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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공백 메우는 PA간호사, 또 다른 값싼 인력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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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공의 공백 메우는 PA간호사, 또 다른 값싼 인력 만드나"

['의대 증원' 그 후 上]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 인터뷰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며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떠난 전공의들의 빈 자리는 급한 대로 간호사들과 전문의들이 메우고 있다. 의료계 총파업이라는 큰 산은 넘었지만, 전공의 부재로 인한 비상 진료 체제가 5개월 넘게 지속되면서 간호사들과 전문의들의 업무 과부하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그런데 전공의들이 돌아온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 공백은 일어나선 안 될 일임이 분명하지만, 이미 벌어진 의료 공백 사태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게 했다. 한국의 의료체계가 전공의들의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기대 굴러왔었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의 의료 공백 상황을 수습하겠다고 기존의 의료체계로 회귀하는 것은 이제 '해결책'이라 말할 수 없게 됐다. 새로운 의료체계에 대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정 갈등 이후의 의료체계는 어떻게 재편돼야 하는가. 이에 대한 고민을 풀어가기 위해 보건의료 전문가들을 만났다. 첫 번째 전문가는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출신으로 오랫동안 의료개혁 과제를 연구해온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 2월 의정 갈등이 촉발된 이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국회를 통한 사태 해결을 촉구해오고 있다.

김 의원은 전공의는 원래 제도 취지대로 수련과 교육을 받는 데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이로 인한 업무 공백은 진료지원(PA) 간호사, 전문 간호사 제도화와 전문의 충원으로 메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제대로 된 교육도, 대우도 못 받는 상황에서 지금의 진료지원 간호사들에게 기존 전공의 업무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진료지원 간호사 역할이 '저임금의 고강도 노동'으로 굳어지면, 병원이 진료지원 간호사를 쓰고 버리는 인력으로 인식해 간호사들의 이직이 잦아져 그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전공의 복귀와 관련해선 적어도 내년 초까지는 대대적 움직임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정부가 전공의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선 애초 의대 증원의 명분으로 삼았던 필수의료, 지역의료 강화에 대한 구상과 의지를 명확하게 담은 계획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의원은 이번 의정 갈등 상황에서 드러난 "무정부적"인 의사 공급체계를 개혁하지 않으면 의대증원 이후로도 돈이 되는 진료로 의사들이 쏠리는 현상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현재의 필수의료정책패키지보다 더 입체적이고 정교한 대책을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지난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김 의원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 ⓒ프레시안(최용락)

"정부가 정말 옳은 일을 정말 잘못된 방식으로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의정 갈등이 거의 반년이 다 됐다. 장기화되는 상황을 예상했나.

김윤 : 예전에 방송에 출연해 '(의정 갈등이) 오래 간다. 총선 전에 안 끝난다. 아마 가을이나 돼야 끝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쁜 예언이 적중했다. 그런데 더 오래 갈 것 같다. 9월 전공의 모집에 지원자가 많을 것 같지 않다. 전공의가 돌아와야 대학병원 기능이 정상화되고, 치료가 지연되고 있는 중증질환자나 희귀질환자의 피해가 줄어들 텐데 그렇게 되기 어려운 상황 같다.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다는 희망의 끈을 놓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 추세로 가면 내년 초나 돼야 정리될 것 같다.

프레시안 : 과거에도 의정 갈등은 있었다. 이번 의정 갈등이 과거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김윤 : 갈등이 발생하기까지의 과정은 비슷했지만, 이후 상황이 다르다. 전에는 의사들이 비토(veto)권을 무기로 원하는 것을 받고, 정부가 양보하는 방식으로 결말이 났다. 이번에는 그 비토권이 전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국민들이 응급환자 뺑뺑이나 지역에 의사가 없어 병원이 문을 닫는 일을 전보다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객관적인 상황도 그렇다. 둘째는 전에 비해 국민들의 의료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갔다. 국민들이 의사들이 하는 말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

그래서 전공의 파업으로 국민들이 장기간 불편을 겪고 있는데도 의대 증원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유지되고 있다. 국민들의 지지가 유지되니까 정부도 버틸 수 있게 됐다. 역으로 정부가 물러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물러서면 의대 증원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정부 비판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김윤 : 의사를 늘리고 의료 개혁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해야 할 일, 정말 옳은 일을 정말 잘못된 방식으로 하고 있다. 2000명이라는 굉장히 큰 숫자를 갑자기 내놓았다. 의사들을 설득해 갈등 없이 의대 정원을 늘리고 의료개혁으로 이어 나가려는 노력은 안 보였다. 총선을 앞두고 의대 증원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강했기 때문에 그런 방식을 택한 것 같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갈등이 커졌다.

프레시안 : 의정 갈등 국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고, 4월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의료계와 정치권을 넘나들며 그간 어떤 중재 활동을 해왔는지 궁금하다.

김윤 : 의사가 얼마나 부족하고 최소한 어느 정도는 늘려야 되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동시에 의료개혁을 잘 하면 의사들이 우려하는 의대 증원의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응급실 뺑뺑이, 소아진료 대란, 지역의료 붕괴같이 국민들이 고통받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이 잘못된 의료체계 때문에 고통받는 부분도 이야기했다. 중증, 응급환자를 보고,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비급여진료, 실손진료 등 과잉진료 영역 의사들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 그런 불합리한 체계를 고쳐나가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공감하는 분이 적지 않지만, 의정 갈등 국면에서 힘을 발휘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만 남아 국민, 환자와 의사 사이에 불신과 반감이 전에 비해 훨씬 더 크게 증폭된 것 같다. 안타깝다.

하지만 늘 위기가 기회라고 하니까 이번 갈등이 왜곡된 의료 시스템의 새 판을 짜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 국회에 들어온 이후에도 교수들을 만나며 의료개혁을 위한 공론의 장을 만들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의료개혁은 입법을 통해 완성돼야 하기 때문에 당이나 국회에서도 국회가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의료개혁이 국회 입법을 통해 완성돼야 한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윤 : 대표적인 게 의료사고 문제다.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중증, 응급 환자를 볼 때 의료사고 위험이 더 큰데, 사고가 일어나면 개인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법을 고쳐 경미한 의료사고나 무과실 의료사고의 경우 의료진이 보험에 가입했고, 환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면 형사 책임을 묻지 않게 해야 한다.

또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진료 대란은 궁극적으로 의료전달체계 문제다. 이를 해결하려면, 국민들은 '경증환자가 대형병원에 가는 것을 자제한다'는 규제를 받아들이고, 대학병원은 '응급환자, 중환자는 우리가 책임지고 진료한다'는 식의 사회적 타협이 필요하다. 그런 타협이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것도 결국 법을 통해서다. 대형병원에 갈 경우 종합병원에서 의뢰서를 발급받게 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지금 제도를 그대로 두고 의사들이 대형병원에 가겠다는 경증환자를 설득해 돌려보내기는 대단히 어렵다.

"전공의 공백 메우는 진료지원 간호사, 또 다른 값싼 인력 되면 안 돼"

프레시안 : 의대증원에 반대하며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말한 대로 9월 전공의 모집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전공의 공백을 메우는 간호사들이 굉장히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부담이 더 커질 것 같다. 현재 병원에서 진료지원 간호사들의 업무 실태는 어떤가?

김윤 :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병동이나 다른 부서에서 일하던 간호사들이 진료지원 간호사로 전환되고 있다. 그 중에는 애초 진료지원 간호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 병동에 환자가 없는데 단기간에 많은 진료지원 간호사가 필요하니 간호사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동원되고 있다.

게다가 진료지원 간호사 교육이 굉장히 짧다. 불과 며칠 교육 받고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된다. 정부의 '진료지원 간호사 시범사업 지침'을 보면 진료지원 간호사가 전문간호사 업무 대부분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전문 간호사는 보통 2년의 수련 과정을 거친다. 2년 교육받은 사람과 며칠 교육받은 사람 업무에 차이가 없다면 둘 중 하나다. '2년 교육이 쓸 데 없거나 며칠 교육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업무를 시키고 있거나'다. 명백하게 후자 아니겠는가.

프레시안 : 병원이나 복지부는 비상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김윤 : 비상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비상체계를 영구적으로 가져가면 안 된다. 장기적으로 진료지원 간호사 제도를 어떻게 끌고 갈지 이야기해야 한다. 적절한 기간 교육하고, 적절한 업무 범위를 부여하고, 적절하게 대우하고, 자격도 인정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외국처럼 전문간호사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교육을 더 받고 더 위험한 업무를 하는 간호사에게는 일반 간호사보다 높은 임금을 주는 게 맞다. 외국도 진료지원 간호사나 전문 간호사 임금은 의사와 간호사의 중간 정도다.

급여나 노동조건만 문제가 아니다. 진료지원 업무를 하다 과실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건가.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진료지원 간호사 업무를 정해줬기 때문에 법적 보호장치가 생겼다고 하는데 반만 맞는 이야기다. 충분히 교육받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업무를 할 때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그로 인한 문제는 오롯이 개인 책임이다. 이에 대한 면책 조항은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진료지원 간호사를 하려는 간호사도 많아질 것이다. 지금 같으면 누가 하겠나. 병원도 진료지원 간호사 인력을 소중하게 대우하지 않고, 쓰고 버리는 인력으로 다룰 거다. 그 과정에서 간호사 이직같이 소모적인 과정이 생기면 피해는 환자와 간호사에게 돌아간다.

프레시안 : 진료지원 간호사들의 현장 반발은 없나?

김윤 : 진료지원 간호사나 전문 간호사가 잘 조직돼 있지 않다. 간간이 언론에 사례 정도는 나오지만, 조직적인 행동은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간호협회나 노조에는 일반 간호사가 많다. 전문간호사협회가 있지만 조직이 작다. 지금 진료지원 간호사가 1만3000명 정도고 계속 늘어날 텐데 이들을 조직화 할 힘이 필요할 것 같다. 정부가 비상상황에서의 과도기적인 진료지원 간호사 제도를 일상적 체계로 만들려 하는데 그게 장기적으로 굉장히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는 것을 국민과 환자들, 간호협회, 노조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당사자들도 힘을 받을 거다.

"의료 파업 큰 불 꺼졌지만, 잔불이 숲 전체를 태울 수도"

프레시안 :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며 드러난 문제 중 하나가 병원이 전공의를 저임금에 값싸게 써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의 전환이 언급되기도 한다. 전공의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의존해왔던 의료체계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윤 :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전공의 업무 중 3분의 2는 진료지원 간호사가 대신할 수 있을 것이고, 3분의 1은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전공의 수의 3분의 1만큼은 전문의를 더 고용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전공의들은 근무시간을 단축하고, 피교육자로서 제대로 수련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대학병원뿐 아니라 1, 2차 병원에서도 수련할 수 있게 하고, 본인이 연구를 원하면 연구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수련 비용 일부를 지원할 필요도 있다.

전공의가 빠지니까 병원 일이 안 되는 건 전공의들이 지금 발생하는 의료 공백만큼의 일을 다 하고 있었다기보다는 하나하나의 진료 업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었는데, 톱니바퀴 하나가 빠지면서 맞물려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수의료 등과 관련한 의료체계 자체를 개편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마취과 전공의가 없으면 수술 전체가 줄어든다. 교수들이 수술할 시간이 더 있는데도 마취과 전공의가 없으니까 수술을 못한다. 외국에서는 마취 간호사도 있고, 마취과 전문의도 더 많다. 또 마취과 의사들이 다 큰 병원에 있다. 우리는 마취과 의사들이 도수치료, 통증치료, 이런 비급여, 실손 진료과로 가기도 하고, 상당수가 개원하거나 병원급에서 일한다. 이는 의료체계 전체와 연결된 문제다.

프레시안 : 전공의 복귀를 가정해도 걱정되는 지점이 있다. 지금은 비상상황이라 진료지원 간호사가 전공의 업무를 하고 있다. 의정갈등이 어느 정도 봉합돼 정상 국면에 들어서 전공의들이 돌아오면, 현재 이들의 업무를 대체하고 있던 간호사들의 업무는 또 어떻게 될까?

김윤 : 그런 불안정성이 있기 때문에 진료지원 간호사 또는 전문 간호사 제도를 빨리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런 제도가 자리 잡으면 전공의들이 돌아와도 80시간 일하지는 않을 거다. 또 정부가 정책으로 발표했지만, 전공의들이 대학병원이나 대형병원 안에서만 수련받지 않고 지역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도 수련을 받게 될 거다.

전공의 근무시간이 40시간이나 60시간으로 줄고, 전공의 절반 정도가 대학병원 바깥에서 일한다고 하면 대학병원 안에서 전공의들의 근무 총량은 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이에 대비하려면 진료지원 간호사나 전문 간호사가 전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 지금 전공의가 1만 명 이상이니까 5000명 이상의 진료지원 간호사가 있어야 할 거다. 간호사들이 교대제로 근무한다는 걸 고려하면, 실제로는 1만 명 이상의 진료지원 간호사가 필요할 거다.

그러니까 전공의가 돌아온다고 진료지원 간호사 역할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다. 다만 진료지원 간호사를 또다른 값싼 노동력으로 소모하는 시스템은 만들면 안 된다.

프레시안 : 정부가 의대증원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필수의료, 지역의료 강화였다. 그래서 의대증원과 함께 필수의료정책패키지를 발표했다. 그런데 국민들은 뭘 하겠다는 건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의 필수의료정책패키지는 어떻게 평가하나?

김윤 : 비유하자면 의대 증원은 물탱크에 담는 물을 늘리는 거다. 물탱크에 담긴 물이 어디로 배분되는지는 물탱크에 연결된 관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필수의료정책패키지는 그 관의 크기를 정하는 일종의 배수 시스템이다. 결국 인력 배분 시스템이다.

인력 배분과 관련한 정부 정책이 잘 안 먹히면, 기존에 형성된 시장 논리대로 의사 인력이 배분된다. 그러면 지금처럼 대도시 개원의, 비급여·실손진료, 덜 힘든 과, 의료사고 위험이 적은 과로 더 많은 의사가 가게 된다.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 100명이 필요하다고 해보자. 인력 배분 시스템을 잘 만들면 100명 더 뽑으면 된다. 왜곡된 인력 배분 시스템을 그대로 두면, 500명이나 1000명을 더 뽑아야 될 수도 있다. 나머지 400명이나 900명은 시장 논리대로 미용, 성형, 비급여 진료로 갈 거다. 그러면 필수의료 의사는 채울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의사 과잉공급이 심각해진다. 그러니까 배분이 중요하다.

필수의료정책패키지가 잘 안 와닿는 이유는 정책을 정교하게 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입체적이고 정교한 정책을 만들었으면 설명하기 쉬웠을 텐데 그렇지가 않다.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정책을 나열하는 식이다. 각각의 정책이 뭔지는 알겠는데, 그걸 다 하면 뭐가 좋아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각각의 정책이 필수의료, 지역의료 공백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 모음인지도 알 수가 없다. 결국 정부가 준비가 덜 돼 생기는 문제다. 여전히 그런 상황이다. 복지부에서 필수의료정책패키지와 관련해 보고를 받는데 미완 상태다.

▲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 ⓒ프레시안(최용락)

프레시안 : 의정갈등이 반 년 가까이 됐는데 정부 정책 대응이 여전히 미흡한 이유가 뭘까?

김윤 : 한편으로는 정부가 일을 해왔던 관성에서 잘 못 벗어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정부도 인력과 자원이 제한되어 있으니까. 지금 전공의 파업 문제로 날마다 대응하는 것 자체가 워낙 시급해서 장기적인 과제에 집중을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실무자들이 눈앞의 사소한 문제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하도록 해주는 것이 장차관 같은 최고 정책 결정자 또는 리더의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좀 아쉽다.

프레시안 : 정부의료정책패키지가 미완이라는 말을 들으니 정부가 9월 전공의 모집할 때 지역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한 일이 떠오른다. 지역 전공의들이 서울 대형병원에 지원할 수 있게 하면, 지역의료 공백을 메우겠다는 의대 증원 정책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김윤 : 다행이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수도권으로 전공의들이 확 쏠리는 현상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정부의 그 결정은 소탐대실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에 지원하는 전공의를 늘리기 위해 지역의료를 중시한다는 원칙을 훼손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해서 지방에 있는 전공의가 수도권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얼마나 옮겨갈까도 의문이다.

프레시안 : 지역 대형병원 교수들이 '이제는 못 버티겠다. 하반기가 되면 더 힘들어질 것 같다'며 사직서를 많이 냈다. 지역의료는 더 심하게 붕괴되는 것 아닌가.

김윤 : 그렇다. 지금 큰 불은 꺼졌다. 파업 규모가 더 확산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잔불이 숲 전체를 태울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상태를 방치해 피로도가 심해지고 여러 다른 요인이 겹쳐 그만두는 교수가 늘면 결국 중증, 희귀질환자 진료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 상황에서는 현재 대학에 있는 교수들, 길게 보면 가을이나 내년에 지원할 전공의들에게 정부가 필수의료, 지역의료 체계를 혁신적으로 바꾸겠다는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게 안 나오고 있는 게 대단히 안타깝다.

프레시안 : 결국 정부의 준비 부족 문제가 큰 것 같다.

김윤 : 의정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의대 정원을 못 늘리게 하고, 실손보험, 비급여 진료 문제를 못 고치게 한 의사들에게 있다. 하지만 최근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정부가 더 크다.

"배운 것과 다르게 진료해 돈 버는 제도 속에서 의사가 행복할까"

프레시안 : 이번 의정갈등으로 드러난 의료계의 문제에는 또 어떤 것이 있나?

김윤 : 엄청나게 많은데…. 한마디로 '무정부적인 공급체계'다. 외국은 의대 졸업하고 진료 면허가 있어야 환자를 혼자 볼 수 있다. 진료 면허를 받으려면 1년에서 2년 동안 수련을 받아야 한다. 그 다음에 전문의 면허를 따면 전문 분야 진료를 주로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의대를 졸업하면 바로 개원할 수 있다. 자기 전문 분야와 무관한 진료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공급 쏠림이 너무 심하다. 예컨대, 내가 흉부외과 수련을 받았는데, 전문의 받을 때쯤 되니까 피부미용이 훨씬 돈이 될 것 같다. 그러면 나가서 피부미용 해도 된다. 정부가 흉부외과 전공의 TO를 정할 때 미래 부족분을 고려해서 정한 건데 그게 무력화돼버린다.

필수의료 의사가 더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정부 정책이 우선이기는 하지만, 외국처럼 진료과목 등에 대한 의사 공급 칸막이가 어느 정도 유지돼야 필수의료가 필요한 만큼 공급될 수 있다. 칸막이가 없으면 의사들이 한쪽으로 확 쏠린다.

비유하자면, 배 안에 칸막이를 치고 물을 담으면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칸막이 없이 물을 담았는데 배가 흔들린다고 생각해 봐라. 휘청휘청거릴 거다. 칸막이 없이 물을 실은 배가 파도를 만났을 때 쓰러지는 것처럼 의료 시스템도 쓰러질 수 있다. 그게 우리 현재 상황이다.

프레시안 : 의정 갈등이 불러온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김윤 :보기에는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잘 발전해 왔고 국민들이 그 혜택을 굉장히 많이 누려왔지만 사실 모래 위에 지어진 성처럼 굉장히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체계였다. 그 한계가 이번에 드러났다. 그러니까 이번에 기반을 잘 닦고 그 위에 튼튼한 의료 시스템을 제대로 지어 올리는 계기로 삼아야 된다.

의정갈등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체계 개편을 못하고 이대로 간다면 지금의 의정 갈등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훨씬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의료비 문제일 수도 있고 지역의료 붕괴 문제일 수도 있다. 이번에 제대로 개편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의료에 미래는 없다.

프레시안 : 현실적으로 현 상황에서 전공의 복귀는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얼마 전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복귀 전공의들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명단이 공개된 일이 있었다. 교수들은 9월 모집으로 들어온 전공의에 대한 가르침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들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김윤 : 대단히 전체주의적이라고 생각했다. 집단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말과 행동을 심하게 제약하는 게 전체주의다. 그런 걸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무비판적으로 한다.

프레시안 : 의료계 내에 전체주의적 사고가 퍼진 이유가 무엇인가.

김윤 : 매일 같이 보는 사람들로 이뤄진 집단 내에서 교육·수련 과정이 폐쇄적으로 이뤄진다. 사학과에서 선배가 '너 과를 위해 이렇게 해야 돼' 하는데 후배가 그 말을 안 듣는다고 보는 피해가 크지는 않다. 그런데 의대는 선후배한테 찍히면 계속 같이 살아야 하는 집단 내에서 왕따가 된다. 둘째, 약간의 우월주의가 있다. '우리가 최고 전문가야. 우리말이 맞아. 너는 틀려'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생각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엘리트주의가 있다. 셋째, 그런 과정을 거쳐 계속 성공해 온 경험이 학습됐다. 이런 것들이 전체주의적 행동방식이 나타나는 이유 같다.

프레시안 : 교수 시절부터 의사 집단을 비판하다 보니 의사들로부터 비판·비난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의료개혁을 촉구하게 된 개인적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김윤 : 저도 잘 모르겠다.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제일 큰 이유는 내가 시작한 일을 중간에 욕을 먹는다거나 불이익이 있다고 그만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내가 배우고 연구한 것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 갖고 있는 신념이 있다. 그것을 모른 체 할 수 없다. 뻔히 알면서 입을 닫거나, 맞지 않다는 걸 알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기가 어렵다.

여전히 희망을 갖고 있다. 내가 주장하는 의료체계가 궁극적으로 환자와 의사, 우리 사회에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배운 것과 다른 방식으로 진료를 해 돈을 벌어야 되는 의료제도 속에 사는 의사가 과연 행복할까. 학교에서 배운 대로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면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고, 환자에게 신뢰받고, 전문가로서의 양심에도 거리낌이 없이 살 수 있는 의료제도를 만드는 게 의사한테도 좋지 않을까. 지금은 나를 미워하거나 비난하는 의사들이 많지만 시간이 지나 더 좋은 의료체계가 만들어지면 의사들도 더 좋은 환경에서 환자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레시안 : 앞으로도 의원님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긴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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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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