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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를 위해 리영희에 반(反)해 '리영희'를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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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를 위해 리영희에 반(反)해 '리영희'를 소환한다

[다시! 리영희] 리영희를 기억하는 두 가지 방식

리영희를 기억하는 두 가지 방식

리영희 선생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가 출판 50주년을 맞았다. 50년이 짧게 생각될 만큼 이 책의 출간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한국 사회가 그만큼 빠른 물결을 타고 격동의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에 시간이 짧게 느껴진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이 책이 던진 질문들이 아직도 생명력을 지니고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50년 세월 속에 이 책을 기억하는 사람들, 젊은 시절 이 책을 읽고 사유 전환의 계기를 찾은 사람들에게 50년이 지난 이 책의 감회는 특별할 것이다. 그런 과거의 독자, 그리고 그만큼 많지는 않더라도 지금 이 책을 읽는 새 독자들이 이 책의 의미를 발견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갈릴 것이다. 한편에서 리영희가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붙잡고 이 책에서 확인되는 그의 생각을 지금도 바꿀 이유 없이 그대로 옹호하겠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이 책에서 리영희가 '무엇'을 발언했는가보다 '어떻게' 그 발언을 조직하고 발언 효과를 얻었는지에 더 주목하고 그것을 자기 글쓰기의 좌표로 삼으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리영희가 무엇을 말했는지 기억하려는 사람 중에는 아무래도 그와 자주 만났고 그의 활동을 기억하면서 리영희를 기리려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삶의 다양한 족적을 드러냄으로써 이 책에서 그의 사상이 어떻게 '정점'에 올라섰는지 확인하고 리영희가 남긴 '무엇'을 되뇌고 앞으로 그가 말한 '무엇'을 그대로 지키려 다짐할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리영희를 기억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리영희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리영희의 사유방식과 만난 사람들은 '인간 리영희'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리영희식 글쓰기를 기억하고, 그 글쓰기 방식이 지금도 유효한지, 그가 질문을 풀어가면서 전투적으로 싸운 방식을 자신의 삶으로 가져와 볼 수 있는지 물을 것이다.

50년이 지난 이 책을 기억하는 두 가지 방식이 갈라지는 이유는 리영희 자신에게 두 가지 모습이 상충하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 혁명적 낭만주의자 또는 도덕적 혁명가 리영희가 있다. 그 반대편에 그런 리영희를 비판 대상으로 삼을 다른 리영희, '공학도적 엄밀성을 갖춘 전투적 자유주의자 리영희'가 있다.

▲ 전환시대의 논리 에 실렸고 2020년 리영희선집 에 재수록된 대륙중국에 대한 시각조정 ⓒ리영희 재단

'전투적 자유주의자' 리영희의 글쓰기 실천

<전환시대의 논리>가 지난 시대 많은 독자에게 사유의 충격을 주었다면 핵심 두 가지 주제는 중국 문화대혁명과 베트남 전쟁일 것이다. 리영희의 심도 있는 분석은 다른 누구의 글에서도 볼 수 없는 지적 엄밀성, 광범한 자료의 활용, 문제를 파고드는 집요함, 사유의 전투성을 담고서 우리가 알던 세계가 우리가 알던 것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 살펴보자면 <전환시대의 논리>나 그 이후 저작에서 리영희가 중국 문화대혁명과 베트남전쟁을 다루는 방식 그리고 독자가 그 분석을 수용하는 방식에 리영희의 두 면모, 혁명적 낭만주의자와 전투적 자유주의자 두 면모가 이미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대혁명에 대해서 말하자면, <8억인과의 대화>나 <당산 시민을 위한 애도시>가 그의 이상적·혁명적 낭만주의를 보여준다면, 1966년 문화대혁명이 막 발발하던 시기 그가 <조선일보> 외신면을 기획하면서 보여준 '사회주의적 모순'이라는 관점이 그 낭만주의를 누르는 현실적 분석과 전투적 자유주의의 측면을 보여준다. <전환시대의 논리>에 실린 「대륙 중국에 대한 시각 조정」이 후자의 그런 관점의 연장선에서 중국 현대사의 복잡성을 분석해 보여주는데, 2020년 창비에서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라는 리영희 선집을 편찬할 때 내가 이 글을 추천해 실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리영희의 분석 또한 상당한 '공학도적 엄밀성'을 실은 결과라 할 수 있는데, 중국에 대한 분석에 이어 베트남전쟁 분석에서 리영희가 활용한 가장 중요한 자료는 미국무성 백서였다. 리영희는 후원세력들의 돈으로 현지를 한 바퀴 돌고 와서 "내가 가봐서 아는데" 류로 기사를 풀어내는 기자들을 가장 싫어했고, 반대로 글의 엄밀성과 객관성 그리고 역설적으로 동시에 전투성을 함께 갖추기 위해 그 전쟁을 주도한 미국 자료를 충분히 활용해 미국의 논지를 뒤집는 지적 작업을 수행했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리영희 분석에서 한편에서 미국의 추악한 전쟁을 폭로하는 도덕적 비판의 목소리를 주로 찾아낼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편에서 국제질서의 논리, 강대국 논리의 전환을 일국적 시각을 벗어나 전 지구적 차원에서 분석하려는 냉정한 현실주의적 접근이 탄탄하게 배경에 깔려서 설득력을 높이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다.

리영희 스스로도 두 측면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했고 세계적 혼란의 시기인 1989년 한 대담에서 "때로, 자기가 걸어온 궤적에 대해서 분명히 성격 규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라고 말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 두기도 했다. 그에 대한 판단, 그리고 그 이후 사유 발전의 몫은 독자의 책임으로 남았다. 글을 통해 리영희를 만난 독자의 입장에서 지금 이 책의 의미를 다시 찾고자 한다면, 나는 두 번째 리영희, 냉정한 공학도 차원에서 현실 모순을 분석하고 논쟁의 타겟을 정확히 잡아 일격을 가하기 위해 자신의 주장을 글이라는 건물로 설계에서 건축까지 완성한 그런 리영희를 기억하고 싶다.

나는 그런 리영희를 우리 사회에 드물게 등장한 '전투적 자유주의자'라고 불러도 좋다고 생각한다. 리영희가 '과녁을 겨냥하지 않는 화살은 쏘지 않는다'는 루쉰적 글쓰기를 자신의 전범으로 삼았으니 '전투적'이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자유주의자라니? 리영희가 싸워온 방식, 상대방의 무대에서 상대방의 자료와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해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작업을 진척시킨 힘을 안다면,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이 싸우는 대립이 자유주의의 위선을 드러내고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싸움터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안다면, 리영희에게 '전투적 자유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리영희의 글쓰기 실천에 중요한 존경을 싣는 방식이 아닐까. 리영희 이후 리영희 같은 방식으로, 글만으로 싸우는 제대로 된 이런 전투적 자유주의자 '싸움꾼'을 우리가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 아닐까. 이런 리영희식의 실천을 지금 제대로 따라 하고 따라잡고 리영희만큼의 글쓰기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식인은 과연 많은가.

리영희의 이런 '전투적 자유주의자' 면모를 좀 더 이해하려면 1974년에 출판된 이 책에 앞서 본격적 싸움터가 1965-67년 저널리스트로서 리영희의 삶에서 시작되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리영희는 <조선일보> 서북세력 및 정치부 특파원들과 거리를 두고, 신문사 외부에서 '포스트-4.19'의 열린 공간을 활용한 신 창간 잡지들의 세계와 공조하면서 또 <경향신문>의 서동구와 논조를 맞추면서 자신의 전투를 2년 넘게 지속하였고 그것이 리영희의 실천 방식을 만들어냈다. 이 1960년대 리영희는 '코즈모폴리탄적 제3세계주의'에 기반한 저널리스트 관점을 세워갔고(1960년대 리영희의 활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시대를 유신시대의 전사가 아니라 '포스트-4.19 시대'로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출입처를 기웃거리고 남의 말을 받아적는 대부분의 권력 지향적 '경험주의자' 기자들에 맞서 그는 아주 다른 저널리즘 글쓰기 실천을 보여주었다.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해보자.

첫째, 근거를 가지고 근거에 의거해서만 발언하라. 여기서 리영희는 스피노자의 계승자이다. "무지는 논거가 될 수 없다"(Ignorantia non est argumentum!).

둘째, 자신의 짧은 경험을 내세우지 말고 가능한 모든 자료를 교차 활용해 논지를 검증하고 반론에 대해 스스로를 개방해 두어라. 여기서 리영희는 훌륭한 반실증주의 사회과학자이다.("추상에서 구체로").

셋째, 서술은 목표를 정확히 세운 정교한 전략을 따라야 하는데, 여기서 리영희는 루쉰의 충실한 제자이다.("과녁 없는 화살을 쏘지 말라")

넷째, 이 모든 원칙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되돌려 세워야 한다. 그래서 리영희는 종료되지 않는 전투적 자유주의 실천 속에 존재한다.("반역은 정당하다[造反有理]")

▲ 리영희가 공부한 중국관련 책. 말년에 대부분의 책을 정리하면서 백영서교수를 거쳐 창비에 보내졌다. ⓒ리영희 재단

중국혁명과 베트남전쟁에 대한 리영희의 공학도적 분석

지금 <전환시대의 논리>의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를 계승하자는 의미가 무엇인지 좀 더 생각해보자. 50여 년 전에 국제정세를 분석한 이 책이 보여준 사실 분석을 지금 글자 그대로 따른다는 것은 난센스이고 사실 리영희의 '희화화'가 아닐 수 없다. 냉정한 현실 분석을 원칙으로 삼은 리영희를 따른다면, 50년이 지난 지금 중국 문화대혁명에서 드러난 사회주의적 모순이 그 이후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국제 질서는 1960년대와 달리 지금은 어떤 격동 속에 놓였는지를 리영희식으로 묻고 분석하고 주장을 전개해야 한다. 그게 제대로 리영희를 존중하는 우리의 책임이다.

나는 지난해 <연결된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반도 핵위기까지, 얄타체제의 해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생각의힘, 2023)라는 책을 내고 국제정세의 엄혹함에 대한 내 나름의 의견을 제시해보았는데, 생각해보면 이 작업이 내 나름의 리영희식 글쓰기 실천이었던 셈이다. 이 책에서 나는 첫째, 중국혁명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해 지금 시진핑 체제의 중국의 위험성까지 중국혁명 현대사를 다시 생각해볼 것, 둘째, 2차대전 이후의 세계질서(얄타체제)를 다시 생각해 볼 것, 셋째, 북한의 핵위협이 왜 고조되는지 익숙한 사고를 벗어나 대응할 것, 넷째, 20세기 사회주의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왜 그것이 자유주의를 넘어서지 못했는지 다시 성찰해 볼 것, 이 네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그 작업의 출발점에서 중국 혁명, 특히 중국 문화대혁명에 대해 리영희가 지적한 '사회주의 모순'이라는 질문이 중요했다. 문화대혁명의 모순이 돌파구를 잃고 왜 극단적 폭력과 반대편의 군 진압이 충돌하면서 강제적 종료를 맞았고, 문화대혁명 시기 결연한 '혈통론자 홍위병' 세대인 시진핑 지도부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우며 왜 지금 연결된 위기의 중심에 놓이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리영희로부터 시작된 중국 혁명의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던 셈이고 십여 년 전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 중앙문혁소조장 천보다와 조반의 시대>(그린비, 2012)에서 그 일단락을 지었는데, 그와 동시에 리영희가 <조선일보> 외신부장 시절 중국 문화대혁명에 대한 분석을 어떻게 자신의 방식으로 다루었는지 분석한 리영희 '오마주' 논문 한 편을 작업하고 있었으니, 문화혁명에 관한 이 책 작업에서도 리영희와의 대화가 중요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리영희재단 뉴스레터에 썼던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리영희 선생과 2008년 한 번 짧게 만났을 때 그에 앞서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으로 작업한 문화대혁명 연구 성과를 전해드린 후 그의 사후에 쓴 이 책과 논문 작업이 리영희에 대한 '애도' 작업이었을까.

작년에 낸 책 <연결된 위기>는 리영희의 또 다른 관심인 베트남전쟁에 대한 분석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 출발의 계기 중 하나로 17도선 남북분단을 합의한 1954년 제네바 회담을 들 수 있는데, 이 회담에서 또 하나 중요하지만, 합의에 불발한 안건이 바로 한국전쟁 종전 이후 평화협정의 문제임을 안다면, 이미 '연결된 위기'의 질문은 출발부터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과 한국전쟁은 서로 맞물린 측면이 있는 동아시아 냉전의 특성을 보여주는데('냉전'이 아닌 '열전'이라는 점에서), 이 두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차대전 종전 질서로서 얄타 구상, 그리고 그것이 냉전으로 전환된 구체적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른바 '탈냉전 시대' 이후 세계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묻는 것은 이런 역사 이해로부터 불가피한 질문일 것이다.

최근 냉전사의 새로운 이해에 기반해서 지난 역사를 다시 서술해보려 할 때, 2차대전 종료를 목표로 소련과 미국의 '합의'를 전제로 등장한 얄타 구상이 전후 세계 질서의 근간을 어떻게 구성했으며 그 유예된 장소에서 벌어진 대립들(베트남전쟁과 한국전쟁이 그 대표적 예이다) 이후에도 변형된 형태로 이 구상을 유지한 얄타체제 질서가 어떻게 강대국 전쟁을 억제해왔는지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볼 수 있고, 그 새로운 이해방식이 향후 토론을 위한 주제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얄타체제의 질서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어떻게 무너지고 있고, 그것이 왜 우크라이나전쟁-대만 위기-한반도 핵위기라는 방식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 이는 리영희식의 냉정한 현실분석과 다른 것이 아니다.

나처럼 오랜 시절 중국연구를 해온 사람 중 많은 이들이 리영희의 작업에서 이런저런 영향을 받았는데, 이 연구자들 사이에도 두 가지 리영희는 여전히 문제적이다. 중국에 대한 어떤 비판도 잘못된 것이고, 중국에 대한 비판은 곧 미국에 대한 지지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강고한 입장, 중국에 대한 비판을 '짱개주의'로 비난하는 목소리는 주변적이지 않다. 시진핑 체제의 등장을 토론한 학술 모임의 뒷자리에서 제법 영향력 있는 한 연구자는 시진핑을 비판하는 동료에게 "너희가 뭔데 사회주의를 해보겠다는 중국을 비난하느냐, 자기가 사회주의라고 하면 사회주의이지 너희 맘대로 잣대를 세워 비판하면 안 된다"고 열을 올린 적이 있다.

올해 베트남 국가주석 또 럼은 모든 경쟁자를 사실상 제거하고 서기장 지위를 차지했는데, 공안 담당자가 잠재적 경합세력을 제거하고 '도이모이' 이래 오랜 개혁개방의 흐름을 종료시킨 방식은 시진핑 체제의 특징을 넘어서 러시아의 푸틴 방식으로 나아가는 현실이기도 하다. 지난 세기 사회주의적 실천들의 이런 퇴행적 귀결은 자유주의의 퇴행적 귀결과도 뗄 수 없는 관계로 진행되는데, 그 전체적 변화를 분석하기 위해 냉정한 리영희식 질문이 필요한 때이다.

▲ 2008년 리영희를 만날때 백승욱 선생은 세 권의 책을 드린다. <중국 노동자의 기억의 정치>, <문화대혁명: 중국 현대사의 트라우마>, <문화대혁명 또다른 기억>. 그 중 세 번째 책에 리영희가 백승욱선생에게 받았음을 메모해 놓았다. 백승욱 선생은 이 책들을 함께 또는 각기 작업한 중국연구자들에게서 리영희의 한양대 중소문제연구소에서 발원한 중국연구자의 흐름을 읽는다. 또한 이로부터 맥을 이은 중국지역학이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미국에서 배출한 박사에 의존하지 않는 '학문의 식민지적 재생산구조에서 탈피"한 분야라고 말한다. ⓒ리영희 재단

리영희를 위해, 리영희에 반해 소환하는 리영희

나는 <연결된 위기> 책을 쓰면서 한국 '자칭 진보'의 배경에 놓인 무력한 사고방식을 그에 앞선 책에 이어 "분석의 부재와 의지의 과잉"이라고 부르고 이들이 지닌 국제정세에 관한 판단을 "앞선 세대의 게으른 습관적 반미주의"라 불렀다. 그것은 중국혁명의 역사나 북한의 역사를 포함해 국제질서의 지난 백여 년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성찰해보자는 요구이기도 했다.

그 중심에는 반미주의가 곧 사회주의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반미주의는 한국전쟁에 중국 인민지원군이 지원 참여하면서 형성된 '항미원조(抗美援朝)' 이데올로기의 핵심으로 등장했는데, 지난해 출판된 백지운의 <항미원조: 중국인들의 한국전쟁>(창비, 2023)을 보면, 중국혁명과 국제정세에 대한 리영희의 질문이 어떻게 오늘날의 함의로 되살아 날 수 있는지 검토해 볼 수 있다.

중국 사회주의의 모순은 문화대혁명으로 나아가 성찰되어야 하고 나도 십여 년 전 그에 관한 분석의 책을 냈다고 했는데, 최근 국내에 번역된 줄리아 로벨의 <마오주의: 전세계를 휩쓴 역사>(유월서가, 2024)는 이 아포리아를 전 지구에 걸친 마오주의의 부정적 효과에 대한 분석으로 확장시켰다. 이 곤혹스러울 수도 있는 책에 대해 나는 "이 책 분석 내용 모두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억압 구조와 싸워 넘어서려던 중국 혁명의 시도와 그에 대한 해석이 '인민전쟁'의 사유를 거치며 어떻게 '적들에 대한 폭력적 섬멸'로 단순화하여 퇴락하게 되는지 묻는 무거운 질문을 피해 가기 어렵다"라는 추천사를 썼다. 스스로의 작업에 대해 "반역은 정당하다"고 주장했을 리영희라면 비슷한 추천사를 남기지 않았을까.

중국혁명의 모순과 국제정세의 복잡성을 결합해 중국 안으로 가보면, 이번에는 중국혁명이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공산당의 영웅적 투쟁과 대중사업의 귀결'이 아니라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고 빈틈을 파고든 '중간지대의 혁명'의 귀결임을 강조한 양퀘이쑹의 주장(<중간지대의 혁명>, 山西人民出版社, 2010)이나, 1950년 2월까지도 한국전쟁의 방향은 미정이었는데 왜 급속하게 전쟁의 방향전환이 있었는지, 그리고 '항미원조' 드라이브를 강화하며 국제정세에서 위상을 높이려 한 중국의 시도가 왜 한국전쟁의 더 빠른 정리를 막았는지(<조선전쟁의 재탐구>, 선인, 2014)를 분석하고 또 얄타체제의 수립에서 UN과 더불어 중요한 주축인 브레튼우즈 체제가 어떻게 소련의 협력을 통해 수립되었는지를 보여준(<경제소용돌이: 냉전발생을 관찰하는 신시각>. 開明書店, 2022) 션즈화의 글쓰기 또한 다른 나라에서 전개된 리영희식의 글쓰기라고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현안인 한반도 핵위기로 돌아와 보면, 한반도 핵위기의 심각한 고조와 전환, 미국을 향한 전략핵 중심에서 남한을 향한 전술핵 중심으로 북한의 방향전환이 최근이 아니라 2019년에, 남한 정부의 착각을 배경으로 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냉철하게 지적하는 정욱식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미국에 미련을 버린 북한과 공포의 균형에 대하여>(서해문집, 2023) 역시 또 다른 리영희식 글쓰기일 것이다. 트럼프 등장의 미국 정치가 그저 무지한 깡패의 등장이 아니라 미국 정치사상과 내부 모순의 오랜 전개의 귀결임을 보여주는 차태서의 <30년의 위기: 탈단극 시대 미국과 세계질서>(성균관대, 2024)도 공학도적 리영희 식 글쓰기의 목록에 넣을만하다.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오래 힘들게 싸워온 와다 하루키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역사공간, 2016)와 그에 대해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시차를 둔 대응의 목소리를 낸 김은실 등의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휴머니스트, 2024)은 '리영희에 반한 리영희식 전투적 자유주의 실천'의 또 다른 사례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권력 가까이 올라가 본 자들이 다시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기 위한 디딤돌로 리영희를 활용하는 것에 멀찍이 거리를 두고서, 늘 '낮은 데로 임하고' 리영희의 현재성을 살리기 위해 줄곧 리영희의 '어떻게'에 주목하여 글쓰기 실천을 하고 있는 고병권을 빼놓을 수 없겠다. 리영희를 기념한 책 두 권 <리영희 프리즘>(사계절, 2010)과 <리영희를 함께 읽다>(창비, 2017)에서 독보적으로 리영희의 '어떻게'를 강조한 것이 고병권이니까.

▲ 덤으로 받은 선물. 이번글 청탁과정에서 백승욱 선생으로부터 귀한 사진을 받았다. 김진균 박현채 리영희가 한 컷에 들어있다. 사진 오른쪽 부터 김진균, 까치 출판사 박종만 사장, 박현채, 리영희. ⓒ백승욱

또 다른 전투적 리영희들을 기다리며

리영희를 생각하며 리영희 방식을 흉내 낸 글들을 써보면서 나는 우리 사회 지식인의 뿌리 깊은 문제를 "분석의 부재와 의지의 과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전환시대의 논리> 50주년을 맞아 어떤 이들이 리영희를 자신들의 "분석의 부재와 의지의 과잉"에 알리바이를 제공할 상징적 '은사'로 추앙하는 시늉을 하며 리영희를 역사 속에 묻으려 하고 지적으로 무기력한 자신과 더불어 리영희마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시도가 늘어나지 않을지 걱정이다. 우리 사회에 리영희 같은 '전투적 자유주의자'의 실천, '리영희에 반해, 리영희를 위해'를 실천하며 그야말로 글만 가지고 너른 평원의 대군에 맞서 이성적 전투를 벌일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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