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기체 이상으로 동체착륙을 시도하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활주로 너머 콘크리트 벽을 들이받고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탑승객 181명 중 179명이 숨졌다.
많은 시민이 유가족의 슬픔에 공감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지만, 지역비하 등 혐오 표현과 가짜뉴스도 여지없이 등장했다. 유가족이 슬퍼하는 모습을 담은 보도와 달리, 그들이 정부에 사태 수습을 요구하거나 분노한다는 보도에는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런 일이 참사 때마다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혐오 표현과 가짜뉴스는 재난 피해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이들의 삶을 옥죄는 또 다른 문제는 없을까. 재난 피해자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센터장을 만나 이를 물었다. 유 센터장은 '유가족다움'을 주제로 한 논문을 쓴 연구자이자 국가폭력 피해자 등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공저한 인권기록활동가이기도 하다.
유 센터장은 전과 비교해 참사 발생 이후 광범위하게 혐오표현이 퍼지고 가짜뉴스가 생산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졌다며 신원을 드러내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인터넷의 특성이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하는 일을 익숙한 일로 만든 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유 센터장은 아울러 재난 피해에 대한 배보상을 특권으로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이 혐오표현의 확산에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보상은 유가족의 권리이며, 사회 안전망 기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난·참사는 언제 누구에게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참사 피해자의 삶을 옥죄는 다른 요인으로는 머릿속의 '유가족다움'에 현실의 유가족을 끼워 맞추며, 이에 어긋난 행동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는 일을 들었다. 이때문에 유가족들이 친척이나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유가족이라는 점을 숨기며 지내는 일도 많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참사 피해자와의 공존을 위해 '자식은 몇 명이에요?'와 같은 사적인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상대에게서 소위 '정상'으로 생각하는 답변을 기대하는 문화도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런 문화가 재난 피해자뿐 아니라 많은 소수자를 '아웃팅'으로 내몬다는 점도 짚었다.
유 센터장은 재난 피해자와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배보상·진상규명 등에 대한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 결국 나와 내 이웃의 삶과 권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재차 이야기하건데, 재난·참사는 언제 누구에게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지난 13일 서울 중구 재난피해자권리센터에서 유 센터장과 진행한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광범위한 혐오가 양산되는 주기가 빨라졌다"
프레시안 : 전에 발생한 여러 참사 때처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에도 혐오표현, 가짜뉴스가 나왔다. 어떤 생각을 했나? 이전 참사와 비교해 다른 면이 있었나?
유해정 : 혐오표현과 가짜뉴스가 생산되는 주기가 굉장히 빨라졌다.
세월호 참사 때는 광범위한 혐오가 퍼지는데 시간이 걸렸다. 2014년 4월에 참사가 발생했는데, 넉 달 뒤 가족들의 광화문 단식 농성장 옆에서 정말 한 무리의 도를 넘은 사람들이 '폭식 투쟁'을 한 게 기폭제가 됐다. 그 다음 기폭제는 2015년 3월 정부가 세월호 참사 배보상안을 발표한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 특별법 시행령에 대해 '특별조사위원회의 권한을 약화해 본법의 취지를 무력화했다'는 비판이 나오던 시점에 그런 발표가 나왔다.
또 세월호 때는 일베와 같은 특정한 집단이 악의를 갖고 혐오를 시작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퍼졌다. 이번에는 특정한 집단이라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참사에 대한 혐오를 양산하고 있다. 참사가 나면, 어떤 필터링도 거치지 않고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계엄, 탄핵 국면이 겹치면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사태를 호도하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것 아니냐'는 식의 음모론이 제기되는 면도 있었다.
프레시안 : 경찰이 악성게시글 수사를 진행 중이다. 그것만 170건이 넘는다고 한다.
유해정 : 경찰의 대응은 엄격해진 것 같다. 다만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때도 사건 발생 초기에 경찰이 혐오나 조롱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하지만 경찰의 대응이 끝까지 일관됐었다고 보기 어렵다.
전에는 못 본 일 같은데, 방송에서도 "경찰청은 희생자와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모욕성 게시글과 영상에 대해 엄정수사하고 있다. 유언비어 및 모욕성 글과 영상을 게시하는 행위는 심각한 범죄다. 유가족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행위는 삼가달라"는 자막이 계속 뜨고, 라디오 방송에서도 읽어주더라. 이러한 기조가 계속 이어질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프레시안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대한 혐오와 관련해 또 특징적이라고 느낀 점이 있나?
유해정 : 무안이 호남이기 때문에 참사에 대한 혐오가 지역 차별, 지역 혐오와 연동된 것도 특징적이다. 항공사 이름에도 지역명이 들어가 있어 또 다른 논란이 제기된 면도 있다. 유가족들은 지난주에 총회를 해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불러달라고 이야기했다고 들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이태원 참사 때 나왔던 이야기다. 참사 발생 직후에 심리 트라우마 학계에서 '참사 명이 이태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10.29 참사라고 부르자'고 했다. 그런데 가족들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이태원의 장소성과 상징성이 중요했다고 보았기 때문에 참사 명에 이태원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10.29 이태원 참사'라는 명칭이 지역 혐오를 부추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약 참사 앞에 지역 명을 붙이는 게 혐오와 연결된다면, 참사 명에 지역 명을 빼는 게 아니라 혐오 자체를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제 규정에 따르면, 항공기 참사에는 항공기 편명을 넣는 게 기본이라고 한다. 참사 명은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잘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사 결과 '무안공항이 가장 큰 문제였다', 예를 들어 '활주로 너머 콘크리트 벽이나 철새도래지 인근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공항을 짓고 활용한 게 문제였다'고 하면, 나중에 무안공항이 참사 명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배보상은 재난 피해자의 권리이자 사회적 안전망"
프레시안 : 참사 발생 이후 혐오 표현이 나오는 시점이 빨라지고, 특정한 집단이 아닌 불특정 다수가 재난 피해자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는 것과 같은 변화는 왜 일어났을까?
유해정 : 온라인에 글을 쓸 때 자기 신원을 드러내지 않고도 쓸 수 있다 보니, 필터링하지 않고 뭔가에 의견을 내는 것이 너무 익숙한 일이 된 것 같다. 그런 의견들이 떠돌다 여러 건이 되면 이런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조차 갖지 않게 된다.
참사 피해자가 뭔가 특권을 보는 사람이라는 인식도 너무 광범위하고, 깊게 생겼다. 참사에 대한 한국 언론과 정부와 보험사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너무나 슬프고 비통하다고 참담하다고 이야기하는 한편 사고 보상금이 얼마고 어떤 지원이 이뤄지는지를 너무 빨리 알린다는 것이다. 참사가 발생한 날 혹은 다음날부터 보상금이 굉장히 중요한 정보인 것처럼 제공된다.
그러다 보면, 애도의 마음, 공감의 마음보다는 '참사가 났어? 그런데 지원을 받아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경제가 너무 어렵고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점도 영향을 준다. '나는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저 사람들은 엄청난 보상을 받네'라는 인식이 나온다.
보험사 보험금에, 국민 성금에, 일용 노동자로 계산한 기대여명에 따른 일실수입 등을 다 합쳐 세월호 당시 단원고 희생자 배보상금이 8억 원이 된 건데도 그 뒤로 재난 피해자들이 엄청난 보상, 특혜를 받는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이태원 참사 때도 혐오 댓글의 한편은 이태원에 간 사람들에 대한 조롱과 비하였고, 또 한편은 '그걸 왜 국가가 책임지느냐'는 거였다. 사람이 참사로 죽으면 책임있는 기관이 배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그게 불공평한 일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프레시안 : 재난 피해자 배보상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할까?
유해정 : 먼저 재난 피해자에게는 배보상과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 기본적으로 재난 발생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다. 정부와 지자체가 법적, 도의적, 정치적 책임을 지고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재난 피해자 배보상과 지원은 사회적 책임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일이다. 또한 사회적 안전망과 연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재난 피해는 누구에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른다. 참사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강화돼야 누군가에게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다른 시민도 지원받는 게 가능해잔다. 사람이 죽으면 인명 손실뿐 아니라 경제적 손실이나 돌봄에 대한 손실이 굉장히 클 수밖에 없다. 그런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재난 예방에 큰 책임이 있는 국가가 '사회적 안전망과 지원 체계를 통해 너의 일상회복을 돕겠다'라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그래서 얼마를 주느냐'를 언론이 너무나 중요하게 보도한다는 거다. 배보상금은 책임에 대한 필요 범위 내에서 형평성과 적합성의 기준을 통해 주게 된다. 언론이 그 지원이 적합한지, 그 이행이 잘 되는지 감시하는 건 필요하다. 그런데 사고가 나자마자 배보상 및 지원금 액수를 보도하고, 심지어는 추정 액수를 막 쓴다.
프레시안 : 재난 피해자 배보상이 사회적 안전망일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해봤다. '참사를 내가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은 많이 들어도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유해정 : 나도 참사에 대한 일을 하지만 피하고 싶다. 실제 많은 재난 피해자도 참사를 당하면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다'고 한다.
재난 피해자의 삶을 옥죄는 혐오 표현과 사회적 낙인
프레시안 : 혐오 표현은 재난 피해자의 감정이나 일상회복에 어떤 영향을 주나.
유해정 : 슬퍼하는 것만도 힘든데 비난과 비판, 조롱과 무시에 시달리면서 살게 되는 거다. 재난 피해자들이 항상 말한다. '가족이 죽은 다음에 따라붙는 말들이 우리를 더 어렵고 힘들게 한다'고. 혐오 발언이나 정보를 확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 소중한 가족을 잃고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유가족에게 세상에 대한 분노, 원망, 나아가 때론 적개심까지 갖게 한다.
'가족이 죽었는데 돈 받아서 잘 쓰겠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억만금을 줘도 안 바꿀 사람들인데. 그래서 피해자들이 맨 처음에 하는 이야기가 '다 필요 없다. 내 가족 살려달라'는 거 아닌가. 아무도 못 살려주지 않나. 그런데도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하고 위로하기보다 돈 받아서 잘 쓰겠다고 하는 건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거다.
프레시안 : 대면관계에서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유해정 : 유가족들이 사람 많은 데는 안 가고, 친척도 안 만난다고 한다. 두 가지 말을 가장 싫어한다. 먼저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제 그만 할 때 됐잖아.' 위로하고 격려 해준다고 하는 말인데 그게 너무 싫다는 거다. 또, '그래서 얼마 받았어?' 이런 이야기를 진짜 많이 듣는다고 한다. 그러면 오만 정이 다 떨어지지 않겠나. 그래서 참사 피해자들이 친인척과의 관계를 많이 단절한다. 너무 상처가 되니까.
안쓰러워하고 동정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어려워한다. 어떤 집에 누가 죽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안쓰러워서 어떻게 해' 하는 게 기본이니까. 물론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인데, 계속 그러면 사람이 축 늘어지게 되니까…. '가족이 죽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웃고 다녀? 어떻게 저렇게 멀쩡하게 다니고, 쇼핑도 하고 다녀?' 이런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피해자가 살던 동네에서 이사를 간다.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다.
프레시안 : 그런 사회적 낙인을 '유가족다움'이라고 표현하고 연구했다(☞관련논문 : 유가족다움의 사회적 낙인과 대응 전략). 연구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
유해정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3년 동안, 화장 한 번 안 하고, 머리 끈 질끈 동여매고, 노란 옷만 입고 다니시던 어머니가 있었다. 그 분이 어느 날 시민들과 간담회를 하는데 너무 예쁘게 하고 오셨다. 화사한 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화장도 하고 오셨다.
'어머니 너무 예뻐요. 3년 동안 이런 거 처음 봤네' 그랬더니 '유 작가나 나한테 예쁘다고 하지. 다른 사람들이 예쁘다고 했으면 내가 또 예쁘다는 말이 목에 걸렸을 거야' 하는 거다. 왜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이렇게 하고 다니면 '저 유가족 미쳤나' 이런다는 거다. 자기 동생도 이렇게 하고 나간다니 '언니 정신 차려' 했다는 거다.
그러면서 '나는 그러면 안 돼? 유가족은 맨날 울기만 하고 상복만 입고 다니고 그래야 돼? 그럴 수도 있지만 안 그럴 수도 있지' 이런 이야기를 막 하시는 거다. 평소에 다른 어머니들 만나도 '우리가 진짜 어디 가서 웃을 수도 없고, 밖에 나가서 밥을 못 먹어' 이런 말을 진짜 많이 했다. 밖에서 밥만 먹어도 '자식이 죽었는데 밥이 넘어가나' 이런다는 거다.
그런 일을 보면서 '왜? 유가족들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가족은 도대체 뭐고, 사회가 원하는 유가족다움은 뭘까'를 연구했다.
프레시안 : 유가족이 항상 슬퍼하고 있기만을 기대한다는 것인가.
유해정 : 비슷하다. 슬퍼하는 주체는 수동적인 주체다. 슬픔에 잠겨야 되고, 문제 해결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누군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으려면 무고하고 도덕적이어야 한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특징 중 하나는 참사 이후 유가족의 대처가 굉장히 빨랐다는 거다.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유가족이 한곳에 모여 있었고, 수습 기간이 길면서 유가족이 모임을 구성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는 등 여러 요인이 있었던 것 같다.
대처가 빨랐더니 유가족 대표에 대해 '가짜 유가족 아니냐. 누가 심어놓은 사람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재난이라는 건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니까 유가족도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 패닉 상태겠지만 게 중에는 상대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사람들을 모으며 입장을 발표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유가족은 울부짖고 고통스럽고 뭔가를 판단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경향상 그게 유가족이 초기에 보이는 모습이기는 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히 '지금 대응을 잘 해야 내 가족을 빨리 찾을 수 있어, 억울함을 밝힐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런 사회적 낙인이 있지만, 사람을 안 만나면서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유가족들은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나?
유해정 : 재난 피해자들은 자기가 피해자가 아니라고 선언하거나, 철저하게 피해자성을 숨기고 포기해야 일반 시민으로 살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피해자성을 숨겼다가 드러나면 또 숨겼다고 뭐라고 한다. 꼬리를 물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러니까 피해자들이 인간관계를 맺을 때 보통 두 가지를 한다. 하나는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커버링(covering)'을 한다. 자신이 피해를 입은 참사가 뉴스에 나와도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반응하는 식이다. 아니면, 전혀 몰랐던 사람들과 관계를 맺거나 일하고 싶어한다. 그러면 자신이 유가족이라는 데 대해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대응하다 보면 무분별하게 아무 말이나 내뱉는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게 되기도 하고, 무차별적인 공격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듣고 자기 생각을 말하면 '네가 관련자야? 네가 알아?' 이런 반응이 돌아오는 일도 있다. 그러면 또 '내가 피해자라고 이야기를 해야 돼 말아야 돼' 생각하게 된다.
프레시안 : 혐오만큼이나 '유가족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낙인도 재난 피해자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유해정 : 이태원 참사 생존자를 인터뷰할 때 한 분이 그러셨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는 나를 이루는 여러 정체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 30년을 살았는데, 나를 규정할 수 있는 정체성이 얼마나 많겠나. 그런데 사람들은 이태원 참사 생존자라는 정체성 하나로만 나를 바라보려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집에서의 나, 일터에서의 나, 친구관계에서의 나, 학부모 모임에서의 나가 다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엄마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만 보면서 '어린 애가 있는데 밖에 나와서 일해도 돼?'라고 하면 어떻겠나.
역으로 보통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정체성으로 자신을 구성할 것이 요구된다. 예컨대, 내가 직장에서 엄마로서의 정체성만 보여준다면 '왜 전문가답지 못하게 활동하지'라는 말을 들을 거다. 그런데 재난 참사 피해자들에게는 피해자 정체성으로만 살지 않는다고 뭐라고 한다.
"재난 피해자와 공존하는 방법에 대한 시민교육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재난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나 혐오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해정 : 나는 매일 재난 피해자를 만나니까 어떤 때는 지금 만나는 분이 재난 피해자라는 걸 까먹는다. 그냥 일상을 같이 하다 어느 순간에 아 '저 분이 재난 피해자였지. 나보다 어떤 부분에서 심리적인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지', '이런 부분에서 판단이 다를 수 있지'를 문득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보통의 시민은 일상에서 재난 피해자를 볼 일이 거의 없다. 보통 언론에 비친 모습으로만 재난 피해자를 보게 된다. 한국사회가 재난 피해자와 어떻게 공존할지를 교육하지도 않는다. 그런 부분에서 시민교육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시민교육의 내용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유해정 : 먼저 유가족이 참사 후에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내가 뭘 조심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세월호 참사 5주기쯤 한 어머니가 조카 결혼식에 다녀오시더니 다시는 결혼식에 안 갈 거라고 하셨다. 생전에 딸과 친한 조카라서, 딸 생각이 날 거 같아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 딸 몫까지 축하해주겠다고 가셨다. 어렵게 마음의 용기를 내신 거다.
결혼식을 봤는데 얼마나 슬펐겠나? '내 딸도 지금쯤 살아 있으면 결혼했을 텐데'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막 났다는 거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친척들이 '이렇게 울 거면 남의 결혼식을 왜 오냐'고 했다더라. 그래서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식당에 내려가 앉아서 이번에는 씩씩하게 밥을 먹었단다. 그랬더니 다른 친구들이 와서 '이제 다 잊었나 보네. 밥도 잘 먹고. 역시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러고 갔다는 거다.
유가족이 울면 우는 대로 그냥 '저 사람은 슬플 수 있겠구나. 기쁜 마음,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텐데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슬플까'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밥을 먹으면 '어려운 자리에 힘들게 왔을 텐데 밥 잘 먹어서 다행이네' 생각하고 또 그냥 일상 대화하면 된다. 그런데 꼭 유가족의 행동을 평가하면서 한마디를 한다.
아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다. 자신의 평가나 판단이 피해자에게 엄청난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다.
프레시안 : 또 주의할 점에는 어떤 것이 있나?
유해정 : 일상의 질문이 달라질 필요도 있다. 특히 자녀를 잃은 재난 피해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질문 중 하나가 '자녀가 몇 명이에요'다. 죽은 자녀를 세야 될지, 빼야 될지 너무 어려운 거다. 죽은 자녀도 세서 3명이라고 답하면, 또 꼭 물어본다. '큰 딸은 뭐해요. 둘째 셋째는 뭐해요.' 그럼 죽은 딸은 결혼 안 하고 유학 간 애가 된다. 계속 거짓말을 해야 된다.
안산에서 고등학교 졸업한 친구들이 대학 가서 들으면서 가장 힘들어 했던 질문 중 하나는 '어느 지역에 살았어?'였다. 안산이라고 답하면 또 '어느 고등학교 나왔어?' 묻는다. "단원고야" 이야기하는 순간 '특례 입학했나?' 이렇게 된다.
프레시안 : 소수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비슷해 보이는 면도 있다.
유해정 : 일상의 질문을 바꾸는 것은 재난 피해자를 위한 일만은 아니다.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인데 사적인 질문을 너무 막 하고, 또 소위 말하는 '정상'을 기준으로 생각하면서 질문한다. 참사를 겪지도 않았고, 성소수자도 아니고, 장애인도 아니고, 이성애 결혼을 했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는 질문 중 많은 것이 사람을 소위 아웃팅시킨다.
그러니까 재난 피해자에 대한 시민교육은 재난 피해자에 대한 특수한 교육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소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어떻게 공존할지에 대한 교육이기도 하다. 그런 질문에 대해 소위 '정상'으로 여겨지지 않는 답이 돌아와도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태도, 서로 다름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 태도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재난 피해자가 진상규명을 말할 때 이해관계인으로 전락시키지 말자"
프레시안 : 배보상 문제에 대해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결국 재난 피해자를 위한 변화가 우리 모두를 위한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시민들에게 재난 피해자와 관련해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유해정 : 재난 피해자를 피해자 혹은 이해관계인으로만 전락시키지 않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참사가 발생하면 피해자들이 보통 진상규명을 요청하고, 책임을 묻고 싶어 하고, 문화적 혹은 구조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피해 회복에는 추모도 있지만, 이런 일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진상규명을 이야기하는 순간 사람들이 피해자를 이해관계인으로 전락시킨다.
진상규명을 가장 원하는 사람은 크게 두 축이다. 하나는 관계자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는 국토부나 항공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참사에 대한 책임도 있고, 조사 결과가 자신들의 이익과도 직결돼 있으니까 이 사람들은 중요한 이해관계인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조사과정에 참여하면 이해관계인이라고 하지 않고 '전문가'라고 한다.
재난 피해자도 진상규명이 잘 되기를 원한다. 진상규명위원회가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위원회 구조나 조사 절차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전문가를 추천하거나 직접 참관하려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피해자는 이해관계인이기 때문에 조사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떨어뜨린다'고 이야기한다. '전문가'라고 참여시키는 사람들도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데, 피해자에게만 그렇게 한다.
재난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자신들이 갖는 상식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전문가도 아닌데 전문가인 체 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가족들이 이야기하는 건 '진상규명위에 자신들의 책임이 밀접하게 관련된 사람들이 들어가니,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상대방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거다. 그래서 피해자 입장에서 질문하고 진상규명 과정을 보고, 궁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전문가 참여를 원하고, 조사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기를 원한다.
재난 피해자에게는 진상규명 과정에서 정당하게 자신의 몫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 사법 과정에 참여할 권리, 피해회복 과정에서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특혜가 아니다. 그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지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을 어떻게 만들지 논의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피해자가 이야기하면 객관적이지 못하고, 과도하고, 저런 것까지 요구한다고 한다. 그런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프레시안 : 배보상과 마찬가지로 조사 과정에서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돼야 만에 하나 나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 때도 같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유해정 : 맞다. 재난 피해자들이 늘 하는 이야기가 그런 거다. '세월호 때 자원봉사도 했는데, 몇 년 지나서는 저거 아직도 하고 있다고 했다'며 미안해하신다. '이태원 참사 보고 왜 애들을 저런데 보내 하면서 넘겼는데, 내 아들이 참사로 죽을지는 몰랐다'고 하신 분도 있었다.
다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그게 내 일이 되면 어떤 마음이고 어떤 위치에 있게 되는지 절실하게 깨달으면서 절실하게 후회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모두가 바라지만, 일어났을 때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건 누군가에게 닥칠 수 있는 일에 있어 나와 내 이웃의 권리를 보장하는 길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그런 변화가 빨리 일어나면 좋을 것 같다. 긴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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