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굉장히 신실한 기독교 신자인 도덕교사가 있었다.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전도하며 왜 교회에 다녀야 하는지 설교했다. 종교인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종교 세계에서 다른 이를 아끼는 그들만의 방식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사는 '동성애를 하지 말아야' 한다며 동성애가 에이즈를 전파한다거나, 성경에서 금지하고 있다는 등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을 넘나들며 혐오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성소수자 학생들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불쾌함에 학생들은 그 교사를 피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그 교사의 발언이 문제 됐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 유천초 교사들을 만났다. 유천초 교사들은 부당 징계를 당해 강원도교육청 앞에서 투쟁했다. 징계에는 다양한 핑계들이 넘쳐났다. 특히 학교에 갈등을 유발했다며, 한 건의 민원이 들어온 것을 문제 삼았다.
민원을 넣은 사람은 부당징계자들이 '세월호 교육, 게이교육, 채식급식'을 했던 것을 문제 삼았다. 어이가 없었다. 성소수자 혐오표현을 한 교사는 아무런 조치도 받지 않았는데 성소수자 인권교육을 한 교사들은 그게 징계의 사유가 됐다. 이미 학교는 차별적인 공간이었다.
혐오정치에 이용된 성소수자 학생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서울시교육청의 '모두를 위한 화장실 디자인 해보기' 교육을 문제 삼았다. 조정훈 의원은 모두의 화장실을 표지를 가리키며 "남성, 여성, 장애인, 그 외에 동성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모두의 화장실을 '동성애자를 위한 화장실'이라며 전혀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감사를 이어갔고, 급기야 조정훈 의원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한국은 동성애가 인정되지 않는 나라"라며 혐오표현을 일삼았다.
조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 "화장실 남녀 구분 없애자는 교육정책 이젠 STOP!!"이라며 현수막도 달았다. 이러한 행보는 10월 16일 치러진 서울특별시교육감 선거를 의식한 것으로 읽힌다. 학생인권조례에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입장을 가진 '진보' 교육감에게 표가 가지 않도록 혐오정치를 이용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정근식 당선인은 후보 시절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경청할 만하다. 오해가 될 부분은 고칠 필요가 있다. '성적 지향 존중'을 삭제해야 한다는 보수 의견도 들어볼 의사가 있다. 결국은 시간이 해결한다. 10년 후, 20년 후 우리 국민의 눈높이가 달라지면 인권 눈높이도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근식 당선인은 '민주 진보교육감 단일후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선거에 임했다. 하지만 진보교육감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성소수자 학생의 존재를 지우고, 성소수자 차별 정도는 봐줄 수 있다고 얘기한 것이다. 이미 보장되고 있는 성소수자 인권조차 수정할 수 있다는 입장은 '나중에'도 아닌 퇴행이다.
한국 사회의 교육정책과 제도를 담당하는 국민의힘 의원과 윤석열 정부의 극우 인사는 성소수자 학생을 '공격 카드'로 이용했고, 진보를 표방하는 교육감 후보는 성소수자 학생을 '버리는 카드'로 여겼다.
학생인권에 나중은 없다
정근식 당선인이 말한 것처럼 "10년 후, 20년 후 우리 국민의 눈높이"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이라는 지위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변한다. 지금 학교를 다니는 성소수자 학생은 10년, 20년 뒤에 이미 졸업할 것이다.
차별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다. <서울신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청소년 트랜스젠더 66명 중 21.2%가 학업중단을 경험했고, 그중 71.4%가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연관이 있다고 답했다. 인권을 유보한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20년 뒤 지금의 학생들은 학교에 없다. 졸업할 때까지 차별을 견디며 살아가거나, 견디기 힘들면 학교를 떠날 것이다.
성소수자들에게 유난히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법이 중요한 이유는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으로 차별받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법과 조례에서 차별하지 말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도 설치해야 하고, 포괄적 성교육도 진행해야 한다. 정책이 움직여야 하는데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은 근거가 되어줄 수 있다. 정책까지 이어지지 못해도 성소수자 학생이 혐오와 차별로 학교를 다니기 힘들 때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앞에 놓인 투쟁이라는 선택지
선거철만 되면 성소수자들은 '죽음의 밸런스 게임'을 시작한다. 어느 쪽을 고르든 퇴행이 예고돼 있는데도 후보들은 '대의'를 위해 자신을 뽑으라 협박한다. 이번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눈물을 머금고 투표장에 나섰을 것이고, 소신을 가지고 투표를 거부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선거는 끝났으나 우리에게는 투쟁이라는 선택지가 더 남았다.
다가오는 11월 3일은 '학생의 날'이고, 11월 16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다. 각각 11월 2일 '가자! 학생인권 있는 학교로'라는 슬로건으로 홍대입구역 7번 출구 앞에서, 11월 16일 'TRANS PRIDE'라는 슬로건으로 이태원 광장에서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올해 10월은 성소수자 혐오정치의 달이었다. 국정감사에서, 교육부 장관이, 하다못해 '진보' 교육감조차 성소수자를 지웠다. 11월에는 광장에 나가자. 군중 속에서 청소년 성소수자의 존재를 말하고, 모두를 위한 학교를 요구하자. 대놓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과 '대의'를 위해 그럼에도 참으라던 이들에게 투쟁으로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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