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보건복지부가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9월 국가인권위원회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정책 부재는 여성인권 침해라면서 복지부와 식약처에 임신중지 지원이 가능한 의료기관 정보를 제공할 것과 임신중지 의약품을 필수약품으로 지정할 것을 정책 권고한 바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2022년에 양질의 임신중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고요. 복지부는 위기임산부를 비롯해 모든 사람이 안전한 임신중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 구축 계획을 세울 때가 됐다고 봅니다."
당론보다 소신을 지키며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데 앞장서 온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또다시 용기를 냈다. 헌법재판소의 형법상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5년이 지났음에도 정책 보완에 침묵하던 정부에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시급히 마련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김 의원은 지난달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5년이 지났지만, 보건복지부는 임신 중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며 국제기준에 따라 시민들에게 안전한 임신중지에 관한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라고 주문했다.
이를 두고 김 의원이 여당 인사로서는 이례적으로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자기낙태죄 및 의사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뒤에도 관련법 개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21대 국회 당시 국민의힘 조해진·서정숙 의원이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법안을 각각 발의했으나, 10주 이내의 제한된 상황에서만 허용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임신중지를 막는 법안이었다.
반면 김 의원은 국가가 모든 여성에게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그는 "건강한 의료체계 안에서의 임신중지는 살인이 아니"라며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여성들에게 임신을 제때 중지할 수 있는 정보, 임신중지를 돕는 의료지원을 받을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의원은 같은 당 선배인 김미애 의원이 입법을 주도한 '위기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제도(보호출산제)'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냈다. 보호출산제가 장애 영아를 유기하는 창구로 작동할 수 있으며, "저출생·고령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본인의 이름을 등록하지 않아도 무조건 아이만 낳으면 된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통상 당의 기조에 이견을 내면 '내부총질'이라는 평을 받기 때문에 대다수 의원들은 소수의견을 피하려 한다. 특히 김 의원은 과거 간호법 제정 당시 반대 당론과 달리 찬성표를 던졌으며,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를 공격할 때도 "정치인으로서 책을 통감한다"며 시위현장에서 무릎을 꿇는 등 전부터 소신에 따라 당에 반하는 의견을 내왔다. 이로 인해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거센 비난을 받거나 의도적으로 당대표와 척을 졌다는 여론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비난을 받더라도 사회적 약자를 대표해 국회의원이 된 자신의 임무를 다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나는 소수자 인권을 위해 이 자리에 앉게 됐다. 사회에서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사람, 노력해도 주류에 들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의제를 이야기하라고 만든 자리가 비례대표다. 그런데도 소수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다음은 김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프레시안 : 국정감사에서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을 위한 의료기관 정보 제공 및 약물 도입을 주장했다.
김예지 :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도 미프진을 판매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처방 없이 살 수 없는 약물, 국내에서 허가받지 않은 약품들이 수없이 팔리고 있다.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이 의사에게 미프진을 처방받으면 주의사항과 부작용, 복용 주기 등을 안내받을 텐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국민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보건복지부가 이러한 문제를 막아야 한다.
원하지 않는 임신에 대해서는 중지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한데 누구도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지 5년이 지났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지난 2022년 건강한 방법으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을 냈다. 이후 법안 발의가 있었다지만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고, 22대 국회에서는 임신중지와 관련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목소리를 내게 됐다.
프레시안 : 최근 경찰이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지를 택한 여성과 수술 집도의 등에 대해 살인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김예지 : 임신중지 관련 정보를 몰라 미루고 미루다 36주까지 간 극단적 사례다. '낙태는 살인'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좋은 예는 아니라고 본다. 또한 건강한 의료체계 안에서의 임신중지는 살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대부분 입양 또는 유기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입양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여성들에게 임신을 제때 중지할 수 있는 정보, 임신중지를 돕는 의료지원을 받을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 그래야 소중한 생명들이 잘 태어나고 자라날 수 있다.
프레시안 :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대표발의한 보호출산제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김예지 :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했다. 보호출산제가 통과된 21대 국회 때부터 해당 법안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다만 정책이 시행되고 나서는 취지에 맞게 정책이 잘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미비한 점을 개선하자는 차원에서 개선책을 제안했다.
프레시안 : 현 보호출산제에 장애여성 위기임산부를 위한 지원책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김예지 : 심리적·경제적 어려움으로 본인의 출산이나 임신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임산부를 위기임산부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장애여성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보호출산제 매뉴얼을 보니 장애인 위기임산부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소액의 출산 비용밖에 없더라. 임신과 출산 자체를 불안해하는데 출산 후 지원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보호출산제를 통해 상담을 요청한 장애인 위기임산부에게 장애친화산부인과, 장애인 건강주치의 등의 지원책을 안내하고 실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이에 대해 준비가 없었는데, 국정감사에서는 개선을 약속했다.
프레시안 : 보호출산제가 장애 아동의 유기 위험을 높인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예지 : 현행법상 산모는 출산 1개월까지 보호출산을 신청할 수 있는데, 출산 전후 영아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양육이 어렵겠다는 사회적 시선이 작동해 아이를 유기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우리 사회가 저출생·고령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본인의 이름을 등록하지 않아도 무조건 아이만 낳으면 된다고 해서는 안 된다. 아이에게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이것은 엄마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프레시안 : 교회 등에 설치된 베이비박스들을 즉시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예지 : 우리 사회가 불법 시설물을 너무 묵인해주고 있다. 베이비박스라도 없었다면 많은 아이들이 죽었을 거라는 프로파간다와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추적이 불가능한 미신고 시설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선의나 종교적 신념은 정책에서 배제해야 한다. 그들의 선의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기부금을 어떻게 운용할지 전혀 알 수 없다. 생명의샘 교회처럼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입소 아동들을 장기간 학대한 사례도 있다. 보호출산제 도입으로 합법적인 익명 출산이 가능해진 지금 베이비박스까지 방치하면 유기를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때문에 정부는 앞장서서 미신고시설들을 철거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프레시안 : 국회 입성 이후 꾸준히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내 주류 의견이나 사회적 압박으로 부담이 크지는 않나.
김예지 : 소수자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도로 당론도 어겨봤고, 당대표랑 각을 세우는 모습으로 비친 적도 있다. 그로 인해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욕을 먹거나 인터넷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게시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비난이 두려워서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 있을 가치가 없다. 나는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는다. 공공선은 어려움 없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소수자 인권을 위해 이 자리에 앉게 됐다. 사회에서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사람, 노력해도 주류에 들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의제를 이야기하라고 만든 자리가 비례대표다. 그런데도 소수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직무유기다. 나는 내가 여기 보내진 의도와 목적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명이 돼도 좋다. 당은 시민들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존재한다. 당을 위한 나라는 없다.
프레시안 : 22대 국회가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김예지 :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래서 다시 이 자리에 앉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다수는 약자들의 현실에 대해 모르고 있다. 본인이 겪어보거나 가까운 사람이 겪지 않으면 모르는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있었는데, 4년 내내 장애인이 문화생활에서 겪는 어려움만 이야기했다. 장애인도 체육활동을 하고 관광하고 문화재를 향유하는데 아무도 이와 관련한 문제를 몰랐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 윽박을 지르기보다 정보를 알려주고 개선책을 조언하는 게 의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지적해도 우선과제로 뽑히기는 어려운 의제들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비롯해 소수자를 대표해서 온 의원들이 국회에 있고, 길지 않은 임기 동안 최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우리들의 의무다.
프레시안 : 현재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법안이 있다면?
김예지 : 장애와 관련한 모든 의제는 내 관심사이자 내 삶이다. 장애인의 근로 환경, 이동 편의 개선 등을 준비 중이며 특히 헬렌 켈러와 같이 보고 듣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시청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에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연구와 지원 법안이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나 심사도 받지 못한 채 폐기됐다. 책을 읽고 정보를 얻는 것은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이기에 당사자 및 입법추진단과 논의해 올해 안에 감각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에 관련한 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아울러 임신중지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고 보호출산제 시행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모자보건법 개정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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