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소속 14개 대학의 청소·경비·시설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매해 학교 측과 임금 등 노동조건을 두고 집단교섭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연세대, 인덕대, 성공회대 등에서 노동자들과 함께하려는 학생들이 '2024 노학연대 기획단'을 꾸렸습니다. 오늘날의 '노학연대'는 어떤 모습일지 학생들의 글을 통해 전합니다. 편집자
신촌역에서 걸어서 10분 연세대학교 정문을 지나 또 한참을 걷다보면 학교 본관인 언더우드관이 보인다. 담쟁이 넝쿨로 뒤 덮인 조화로운 건물들 가운데 위치한 파란 천막에는 "진짜 사장 연세대학교가 해결해야 합니다"라고 쓰여있다. 올해 초부터 한 끼 식대 2만원 인상을 요구하던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7개월 째 고집을 피우고 있는 총장을 만나러 왔다. 그런데 학교는 본관의 문을 걸어 잠그며, 면담을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그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현재 연세대는 식대 인상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작년 말 정년퇴직한 청소노동자 3명의 자리를 충원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학교가 아낀 돈은 700만 원, 청소노동자 전체 식대를 2만 원 인상해도 남는 돈이다.
본관에 '천막이' 생겼다
천막농성 11일 차 대학생 18명이 천막을 찾았다. 바로 2024 연세대 청소노동자 투쟁 간담회 '본관에 천막이 생겼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청소노동자들이 왜 연세대 본관 앞 천막 농성에 돌입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투쟁할 계획인지 학생들과 이야기 나눴다. 대학 사회에서 투쟁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지 않다 보니 학생들에게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대학 사회는 이미 탈정치화되었으며, 노동자와 학생들 사이의 교류가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와 학생이 만나지 않으면 투쟁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강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간담회를 개최한 것이다.
청소노동자들에게 직접 듣게 된 집단교섭 투쟁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교섭 자리에서 용역업체는 학교와 논의가 돼야 식대를 인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학교에 식대인상을 문의했지만, 학교에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노동자 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했다. 노동조합은 학교 측에 생존권이 걸린 절박한 질문을 던졌지만, 학교는 변함 없는 입장을 고수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 설명을 통해 청소노동자들이 왜 천막 농성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자세한 경위를 알게 되었다. 최근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강풍을 피해 천막을 잠시 철거했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은 물러난 것이 아니다. 그동안 꾸준히 천막 해체를 요청해왔던 용역업체에 7월 말까지 식대 인상과 인원 미충원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재설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총장님 면담합시다
대학들은 "다른 대학이 식대를 인상하면 인상하겠다"며 청소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할 책임을 서로 미루고 있다. 7개월 째 이어지는 집단교섭 투쟁에 참다 못한 다양한 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이 총장을 만나기 위한 면담투쟁을 전개했다. 이화여자대학교도 청소노동자들이 총장 면담을 요청하자 연세대처럼 학교 본관을 폐쇄했다. 총장을 기다리며 교내 상점 광고 배너 옆에서 피켓을 들었다. 배너에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바닐라/초코 2800원"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한 끼 식대로 2700원을 받는 청소노동자들은 더운 여름 아이스크림조차 사 먹을 수 없다. 터무니없이 적은 식대에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고려대학교에서도 청소노동자들이 총장에게 면담을 요청하자 본관을 폐쇄했다. 예외는 없었다. 오히려 고려대는 "청소노동자들 때문에 감금당했다"고 112 신고하기도 했다. 경찰도 어이가 없다는 듯 툴툴거리며 돌아갔다는 촌극이 전해지기도 한다. 고려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정치외교학과 학생회, 사회학과·악칠반 학생회 등 7개 학생자치·동아리 단위 단체가 식대인상 투쟁을 지지하며 릴레이 대자보를 게시했다. 고려대 생활도서관 운영위원들은 대자보를 통해 "우리의 청결하고 안전한 학습 환경이 이들에게 빚지고 있듯이, 시설직 노동자들에게 학생들은 자부심이자 희망의 바탕이다. 우리는 이미 서로의 삶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고, 바로 그 이유로 서로의 삶에 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고려대 학생들은 청소경비시설주차노동자의 문제와 학생들의 문제는 연관되어있다고 선언했지만 고려대는 면담을 거부하고 경찰을 부르며 학생들의 요구조차 묵살한 것이다.
빗자루는 알고 있다…총장은 모른다
"우리가 이렇게 일하는 건, 빗자루만 알지", 12년 전 연세대 청소노동자의 말이 2000일 간의 투쟁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청소노동자들은 출근 시간보다 일찍 나와 일하고 학교 구석 휴게실에서 쉰다. 눈에 띄지 않는 청소노동자들의 그림자 같은 노동을 빗자루는 알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연세대 청소노동자 투쟁을 다룬 책 <빗자루는 알고 있다>가 나온지 12년이 지났다. 그동안 빗자루만 알던 일을 이제는 학생들이 알게 됐고, 사람들이 알게 됐다. 정작 총장은 모른다. 모른척 한다. 자신이 밟고 있는 학교 건물의 바닥이 비워진 쓰레기통이 원래부터 그랬던게 아니라 누군가의 노고였다는 것을 이제는 알 때가 됐다. 연세대, 이화여자대, 고려대와 각 대학들은 지금 당장 청소노동자의 면담 요구에 성실히 임하고, 식대 2만 원 인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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