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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극우 집권 최악 면했으나 과반 정당 없어 정부 구성 '안갯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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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극우 집권 최악 면했으나 과반 정당 없어 정부 구성 '안갯속'

연정 협상 경험 부족으로 총리 지명부터 난항 예상…극우 "승리 지연된 것 뿐"

7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조기 총선 결선 투표에서 좌파 연합이 극우를 밀어내고 깜짝 승리를 거두며 최악은 피했지만 과반은 차지하지 못해 연정이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 정치에 혼란이 일 것이라는 전망은 여전하다. 1차 투표 1위에서 결선 3위로 밀려난 극우는 "승리가 지연됐을 뿐"이라며 짐짓 여유를 보였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내무부의 총선 결선 투표 집계 결과를 토대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8일 오전 1시28분 기준 577석 하원의석 전부의 향방이 가려진 가운데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이 182석을 얻어 1위를 차지했고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 연합 앙상블이 168석을 얻어 2위로 올라섰다. 극우 국민연합(RN)은 143석에 그쳐 3위로 밀려났다. 이어 우파 공화당이 45석을 차지했다. 과반인 289석을 단독으로 점유한 정당 및 연합은 없었다.

이는 지난달 30일 1차 총선에서 국민연합이 33.35%를 득표해 1위, 신인민전선이 28.28%를 득표해 2위, 앙상블이 21.79%를 득표해 3위를 차지했던 것에서 크게 뒤집힌 결과다.

예상 깨고 뭉친 좌파, 극우 꺾고 '반전'…극우, 공화주의 전선·혐오 발언에 발목

이러한 반전엔 1차 투표 뒤 극우 집권을 막기 위한 초당적 연대인 이른바 '공화주의 전선(republican front)'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좌파 연합과 앙상블은 3명의 후보가 경합하는 300곳 이상의 선거구에서 3위를 차지한 후보들에게 사퇴를 권고해 극우 후보에 대한 대안을 한 후보로 압축하는 전략을 썼다. 그 결과 200곳 이상에서 단일화가 이뤄진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뉴욕타임스>(NYT)는 프랑스 북부 르망 에서 투표한 43살 유권자 엘렌 레기용이 "정상적 상황이었다면 절대 (급진 좌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에 투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국민연합을 저지하기 위해 다른 상황이었다면 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극우 이미지를 완화하려는 지도부의 '말'과는 달리 개별 후보들의 혐오 발언 문제가 불거지며 막판에 유권자들의 극우 집권에 대한 두려움이 강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전문가 브라이스 테인투리가 현지 방송에 결선 투표 전 국민연합의 몇몇 후보가 "반유대주의, 외국인 혐오, 동성애 혐오" 견해를 표현하며 극우가 유독한 과거를 청산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신인민전선은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총선 선언 뒤 며칠 만에 급진 좌파인 굴복하지않는프랑스와 공산당, 온건 좌파인 사회당과 녹색당 등이 타협을 이루며 성립했다. 분열돼 있던 좌파가 채 3주의 여유도 주지 않은 갑작스런 조기 총선 발표 뒤 빠르게 단합한 것은 마크롱 대통령의 계산 밖이었다는 평가다.

신인민전선은 이번 선거에서 최저 임금을 인상하고 마크롱 대통령이 64살로 높인 연금 수령 연령을 다시 60살로 낮추고 부유세를 도입하고 연료 및 식품 가격에 상한선을 설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반이민 공약을 내건 극우와는 반대로 망명 절차를 더 관대하게 하겠다고도 했다. 신인민전선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했지만 프랑스가 재정 적자 급증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공약이 원활히 이행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과반 없는 혼란 정국…좌파·집권당 협력 기대도 어려워

극우 집권이라는 급한 불은 껐지만 의석 과반을 점유한 확실한 다수당이 없는 상태에서 프랑스 정치 혼란은 불가피하다. 절대 다수당 없이 정당 간 협상을 통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프랑스 정당들은 이런 식의 정부 구성에 익숙하지 않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던 국민연합도 단독 통치를 주장하며 유권자들에 절대 다수를 안겨줄 것을 호소한 바 있다.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집권당이 극우에 참패하자 즉시 조기 총선을 소집해 '도박'이라는 비판을 받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당장 새 총리 지명부터 난항을 겪게 됐다. 대통령이 반드시 다수당에서 총리를 지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총리직에 오르기 위해선 의회 신임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다수당에서 지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이 좌파 연합을 주도하는 굴복하지않는프랑스에 "극단주의자" 딱지를 붙이며 거부감을 표명해 와 이 당과의 원활한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프랑스 방송 프랑스24를 보면 전 총리이자 앙상블 연합에 속한 중도 호라이즌당 대표 에두아르 필리프 또한 "정치 안정화"를 위해 "중도 정치 세력"이 협상에 나서야 하지만 "굴복하지않는프랑스와 국민연합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권 르네상스당의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선거 결과를 본 직후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굴복하지않는프랑스를 이끄는 장 뤽 멜랑숑 또한 "대통령과의 협상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마크롱 대통령과의 연정을 거부했다. 멜랑숑은 "우리는 준비돼 있다"며 "대통령은 신인민전선에 통치를 맡길 의무가 있다"고 좌파 연합에서 총리를 지명할 것을 요구했다.

현 시점에서 마크롱 대통령에 가장 유리한 상황 전개는 그의 중도 연합에 신인민전선 내 온건 좌파인 사회당과 녹색당 등을 끌어들여 정부를 꾸리는 것이지만 좌파 연합이 붕괴될 조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프랑스 프랑스24 방송을 보면 좌파 연합에 속한 중도 좌파 정당 플라스푸블리크(Place publique·광장)의 유럽의회 의원인 라파엘 글룩스만은 "분열된 의회에서 어른답게 행동"해야 하고 좌파 연합이 "대화하고 토론해야 한다"며 협상을 촉구해 멜랑숑과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정당 간 연합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마크롱 대통령이 정당 안팎의 전문가, 관료, 저명인사 등으로 꾸린 일종의 과도 정부를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형태의 정부는 다음 선거까지 별다른 정책 추진 동력 없이 현상 유지 정도를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구상에 좌파 연합이 동의할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66.63%로 2022년 총선보다 20%포인트(p) 이상 높았는데 <뉴욕타임스>는 대선 몇 주 후에 치러져 대선에서 승리한 당에 유리한 통상적 총선과 달리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마크롱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투표장에 인파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영국 BBC 방송은 "설사 마크롱 대통령이 중도주의자 총리를 자리에 앉히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총리는 의회의 지지에 기반해 그 자신의 권리에 따라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며 "권력은 마크롱 대통령에게서 빠져 나가 새 정부를 이끄는 사람에게로 흐를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 연합이 결선에서 예상보다 약진해 존재감이 완전히 지워지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임 의사를 밝힌 아탈 총리가 개막까지 3주도 채 남지 않은 파리 올림픽을 안정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임시로 총리직에 남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지만 정치전문지 <폴리티코> 유럽판은 어떤 형태로 혼란이 임시 봉합되든 가을 예산 협상에서 좌파, 자유주의자, 극우의 갈등이 분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프랑스 재정 적자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5.5%에 달해 유럽연합(EU) 상한선(3%)을 초과하며 긴축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극우, 의석 늘리고 통치 능력 검증 피하며 실익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으로 드러난 극우는 공화주의 전선 건재에 다시금 씁쓸함을 맛봤다. <뉴욕타임스>는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이 7일 기자들에게 "(극우) 파도는 높아지고 있다"며 "이번에 충분히 높이 오르지 않았지만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르펜은 "우리의 승리는 지연된 것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번 반전이 없었다면 총리직에 오를 가능성이 있었던 국민연합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는 좌파 연합과 중도 간 단일화를 "불명예스러운 동맹"으로 칭하고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를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으로 몰아 넣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극우가 의석을 크게 늘림과 동시에 정부엔 참여하지 않아 오히려 통치 능력 입증을 피하는 실익을 거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파리 팡테옹아사스대 정치분석가 벤자민 모렐이 "국민연합이 집권하지 못했더라도 이는 정치적 격변"이고 르펜 운동이 "큰 승리자"가 됐다며 당장 의석수를 크게 늘린 국민연합에 국가 지원금이 늘어나 "엄청난 재정적 횡재"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선거에서 극우 집권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뿌리 깊은 저항을 확인한 동시에 극우가 다시금 정부 직책을 맡는 부담 없이 높아지는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이득을 얻었다고 짚었다.

▲프랑스 조기 총선에서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을 주도한 급진 좌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를 이끄는 장 뤽 멜랑숑이 7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총선 2차 투표 결과를 접하고 양팔을 번쩍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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