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성매수 의혹에 휩싸인 맷 게이츠 미국 법무장관 후보자가 21일(이하 현지시간) 사퇴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내각 인선에서 첫 좌절을 맛보게 됐다. 트럼프 당선자는 빈 자리에 곧바로 오랜 충성파 팸 본디 플로리다주 전 법무장관을 지명했다. 게이츠 낙마로 인준을 담당하는 상원 공화당원들이 견제 권한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게이츠 전 하원의원은 21일 "내 인준이 트럼프·밴스 정권 전환에 부당하게 방해가 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며 "불필요하게 장기화되는 워싱턴의 실랑이에 낭비할 시간이 없으므로 나는 법무장관 후보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내각 인선 중 첫 낙마다.
지난 13일 지명된 게이츠는 미성년자 성매수 의혹 관련 파장이 점점 커지는 데 부담을 느끼고 결국 상원 인준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후보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법무장관으로 지명되자 곧바로 하원의원직을 내려 놓은 게이츠는 하원 윤리위원회에서 17살 여성에 대한 성매수 의혹, 불법 약물 사용 등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상원의원들 사이에서 이 보고서 공개 요구가 커지고 있던 상황이다.
상원 사법위원회 민주당 의원들은 미 연방수사국(FBI)에 게이츠에 대해 벌인 미성년자 성매수 관련 수사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수사는 지난해 기소 없이 종결됐고 게이츠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게이츠가 지난해 하원에서 공화당 소수 강경파를 선동해 다수 동료들과 각을 세우고 같은 당 케빈 매카시를 하원의장 자리에서 몰아내며 당내 평판도 바닥을 쳐 상원 공화당 의원들 설득이 더욱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상원 인준은 다수결로 이뤄지는데 100석으로 구성된 상원에서 공화당은 이번 선거에서 53석을 확보해 민주당 전원이 반대하고 공화당에서 4명 이탈 땐 통과가 불가능하다. <AP> 통신에 따르면 공화당 마이크 브런 상원의원은 게이츠에 대한 반대표를 던질 의원이 4~6명은 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게이츠가 상원을 방문한 지 하루 만에 사퇴를 발표한 것을 들며 그가 상원의원들과 만난 뒤 인준에 필요한 표를 충분히 모으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봤다. 신문은 이 사안을 잘 아는 인사를 인용해 게이츠가 21일 오전 트럼프 당선자와 이야기를 나눈 뒤 후보 사퇴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당선자는 게이츠가 사퇴를 표명한 뒤 몇 시간 만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디를 새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했다. 그는 본디의 검사 경력을 강조하며 본디가 "나와 다른 공화당원들을 향해 무기화된 당파적 법무부"를 "범죄와 싸우고 미국을 다시 안전하게 만드는 목적"에 집중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디는 트럼프 1기 인수위원회에서 일한 트럼프 당선자의 오랜 측근으로 2019년 우크라이나에 대선 경쟁자였던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가족 관련 조사 압력을 넣은 혐의로 트럼프에 대한 탄핵이 추진됐을 때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일한 충성파다. 검찰 및 주 법무장관 경력을 갖춰 게이츠에 비해 인준이 수월할 것이라는 평가다.
게이츠 낙마로 트럼프의 선택이 당선 불과 2주 만에 꺾이며 상원의 행정부 견제 기능이 건재함을 보였다는 조심스런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과장해선 안된다"면서도 "이는 공화당 상원의원, 법률 및 윤리 시스템, 언론 등 각 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여전히 트럼프 당선자에게 상당한 견제를 가할 수 있다는 초기 신호"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상원은 대통령에게 휘둘려 관세·우크라이나 유기 등 그들이 싫어하는 일을 강요받는 것을 싫어하는 제도주의자들이 포진해 있는 곳"이라며 "트럼프의 길을 막는 덴 공화당 의원 4명만 필요할 뿐이고 온건파, 트럼프 비판자, 은퇴하는 상원의원이 상당수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AP> 통신도 상원의원들이 현재로선 그들의 헌법적 권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공화당 마이크 라운즈 상원의원이 "대통령은 자신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후보를 지명할 권리가 있지만 상원도 조언과 동의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게이츠의 경우엔 "동의보다 조언이 제공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다만 <뉴욕타임스>의 미셸 코틀 논설위원은 "게이츠 낙마는 상원이 첫 번째 시험을 통과했다는 뜻"이라면서도 "이는 트럼프 당선자가 상원을 굴복시키려는 노력의 시작일 뿐"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게이츠 지명은 트럼프 당선자가 "완전히 부적격"한 후보자를 상원에 들이밀어 공화당 상원의원들에 "얼마나 낮은 수준까지 갈 수 있는지를 증명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처음에 무너지지 않는 사람은 다시, 또다시 거듭 공격"하는 것이 트럼프 당선자의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게이츠 외에도 부적격하거나 성적 비위 의혹을 받는 내각 지명자들이 다수여서 인준 과정이 매끄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게이츠 낙마로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피트 헤그세스에 눈이 쏠린다.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 헤그세스는 국방 관련 경력 및 전문성 부족으로 우려를 샀다. 헤그세스 또한 2017년 발생한 성폭력 혐의로 수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증거 부족으로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다. 헤그세스는 동의에 기반한 성적 접촉이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다만 <AP> 통신을 보면 헤그세스는 지난해 해당 여성에게 돈을 지불했는데 그의 변호사는 이 지급이 근거 없는 소송 위협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교육장관 지명자인 린다 맥마흔 또한 과거 자신이 운영하던 업체에서 일어난 미성년자 성적 학대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프로레슬링 단체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를 남편 빈스와 공동 설립했고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맥마흔이 당시 10대 링보이들이 이 업체 고위 직원들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전직 링보이 5명은 성적 학대 사실을 알면서도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맥마흔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게이츠 낙마로 다른 지명자들의 인준은 더 수월해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21일 <워싱턴포스트>는 게이츠 다음으로 주목 받는 지명자 헤그세스에 대해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훨씬 수용적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신문은 게이츠가 매카시 전 하원의장 탄핵을 주도하며 동료들과 대립했고 미성년자 성매수 의혹에 대해 수사기관을 넘어 하원 조사를 받고 있던 반면 헤그세스는 의원 경력이 없어 상원 공화당원들이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상원 공화당원들은 그가 방송 경험으로 인해 인준 청문회도 수월하게 넘길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워싱턴포스트>의 정치 담당 선임기자 애런 블레이크는 내년 1월 실제 인준 과정 돌입 때 게이츠 낙마는 이미 "먼 기억"이라며 이로 인해 다른 지명자들이 인준 과정에서 보는 이득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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