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여성환경연대가 일회용 생리대 10종에 대한 검출 실험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발표한 뒤 이어진 정부 대처와 그 논란에 대해 기억하는가(☞관련기사 바로가기). 생리통, 생리불순 등 어떤 생리대를 쓰느냐에 따라 생리 건강이 달라진다는 실제 경험은 증거가 없다며 '개인차'로 축소되었고, 일회용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 결과 이후에도 정부는 "생리대 위해성에 대한 기준이 없다"며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 논란을 회피하며 여성들에게 불신을 샀다. 생리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 문제로 대두되면서 '일회용 생리대 건강영향조사'가 실시되었고, 2022년 10월 일회용 생리대 사용자가 다른 생리대(면생리대, 생리컵 등) 사용자보다 생리 관련 증상의 발생빈도가 높다는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야 정부는 일회용 생리대와 부작용 간의 상관성을 인정했다.
한편,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 문제 이외에도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운동화 깔창을 대신 사용한 '깔창 생리대' 사건으로 인해 '생리 빈곤(생리 기간 동안 생리용품을 구입할 형편이 되지 않거나 이용할 수 없는 상태)'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지자체에서 생리대 무상보급이 확대되었지만, 일상에서 생리는 여전히 숨겨야만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생리대가 없어서 있는지 물어볼 때도 조심스럽게. 생리혈 냄새가 날까봐, 생리가 샐까봐. 그리고 생리통은 알아서. 또 법적으로 보장된 생리휴가도 사용하기가 어렵다. 생리하는 동안 쉬는 것이 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된다고 생각하거나, 생리통이 심하다고 하더라도 생리하는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어서 생리통에 대해 말하면 '유별나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생리는 성가시고 부정적인 경험으로 남으며, 호르몬 피임약 복용이나 시술 등을 통해 생리를 멈추고 싶어 한다.
이러한 생리에 대한 인식과 경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번 글에서는 여성과 '생리하는 사람들(people who menstruate; PWM)'이 생리 건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개념화하는지, 생리와 생리 건강의 사회적 의미가 어떻게 구체화 되고 생리 경험을 형성하는지 연구한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체계적 권력, 관습화된 사고, 위치화된 지식: 스페인에서 '생리'와 '생리 건강'의 의미에 대한 질적 탐구).
연구진은 생리에 대한 이미지와 생리 경험이 생리하는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남성중심적인 사회시스템과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적인 사회규범, 그리고 의학적 권위에 의해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생리와 생리 주기는 호르몬 피임약을 통해 "통제할 수 있는 것"이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생리 주기 동안 "여성스럽지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 변화(특히 분노)를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감정을 다스릴 수 없다면, 자기 관리를 잘 하지 못하고, '병적'이고 '비정상적'인 사람이 된다. 또한 생리통의 정도는 의사의 발언에 따라 심각한 것인지, 일반 약국에서 약을 먹으면서 버틸 수 있는 '별거 아닌 것'인지 결정이 되며, 그 사이에 생리의 경험은 "나답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부정적인 느낌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겪는 생리 경험과는 다르게, 교육이나 미디어에서는 첫 생리(초경)는 '여성이 되는 것'이기에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몸'이라며 축복한다. 광고에서는 생리대를 착용하기만 한다면 자유로운 몸이 될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는다. 여기서 생리에서 부가적으로 생기는 문제(통증, 냄새, 위생 등)는 드러나지 않으며, 생리는 계속해서 숨겨야 할 여성의 문제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생리=여성'이라는 생각은 실제 트랜스젠더나 논바이너리 등 성별이 불일치하는 사람의 생리를 보이지 않게 만든다. 또한 '생리는 아이를 낳을 준비를 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생리하는 신체와 정체성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생리하는 사람(PWM)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강화하며 성별이분법적 사고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생리에 대한 인식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역에 거주하는 18~47세의 여성 31명과 생리하는 사람(PWM) 3명을 대상으로 사진을 이용해 참가자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의 인터뷰(Photo-elicitation)를 통해 도출된 분석이다. 인터뷰 참가자들은 생리와 생리 건강을 생각할 때 가부장제와 생·의학 시스템에 강하게 뿌리를 두고 있었는데, 생리 건강에 대해 (1) '규칙적인' 생리 주기와 건강에 이상이 없는 상태로서 생리 관련 질환이 없거나 생리통을 경험하지 않는 것으로 의학적·의료적 관점에서 정의하거나, (2) 생리 상태(예: 혈색, 혈전 유무 등)나 생리 주기를 통해 본인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도구주의적 관점에서 정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건강 관리를 위해서 (3) 어떤 생리용품을 사용할지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 제때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 등 생리 관리를 위한 (사회적) 자원, (4) 조기 생리 교육, 다양한 생리 제품에 대한 지식, 각 여성과 생리하는 사람(PWM)의 필요에 맞는 공평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자신의 생리 경험을 토대로 생리에 대한 금기와 낙인, 생리 지식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생리는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정치적 현상이다. 사회에서 생리를 누구에 의해, 어떤 맥락에서 개념화하는지에 따라 생리에 대한 이미지와 경험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앞서 언급했던 2017년 생리대 검출 실험은 이전에 수많은 여성이 "일회용 생리대를 쓰다가 면 생리대를 쓰니 생리통, 생리불순 등의 문제가 줄어들었다"는 경험 공유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생리하는 자신의 몸이 유독 유별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생리의 경험을 공론장에서 지속적으로 소환함으로써 누가 생리하는지(트랜스젠더는 생리대를 갈기 위해 화장실 접근이 어렵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생리하는지(고시원에 산다면 생리컵, 면생리대를 사용하기가 어렵다) 등 생리로 인한 경험이 다양하고, 내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따라 그 경험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생리의 흔적을 숨기고 부끄러워해야 할 부정적 경험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낙인으로 생각해 왔던 건 아닐까? 생리하는 모든 이들의 건강과 안전,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제도적 개선과 사회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서지정보
Medina-Perucha, L., Jacques-Aviñó, C., Holst, A. S., Valls-Llobet, C., Pinzón-Sanabria, D., García-Egea, A., ... & Berenguera, A. (2024). Systemic Powers, Institutionalized Thinking and Situated Knowledge: A Qualitative Exploration on the Meanings of 'Menstruation'and 'Menstrual Health' in Spain. Sex Roles, 90(3), 376-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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