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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양갱' 하나로 허물어진 청소노동자와 대학생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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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밤양갱' 하나로 허물어진 청소노동자와 대학생의 경계

[2024 노학연대] ① 대학 청소노동자 중간고사 간식 선전전 후기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소속 14개 대학의 청소·경비·시설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매해 학교 측과 임금 등 노동조건을 두고 집단교섭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연세대, 인덕대, 성공회대 등에서 노동자들과 함께하려는 학생들이 '2024 노학연대 기획단'을 꾸렸습니다. 오늘날의 '노학연대'는 어떤 모습일지 학생들의 글을 통해 전합니다. 편집자

떠나는 길에 총장님이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 많다고

아냐 내가 바라던 건 하나 뿐이야

달디 달고 달디 달은 밤양갱 1,000원

지난 4월 말 중간고사로 모두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캠퍼스 한 구석에서는 학생들의 시험을 응원하며 간식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간식을 나누어준 이들은 학생회나 학생복지재단도 아니었고 동아리도 아니었다. 이들은 언제나 학생보다 먼저 출근해서, 학교를 청소하고, 지키는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여러 대학의 청소·경비·시설 노동자들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는 2024년 집단교섭 투쟁을 이어오며 중간고사 기간에 간식 선전전을 진행했다. 노동자들이 직접 간식을 나눠주며 자신들의 요구를 알려보자는 취지의 간식 선전전은 시험기간마다 학생회, 동아리 등에서 추진하는 간식사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노동자들이 나눠준 간식은 '밤양갱'. 올해 초 발표된 히트곡으로 화제의 간식이 되었던 탓이다. 그러나 밤양갱이 선정된 이유가 단지 히트곡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식대를 현행 월 12만 원에서 월 14만 원으로 인상하라는 것이다. 식대 인상분 2만 원을 청소노동자들의 한 끼 식대로 나누면 대략 1000원 정도로 시중에서 팔리는 밤양갱 한 개 가격이랑 비슷하다. 이 밤양갱에는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하루에 밤양갱 한 두 개 더 사먹을 수 있는 식대를 바란다"는 요구, 그 요구조차 무시와 탄압으로 일관하는 대학 당국을 향한 규탄의 의미가 담겨있다.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시험 응원 문구와 식대 인상 쟁취 요구가 적힌 스티커를 손수 부치며 정성스럽게 학생들의 간식을 준비했다.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간식선전전은 필자가 속한 인덕대를 비롯해 다양한 대학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인덕대는 집단교섭 투쟁에 대한 반응이 저조한 편이라 느꼈는데, 이번 간식 선전전을 계기로 집단교섭 투쟁을 응원하는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에 수백 개의 '좋아요'가 찍히고, '식대인상 꼭 쟁취하라'는 취지의 댓글이 달렸다. 간식 선전전에서 밤양갱을 받아간 학생들이 도리어 투쟁을 지지한다는 응원 메시지가 붙은 박카스를 선물하는 경우도 있었다. 간식선전전에 참여한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학생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우리 학교에서도 이런 반응이 있다니!'라며 감탄과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필자도 이번 간식선전전을 계기로 학우들의 지지를 확인하며 앞으로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기회를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2024 노학연대 기획단'은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기말고사 기간에도 간식 선전전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간식 선전전이 위기라고 여겨졌던 노학연대가 다시금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 청소노동자들과 '2024 노학연대 기획단'이 시험기간 학생들에게 나눠준 간식. ⓒ2024 노학연대 기획단

밥과 노동에서 찾는 사람의 연대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간식만 나눈 것이 아니라 학생을 향한 정과 연대의 마음을 나눴다. 마주쳐도 인사 한 번 잘 하지 못했던 학생들에게 밤양갱을 건네며 웃음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누구든 밥 한 끼는 제대로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적어도 밤양갱 하나는 사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대학이 '간접고용'을 연필 삼아 구성원 사이에 그어둔 금을 지운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식구(食口)는 "한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자 뜻도 각각 '먹다', '입'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는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을 공동체로 여긴다. 밥으로 우리는 연결되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필자도 밥으로, 노동으로 연결되었다는 감각을 느낀 적이 있었다. 과거 교대 근무하는 반도체 공장, 금형공장, 공사판까지 여러 곳에서 일했다. 고된 업무, 열악한 환경으로 지쳐갔지만,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사람들이었다. 살아 숨 쉬고 그저 한 사람으로서 일하는 사람들 말이다.

직장의 동료 노동자들은 성별, 피부색 상관없이 모두 같은 '노동'을 하고 있었다. 똑같은 복장을 입고, 똑같은 안전장비를 차고, 팀장님이 안전에 유의하라 외치면 라인으로 들어가고, 건설현장으로 들어가고, 자신의 일터로 들어간다.

좋든 싫든 일을 하고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서로를 만난다. 처음에는 어색해도 서로의 얼굴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사소한 말을 나누기 시작한다. 사장님과는 대화할 일이 없다. 그런데 같은 직장 동료와는 매일 만나고 매일 곁에서 노동하기에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말을 이어간다. '일 어떠냐', '힘들지 않냐', '이거 어떻게 하면 더 나으려나', '끝나고 밥이나 같이 먹자' 같은 정겨운 말들을 이어간다.

동료 노동자들과 친근해진 계기는 같은 노동을 한다는 동질감, 얼굴을 마주하는 익숙함이었다. 매일 만나고, 마주 보고 얘기하고, 같이 일하고, 같은 어려움을 공유하며 같은 시간을 쓰는 것 말이다. 나는 노동에서 사람들의 연대를 찾았다.

동료 노동자들과 쉬는 시간이나 잠시 기계를 멈출 때 간식을 하나둘씩 까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근황을 공유하곤 했다. '이리 와서 간식 좀 하나 먹어보라'며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일을 왜 시작했는지부터 앞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가끔은 자식 자랑이나 고민까지, 모두 자신의 개인적인 얘기를 스스럼없이 터놨다.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여기에 들어왔다는 30대 룸메이트가 있었다. 술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공부 열심히 해서 자격증을 딴 후 다른 공장으로 이직을 할 것이라 밝혔다. 언젠가 사업을 하겠다며 열심히 일한 동료는 같은 시골 고향 출신이었다. 자식이 곧 학교에 입학하는데 학원비를 어떻게 대야 할지 고민하다가 연장근무를 하던 여성노동자도 있었다. '임금도 짠데 밥도 짜다'며 뭐라 하시던 이야기는 아직도 생각이 난다.

이주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쉬는 시간마다 간식을 먹으며 '와서 같이 먹자'고 웃음 짓던 이주노동자들은 여긴 잘못하면 손가락이 날아가고 다칠 수 있는 현장이라며 조심하라고 걱정해 주었다. 그러면서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난다며 열심히 일해 집에 돈을 보내주면서 언젠가 가족에게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고도 말했다. 다른 이주노동자는 자기가 쓰는 장갑을 건네며 '여기서 일하는 같은 사람인데 서로 다치지 맙시다'라며 함께 일을 하던 기억도 난다.

밥을 먹고 간식을 먹는, 사소해 보이는 이 일은 단순히 단 간식을 찾고, 배고파서 밥을 먹는 생리적인 욕구를 넘어선 의미가 있다. 식사와 간식을 나누는 시간은 힘든 일터에서 함께 일하며 성별, 나이, 출신, 피부색을 모두 걷어치우고 같은 노동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삶의 현장이었다. 누군 아픈 이야기를, 누군 자식 걱정을, 누군 미래 설계를, 누군 고향의 가족 걱정을 나누며 어느새 모두 친근해졌다. 우리 중 누군가에게 일이 생긴다면 진심으로 걱정해 준다. 누가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같이 노동하고 같이 밥을 먹으며 친해졌기에 말 섞어본 적도 없는 사장보다 내 옆 동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사장님은 밥 한 끼 줄 돈도 아까워 했겠지만, 동료들에겐 콩 한 쪽을 나눠먹어도 아깝지 않았다. 사람 냄새를 풍기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들은 내 돈으로 간식을 사도 아깝지 않았다.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신 옆의 다른 나라, 다른 성별, 다른 나이의 노동자를 친구로 여길 때, 연대의 꽃은 거기서부터 피어나고 있었다. 노동이 노동자를 친근하게 만들었다면 밥은 노동자들을 연대하게 만들었다.

▲ '2024 노학연대 기획단'에서 활동하는 학생이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학교 측에 임금 및 식대 인상을 요구하는 선전전을 하고 있다. ⓒ2024 노학연대 기획단

노동자 학생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마음까지 달게 하는 밤양갱

노학연대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들린 지 이미 오래됐다. 학생과 노동자가 연대하지 않고 각자의 삶만을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법으로 사람을 대하고 누군가는 익명 속에서 정의의 투사가 된다. 연대를 복원하자는 사람들도 이런저런 거창한 말들을 이어간다.

연대는 무정하고 사람 냄새 하나 나지 않는 것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밥 한 끼 같이 먹고 간식을 나눠 먹으며 일터에서 얼굴을 마주 보면서 시작된다. 노학연대도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를 다니며 혀끝만큼이나 마음까지 달게 만드는 밤양갱을 건네며 '시험 잘 보세요'라는 말에 '감사합니다'로 답해줄 때, 학교 총장보다 내 앞의 노동자가 더 친근함을 느꼈을 때, 그렇게 노학연대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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