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텔레비전을 통해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나란히 서서 국정 공동운영 방침을 밝히는 모습을 지켜봤다. 참으로 기괴하고 해괴망측한 장면이었다. 등장 인물의 면면, 담화 발표 장소, 발언 내용 등 모든 게 한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그 자리는 한동훈 대표의 '셀프 대통령' 공표식 자리였다. 한 총리는 '새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충직한 신하의 모습이었다. 한 대표는 담화 발표 장소를 국민의힘 당사로 정해 한 총리를 불러들였다. 명색이 행정부 권력 서열 2위인 한 총리는 군말 없이 쪼르르 달려갔다. 담화 발표도 당연히 한 대표가 먼저였고 한 대표는 다소곳이 몸을 낮췄다. 한 대표는 자신이 얼마나 오만한지 인식이 없었고, 한 총리는 자신이 얼마나 비굴한지 모르는 듯했다.
한 대표는 '총리와 주 1회 이상 주례회동'을 정례화하겠다고 밝혔다. 역사에 없는 여당 대표와 총리의 주례회동은 그 자체가 '한동훈 대표 위상 높이기'의 상징이다. 한 대표가 대통령을 대신해 총리를 지휘해 국정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만방에 공표한 것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9일로 예정돼 있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의 주례회동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국민' 단어가 26차례 등장했으나 국민은 안중에 없어
한-한 공동 담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국민'이었다. "국민의 뜻을 최우선에 두고"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며"…. 국민이라는 단어를 한 대표는 12차례, 한 총리는 14차례 입에 올렸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뜻은 안중에 없었다. 국민이 한 대표한테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라고 임무를 부여한 적이 없는데도 셀프 대통령을 자임한 것부터가 그렇다. 한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 명령에 따라 임기를 포함해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민은 윤 대통령한테 정국 운영 방안을 당에 일임하라고 명령한 적이 없다. 지금 국민의 뜻, 국민의 명령은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에 있다. 내란 사태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탄핵 찬성이 80% 가까이 이르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한-한 두 사람은 담화를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기자들의 질문은 국민의 궁금증과 의문을 대신해서 물어보는 것이다. 그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는 것이 바로 국민을 섬기는 것이고 국민과 소통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한 대표는 셀프 대통령 공표식 행사부터 불통으로 시작했다.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황급히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한동훈 셀프 대통령 공표식은 '런동훈' '런덕수' 2인 달리기로 막을 내렸다.
그동안 한 대표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불쑥불쑥 '금쪽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했다. 어릴 적부터 평생 남부럽지 않게 살아와 자신만을 최고로 알고,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자기 생각과 행동은 모두 맞다고 확신하며, 모든 사람이 자신을 떠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응석받이 기질의 '금쪽이 정치인' 말이다. 따지고 보면 윤 대통령과 불화의 밑바탕에도 한 대표의 이런 금쪽이 태도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대표는 자신이 법무부 장관을 거쳐 지금의 여당 대표 자리에 오른 것도 윤 대통령 덕분이 아니라 자신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속마음을 공개적으로 입에 올리기도 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태도였기에 체포해 매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최근 한 대표가 보인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내란 사태 당일 저녁의 행동이었다. 한 대표는 "요건도 맞지 않은 위법한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통과 뒤에는 윤 대통령을 향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경거망동도 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칭찬이 아깝지 않은 훌륭한 태도였다. 그런데 한 대표의 '착한 모습'은 딱 그 지점까지였다. 내란 사태의 후속 조처를 놓고 갈팡질팡 갈지자 행보를 보이더니 결국은 국민의 뜻을 외면한 채 탄핵 반대쪽으로 선회했다.
'금쪽이 정치인'의 착각과 오류
내란 사태 이후 한 대표의 행보를 보면 사고의 중심에 '국민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강경 방침을 밝히고 나선 것도 내란 사태의 엄중함 때문보다는 계엄군이 자신까지 체포하려 한 것을 알고 발끈한 성격이 짙다. "감히 나를 체포하려 했다고?" 금쪽이로서는 결코 참을 수 없는 아빠의 도발이었다.
한 대표가 밝힌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 필요성은 '탄핵 찬성'이라는 말로 해석되기 충분했다. 한 대표는 이를 무기로 윤 대통령을 압박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질주했다. 한 대표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윤 대통령과 만나고 돌아온 뒤 "대통령으로부터 내 판단을 뒤집을 만한 말은 못 들었다"고 말한 것도 다시 생각해보면 자신에 대한 권한 위임 등 만족할만한 답변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윤 대통령을 향한 한 대표의 압박 작전은 점차 윤 대통령에게 현실적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 분포상 '친한계'가 열세지만 탄핵안 국회 통과에 필요한 반란표 8표 정도를 동원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다 검찰이 내란 혐의 수사를 위한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그 책임자로 한 대표와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박세현 서울고검장을 앉히면서 윤 대통령은 결국 무릎을 꿇은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 2분도 채 안 되는 성의 없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탄핵 반대 방침을 분명히 했다. 내란 사태에 대한 윤 대통령의 통절한 반성과 국민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 등은 애초부터 한 대표 마음 속 희망 목록에는 없었던 셈이다. 그리고 '우리 당 일임=한동훈 대표 일임'으로 기정사실화하며 셀프 대통령 공표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 대표는 법률가 출신이니 국가 모든 '질서'의 원천이 헌법과 법률에 있음을 모를 리 없다.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자의적 국정 운영은 한 대표가 강조한 "혼란 최소화" 대신 '혼란 극대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질서 있는 대통령 퇴진' 자체가 탄핵 절차라는 헌법상 규정을 지켜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헌법과 법률의 기초적 상식을 외면하고 국정 운영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것부터 코미디다.
한 대표는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현실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한-한 공동 담화 발표 이후 "국정 공동운영 방침이 위헌·불법"이라는 비판이 일제히 쏟아지면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한 대표는 이날 오후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에서 손을 뗀 상태에서 '국군통수권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도 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면직에도 인사권 도장을 찍었다. 아예 국방부는 9일 "국군통수권은 현재 법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고 밝혔다. 헌법에 근거하지 않는 대통령 권한 위임의 허구성이 곧바로 드러난 것이다.
게다가 윤상현 의원 등이 나서서 한 대표의 독주에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고, 친윤계 쪽에서 "한 대표가 권력을 찬탈하려고 한다" "자기가 무슨 대통령이 된 것처럼 얘기한다"는 등의 내부 비판이 국민의힘 내부에서 거세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대표는 담화에서 "질서"와 "혼란 최소화"를 강조했지만 정작 국민의힘 내부의 질서 유지와 혼란 수습 능력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셀프 대통령 공표식'을 하자마자 곧바로 레임덕에 빠져든 모양새다.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 정도를 걷지 않는 정치, 궤변과 꼼수의 정치로 일확천금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생각부터가 착각이었다.
'권력 비위 맞추기 공직자의 전형' 한덕수 총리
국정 공동 운영의 한 축을 자처한 한덕수 총리는 또 어떤가. 그는 삶의 궤적 전체가 '출세를 위해 달려온 영혼 없는 관료'의 표상이다. 경제기획원, 상공부 등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등 역대 대통령 밑에서 승승장구하다 급기야 노무현 정부 시절 마지막 총리 자리까지 올랐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재빠르게 변신해 주미 대사를 맡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까지 지낸데다, 외교 경험도 별로 없는 사람이 그 자리를 꿰찬 것을 놓고 주변의 눈총이 따가웠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 다시 국무총리에 기용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의 총리 배경을 놓고 부인과 김건희씨의 친분설 등 여러 가지 관측이 나돌 정도로 미스터리 인사였지만 어쨌든 그의 뛰어난 생존 능력만큼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총리는 평생 출세 가도를 달려왔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적 신의나 체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비정함이 드리워져 있다. 그는 자신을 총리로 발탁한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장례식장에 끝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주미 대사로 국내에 있지 않았지만 본인이 원하면 얼마든지 잠깐 귀국해 조문할 수 있었으나 외면했다. 이런 안면 몰수, 약삭빠름이 그의 출세 비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재빨리 한동훈 대표에게 바짝 밀착해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성향의 인물은 자신의 소신이나 줏대가 없이 권력의 눈치 보기와 비위 맞추기에 열심인 법이다. 한 총리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권에서 그는 참으로 존재감 없는 총리였다. 윤 대통령의 숱한 폭정 속에서 한 총리가 소신 있게 행동했다는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총리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앞으로 수사에서 밝혀낼 사안이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무소신 비겁한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고함치고 눈을 부라리는 상황에서 감히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지금까지 나타난 여러 정황에 비춰볼 때 소극적으로 '우려' 정도는 표시했을지 몰라도 적극적 만류나 저항은 하지 못하고 동조한 흔적이 역력하다. 결국 그는 내란 방조자로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한덕수 총리는 한동훈 대표와의 공동 담화에서 "굳건한 한미동맹" "대외신뢰도 안정" "금융·외환시장 위험요인 대응" 등의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한미동맹 균열, 대외신뢰도 추락, 경제 불안이 발생한 것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란 사태 때문이며, 이를 진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역시 윤 대통령 탄핵을 통한 불안정성의 조기 종식에 있음은 한 총리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한 총리가 담화에서 말한 "국민의 일상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유지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노력은 윤 대통령이 내란을 시도했을 때 발휘됐어야 옳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해 국민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 것을 통렬히 반성하는 대신 윤 대통령 탄핵이라는 수습책에 걸림돌로 나섰다. 이는 내란 방조죄에 더해 '가중처벌'해야 할 대목이다.
헌법 규정상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하면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1순위다. 그래서 한 총리는 내심 자신이 '대통령 권한대행'의 감투를 쓸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내란죄 방조 혐의자인만큼 권한대행을 맡을 자격 자체가 없다. 국무위원 중 비상계엄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국무위원 중 헌법에 규정된 앞순위의 국무위원이 일단 권한대행을 맡는 게 그나마 차선책이다. 그것도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고 국회에서 새로운 총리를 추천해 임명한 뒤 임시 관리 내각을 새로 구성해야 한다. 윤석열 내각의 국무위원들은 어차피 대부분 교체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국회가 슬기롭게 지혜를 짜내야 할 사안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 총리는 국정 수습의 주체가 아니라 수습의 객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