져가라 말씀하십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저는 퇴근 준비를 하지만 이때부터 어르신은 홀로 저녁을 맞이하십니다. 우두커니 침대에 앉아 티브이를 보시고 그러다 잠이 드시면 수면으로 저녁 긴 시간의 여백을 채우실 겁니다. 이런 어르신을 보며 퇴근 인사를 드리는 순간이 제일 마음이 찡해옵니다. 문을 나섰다가 혹시라도 가스불이라도 켜놓고 온 건 아닌지 창문은 닫아놓았는지 마음이 쓰여 다시 집으로 들어가면 어르신 또 반갑게 저를 쳐다보십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저에게 "조심히 들어가요, 잘 들어가요" 하시며 안전을 당부하시는 모습이 가끔 친정어머니처럼 푸근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르신과의 인연이 올해로 2년 6개월이 되었습니다. 저는 돌봄서비스를 시작하며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는 것 같습니다. 매일같이 안부를 묻고 전하는 앞동 오재 어르신과 인정 많은 요양보호사님, 그리고 어르신 두발을 예쁘고 가지런히 잘라주시는 미용실 원장님과도 친분을 쌓았습니다. 가을이면 낙엽을 분주히 쓰시는 경비 선생님도 친근한 눈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남한테 나서기 쑥스럽고 무뚝뚝했던 제가 어르신과의 만남으로 싹싹하고 붙임성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그리고 배려가 곁들인 진심으로 다가설 때 돌봄을 받는 분도 돌봄을 드리는 분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흔이 훌쩍 넘으신 어르신은 어느 날 제 손을 잡고 말씀하십니다. "보호사님 내가 죽을 때까지 꼭 와줘"라고요.
"네, 꼭꼭 약속드릴게요.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매일 어르신께 올게요"
올해도 어김없이 감나무에 감이 열렸습니다. 작년 늦가을 어르신과 산책하며 높다란 나무 위에 듬성듬성 달려 있는 잘 익은 감을 살짝 따서 어르신께 드렸더니 너무 달고 맛있다고 좋아하셨습니다. 향이 좋아 주워왔던 모과도 풍성하게 열렸습니다. 밖에는 노랗고 빨간 단풍이 울긋불긋 멋지게 치장을 하고 있네요. 내일이면 더 예뻐지는 단풍과 저 파란 하늘, 그리고 감나무, 모과나무를 어르신과 오래오래 보고 싶습니다. '빨갛고 노랗고 높은 하늘 가을길은 비단길' 노래처럼 어르신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게 우리 계속 예쁜 비단길만 걸어요. 퇴근길 저는 맑은 가을 하늘을 보며 어르신께 더 나은 돌봄을 해드릴 것을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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