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 노역이 이뤄졌던 사도(佐渡)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가운데 한국 정부도 이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5년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 피해가 있었던 군함도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 노역 사실을 적시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일본이 이번에는 전체 역사를 기록할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26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일 양국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 "한반도 출신을 포함해 노동자들이 일했던 역사를 현지에서 전시하기로 하고 한국 정부와 대략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오는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 예정인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도 한반도 출신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사도광산에서 일했다는 점을 언급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한국 쪽이 호소하는 노동의 '강제성'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양 정부 간 막바지 조정이 계속되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강제동원 문제를 두고 한일 간 이견이 있다고 밝혔다.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를 합법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일본은 국가총동원법 등에 의해 조선인 노동자가 사도광산에서 합법적으로 '노동'을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식민 지배를 불법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제에 의해 사도광산에 강제동원되어 노역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우리는 2015년 메이지산업혁명유산 등재 당시 일본 정부의 발언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며 당시 일본 정부가 등재 확정과 함께 "수많은 조선인 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against their will) 연행되어 가혹한 환경에 서 노동을 강요당했다(torced to work)"고 밝힌 점을 강조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러나 그 후 일본 정부는 'forced to work'는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한반도 출신자의 징용은 국제 법상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제성을 전면 부인했다"며 "나아가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는 조선인 강제노동을 부정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전시로 채워졌으며 지금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사도광산에 끌려가 고통을 당한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간 사람들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정부의 국가정책에 따라 강제로 동원되어 강제노동에 시달린 피해자들"이라며 "한국 정부는 불법적인 식민지배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사도광산으로 끌려가 고통을 당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역사를 일본 정부가 제대로 기록하도록 끝까지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정부는 강제성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일본이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유네스코 등재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어려운 과정 끝에 가까스로 한일 간 막판 합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앞으로 약 24시간 안에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내일(27일) 인도 뉴델리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일 간 투표 대결 없이 사도 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우리가 등재에 동의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일본이 전체 역사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했고, 두 번째 이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이미 취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복해서 말씀드리면 이번에는 2015년 일본 근대산업시설인 군함도 등재시와는 달리 일본의 이행 약속만 받은 것이 아니라 이행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합의하고 실질적인 조치를 이끌어냈다"고 전했다. 한일 양측은 등재 조건 등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이 실제 사도광산 등재를 위해 어떠한 '행동'을 취했는지 아직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일본 정부는 2015년 군함도를 비롯한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일부 시설에서 강제노역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명시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여전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일본이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도 유네스코가 이를 강제로 이행하게 하거나 등재를 취소하는 등의 유효한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유네스코는 2021년 7월과 2018년에 일본에 강제노역 사실을 적시하라는 내용의 결정문을 채택했지만 이것이 일본의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에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사도광산에서 강제노동한 아버지의 피와 땀과 눈물을 세계유산에 기록해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통해 일본의 이러한 태도에 유감을 표명하며, 전체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김문국의 아들 김평순, 노병구의 아들 노안우, 신태철의 아들 신경식, 정쌍동의 손자 정승수 등 4명은 "우리 아버지(또는 할아버지, 아래 같음)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사도광산으로 끌려가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한 강제노동에 동원됐다"며 "장시간의 강제노동과 배고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해방 뒤에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아버지들은 사도광산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린 후유증 때문에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았다. 광산의 가혹한 환경에서 노동에 시달린 그들은 죽을 때까지 폐 질환을 안고 살았다"며 "멈추지 않는 기침과 가래, 강제노동으로 망가진 몸으로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었고 가족들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함께 겪어야 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1945년 해방을 맞아 79년이 지난 지금 강제노동 피해자인 아버지들은 모두 돌아가셨다. 아버지들을 사도로 끌고 가 강제노동을 시킨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머티리얼은 지금까지 조선인 강제노동의 실태에 대해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으며, 당시의 기록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전쟁을 위해 저지른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해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 유네스코의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이하 이코모스)가 지난 6월 "에도 시대뿐만 아니라 사도광산 전체의 역사를 기록하도록 권고한 사실을 높게 평가한다"며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에 강제로 동원되어 강제노동의 고통을 당한 우리 아버지들과 같은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2015년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에도 일본 정부는 조선인, 중국인, 연합군포로 등이 강제노동을 당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희생자를 위한 추모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일본 정부가 약속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고 있는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도광산이 탁월하며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인류 전체의 세계유산으로 환영받기 위해서는 우리 아버지들이 그곳에서 흘린 피와 땀과 눈물, 강제노동의 역사가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라며 "사도광산에 당신들의 청춘을 바친 우리 아버지들의 이름을 꼭 기억해 달라"라고 호소했다.
사도광산 등재를 위한 일본과 협상 과정에서 이를 유족들에게 설명했냐는 질문에 외교부 당국자는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일본과 협상을 한 번도 공개하지 않고 결과를 말씀드리는 것이라서 유족들에게 설명드린 적은 없다"며 이후에 설명을 할 시간을 가지겠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어제 유족들이 유네스코에 입장문을 썼는데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사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핵심"이라며 "그분들의 요구 사항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일 간 막판까지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이변이 없는 한 등재는 무난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사도광산에 일본인과 조선인 외에 다른 국가의 노동자가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문제를 삼지 않을 경우 등재에 장애가 될 만한 요인이 없다는 점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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