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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25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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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25년 뿐이다

[초록發光] 새로운 미래의 시발점, 대한민국 풍력발전 50주년

2025년이 시작되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근대 이후 식민지와 전쟁, 압축적 성장과 민주화 등 여러 일들이 벌어졌던 역사를 되돌아보며 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연초를 보내고 있다. 조국과 민족의 독립과 민주주의라는 흐름을 놓고 보면, 우선 을사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이 유래한 을사늑약 120주기(1905년)이면서, 직전 을사년인 1965년 맺어진 한일협정 60주년이기도 하다. 물론 1945년 맞이한 광복 80주년이면서, 1995년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출범한 민선 지방자치 30주년이기도 하다. 2005년 정부가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렇게 기념해야 할 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많은 올해에 나는 '대한민국 풍력발전 50주년'을 덧붙이고 싶다. 20세기의 '자유와 민주, 독립과 해방'에 더해 이제 '기후위기 대응'은 21세기의 핵심적인 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반세기 전인 1975년은 국가적으로 풍력발전과 관련한 다양한 일들이 우리나라 처음으로 벌어진 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날개를 돌린 다익형 풍차가 일제 강점기 때부터 해방 후까지 한반도 여기저기에 간혹 설치되기도 했었고(1916년 서울 백동 성베네딕도수도원 승공학교), 풍차의 동력에 발전기를 연결하여 전등을 밝히거나(1962년 경기 광주, 1974년 여수 거문도), 도서벽지 통신용 전원으로 일부 풍력발전이 도입되기는 했으나(1974년 5개 도서 지역), 본격적인 기술개발 및 정책 수립이 체계적이며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1973년 4차 중동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석유파동은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열, 조력, 수력,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개발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말 100세의 일기로 타계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오일쇼크에 대한 대응으로 1977년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를 만들고 백악관 옥상에 태양열 시스템을 설치해 온수를 공급했다고도 한다. 물론 그 직후 취임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철거돼버리긴 했지만, 카터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기후 회의론자를 비판하며 2017년 자기 농장을 태양광발전 설치를 위해 임대해 주기도 했다.

유럽에서도 석유파동으로 인해 재생에너지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대표적으로 덴마크는 화석연료 거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였으나 오일쇼크를 계기로 1976년 국가에너지계획을 수립해 대안에너지 개발을 시작했고, 1978년 시민들이 나서서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인 2MW급 상업용 풍력발전기를 세웠다. 특히 덴마크의 베스타스(Vestas)사는 원래 농기계 등을 만들던 회사였으나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풍력발전기 제작을 시작하여 현재 세계 최대의 풍력발전기 제조회사가 되었다.

비단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이 아니었음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에너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기술입국을 내세워 설립한 과학기술처를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연구개발을 시작하였고, 1977년 말에는 상공부에서 동력·지하 자원·전기·연료 및 열관리에 관한 사무를 분리하여 '동력자원부'를 발족시켰다.

당시 정부는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로서 원자력발전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연구개발에 나섰다. 실제로 1978년 7월 20일 국내 최초의 상업용 핵발전소인 '고리1호기'가 준공되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기름 한 방울을 아끼고 전기 사용에서도 낭비를 삼가는 알뜰한 생활 태도를 미풍으로 삼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태양열, 조력, 풍력 등 새로운 자원을 연구 개발하려는데도 적극적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며 에너지절약과 재생에너지 개발을 강조했다.

물론 국가최고정책결정자의 재생에너지 개발에 대한 지시는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1973년 말 1차 오일쇼크가 벌어지자 1974년 과학기술처와 KIST에서는 재생에너지 연구를 시작했고, 그 성과를 토대로 1975년 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기술처 연두순시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했는데, 이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은 “제주도는 바람이 많으므로 그런 특성을 살려 풍력발전을 할 수 있도록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놀라운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박정희 대통령의 풍력 연구개발 지시로부터 열흘 뒤인 1975년 2월 27일,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교래리에 위치한 한진그룹의 제동목장에서 국내 최초로 풍력발전기가 가동을 시작했다. 호주에서 수입 설치한 3킬로와트(㎾)급 풍력발전기는 축전방식을 통해 직원 숙소의 전등 및 TV, 라디오 수신을 위한 전력공급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졌다.

한편 당시 한국과학원은 제5대 과학기술처 장관 및 제6대 한국과학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이정오 박사를 연구책임자로 하여 국내 첫 풍력발전 연구보고서인 '풍력이용에 관한 종합연구'를 발간했다. 그리고 이 연구를 위해 1975년 1월 경기도 화성군 어도리(엇섬. 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포4리)에 2㎾급 풍력발전기 시제품을 세웠고, 제주도 제동목장에 이어 3월 22일 첫 가동을 하였다.

흥미롭게도 이곳에 풍력발전기를 세운 이유는 1974년도 새마을훈장 근면장을 수상한 이 마을에 사는 새마을지도자 조기철(당시 46세) 씨의 요청에 따라 '대통령 각하의 선물'로 '하사'한 것이었다. 그 후 수 십 년이 흐른 2020년대 들어 새마을운동중앙회는 탄소중립을 주요한 과제로 선정해 성남시 분당구 중앙연수원 옥상에 태양광발전을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실천활동에 나서고 있다. (이 또한 우연의 일치겠지만, 1970년 4월 22일은 첫 '지구의 날'이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가꾸기운동'을 제창한 날이기도 해서 2011년부터 '새마을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이렇듯 1975년은 그해 1월부터 당대 최고 국가연구기관에 의한 풍력발전기의 최초 설치에 이어, 2월에는 국가 최고정책결정자의 풍력발전 연구개발 지시가 있었고, 국내기업에 의한 최초의 풍력발전기 가동도 있었다. 또한 국가연구기관 최초의 풍력발전 보고서 발행과 풍력발전 관련 대학원 학위논문 배출 등 국가적 수준의 다양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해부터 틈틈이 '대한민국 풍력발전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개인적 차원의 예비조사를 하고 있다. 특히 옛 자료를 검증하고 그 흔적을 살피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 엇섬과 제주도 제동목장 등 1975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현장을 처음으로 물어물어 찾아가 보았다.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하면서 접했던 신문기사와 보고서에 나온 모습의 풍력발전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그 대신 울창한 나무가 서 있었지만, 발전기를 잡아주던 쇠말뚝은 반세기가 지나도 그 터를 지키고 있었고, 49년 전 발전기를 가동할 당시를 기억하는 마을 어르신도 우연히 만나뵐 수 있었다.

작년 2월 27일, 한국풍력산업협회는 그간 진행해오던 '세계 풍력의 날' 행사 대신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풍력발전기를 가동한 날을 기념하여 '제1회 한국 풍력의 날 행사'를 가졌다. 1975년 3㎾에서 시작하여 2023년 기준 2152㎿까지 국내 풍력발전은 비약적으로 보급되었지만, 2023년 발표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풍력발전 보급목표인 19.3GW의 10%에 불과하고, 전체 전력거래량을 기준으로 하면 신재생은 6.2%에 그치고 풍력발전은 전체 신재생에너지전력의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어서(전력거래소, '2023년도 전력시장통계'), 앞으로 더 신속하고 질서 있는 보급이 필요한 시점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에 따라 전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함께 시작된 대한민국의 풍력발전은 올해 5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때보다 더 복합적 위기에 직면해있다. 중동의 전쟁은 반세기가 지나도 계속되고 있고, 그 때는 없었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유럽으로의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공급중단과 국제적 에너지 위기도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화석연료 사용 증가에 따른 기후위기'는 반세기 전에는 제대로 인지조차 못한 위험이었다.

올해 대한민국 풍력발전 반세기를 맞아 왜 우리는 같은 시기에 시작한 선진국들과 달리 아직도 재생에너지 비율이 적은지를 역사적 접근을 통해 성찰해야 한다. 유가 하락이라는 요행과 핵발전 등 다른 기술에 너무 과도하게 의존한 것은 아닌지 따져보고, 지나간 반세기에 대한 추적과 반성을 통해 앞으로의 지속가능한 공동의 미래를 그려야 한다. 헌법재판소도 인정한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른 '2050 탄소중립'이라는 법정 목표 실현을 위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지나간 반세기도 보다 짧은 반의 반세기, 즉 25년 뿐이다. 따라서 유가 상승 및 화석연료 고갈에 더해 온실가스 감축과 비극적인 전쟁의 지속을 막기 위해서라도, 다시 맞이한 을사년이 더는 지구적으로 '을씨년스럽지' 않도록 즉각적인 재생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제주 풍력발전소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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