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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서", "후회하기 싫어서" 청년 여성들은 광장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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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서", "후회하기 싫어서" 청년 여성들은 광장으로 달려나갔다

[좌담회] 20대 여성 5인, 그들은 왜 광장으로 달려갔나 上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시민들의 삶은 한순간 비상 국면에 접어들었다. 영문도 모른 채 맞이한 계엄에 당황하던 시민들은 '경고성'이었다는 대통령의 납득 못할 설명에 곧바로 광장으로 모여 대통령 탄핵을 외치기 시작했다.

한 달째 이어지고 있는 탄핵 집회를 가장 많이, 가장 오래 지키고 있는 이들은 청년 여성들이다. 여의도, 남태령, 한남동 등 탄핵을 외치는 자리라면 어디든 형형색색의 응원봉으로 무장한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청년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집회를 상징하는 물품은 촛불에서 응원봉으로 바뀌고, 광장에 쌓여온 성차별적 요소들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청년 여성들은 무엇을 위해 광장에 나왔을까. <프레시안>이 만난 5인의 20대 여성들은 저마다 다른 계기로 광장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5.18민주화운동을 떠올리며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의식으로 무장한 여성이 있는가 하면, 목소리를 내는 동료 대학생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껴 광장에 나왔다는 여성도 있었다.

아이돌 응원봉을 둘러싼 해석도 다양했다. 두 달간 모은 용돈으로 구매한 응원봉에 애틋함을 갖는 사람도, 단순히 촛불보다 흔들기 좋아 들고 나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응원봉을 두고 과도한 해석을 내놓는 외부의 시선을 거부하는 이도 있었다.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뭉갤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윤석열 정부와 한국 사회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지워온 점에는 모두가 공감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두고 청년 여성들을 공격하는 정책을 내놓는 동안 디지털성범죄, 교제폭력 등 여성을 향한 공격이 줄지어 벌어졌다고 했다. 그럼에도 미디어에서는 여전히 20대 여성들을 대변하는 '스피커'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이에 분노한 여성들이 비상계엄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청년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탄핵광장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을 '기특한 존재'가 아닌 동료시민으로 바라봐달라고, 그리고 탄핵광장 밖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 또한 존중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은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모처에서 만난 20대 여성 5인과의 좌담회 내용 전문이다.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를 함함(26, 불교 신자), 아몰(22, 수도권 대학 재학생), 덕수(24, 아르바이트 노동자), 라이츄(21, 본관점거에 참여한 동덕여대생), 리본(23, 한신대 민중가요노래패)으로 소개했다. 첫 편에선 이들이 광장에 나온 까닭을, 두 번째 편에선 이들이 농민, 장애인 등과 연대하게 된 이유와 과정을 소개한다.

▲2024년 12월 28일 서울 마포구 모 사무실에 모인 20대 여성 5명이 각자 집회에 들고 다닌 응원봉을 소개했다.ⓒ프레시안(박상혁)

"계엄 당일, 비상식량 사러 편의점 가사장님이 '절대 밖에 나오지 말라'시더라"

프레시안 :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각자 무엇을 하고 있었나. 계엄 소식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도 궁금하다.

함함 : 친구들과 게임하고 있다가 비상계엄 소식을 접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 전쟁 났나?'하고 뉴스를 보니 계엄 선포 속보가 뜨고 있더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초조하고 다급한 마음이었다. 새벽에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한 뒤에야 겨우 잠에 들었다.

아몰 : 그날 학과 행사가 있어 하루 종일 일하다 계엄 소식을 접하니 현실 감각이 들지 않고 빨리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에서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뒤집어져 있더라. 새벽 내 벌어진 타임라인을 정리하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박근혜 탄핵집회와 같이 이번 사건으로도 집회가 열릴 거라 생각해 바로 집회 일정을 찾기 시작했다.

라이츄 :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떨린다. 대학 본관을 점거하던 중 비상계엄 소식을 들었다. 11시 이후 통행금지라는 걸 보고 밖에 있으면 총을 맞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신 없이 짐을 챙겨 나온 뒤 대통령 담화가 나온 새벽까지 뉴스를 보다 잠들었다. 아침에 돌아가 보니 학교측이 우리가 대피한 새 본관에 들어가 증거자료들을 옮기고 있더라. 그날 이후로는 본관을 학교측에 빼앗긴 상황이다.

리본 : 아르바이트하고 귀가해 애니메이션을 보려는데 애인한테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올해 5월 광주에 가서 5.18민주화운동 유족 분들에게 당시 계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고 잔인하게 죽었는지 배웠는데 그게 지금의 문제가 된 것이다. 군인들이 헬기를 띄우고 국회에 간다는데 광주에서 헬기 띄워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한 일이 생각나 더욱 충격이었다. 편의점에서 비상식량을 사는데 사장님이 과거 계엄을 겪었던 경험을 말해주며 절대 밖에 나오지 말라고 하시더라. 서로 다독인 뒤 대통령 담화 발표까지 계속 뉴스만 봤다.

덕수 : '지금이 2024년인데, 과거처럼 총을 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당장 국회로 달려가 새벽 동안 국회 앞에서 '탄핵하라' 구호를 외쳤다. 오후 2시에 더불어민주당이 결기대회를 연다길래 국회에서 대기하다 참여하고, 오후 다섯 시에 열린 민주노총 집회에도 참석한 뒤 밤에야 집에 돌아갔다.

프레시안 : 각자 집회에 나선 배경이 궁금하다. 특히 탄핵 정국 초기에는 계엄이 다시 선포될 수도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두렵지는 않았나.

덕수 : 계엄 선포 몇 달 전 좋아하는 아이돌이 가짜뉴스와 괴롭힘에 시달리다 결국 활동을 중지한 사건이 있었다. 그에게 가해지는 괴롭힘을 말리는 사람이 있었음을 적극적으로 보여줬어야 했는데, 엉덩이가 가볍지 않아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계엄이 터지고 나서는 누군가의 권리가 밟혔을 때 뒤늦게 움직여서 또다시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는 감정이 강하게 들었다. 박근혜 탄핵집회 당시에는 집회 참여를 못해서 이번에는 역사의 한 장면을 목격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계엄이 선포된 날 바로 여의도로 달려갔다. 겨울철 배달 일을 하며 구비한 방한용 유니폼과 보호장구, 핫팩이 집회 참여에 요긴하게 쓰였다. 노동자의 보호구가 집회의 보호구가 된 셈이다.

아몰 : 우리 학교 신입생들이 이름을 담은 시국선언문을 학교 담벼락에 붙이는 모습을 보고 선배로서 부끄러웠다. 새내기들이 목소리를 내는데 선배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 학교 시험을 마친 직후 집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라이츄 : 탄핵 정국 초기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집회 참여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학교에서 시위 중인 만큼 정치권과 엮이게 되면 학교 문제에 공권력이 개입해 우리를 어떻게 할지 모른다거나, 온라인상에서 사이버불링을 당하는데 집회 현장에서도 괴롭힘을 당할 수 있으니 집회에 가지 말자는 의견도 나왔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학교 문제는 아무 일이 아니게 되기 때문에, 무섭더라도 '민주동덕' 깃발을 들고 집회에 나갔다. 실제로 우려하던 공격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많은 분들에게 응원을 받았다.

함함 : 대학이라는 집단에서 내 주장이나 신념을 드러내는 일에 굉장한 공포가 있었다. 내 생각을 드러내면 '꼴페미' 소리를 들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다니는 혜화에서 벌어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를 보거나,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코튼홀을 자주 지나치면서도 해당 이슈들에 항상 침묵해왔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 집회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회에 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강압적 진압이 없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리본 : 평소 집회를 많이 참여했고 주위에는 시위하다 잡혀간 분들도 있다. 빌딩이 빽빽한 여의도에서 하는 집회는 처음이라 빌딩 옥상에서 군인이 총을 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정말 많이 모이면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고, 현장에서 동아리 선배들을 만나 사탕이나 현금을 받기도 해 따뜻함을 느꼈다.

프레시안 : 각자 다른 이유들로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자주 참여했는지도 궁금하다.

함함 : 계엄 터진 뒤 6일, 14일, 24일 세 차례에 걸쳐 참석했다. 혼자 가는 날도 있는가 하면 친구들과 함께 가는 날들도 있었다.

아몰 : 7일, 14일, 21일 참석했고 지금 진행하는 좌담회를 마친 뒤에도 집회에 참석하러 갈 예정이다.

덕수 : 계엄 발표 당일 국회 앞으로 간 뒤부터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열리는 집회에 대부분 참여했다. 앞으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나 팔레스타인 집회도 참여해볼까 한다.

라이츄 : 11일과 14일 두 차례 참여했다.

리본: 계엄이 선포된 주간에는 금요일(6일)과 토요일(7일) 참여했고, 그 뒤로는 매주 토요일 집회에 갔다. 오늘(28일) 열리는 집회도 참여할 예정이다.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2024년 12월 2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앞에서 개최한 집회에는 3000여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들이 모였다. ⓒ프레시안(박상혁)

응원봉은 '나 여기 있어요' 알리는 수단…청년 여성들 한 목소리로 묶는 도구 아냐

프레시안 : 탄핵정국의 모든 집회에서 정치와 무관해 보이는 응원봉 및 깃발들이 다수 등장해 주목 받았다. 특히 아이돌 응원봉의 경우 대중이 보기에는 '덕후'들의 아이템으로 비치곤 했는데 어떻게 광장의 핵심 아이템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보나.

아몰 : 근본적으로 이번 집회에 청년 여성들이 많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아이돌 팬덤 문화에서 청년 여성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니 응원봉도 많이 보이는 거다. "XX야 살기 좋은 나라 만들어 줄게"라거나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는 등 응원봉을 둘러싼 몇몇 표어들이 좋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져 대중에게 채택됐다고 본다.

덕수 : 응원봉은 확실히 집회의 주 세대가 청년 여성으로 교체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지만, 언론에서 멋들어지게 포장해 주듯이 투쟁의 상징, 다양성의 표상이 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응원봉이 촛불보다 다루기 쉬운데 불도 꺼지지 않는 효율적인 도구이고, 박근혜 탄핵 집회 이후 8년간 K팝의 상업화가 발달하면서 절대적으로 팔려나간 응원봉의 개수가 많아 이번 집회에 촛불 대신 들고 나왔을 뿐이다. 물론 응원봉에 의미를 두고 고양감을 얻는 사람들도 있지만, 응원봉을 든 사람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리본 : 박근혜 탄핵집회 때에도 LED촛불이 많이 팔렸다. 하지만 LED촛불은 밝기가 약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더 밝고 눈에 띄는 물품을 가져온 게 응원봉 아닐까. 나는 아이돌 응원봉은 아니지만 막대형 LED 봉을 들고 다녔고, 참여자 중엔 무드등을 들고 온 사람도 있었다. 촛불이건 횃불이건 응원봉이건 '나 여기 있어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걸 들고 오는데 그중 응원봉이 가장 많았던 거라고 본다.

라이츄 : 무봉(마마무 응원봉)을 들고 나왔던 나는 언론에 무봉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엄청 기분 좋았다. 용돈이 3만 원이던 10대에 4만 원짜리 무봉을 사려고 두 달 동안 용돈을 모아 엄청 소중하게 보관해왔다. 촛불처럼 뜨겁지고 않고 흔들기도 좋아 응원봉을 가져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너네는 부끄럽지 않은 가수가 될 거고, 나는 부끄럽지 않은 팬이 될 거야'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함함 : 내 경우 투모로우바이투게더(투바투) 팬덤에 성인 팬도 있다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집회에 응원봉을 들고 간 측면이 있었다(웃음). 투바투 팬덤은 10대가 대다수고 성인 팬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별개로 사실 많은 사람들은 응원봉에 특별한 애틋함을 가지고 구매하지는 않는다. 구매할 때에도 "왜 이렇게 비싸게 주고 파느냐"며 회사를 욕하곤 한다.

프레시안 : 계엄은 모두가 함께 겪었는데 왜 청년 여성들이 가장 많이 광장에 나왔을까.

아몰 : 이 문제는 윤석열의 여성혐오 정책과 연관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윤석열이 벌여온 정치적 맥락에서 여성들이 가진 분노가 가장 클 수밖에 없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항상 남성을 위한답시고 여성을 공격하는 정책을 내고, 청년을 위한답시고 노인을 공격하는 발언을 하는데, 그런 이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를 지지했다. 이후 윤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놨고, 당선 후에도 현재까지 여성 의제와 관련한 일련의 정책들로 여성들을 분노케 했다.

라이츄 :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최근 몇 달간 연쇄적으로 벌어진 여성혐오 범죄와 교제폭력이다. 심지어 지난 크리스마스날에도 10대 여학생이 남학생으로부터 공격당했다. 끊이지 않는 여성폭력이 여성들을 더욱 분노케 만들었다.

덕수 : 유독 정치권이 목소리를 들어주고 있다는 신호를 전혀 보내지 않는 대상이 20대 여성이다. 예컨대 중년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김어준이란 효과적인 스피커가 있고, 우리나라 인터넷 커뮤니티는 우파적 성향이 강한데 언론이 스피커가 되어준다. 이대남은 이준석이라는 스피커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데 여성들에게는 이런 스피커가 없던 점이 이번 시위에 표출된 것이다.

함함: 여러 이유들로 20대 여성들은 광장에 나와 목소리 내는 경험을 많이 해왔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 집회에 같이 가자고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14일에는 내 생일파티를 위해 모인 친구들과 함께 여의도 집회에 갔다. 청년 여성들 사이에서의 작은 연대들이 모여 이렇게 큰 연대가 된 게 아닐까 싶다.

▲2024년 12월 28일 서울 마포구 모 사무실에서 20대 여성 5인이 탄핵집회에 나온 이류를 밝혔다.ⓒ프레시안(박상혁)

"광장 내 성차별은 줄었지만 장소 따라 여성에 대한 시선 달라, 갈 길 멀다"

프레시안 : 여성들의 참여가 주목을 받으면서 광장의 문화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동시에, '페미니스트를 끌어내리라'는 함성이 나오는 등 여전히 광장 내 성차별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함께 나온다. 여러분은 광장의 분위기를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덕수 : 광장 안에서 성차별보다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페미니스트에 대한 존중이 정말 많이 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별금지가 대중의 의견인데도 정치권과 언론은 그동안 익명 커뮤니티나 우파 유튜버, 이준석같은 사람들의 소수의견을 너무 확대해서 들어온 것이다.

아몰 : 우리 목소리가 커지고 우리가 주목을 받으니 광장 내 자정작용이 일어나는 점이 신기했다. 민주당도 한 패널이 방송에서 물의를 일으키자 입조심하라는 강령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 생경했다. 여성들은 가장 최근 집회까지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정치와 최대한 엮이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정치가 우리 목소리를 주목하고 바뀌는 모습,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하며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거나 커밍아웃하는 모습을 보여 좋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함 : 2016~2017년도부터 시작한 여성들의 행동들이 이어져 이런 표면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이전에는 성차별적 발언을 하지 말라고 해도 묵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성평등을 외치는 목소리가 더 커졌고 오랫동안 이어지니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하는 거다. 위선도 선이라고,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하는 건 분명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한편으론 그동안 광장에서 항상 존재했음에도 주목받지 못해온 여성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생경해하는 시선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아몰 : 여성들은 전부터 촛불소녀나 유모차부대처럼 여러 이름으로 항상 광장에 나오는 사람들이었다. 촛불소녀와 관련한 논문을 찾아보니 당시 그들을 집회의 마스코트로 여기거나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대상화했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국면 동안 시국선언문을 올리는 청소년들에게 기특하다고 하지 말고 동료 시민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자정작용이 일었다. 반면 혜화에서 대학본부를 규탄하기 위해 모인 동덕여대 학생들의 시위는 '철없는 애들', '왜 이런 거나 하고 있지'라는 비난이 나온다. 모이는 장소에 따라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모습에 갈 길이 멀다고 느껴졌다.

리본 : 탄핵정국에서 청년 여성들을 부각하는 이유는 이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아무런 차별과 혐오가 없었다면 그저 많은 시민이 참여했고 청년 여성도 많았다는 설명 정도로 끝났을 거다. 여성들은 항상 광장에 많았기 때문이다. 집회 참여자 중에는 아이도 있고 나이도 많은 분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은 모든 매체가 청년 여성만 주목하니 외로웠다고 하더라. 앞으로는 젊은 여성들의 시위 참여가 당연한 사회였으면 좋겠다.(下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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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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