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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2공항과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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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제주 제2공항과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

[제주의 녹색분칠]

1. 왜 지금 자기결정권을 말하는가?

지난 9월 11일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주도의회 제420회 임시회 도정질문에서 제기된 질문에 대답했다. 제주 제2공항 갈등 해결방법으로 언급되어 온 도민의 '자기결정권'과 관련하여 "주민투표라는 방식을 통해서 하는 것만이 자기결정권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환경영향평가 등의 동의 절차 과정에서 충분히 자기결정권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뒤이어 19일에 더불어민주당은 성명을 내고 "제2공항 입지 선정부터 지금까지 갈등으로 얼룩진 시간을 지나 이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주도의 시간'"이라며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지금 상황에서 정치권이 무리하게 특정 방향으로 도민의 의견을 몰아가지 않고 도민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무리하게 제2공항 사업을 밀어붙이던 원희룡 도정과 다르게 오영훈 도정은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그 실현 방법과 관련해서는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정과 제주 정치권은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도민이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도민의 자기결정권 문제를 제한하려는 한다. 반면, 제주도민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제2공항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도민의 자기결정권 실현을 강조해 왔으며, 구체적으로는 '주민투표'를 자기결정권 실현의 방안으로 거론했다. 일반적으로 자기결정권은 주민투표를 통해 중요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고, 다수의 의지로 표명된 것을 실현한다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자기결정권 실현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 이견과 논쟁이 존재한다면, 여러 방안들 가운데 가장 자기결정권 실현에 가까운 방안을 제주도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원칙이다.

왜 지금 자기결정권 문제가 제기되는가? 자기결정권 실현은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로 제2공항 문제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도민들의 자기결정 요구는 번번이 좌절되어 왔다. 동시에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행정절차가 진행되어 오면서 더 이상 제2공항 문제와 관련한 자기결정을 늦추거나 연기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절박한 순간에야말로, 잠시 멈춰서서 공항에 대해 자기결정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2. 환경영향평가에 갇힌 자기결정권

"환경영향평가를 충실히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도민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할 것이다."

제주도정의 이러한 약속은 신뢰할만한 것이며, 환경영향평가는 자기결정의 유효한 틀이 될 수 있는가?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1977년에 환경보전법에 명시되어 처음으로 국내에 도입된 이래, 여러차례 개정을 거쳐왔다. 그리고 2001년 환경영향평가법이 개정(제42조 시·도의 조례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되면서 중앙정부의 평가대상 사업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사업에 관해서는 지자체가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 조례로써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환경부, 2021).

이에 따라 서울시와 제주도 등 여러 지자체는 시도 조례에 따른 환경영향경가의 근거 규정을 마련해 자체적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제주도는 제주만의 독특한 역사적 맥락에 따라 독자적인 환경영향평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이전에는 국가에서 정한 환경영향평가 관련 규정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1992년 '제주도개발특별법 시행령'과 1993년 '제주도개발특별법 시행조례'가 제정되면서 환경영향평가의 대상사업, 평가방법, 평가절차 등 전반적인 사항을 제주도지사와 협의하는 자치 제도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06년에는 '제주도 환경·교통·재해 영향 평가 조례'를 별도로 제정하여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했다. 이후 제주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364조(환경영향평가 협의 등에 관한 특례)에 의거하여 2011년에 '제주특별자치도 환경영향평가 조례'를 마련하였고, 협의주체, 평가대상사업, 평가절차 등에 관한 독자적인 환경영향평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것은 전국의 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환경영향평가 조례를 제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제주도의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도지사가 개발사업 인허가 권한과 함께 환경영향평가 협의 권한을 갖는다는 점, 환경영향평가 심의 기능이 강화되어 있다는 점, 도지사는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협의 내용에 대하여 도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 등 다른 시도와는 차별성이 있는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양순미 외, 2021: 648-652).

제주도가 타 시도에 비해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심의와 협의 기능을 상당히 강화한 제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도민결정권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의 구축이 실제 운영상의 장점으로 드러났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 예컨대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의 부실한 수행은 갈등의 시발점이 되었다. 환경영향평가법 제22조에 따라 10만㎡ 이상의 면적에서 개발행위가 이루어지면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하고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이후 사업고시를 해야 하지만, 제주해군기지는 환경영향평가 없이 국방부 고시부터 나왔다. 이에 강정마을회가 행정소송을 걸자, 1년간 재판을 끌면서 3개월만에 환경영향평가를 마치고 면적을 축소해 재고시했다. 또한 해당 부지에 설정되어 있던 절대보전지역 변경동의안이 환경도시위원회에서 반려되자, 당시 도의회 의장은 안건을 직권상정하고 도의회 문을 걸어 잠근 뒤 해제의 건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제주도 환경영향평가심의회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강정마을 해안 일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나 현장 방문을 거치지도 않고, 환경영향평가법 제6조에 따른 환경전문가나 지역주민의 의견 청취도 누락한 채 환경영향평가서를 통과시켰다.

이와 같은 부실한 운영은 201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각종 개발사업에서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22년 8월 24일, '제주사회 지역갈등 합동토론회'가 개최되어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건설, 성산읍 제주 제2공항 건설, 비자림로 확장 공사,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건설, 제주해군기지 진입도로 건설, 월정리 하수종말처리장 증설, 송악산 뉴오션타운 개발사업, 선흘2리 대명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 제성마을 도로 확장 사업 등 해당 지역 아홉 곳의 주민들이 모여서, 각자가 처하고 있는 '환경갈등'의 문제를 논의했다. 이 가운데 월정리 오폐수처리장 증설 사업과 제성마을 도로 확장 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사업들은 모두 환경영향평가를 받은 대규모의 사업으로서, 환경영향평가서가 상당히 부실하게 작성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선흘2리 동물테마파크사업의 경우 환경영향평가서(2006)는 사업지를 "종의 풍부도가 낮고, 멸종위기 동식물은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평가하고 "멸종위기 1급, 2급 야생동물은 없었다"고 평가했지만 사실과 달랐다. 여러 환경영향평가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고했지만, 마을주민들과 현장을 조사한 전문가들이 찾아낸 멸종위기종, 법정보호종, 천연기념을 목록은 아래와 같다(윤여일, 2022: 190).

▲제주도 개발사업에서 환경영향평가서상에서 누락된 멸종위기종, 법정보호종, 천연기념물 목록

제주도의 환경영향평가 제도뿐만 아니라 환경영향평가 일반이 여러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정보공개와 의사결정의 투명성 부족, 주민참여와 같은 갈등관리 미흡, 그리고 이에 따른 장기간의 평가 절차 및 효율성 저하 등 운영상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이 지적된 바 있다(유환열, 2002; 조남욱 외, 2019). 환경평가연구원에서 발간한 <환경영향평가 체계개선 중장기 연구 과제 도출> 보고서(유현석·김경호, 2022: 3-4)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들은 도민의 자기결정권 실현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들이다.

우선, 한국의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불확실성 및 신뢰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미래 예측에 기반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러한 신뢰성의 문제로 인해 환경영향평가 자체가 갈등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둘째, 제도의 의의에 대한 인식 부족의 문제로서, 환경평가에 참여하는 이해당사자들이 승인을 위한 행정절차로만 인식하여 부실한 평가를 양산하며, 환경영향평가를 토대로 실질적인 계획 변경이 어렵다는 것이다. 셋째, 정부정책의 영향력 문제가 있다. 정부정책의 기조 및 방향성에 따라 환경영향평가의 위상이 변하고, 주요 국가계획이 확정된 후에 평가를 진행하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의 의사결정 역할이 축소된다는 것이다. 넷째, 평가 과정에 주민참여가 어렵다.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의견 수렴 방식이 제한적이고 평가서 내용이 난해하여, 환경평가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요컨대,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그 취지의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이해당사자들과 시민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환경영향평가 등의 동의 절차 과정에서 충분히 자기결정권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도지사의 언급은 제2공항 문제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주장해 온 제주시민사회를 납득시키고 신뢰감을 주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따라서 제2공항 문제에 관한 도민의 자기결정권은 환경영향평가라는 틀에 갖혀 있어서는 안된다. 특히 제주사회에서 공항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 그것으로 표현되는 제주인의 삶의 측면들이 도민의 자기결정권 실현 과정에서 성찰되어야 한다.

3. 근대화의 상징으로서 공항 그리고 2016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한국의 공항들은 갈수록 '문제적 현상'이 되어 가고 있다. 한국공항공사가 관리하는 공항 14곳 중 최근 5년(2018-2022년) 동안 흑자를 기록한 곳은 김해공항, 김포공항, 제주공항 단 3곳이다. 나머지 11곳은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1천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높은 영업손실을 기록한 무안국제공항의 2022년 활주로 이용률은 0.1%에 불과했다. 무안공항에 이어 영업손실 2위를 기록한 양양국제공항은 2023년 5월부터

운항을 멈췄다.

좁은 국토에 이처럼 많은 공항이 들어서게 된 것은 지역의 발전을 바라는 주민들과 지자체의 개발 욕구, 건설 경기의 활성화를 바라는 중앙정부와 토건자본의 이해, 항공산업과 저가항공사의 발전,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관광의 중요성과 관광산업의 발전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욕구와 정책이 맞물린 결과였다. 지방공항과 저가항공사들의 존재는 지역민의 이동성을 보장하고 교통수단의 다양성을 보장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과잉경쟁으로 인한 중복투자, 수요의 불확실성과 전문 항공인력의 부족 등 많은 문제들을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방공항은 한때 지역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솔루션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은 지역 수준에서는 해결하지 못해 매년 막대한 세금이 투여되고 있는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다.

다른 한편, 제주와 김해 등 몇몇 지역에서는 공항 이용객의 계속적인 증가가 예상되면서 제2공항이나 신공항을 둘러싼 갈등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 가운데 제주의 공항 문제는 보다 복합적이면서 독특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제주는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육지로의 이동과 교류에 제약을 받아 왔고, 20세기 후반에 제주공항이 근대적인 민간공항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제주의 거의 유일한 관문으로 인식되어 왔다.

잘 알려진 것처럼, 현 제주공항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일본군이 이른바 '본토결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건설되었다. 그리고 4.3항쟁의 과정에서는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학살당하고 매장당한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제주공항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전국의 다른 공항들과 마찬가지로 전후 재건의 맥락에서 복구가 진행되었고, 1958년에 '제주비행장'으로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그리고 1968년에는 제주-오사카 노선이 개항하면서 제주국제공항으로 승격되었다.

제주도는 1963년에 제정된 국토건설종합계획법에 따라 제주관광종합개발계획이 수립된 이후, 외화획득을 위한 국제적인 관광지로서의 위치를 부여받았다. 이에 따라 그 관문인 제주공항을 현대화하는 문제가 제주의 관광개발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제주공항은 항공산업의 발전과 대형 항공기의 등장에 따라 1961년, 1972-73년, 1978-83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활주로를 확장했다. 또한 여객수의 점진적인 증가에 발맞추어 여객청사를 비롯한 공항시설 역시 여러 차례에 걸쳐 신설되거나 확장되어 왔다. 활주로와 공항시설의 확장이 수년의 공사를 필요로 하고, 계획과 설계에도 그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제주공항은 늘 확장을 계획하고 있거나 실제로 확장하는 과정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주공항의 지속적인 확장과 현대화 과정에서 반대 의견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제주공항 인근의 주민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고향을 버리고 이주해야 했지만, 국가의 사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제주사회에서 공항 확장에 대한 반대 의견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는 국가가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제주공항 자체가 제주의 근대화를 표상하는 상징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말 이후에 제주사회의 지식인들 안에서도 관광을 통한 제주개발은 지배적인 담론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이를 위한 공항의 확장과 근대화는 바람직한 일이자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되었다. 박정희를 비롯한 국가지도자들은 공항에서 수많은 인파의 환영을 받았고, 제주의 성공한 운동선수들은 공항에서 꽃다발을 받고 제주 시내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다. 제주공항은 성공한 제주인들이 금의환향하는 개선문이었던 것이다. 또한 제주공항은 가족 상봉을 위해 방문한 해외동포들이 조국의 발전과 은혜에 감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장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제주공항의 근대화된 모습은 그 자체로 제주의 근대화와 지속적인 발전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관광객은 제주의 성장과 미래 발전을 위한 보증수표였다. 낙후된 제주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열망 속에서 관광개발은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었고, 이를 위한 제주공항의 근대화와 확장은 도전받지 않는 '절대명제'였다. 이 같은 구도 속에서 제주도민이 공항과 관련한 어떤 결정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제주공항의 근대화와 확장이라는 '절대명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두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이 같은 도전은 지속적인 공항 확장 및 그것을 추동한 관광개발의 과정에서 미처 고려하지 않았던 가치들이 새롭게 발견되어 온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과 달리, 제주 제2공항 반대운동의 과정에서 주민의 생존권과 자기결정권, 국책사업 과정의 절차적 합리성과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중요한 쟁점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공항 예정지의 토지를 단순히 부동산이 아니라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 보려는 시각이 늘어났고, 제주를 인간의 욕구를 위해 마음대로 개발할 수 있는 땅이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과 공존해야 할 공간으로 바라보는 생태적 감수성 역시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는 근대화와 (관광)개발이 절대적인 가치로 인정받던 시대로부터 생태적인 지속가능성 등 탈근대적 가치들이 더욱 중요한 시대로의 이행 과정에 놓여 있는 것이다.

둘째, 지속적인 공항 확장 및 그것을 추동한 관광개발의 과정은 긍정적인 결과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유산 역시 축적해 왔고, 최근에는 그것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인식이 급격히 확산되어 왔다. 과거에도 제주사회 안에서 외지자본에 의한 무차별한 난개발과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1988년에 제주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탑동매립반대운동으로부터 시작하여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반대운동에 이르는 '지역운동의 폭발기' 동안에 제주사회는 '도민주체의 개발', '개발이익의 환수'와 같은 요구들을 정치적 의제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관광개발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는 미약했고, 더구나 공항에 대한 문제제기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6년 무렵부터 제주사회 안에서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과잉관광), 과잉관광으로 인해 원주민의 삶과 주거지가 위협받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과 같은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2016년은 내국인과 중국인 관광객이 폭증하면서 관광객 증가가 정점에 달하여 한 해에 1600만 명의 관광객이 제주를 찾았다. 제주공항은 관광객들로 넘쳐났고, 비행기는 연착되기 일쑤였다. 제주로의 이주열풍 역시 정점에 달해서, 제주의 어디를 가도 '공사중'이라는 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흐뭇해 하며 만족감을 표시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연실색하며 불안해 했다. 요컨대, 2016년은 관광개발 패러다임의 성과가 정점에 도달한 것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그리고 2016년 9월 4일에는 제주사회를 경악케 한 충격적인 장면이 <MBC 시사매거진2580>을 통해 보도되었다. 제주공항에 인접한 도두동의 제주하수처리장에서 정화되지 않은 오폐수를 제주 앞바다에 무단으로 방출하고 있는 장면이 방송 영상으로 그대로 비춰졌던 것이다. 이후의 후속 보도와 연구에 따르면, 제주하수처리장은 2015년 6월 19일부터 12월 31일까지 총 125일간 총질소(T-N)가 기준치(20mg/L)의 5배 이상 초과하는 하수를 바다로 흘려보냈다. 2016년 1월부터 7월까지 202일간 법정 기준에 맞춰 정화수를 방류한 경우는 단 5일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기준치를 초과한 부유물질(SS) 방류 기간도 141일이나 됐다.(<제주의소리>, 2018.02.05., "제주 하수처리 포화는 도시계획 실패...그런데 제2공항?")

제주의 쓰레기 매립장 역시 2018년 말 시점에 대부분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매립하지 못한 쓰레기들이 노상에 그대로 적재된 채 방치되었고, 2019년 3월에는 제주의 쓰레기가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되어 다시 한 번 제주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2019년에 동복리에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를 열었으나, 늘어난 인구와 관광객들이 배출한 쓰레기를 얼마나 처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상태다. 제주의 교통난과 주차난 역시 서울의 도심보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해를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마디로 2016년을 전후하여, 제주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경험했다. 제주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인구와 관광객이 늘고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힘든 것은 아닌가, 더 나아가 그러한 증가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제주가 버티지 못 한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과잉관광이나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 맥락 속에서 등장한 것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제주의 '사회적 수용력', '환경수용력'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 같은 새로운 언어들의 출현은 모두 인간이 자연과 사회에 가할 수 있는 압력이나 영향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곧 "제주에 2개의 공항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절대명제였던 관광개발 그리고 제주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공항을 2개로 늘리는 것이 제주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라는 생각도 부각되고 있다.

제주공항이 근대화 과정에서 제주가 달성한 성과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다는 점은 제주공항에 관한 도민의 결정이 곧 제주의 미래와 발전의 상에 대한 결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제주공항의 현대화된 모습이 제주발전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던 사고는 이제 그 시효를 다했다고 생각된다. 공항을 벗어나는 순간 더욱 현대화된 빌딩과 도로가 펼쳐져 있기도 하고, 그 근대화/현대화의 과정에서 빚어진 문제들이 제주인의 삶과 미래를 개발/발전이라는 말로만 표현하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은 바로 이런 맥락 속에서 의미를 획득했다.

4. 도민의 자기결정권 실현의 과제와 도전

제2공항과 관련한 도민의 의견에 대해서는 2015년 12월 3일 KBS제주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래, 수십여 차례에 걸친 도민여론조사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의 공론의 흐름은 초기에 찬성 입장이 다수였던 구도에서 점차 반대 의견이 다수를 점하는 구도로 변화했다. 작년 7월에 제주의 소리와 시민단체연대회의가 공동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대안을 묻는 질문에 '현 공항 확충' 응답이 52.2%, 주민투표의 실시 여부에 대해서는 76.6%가 동의한다는 의견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2021년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의 합의에 따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제2공항 건설에 대해 반대 51.1%, 찬성 43.8%의 의견을 보였다. 단순 여론조사는 도민의 의견을 묻고 도민이 결정하는 여러 방식들 가운데서 한계가 많은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성 다수에서 반대 다수로의 점진적인 변화라는 추세는 발견된다. 특히 2021년에 실시한 여론조사는 제주도정과 제주도의회가 합의를 통해 실시한 것이었음에도 그 결과는 행정절차 속에 반영되지 않았다. 도민들의 의견을 묻지만, 도민의 의견에 따라 결정하지는 않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제2공항과 관련한 자기결정권의 문제는 지나온 제2공항 관련 사건과 과정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

제2공항과 관련한 도민의 자기결정권 실현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 의거해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첫 번째는 '성찰성'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도민의 민의에 역행했던 지난 시기의 행정과 정치적 과정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앞으로의 논의 역시 동일한 과오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직접성'의 원칙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법률적 절차로서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운용의 측면에서 세심하고 민주적이며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도민의 직접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절차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포괄성'의 문제이다. 도민의 자기결정권이 환경영향평가라는 틀로 갇히게 되면 공항의 입지와 관련된 환경의 문제만이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제2공항의 문제에는 공항과 더불어 발전해 왔던 제주의 개발 방식과 과정에 대한 판단이 포함되어 있다. 제주의 미래와 제주도민의 삶의 질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네 번째로 '실질성'을 가져야 한다. 도민의 자기결정권 대상을 객관식이나 OX의 문제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실질적인 대안들을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중요하게는 제주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주도는 지난 20년간 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 속에서 개발사업과 관광사업을 추진해 왔지만, 그것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 여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존재한다. 이런 문제들이 여과 없이 논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과 관련하여 우려와 도전 과제 역시 존재한다. 첫 번째는 정치권이 도민의 자기결정권 실현 자체를 회피하거나, 이것을 정치권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공론화위원회 활동에 대한 비판적 연구들은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이 심의민주주의를 촉진한 측면도 있지만, 정치권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여러 역할들을 회피하고 '시민의 결정'이라는 방패막이 뒤로 숨어버린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두 번째는 제2공항의 문제가 제주도민의 삶과 직결되어 있고 제주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면, 자기결정권의 실현은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많은 주체들, 존재들에 미칠 영향 속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미래세대의 문제나 결정의 과정에 참여하기 힘든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문제, 제주의 자연환경, 동식물과 같은 비인간 존재들의 목소리에 민감한 결정이어야 한다. 이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은 무엇을 결정하는 것이며, 그러한 결정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필자는 제주의 현대사에서 2016년이 지니는 중요한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 해답을 찾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해는 인구 증가, 관광객 증가, 이주민 증가 등 제주의 온갖 양적 지표들이 정점에 달한 해였다. 동시에 바닷속의 하수관에서 엄청난 양의 폐수가 쏟아져 나온 것처럼 양적 성장의 문제점이 터져나온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그해부터 제2공항 문제가 제주사회를 뜨겁게 달구어 왔다. 따라서 제주도민이 결정하는 것이 제2공항에 대한 단순한 찬반일 수 없다. 자기결정권 실현은 관광개발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정신을 모색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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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생태적지혜연구소와 <제주투데이>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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