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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연세대에 '쓰레기'들을 찾는 대자보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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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연세대에 '쓰레기'들을 찾는 대자보가 붙었다

[기고]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현장기록 프로젝트 ② 우리는 노학연대로 세상을 바꾸지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다수인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는 투쟁으로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투쟁하지 않으면 고용불안, 저임금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위치 때문에 그렇습니다. 서울지부에는 여성노동자가 대다수인 사업장이 많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 속에는 성별과 연령의 문제도 개입되어 있습니다.

서울지부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을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연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 각자의 고민과 실천 내용, 또 노동자 투쟁의 경험이 삶 속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까지 조금 더 깊은 이야기들을 듣고, 나누려 합니다. 공공운수노조의 기고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편집자

인간의 생애는 '쓰레기'다. 빈 손으로 와서 '쓰레기'를 남기고 가는 생이니 그렇다. 육신은 사라지니 인간은 결국 남겨놓은 것들로 평가되기 마련인데 한 달 동안 한 사람이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이 27kg에 달한다고 하니 인간은 가히 '쓰레기'로 평가될 수 있는 존재 아니겠는가.

9월의 어느 날, 연세대에 '쓰레기'들을 찾는 대자보가 붙었다. 맥락은 다르나, 고민의 출발점은 같다. '버리는 존재'로서의 인류가 가져야 할 책임에 대해 함께 고민할 사람들을 찾기 위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대량의 쓰레기 배출'이라는 결과에 도달하게 되지만, 이 '쓰레기'를 다루는(치우는) 문제에 대한 공론장은 쉬이 열리지 않아 왔다. 더군다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발생시키는(그것도 어머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나의 문제,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풀어가야 할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도 여전히 부족하다. 관심의 부족은 쉬이 책임 전가로 이어진다.

청소노동자들이 '유령'이라고 불린 것처럼, 쓰레기를 치우는 행위도, 쓰레기를 치우는 과정 역시도 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잘 모른다. 이러한 우리의 '무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해, 학내외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면서 '쓰레기'와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고민들을 외화시키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연세대학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연세대 공대위')다. '쓰레기'를 둘러싼 의제들 가운데 유독 '버리는 자'들의 책임의식에 대한 부분이 삭제되어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다양한 실천들을 이어나가고 있다.

노동의 체험은 '가시 범위'를 넓히는 일

지난 8월에는 '청활(청소노동자 체험)'에 함께할 사람들을 모았다. 이는 2010년 '청소노동자에게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대학생 캠페인단'이 진행했던 '겨울방학 유령체험활동-청소노동자로 하루나기' 실천을 이은 것이다. '청활'을 진행한 8월 1일은 대청소 날이었다. 나도 연세대 공대위와 '청활'에 함께했다. 대청소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말도 마"라며 손사래를 치는 청소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대청소 기간 물품 창고에 그득히 쌓여있던 세제 통들을 볼 때마다 대청소의 노동강도를 가늠해보곤 했지만 실제로 체험해보니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지난 8월 1일, 연세대 중앙도서관에서 '청활'을 진행 중인 연세대 공대위 성원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오전 내내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중앙도서관 6층을 닦고 또 닦았다. 도서관이 그렇게도 광활한 공간이었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체감하지 못했다. 걸레를 쥐고 마주하자, 공간 감각 자체가 달라졌다. 막막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미 전날 야간조 노동자들이 1차로 쓸고 닦아놓은 바닥에 독한 세젯물을 칠하고, 물로 씻어내고, 씻어낸 물을 쓰레받기로 대야에 퍼 담았다. 그 위에 다시 깨끗한 물을 뿌리고, 다시 대야에 퍼담고를 반복한 뒤 마른 마포 걸레로 바닥을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닦아내야 했다. 입에서 "헉! 헉!"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나왔다. 우리는 '하루 체험'하는 것이지만, 청소노동자들은 이 과정을 한 달 내내 반복해야 한다. "대청소는 일 년에 두 번 하는 거니까 그나마 해내는" 거라는 말이, 통증으로 감각되었다.

몸이 직접 겪는 노동의 감각은 머리로 그린 것과는 전혀 다르다. 세시 반에 일어나 첫 차를 타고 출근해 "믹스 커피 하나 얼른 생수통에 부어 흔들어 먹고"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건물로 들어오는 8시까지 쉼 없이 일하는, 원래 출근 시간인 8시보다 2시간 이상 일찍 출근하고서도 "왜 빨리 나오지 않느냐"는 핀잔을 듣는 노동의 내용을 속속들이 겪어보면, 스스로 "악착같이 산다"고 표현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말을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 일 아무나 못 해먹어. 우리 같이 억척스럽게 사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이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현장 체험에서는 노동의 내용뿐만 아니라 차별의 양상도 알게 된다. 기실 차별은 '안다'기 보다는 '감각'하는 것이다. 관리자의 눈빛이나 표정에서, 말투나 억양에서 차별이라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어깨가 움츠러들고 주눅이 든다.

"관리자가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대하는지 듣게 되잖아요. 실제로 소장이 우리에게는 음료도 나눠주고 살갑게 대했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욕을 하거나 반말을 하는 것을 봤거든요."

또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의 힘이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게 되기도 한다. 청활 체험단이 관리자의 폭력을 목격하고 어쩔 줄 몰라할 때 몇몇 노동자들이 부당함에 반박하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에 그랬다. '현장'에 두 발을 딛고 있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인간은 경험한 만큼 보인다. 인간의 '가시 범위'란 그렇게 만들어진다.

▲지난 8월 1일, 연세대 중앙도서관에서 '청활'을 진행 중인 연세대 공대위 성원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이해'와 '소통'의 공간 만들어내기

윤승현 연세대 공대위 대표는 학내 구성원인 학생과 청소노동자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로 '청활'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했다.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청소 노동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사회에 만연한데, 직접 체험함으로써 청소 노동의 위상과 성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청소 노동은 공공성의 성격을 띄는 노동이자, 말 그대로 필수적인 노동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연세대 공대위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이해'와 '소통'의 공간이다. '이해'의 깊이 만큼 서로의 '가시 범위' 역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서로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된다. 엄선진 연세대 공대위 활동가는 청소 노동이 숙련도가 필요한 노동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했다.

"청소노동자들께서 계속 자세 등을 교정해주셨거든요. 저는 마포질 하나만 보이는 것이지만, 청소노동자들은 오후에 있을 왁스 작업 등 이후 다양한 작업과정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거니까요. 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지속적인 소통도 동시에 진행하는 등 청소 노동이 굉장히 복잡한 과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청소'라고 뭉뚱그려진 과정 속에도 '마포질 할 때 손잡이 잡는 법'이라거나 '마포 자루를 미는 요령' 등 정확한 순서와 체계, 다양한 노하우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것이다. 실제로 왜 장화를 신고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 장화에 철수세미를 둘러야 하는지, 왜 밀대질을 할 때 밀지 말고 당겨야 하는지, 숙련된 노동자들에게서 배우는 노하우들이 없이는 몇 시간 동안의 청소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지난 8월 1일, 연세대 중앙도서관 대청소의 흔적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노동에 대한 선입견은 노동의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강새봄 연세대 공대위 활동가는 쉽게 평가절하되는 노동 중 여성노동자들의 필수노동, 돌봄노동의 사회적 의미가 재설정 되어야 한다는 고민들을 이야기했다.

"우리나라 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절반이 넘는데, 그 중에서도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이 대다수잖아요. 그들의 노동이 이 사회를 유지하는 필수적인 노동인 만큼, 이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성노동자 직종으로 분류되는 청소 노동이 '비숙련 단순노동'으로 분류되면서 노동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저임금으로 이어지는, 이 불합리한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역시 남겨진 과제다. 연세대 공대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러한 사회적 통념 역시도 서로의 경험과 이해를 통해 균열을 낼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었다.

공동체적 관점으로 노동을 바라보기

'이해한다'는 것은 공간에 대한 책임감과도 연결된다. 김태현 연세대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청활'을 통해 '내가 사용하는 공간'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쓰고 있는 공간이지만, 이 공간에 대한 이해가 없이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내가 자고 일어나면 '저절로' 내 방이 청소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거잖아요."

세상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지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특정 노동의 가치를 삭제하는 이 사회의 기이한 구조 때문이다. 김태현 집행위원장은 돈의 논리로만 환원할 수 없는, 같은 공간을 점유하는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공동 책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8월 4일, '연세대 쓰레기 배출 및 수거 문제 해결을 위한 교내 소통 간담회'에서 연세대 청소노동자들과 연세대 '쓰레기(에 관심있는 이)'들이 모여 간담회를 진행했다.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돈을 지불하고 청소서비스를 받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한 관계지만,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돈의 논리로만 환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돈을 지불했다고 해서 이 공간에 마음대로 쓰레기를 버려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연세대 공대위는 이러한 고민들을 이어 현재는 '연세대 쓰레기 탐험대'를 구성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청소노동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 공간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을 확장하여 '쓰레기'를 버리는 자로서의 책임과 윤리를 고민하는 프로젝트이다. 강새봄 활동가의 말처럼 '치우는' 노동자와 연대하는 것을 넘어서서 함께 공간을,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주체로서 함께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반목하고 흩어지길 바라고, 또 조장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혐오와 차별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우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럴수록 우리는 더 의식적으로 이 구조에 의해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뭉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 그리고 무책임에 대한 해답은 어쩌면 '쓰레기'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연세대에는 지금 '쓰레기(에 관심있는 자)'들이 모이고 있다. 인간의 존재론적인, 혹은 책임론적인 고민들을 수면 위로 올리고자 애쓰고 있는 '쓰레기(에 관심있는 자)'들. 그렇게 '쓰레기'들의 탐험은 지금 시작되었다.

▲지난 8월 4일, '연세대 쓰레기 배출 및 수거 문제 해결을 위한 교내 소통 간담회'에서 연세대 청소노동자들과 연세대 '쓰레기(에 관심있는 이)'들이 모여 간담회를 진행했다.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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