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시리아 권력 공백을 틈타 골란고원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주도적 반군을 지원한 튀르키예(터키)는 미국이 지원하는 시리아 쿠르드 반군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예상되고 서방은 알카에다 하부 조직이 전신인 주요 반군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못한 상태다. 난민 혐오에 시달린 유럽 각국은 곧바로 시리아인 망명 절차를 중단하는 등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붕괴 뒤 시리아 내전에 관여하거나 영향을 받은 각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가장 노골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군은 8일(현지시간) 시리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킨 틈을 타 골란고원 내 헤르몬산의 시리아 군 기지를 점령하고 유엔군이 주둔하는 1974년 설정된 완충 지대까지 진입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뒤 시리아 영토 골란고원 대부분을 점령 중이다.
8일 골란고원을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시리아 정부 붕괴로 골란고원의 현 점령 상태와 완충지대를 규정한 1974년 이스라엘과 시리아간 협약이 "무너졌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움직임을 정당화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시리아군이 기지를 버렸고 "국경 바로 옆에 적대 세력이 자리 잡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군에 이 기지들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며 이를 "임시 방어 진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9일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스라엘군에 전날 진입한 골란고원의 시리아 쪽 완충 지대에 대한 점령을 완료하라고 명령했다고 밝혔고 밤새 이 지역에 대한 추가적 점령 또한 있었다고 했다. 이스라엘군은 임시적 조치라 해도 시리아 상황에 따라 이스라엘군이 완충 지대에 장기간 머물 수 있음을 시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에 더해 9일 연설에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국가의 영원히 분리될 수 없는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2019년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제사회는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네타냐후 총리는 아사드 정권 붕괴가 "하마스, 헤즈볼라, 이란에 우리가 가한 강력한 타격의 직접적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시리아 반군 승리 요인 중 하나로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해 온 친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가자지구 전쟁으로 인한 부재가 꼽힌다.
알아사드 축출을 주도한 반군 세력을 지원한 튀르키예는 이를 지렛대 삼아 시리아 내 쿠르드족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수 있다. 300만 명 가량의 시리아 난민이 사는 튀르키예는 시리아 난민을 가장 많이 받아 들인 나라이기도 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은 8일 튀르키예가 테러 집단으로 규정한 분리 독립 무장 세력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연장선"에 있는 어떤 집단도 시리아의 미래를 위한 회담에 참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 반군을 PKK 연계 테러 조직으로 간주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 상황에서 시리아 쿠르드족이 향후 정부에서 역할을 맡게 될지,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자치는 유지될 수 있을지는 큰 의문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 퇴치에 협력한 시리아 쿠르드 반군을 지원해 와 튀르키예와 복잡한 관계에 놓여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전쟁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 등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8일 튀르키예군은 시리아 북부 만비즈에서 미국이 지원하는 쿠르드 반군 시리아민주군(SDF)을 자국이 지원하는 반군 시리아국가군(SNA)과 함께 공격하기도 했다.
미국은 일단 혼란을 틈탄 이슬람국가 재건 시도를 경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9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워싱턴DC에서 열린 반부패 옹호자 시상식 연설에서 "이슬람국가는 이 시기를 이용해 그들의 역량을 재건하고 안전한 피난처를 만들려 할 것"이라며 "지난 주말 수행한 정밀 공습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테러 단체로 지정한 시리아의 주도적 반군 단체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에 대한 서방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블링컨 장관은 시리아에 포괄적 통치 체제 구축, 국가기관 보존, 인권 존중 등 시리아 재건을 위한 "반군 지도자들의 성명은 환영할 만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헌신의 척도는 말 뿐 아닌 행동에 달렸다"고 했다. HTS는 알카에다의 시리아 분파로 출발했지만 2016년 해당 조직과의 단절을 알렸고 최근 소수민족 및 종파 포용 등을 내세우며 서방에 온건한 인상을 주려 노력해 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국방·안보 편집자 단 사바그는 영국 또한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HTS에 대한 정보국의 재평가가 시급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미국 뉴욕 등에 기반을 둔 비정부기구 극단주의대응프로젝트(CEP)의 선임 고문 에드먼드 피튼브라운이 현재 최고의 전개는 HTS가 다른 세력들과 협력해 안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전망하며 "HTS는 이슬람 통치를 원하지만 소수자 권리에 대한 인식도 분명해 보인다. 그들이 국내외 여론, 여성 인권과 다른 중요한 문제를 무시하는 탈레반과 같은 함정에 빠질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난민 혐오 증대를 마주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곧바로 시리아 난민에 대한 망명 절차를 중단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9일 독일 내무부는 시리아의 정치적 상황이 명확해질 때까지 난민 신청을 처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유럽 내 시리아 난민 대부분인 1백만 명 가량을 받아 들였다. 영국 내무부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시리아 상황을 평가하는 동안 망명 신청에 대한 결정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다고 했다. 노르웨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로이터>는 이러한 급격한 조치가 이민을 제한하려는 유럽 전역 우파 정당의 부활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는 10일 시리아 관련 성명을 내 "상황이 여전히 불확실한 가운데 수백만의 난민들은 귀환이 얼마나 안전할지 신중하게 평가하고 있다. 일부는 열망하는 반면 일부는 주저하고 있다"며 이들이 결정을 내릴 때까지 "인내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난민의 급격한 귀환은 권력 공백 메우기를 시도 중인 시리아 반군에게도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 CNN 방송, <파이낸셜타임스>를 보면 9일 HTS를 이끄는 아부 무함마드 알줄라니는 알아사드 정권의 모하메드 알잘랄리 총리를 만나 권력 이양에 관해 논의했다. HTS는 정부군에 의무 복무로 징집된 군인들에 대한 사면을 발표하는 등 통합도 시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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