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0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 극우 정당이 1위를 굳히며 첫 총리 배출에 한걸음 다가섰다. 3위에 그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중도 정당이 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오는 7일 결선 투표에서 극우에 맞서는 결집이 성사될지도 불분명하다. 이에 따라 결선 투표 뒤 프랑스 정치는 극우에 과반을 내주거나 3파전 양상의 정국 마비 중 하나로 흐를 위험이 커졌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1일 프랑스 내무부는 전날 치러진 총선 투표 집계 결과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국민연합(RN)이 33%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고 강경 좌파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가 주도하는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이 28%를 득표해 2위,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 르네상스당이 주도하는 연합 앙상블은 20%를 득표해 3위에 그쳤다고 밝혔다.
577개 선거구에서 치러지는 프랑스 총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확보한 후보자가 없을 경우 결선 투표로 최종 승자를 가리게 돼 있어 1차 투표 결과로 최종 의석수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결선 투표는 각 선거구 득표 상위 2명 후보 및 총유권자 12.5% 이상의 표를 얻은 후보를 대상으로 치러진다. 이번 총선 1차 투표에선 르펜을 포함해 과반 이상의 표를 얻은 70여 명 후보의 당선이 확정됐고 나머지 대부분의 선거구에선 결선 투표가 치러질 예정이다.
이번 총선 투표율이 이례적으로 높아 통상 상위 2명이 진출하는 결선 투표에 3명이 진출 자격을 얻은 선거구가 300곳 이상인 것으로 예측돼 최종 결과는 더욱 불투명하다. 불과 3주 전 소집된 이번 선거 투표율은 66.7%로 1997년 총선 이후 가장 높다. 1차 투표 기준 투표율이 약 48%였던 지난 2022년 총선에선 후보자 3명이 결선 투표에 진출한 선거구가 8곳, 2017년엔 1곳에 불과했다.
극우 집권을 막기 위한 이른바 '공화주의자 전선(Republican Front)' 결집이 다시 한번 요구되는 가운데 좌파 연합은 각 지역구에서 3위를 차지한 후보는 결선 투표에서 일괄 사퇴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좌파 연합을 주도하는 장 뤽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 대표는 "우리 방침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국민연합에 한 표도 더 가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모든 3위 후보들이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좌파 연합은 이번 총선에서 사회 정의 실현과 공공 서비스 개선을 약속하며 성과를 냈다.
프랑스에선 2002년 대선에서 마린 르펜의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이 2위로 결선에 진출하자 좌파 사회당을 비롯해 거의 모든 정당 지지자들이 근소한 차이로 1위로 진출한 우파 공화당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주며 극우 집권을 막은 바 있다. 극우가 부상할 때마다 프랑스에선 극단주의자 집권을 막는 이 '공화주의자 전선'이 발동했고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가 프랑스에서 1위를 차지하자 조기총선이라는 도박에 가까운 카드를 꺼낸 것도 이러한 전례에 기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정작 마크롱 대통령 정당은 결선에서 3위 후보의 선택적 사퇴를 시사해 반극우 결집을 저해 중이다. 프랑스 방송 프랑스24를 보면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집권 르네상스당 또한 3위 후보 사퇴 방침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상위 후보가 "공화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선거구에서만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 쪽이 "극단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인 굴복하지않는프랑스 후보가 1위나 2위를 차지해 국민연합과 맞붙게 되는 선거구에선 사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녹색당, 사회당, 공산당이 포함된 좌파 연합은 굴복하지않는프랑스가 주도 중이다.
미 CNN 방송에 따르면 앙상블 연합에 속한 정당 호라이즌을 이끄는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전 총리는 "국민연합 후보에 투표해서도 안 되지만 우리와 근본 원칙이 다른 굴복하지않는프랑스 후보에도 투표해선 안 된다"며 후보 사퇴를 거부할 것을 명시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7% 득표율에도 못 미친 그친 정통 우파 공화당은 결선 투표에 대해 별다른 지침을 제시하지 않았다. 공화당 대표 에릭 시오티는 지난달 조기총선 발표 뒤 국민연합과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해 당내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밖에 각 정당 3위 후보들이 지도부의 사퇴 지시를 거부하고 출마를 고수할 가능성도 있다.
지지율 1위에 고무된 국민연합은 다른 당과 연합 가능성을 배제하며 단독 다수를 구성해 총리를 배출하게 해 줄 것을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당의 총리 후보이자 당대표인 조르당 바르델라는 "나는 (대통령과 총리의 정당이 다른) 동거 정부의 총리가 될 것"이라며 "헌법과 대통령직을 존중하되 우리가 시행할 정책에 대해선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AP>와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를 보면 선거 뒤 바르델라는 마크롱 대통령 정당이 아닌 지지율 2위의 좌파 연합을 겨냥하기도 했다. 그는 신인민전선이 경찰을 해제하고 이민자에 국경을 열어 "우리나라에 실존적 위협"을 가져오는 "위험한 극좌"라고 공격했다.
CNN을 보면 르펜은 이번 선거에서 프랑스 국민이 "마크롱주의 연합을 실질적으로 지워버렸다"면서도 "아직 승리하지 않았다. 2차 투표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방심하지 말 것을 지지자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총선 결과와 관계 없이 2027년까지인 임기를 채울 예정이다. <AP> 통신은 국민연합이 불신임 투표를 통해 실각할 위험을 피하고자 다른 정당과 연합을 꾸리는 것을 꺼린다고 설명했다.
<폴리티코>는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정치 분석가 브루노 코트레스가 국민연합이 이미 "유럽연합 선거에서 세 번 연속 승리했고 마린 르펜은 대선 결선 투표에 두 번이나 진출했다. 만일 그들이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선거(총선)에서 승리한다면 그들은 주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결선에서 국민연합이 의석 과반을 획득할 경우 총리직을 획득해 '동거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이 경우 대통령은 외교, 국방 관련 일부 권한을 가지고 내정은 총리에 맡겨져 대통령 권한이 크게 축소된다. <AP>에 따르면 바르델라 대표는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내 목표물 타격이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 및 다른 무기 지원에 반대해 외교와 국방 분야에서도 긴장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AP>는 정치사 전문가 장 가리그가 "동거 정부의 경우 시행되는 정책은 본질적으로 총리의 정책"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그는 "대통령은 군의 수장이지만 군을 지휘하는 것은 총리"라며 "외교 분야 또한 대통령의 영역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
과반에 성공할 경우 국민연합이 주장하는 반이민 의제도 크게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국민연합은 이민을 줄이고 외국인 부모 아래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국적을 부여하지 않으려 하며 국가 전략 관련 등 특정 직종에서 이중 국적자를 배제하고자 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크롱 대통령이 3주 만에 급작스런 총선을 치르도록 해 다른 정당들이 경제를 포함해 여러 분야에 걸친 국민연합의 허술한 공약을 비판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결선에서 어떤 정당도 과반을 획득하지 못해 정국이 마비될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다. <로이터>는 여론조사 기관 중 단 한 곳만이 국민연합이 과반을 획득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극우, 좌파 연합, 마크롱 대통령 정당이 각기 의석을 나눠 가지지만 어느 쪽도 다른 쪽과 협상하지 않아 의회가 제 역할을 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경우 마크롱 대통령에 반대하는 좌우 양쪽의 큰 연합이 존재하고 크게 약화된 그의 중도 정당은 그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무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유럽 편집자 벤 홀은 칼럼을 통해 결선 투표에서 유권자들이 극우와 강경 좌파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됐다며 "마크롱 대통령의 무모한 도박 탓에 프랑스 유권자들이 부당한 선택으로 내몰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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