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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소비침체·환율…내수경기 덮친 '3각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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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소비침체·환율…내수경기 덮친 '3각 파도’

소매판매액지수 등 내수경기 지표 부진 속 비상계엄 직면

국회에서 대통령 탄액소추안이 가결되기 하루 전인 지난 13일 서울 명동에 있는 한 면세점. 통상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비는 연말 성수기임에도 매장 내부는 한산했다. 인기 매장 앞에 종종 보이는 대기 줄을 찾기도 어려웠다.

이 면세점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부터 12일까지 열흘간 구매 고객 수와 매출이 직전 열흘간보다 약 7%, 1% 각각 줄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여파로 내국인 매출도 약 20% 급감했다.

면세점 관계자는 15일 "면세점이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대목인 12월에 구매 고객 수와 매출이 동시에 준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8년 만에 현직 대통령 탄핵 정국이 도래하면서 연말 특수를 기대하던 내수 경기에도 짙은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정상화의 단초는 마련됐지만 경제의 예측 가능성은 여전히 바닥인 상황이다.

소비 심리가 좀체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미래 불확실성이라는 악재가 돌출하면서, 유통업을 포함한 내수기업 전반에 미칠 파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생산자물가가 소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생산자물가지수는 9월(119.16)보다 0.1% 하락한 119.02(2020년 수준 100)로 집계됐다. 농산물(-10.5%)과 축산물(-9.1%) 등을 포함한 농림수산품이 8.7% 낮아졌다. 사진은 11월 2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모습. ⓒ연합뉴스

"코로나19 때보다 더 어렵다"…소매판매지수 줄곧 하락세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로 꼽혀온 내수 경기 침체는 올해 들어 더 두드러진다. 고물가·고금리 속에 실질 가계 소득이 낮아진 탓이다.

지난달 통계청이 공개한 올해 3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100.6(2020년=100)으로 지난해 3분기보다 1.9% 감소했다. 2022년 2분기(-0.2%) 이래 10개 분기째 감소세다. 이는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장 기록이다.

여행과 외식 등이 떠받치는 서비스 소비도 1.0% 증가에 그쳤다. 지난 2021년 1분기(0.7%) 이후 14개 분기 만에 가장 낮다.

업태별로 보면 백화점의 3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121.6으로 2021년 3분기(112.5) 이래 최저치였다.

대형마트(98.0)는 지난해 3분기 이래 4개 분기 연속 100을 밑돌았고 면세점(80.0)도 지난해 1분기 이후 줄곧 70∼80대에 머물렀다. 1년째 코로나19 원년인 2020년 수준도 회복하지 못한 셈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내수기업 620개 사의 사업보고서를 토대로 올해 상반기 내수기업의 매출액이 2020년(-4.2%)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소비 심리가 풀리지 않을까 봐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16년 10월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정치적인 격변 기간 소매판매액지수는 97.0(2016년 4분기)에서 89.7(2017년 1분기)로 뚝 떨어졌다.

또 하나의 내수 경기 지표인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2016년 10월 102.7에서 이듬해 1월 93.3까지 추락했다가 헌재의 파면 선고 뒤인 4월에야 101.8로 회복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로, 100 이상이면 경제를 낙관적으로 본다는 뜻이고 100 이하면 그 반대다.

소상공인들은 이미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을 체감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음식·숙박업, 도소매업, 개인서비스업 등에 종사하는 전국 소상공인 1천630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88.4%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11월 소비자물가 지수가 발표된 3일 서울 서초구의 농협 하나로마트에 각종 채소의 가격이 게시돼 있다. 통계청이 3일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11월 소비자물가 지수는 114.40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1.5%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4월(2.9%)부터 다섯 달 연속 2%대에 머무는 등 안정세를 보였다. 반면 채소류 물가가 10.4% 뛰면서 0.15%P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무, 호박(42.9%), 오이(27.6%)의 가격은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연합뉴스

환율 급등에 위축되는 유통·관광…내년 물가도 '들썩'

비상계엄 사태가 촉발한 환율 불안은 내수 경기를 덮친 또 하나의 위험 요소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한때 1440원 선을 뚫은 원·달러 환율은 이후 1430원 선을 오르내리며 고공행진 중이다. 13일 기준 올해 연평균 환율(하나은행 매매기준율·1362.30원)보다 무려 70원 가까이 오른 것이다.

내년도 환율을 1300원대로 예상한 유통사들로선 급히 사업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해외에서 농수산물과 생필품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대형마트는 수입처 다변화, 결제 화폐 변경 등의 방식으로 비상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환율 상승으로 새해 벽두부터 수입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현재의 환율 상승 여파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3개월 이후부터 반영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품목별로 차이가 있으나 평균 3∼5%의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형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 한 관계자는 "현재 주요 제조사와 내년도 납품가 협상을 진행 중인데 환율이 너무 많이 올라 판매가에도 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식품·외식업계도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강달러까지 겹쳐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을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원재룟값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 내년도 사업 계획을 세울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혼란한 정국 상황 속에 식품·외식 기업들이 은근슬쩍 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농심과 파리바게뜨, BBQ 등이 가격을 올린 전례가 있다.

여행업계도 예상 범위 밖의 강달러 현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 예약 취소가 쇄도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고환율이 지속하면 해외여행 수요가 위축되는 등의 여파가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환율이 계속 오르면 여행을 미루거나 좀 더 저렴한 곳으로 여행지를 바꾸는 등 신규 여행 수요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들이 일찌감치 내년 설 선물세트 예약판매에 돌입한 1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설 선물세트가 진열되어 있다. ⓒ연합뉴스

최악의 시나리오 대비하는 내수기업들…"불확실성 증폭"

유통사를 포함한 내수 기업들은 이미 올해보다 더 나쁜 내년을 대비하고 있다.

앞서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발간한 내년 소매유통 부문 전망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부담 증가와 소비 여력 감소 등으로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다"면서 소매유통업의 실적 저하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삼일회계법인도 내년 경제전망보고서에서 금리인하와 수출의 낙수효과로 일부 내수 회복이 기대되지만, 회복 강도가 기대에 미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특히 소비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감소한 민간 소비가 과거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추세를 큰 폭으로 이탈했다며 잠재 성장력 둔화와 가계부채, 고령화 등으로 가계 소비 여력이 줄어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봤다.

비상계엄 사태, 탄핵 정국에 소비 심리 위축이 지속되면 침체의 늪은 더 깊어질 수 있다.

이번 사태의 파장이 얼마나 갈지는 전문가들도 쉽사리 예상하지 못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에 비춰 최소한 내년 1분기까지는 그 여파가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오지만, 대내외 경제 상황이 당시와 달라 가늠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이번 사태에 각 기업이 어떤 방향으로 대응하느냐도 변수 가운데 하나다.

한국유통학회 회장인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사태가 내수와 관광산업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은 분명하다"면서도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갈지는 전혀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업계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시나리오에 따라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 사태 이후 열릴 기회를 잡는 전략을 짜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긴축·구조조정 등으로 가는 기업도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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