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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간호사들이 전공의 빈 자리를 메꿔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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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간호사들이 전공의 빈 자리를 메꿔야 하는가

[장기화된 의정갈등, 고통받는 병원노동자 ①] 서울 사립대병원 간호사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수련병원을 떠난 지 140일이 넘었다. 남은 병원 노동자들은 과중한 업무로 고통받고 있다. 환자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의정갈등 장기화에 따른 의료공백이 현장에 미친 영향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소속 병원 노동자들의 글을 통해 전한다. 편집자.

우리 병원은 서울에 위치한 대학병원으로 18년간 지역거점 병원을 담당해 왔다. 22년부터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되어 활발한 지역사회 의료기관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2월 말부터 인턴, 전공의의 집단 진료거부와 3월에 입사해야 할 전임의들까지 입사를 거부함으로써 100명 넘는 의사가 부족하게 됐다.

당장 수술 50%가 취소되고 비상 진료체제에 들어갔다. 부족한 의사 업무는 인턴 업무를 하는 임상전담간호사와 전공의 업무를 하는 PA(Physician Assistant, 진료지원) 간호사로 채워졌다.

그동안 전공의들에게 의지하고 있던 교수들은 당장 처방을 위한 EMR(전자의무기록) 시스템과 액팅 업무(병실에 가 환자에게 설명하고 처치하는 일) 중 전공의에게만 맡기고 직접 하지 않던 일을 다시 공부하며 수행해야 했다.

임시로 임상전담이나 PA 업무를 하게 된 간호사들은 제대로 된 교육 없이, 일주일도 안되는 짧은 속성 교육 후 업무에 투입돼 환자에게 혹여 해가 되지 않을까 불안하기에 혼자 공부해가며 업무를 감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들은 점점 더 범위를 넓혀 자신들의 업무를 전담간호사에게 떠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설명은 다 해놨으니까 DNR(사전연명의향서) 동의서 좀 받아줘요”, “그 환자 사망진단서 좀 작성해주세요”, “인턴이 하던 일인데 이건 왜 못해요?”, “‘신환’(신규환자) 입원 처방 좀 내주세요” 등등.

정부에서 임시로 89개 PA 업무를 전문간호사, 전담간호사가 할 수 있게 허용했다고 하지만 우리 간호사들은 간호사지 인턴도 전공의도 아니다. 그래서 PA 간호사들은 의사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용해서 일해야 한다. 자기 이름으로 일할 수 없는 유령 간호사가 120명이 넘어가고 있다.

의사가 힘들고 바쁘면 본인의 일을 간호사에게 떠넘기면 되는 건가? 그런데 왜 의사들은 직역 간 업무범위를 명확하게 하자는 간호법 제정도 안 되고, PA 법제화도 안 된다는 걸까?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인턴, 전공의가 근무하던 당시에도 우리 병원에는 그들이 하던 것과 비슷한 일을 하기 위해 70명이 넘는 PA 간호사들이 있었다.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1개 병동이 폐쇄됐고, 추가로 50여 명의 병동 간호사가 PA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병동에서 빠져나간 PA 간호사의 빈 자리 중 20개는 아직 채워지지 않고 있다.

과중한 업무와 경력직 간호사 부족으로 인한 불안감으로 1년 미만 저연차 간호사들은 사직을 택하고 있다. 힘든 호흡기 내과 병동과 응급실에서는 최근 두달 째 신규 간호사들의 ‘응사’(말도 없이 출근을 안 해버리는 응급 사직)가 빈번하게 이어지고 있다.

고연차 간호사들도 ‘간호사 1명이 환자를 10명 이하만 전담해도 힘든데 12~15명의 환자를 돌보면서 신규 간호사 교육까지 담당하며 일할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환자의 안전을 책임질 자신도 사라져 간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인력이 부족한 병동은 가동 병상수를 줄여 운영해야 한다고 병원에 요구하고 있다. 신규 간호사라도 충원해 줘야 교육 후 업무를 할 수 있으니 빨리 충원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임금 지급이 어려운 상황이니 기다려달라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병원 측은 의사가 부족하면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를 하게 하고, 병동 환자가 줄어들면 간호사 근무 인원을 최대한 줄여 빠듯하게 운영하고 싶어 한다.

이뿐이 아니다. 의사들이 못 하겠다고 하는 업무가 있으면 간호사가 대신 해주면 안되겠느냐며 의사 업무를 떠넘긴다. 언제까지, 어떤 일까지 간호사가 의사 업무를 대신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간호사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도대체 전공의들이 돌아오긴 할까? 의사 업무를 대신 전담하는 간호사들은 법적으로 안전한가? 간호법 제정, PA 간호사 법제화 등 어떤 법적 보호장치도 없이 일하다 피해만 당하는 것은 아닌가?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의료공백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오늘도 복잡한 마음으로 식사도 거르고 화장실 가는 것도 참아가며 바쁘게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 서울 소재 한 병원에서 간호사가 보호자와 대화하고 있다(사진은 본 글과 무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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