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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대통령의 세계관, 본인을 '전시 지도자'로 상상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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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대통령의 세계관, 본인을 '전시 지도자'로 상상하고 있나?

[박세열 칼럼] 처칠을 존경한다면서 처칠과 정 반대로 행동하는 대통령

대통령의 '세계관'이 궁금해진다. 대통령의 연설을 보면 가끔 자신을 '전시 지도자'의 위치에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혹은 그는 스스로를 '혁명 지도자'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존경하는 인물은 윈스턴 처칠이다. 지난 2022년 1월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SBS 방송에 출연해 처칠을 존경한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세계가 어려웠을 때, 그야말로 그 당시에 나치와 타협하자는 정치권의 요구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국민들을 설득하고, 자기의 확고한 어떤 비전을 가지고 국민들과 함께 어려움을 돌파해나가서, 자유민주라고 하는 무너질 뻔한 질서를 다시 회복시킨 그런 측면에서, 저는 영국을 떠나서 정말 세계적으로 많은 분들이 좀 사표로서 배워야 하는 분이 아닌가."

대통령은 역사를 일종의 '영웅신화'로 이해하고 있다. 정치인이 어떤 인물을 '롤모델'로 선택할 때는 크게 두 가지 면을 고려한다. 첫째, 역경 극복 스토리인데, 쉽게 말해 '성공 스토리'다. 이런 건 주로 영웅신화의 구조를 충실히 따른다. 어느날 소명을 받고 모험에 뛰어들어 시련을 겪고 고뇌와 성찰을 거쳐 영웅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삼수 끝에 샌드허스트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 후 1차대전의 시련을 거치고, 정치인으로 변신해 '나치와 타협하자'는 유혹을 뿌리치고 국가 최고지도자가 돼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윤 대통령은 처칠이라는 정치인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처칠이란 영웅적 인물은 윤 대통령의 개인적 동인으로 작동한다.

둘째,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정치인의 업적과 비전에 주목하는 경우다. 이를테면 처칠의 성과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각적으로 다뤄진다. 처칠은 보편적 정치인 유형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유례 없는 '특수 상황(2차 세계대전)'에서 부각된 전시 지도자였다. 그가 유능한 전시 지도자였을지언정, 유능한 정치가였는지는 평가가 엇갈린다. 실제 처칠은 종전 직후 보수당을 이끌고 총선에 뛰어들었으나 패배했다. 그는 식민지 탄압에 앞장선 보수적 제국주의자이기도 했다. 영국이 세계 곳곳에서 저지른 식민 범죄는 히틀러를 패퇴시킨 업적으로 가려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정치인은 '위인전'에 감명받듯 영웅적 인물의 생을 자신의 '사표'로 삼기도 하지만, 어떤 정치인들은 '독일 통일의 초석을 둔 빌리 브란트' 식으로 '업적'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윤 대통령은 처칠의 '영웅적 스토리'에 선택적으로 심취한 것 같다. 요컨대 대통령의 세계관 속에서 '나치(북한)와 타협하자'는 세력은 문재인 정권과 그의 잔당들이고, 자신은 위대한 전시 지도자로서 내부의 '반국가 세력'을 색출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영웅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것은 아닐까. '갈라치기', '정무적 실책'이란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년째 '반국가 세력 색출'을 일관되게 외치는 그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선 보통의 이론으로 불가능할 것 같아서다.

윤 대통령은 '전시 지도자'의 언어를 자주 구사한다. 지난해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서 "반국가세력들은 허위 조작과 선전 선동으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고, 지난 3월 26일 국무회의에선 "반국가세력들이 국가안보를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며 '검은 선동 세력',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의 존재를 '폭로(?)했고, 지난 19일 을지국무회의에서는 "전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며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해 폭력과 여론 몰이, 선전, 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 분열을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혼란과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고 말한 부분에서는 모종의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이런 언어들은 일반적 정치 지도자의 언어가 아니다. '전시 지도자'의 언어다.

2차 세계대전 다시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도 윤 대통령이 간혹 인용하는 인물이다. 대통령은 루즈벨트의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루즈벨트도 '전시 지도자'다. 그는 1941년 미국의 고립주의 탈피를 선언하며 전쟁에 개입하기로 결심한 후 연설을 통해 "미국은 (적국의) 비밀 공작원과 그들에게 속은 사람들에 의해 점령될 것이다. 그들의 다수가 이미 미국이나 라틴아메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디에서 많이 들어 본 얘기다.

루즈벨트가 말했던 것처럼 '한국에서 활동하는 적국의 비밀 공작원이 한국을 점령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대통령은 지금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 순 없지만, 어찌됐든 '한미일 군사 동맹'으로 나아가는 길을 무모할 정도로 착실하게 닦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 운운하며 일본이 원하는 것들을 퍼주는 이유도 그런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판단은 '평시'에선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말로 '전쟁이 임박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

아니면 혹시 대통령의 세계관 속에서 지금은 '전시 상황'이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은 자신을 처칠이나 루스벨트와 동일시하면서 지금 '전시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숭고한 짐'을 어깨에 지고 있다고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채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혐의를 경찰에 이첩한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후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며 격노(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이 주장한 대통령의 이 발언을 대통령은 한 번도 부인한 적이 없다)한 것도, 이첩 보류 명령을 어긴 박정훈 전 수사단장에게 전시에서나 볼 법한 항명수괴죄(전시에선 사형이다)를 적용한 것도 '전시 상황'이라는 상상계 속에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사실 유사 이래 정치인들의 수사들을 죽 보면 대한민국은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정체도 불분명한 '내부의 적'들을 향해 내놓는 발언들은 도가 지나친 것 같다. 아무리 한반도가 '휴전 상태'고 머리 위에 북한을 얹고 살고 있지만, 지금을 '전쟁 상태'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있다면 대체로 아스팔트 태극기 시위대 정도이거나 극단적 종교 세력들 뿐이다. 무엇보다 처칠은 실제 전쟁이 난 후 집권한 인물이고, 윤 대통령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정권을 헌납하려 했다는 일부 극우 유튜버들의 주장이 대통령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다면 모를까.

국가 지도자의 현실 판단과 유권자의 현실 판단이 어긋나면 국정은 산으로 가고 정치는 신뢰를 잃는다. 지금 대통령의 상상계 속 대한민국은 전쟁국가다. 그리고 그는 '전시 지도자'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의 연설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대통령은 소영웅주의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쟁 대비 훈련 상황임을 감안해도, 대통령의 '항전' 발언은 '전쟁 상황'에 지나치게 몰입해 있는 것처럼 느껴져 걱정스럽다. 대통령은 세상을 향해 '지금 대한민국은 전시다', 아니 '전시여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은 끊임없이 '우리 안의 반국가 세력'을 색출하자 말하고 있지만, 그가 존경한다는 처칠의 연설문을 보면 절망적 상황에서도 항상 '단결'과 '희망'의 언어를 놓지 않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처칠은 전시 내각 총리를 받아들이면서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피, 수고, 눈물, 그리고 땀 뿐입니다(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라고 역설했고, 현실의 비참함보다 승리 후 거머쥘 미래의 비전을 국민들에게 말했다. 처칠이 영국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결정적 비결이다.

윤 대통령은 당선된 후 2022년 5월 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지금 대한민국에는, 각자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역설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어떤가. 처칠은 자신을 '전쟁광'으로 비난해 왔던 정치적 앙숙 애틀리 노동당 당수를 부총리로 임명하며 '전시 내각'을 꾸렸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과 닮은 구석이 보이는가? 특히 형체도 불분명한 '내부의 적' 운운하는 것은, 처칠이 강조한 '단결'과 '협치'에 반하는 언어다. 처칠은 전쟁을 앞두고 야당과 손 잡았다. 지금이 전쟁 위기라면서, 북한과 싸우겠다면서, 가장 중요한 국정 파트너인 야당을 '반국가 세력'의 숙주 쯤으로 바라보는 방식은 처칠의 방식이 아니다. 대통령은 처칠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처칠 놀이'에 심취해 있다.

'전쟁 대비'는 보수 진보 막론하지 않고 정권이 모두 해 왔던 일이다. 대통령의 역할은 전쟁 준비를 하며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지, 국민에게 '항전 의지'를 가지라며 호전성을 부추기는 게 아니다. 처칠은 호전적인 연설을 했지만, 당시는 실제 전쟁을 수행하는 시기였다. 오히려 처칠은 전쟁 끝에 존재할 희망과 평화에 대해 말했다. 지금 '가장 어두운 시기(Darkest Hour)'를 벗어나게 되면 '가장 찬란했던 시기(finest hour)'로 기억할 것이라며 호소하는 처칠의 연설은 유명하다.

윤 대통령은 새삼스레 위기를 강조하는데 보통의 시민들은 지금 대통령이 가장 위기라고 본다. 대통령이 돈키호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0월 1일 추석 연휴 중 경기도 연천군 육군 제25사단 상승전망대를 찾아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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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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