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출산 지원금 지급, 만남 프로그램 추진, 돌봄시설 운영, 저출생 캠페인 등 저출생 추세 반전에 종교계가 앞장서고 있습니다…청년들의 인식을 전환하고 전 사회적으로 가족 친화적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종교계의 관심과 동참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저출생 대책을 주도해왔던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주형환 부위원장이 2일 오전 10시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2024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한 선포식 및 국민컨퍼런스' 기조 강연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주 부위원장은 "생명의 존엄성, 가족에 대한 소중함, 공동체와의 유대감을 기반으로 결혼과 출산, 육아를 환영하고 긍정하는 사회 분위기 및 여건 조성"을 강조하며, 종교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했다.
같은 시각, 여성‧노동계는 "종교단체나 지자체를 통해 청춘 만남의 장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보고 자신의 선택을 결코 되돌리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저출생 대책을 비판했다.
"일터 내 성차별, 소수자 집단에 가해지는 차별과 불평등, 여성이 최소 3일에 한 번씩 파트너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회…한 마디로 미래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사회 속에서 여성들은 결혼이나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합리적인 선택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성들 중 많은 수는 대기업 정규직 종사자 중심 소수에게 혜택이 돌아갈 육아휴직 확대 정책, 결혼하면 세금 깎아주는 정책, 종합부동산세 낼 때 결혼하면 10년간 다주택자 적용 안 하겠다는 정책, 종교단체나 지자체를 통해 청춘 만남의 장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보고 자신의 선택을 결코 되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으로 구성된 여성노동연대회의와 '이주 가사·돌봄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 '주4일제 네트워크' 등이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연 저출생 대책 비판 기자회견에서 나온 지적이다.
여성‧노동계는 "정부의 저출생 대책이야말로 국가 비상사태"라고 했다. 정부의 "인구 비상사태" 선포를 꼬집은 것이다.
이들은 "저출생은 한국 사회의 복합적 사회 위기의 결과이자 현상"이라며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재 대한민국이 시민들에게 과연 어떤 사회인지 근본 구조를 총체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불평등과 불안을 초래하는 사회 구조와 일터와 일상에서의 성별, 계층, 인종, 지역 간 심화된 갈등을 도외시"한 채로 저출생 극복은 요원하다고 단언했다.
"육아휴직 급여 높인다? 중소기업 종사자, 1인 자영업자는?"
한국여성민우회 보라 활동가는 여성의 열악한 노동 환경 문제를 첫손에 꼽았다. 그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육아휴직 급여 인상 대책에 관해 "애초에 낮은 임금,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어 육아휴직의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어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2023년 기준 45.5%로 남성보다 15% 이상 높다. 중소기업 종사자, 1인 자영업자, 프리랜서는 여전히 육아휴직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며 "정부는 줄곧 '육아휴직 확대'를 외치고 있지만 육아휴직 '빈부 격차' 혹은 '사각지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 69시간 노동'이라고 불렸던 근로시간 개편안, 실업급여 삭감, 최저임금 차별 적용 시도,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 삭감, 민간 고용평등 상담실 예산 전액 삭감, 돌봄예산 삭감, 모두 윤석열 정부에서 발표된 정책"이라며 "더 긴 시간, 더 위태롭게, 더 값싸게 여성노동자의 미래를 삭감하고 후퇴시킨 이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또 "지난해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고소 건은 1875건으로 지난 5년 새 가장 많았다"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페미'로 낙인찍혀 괴롭힘을 경험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페미니즘 사상 검증' 사건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저출생 대책의 핵심인 노동시간 관련 제도를 논의할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위원회 구성은 13명 전원 남성"이라며 "여성 노동자는 단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이 위원회에서 과연 저출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논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만 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신생아 특례대출 확대? 아이가 집 구입 할인 쿠폰인가"
민달팽이유니온 지수 활동가는 부동산 지원 대책을 지적했다. 정부는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을 수 있는 부부 합산 소득 요건을 내년 1월 1일부터 3년간 출산한 가구에 한해 연 2억5000만 원으로 늘리고, 올해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을 풀어 공급하는 신규 택지 물량 2만 가구 중 1만4000 가구는 신혼·출산·다자녀 가구에 공공주택으로 공급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대책을 두고 지수 활동가는 "주거 불평등을 보다 공고히 하는 부동산 정책으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라며 "아동 주거빈곤과 전세사기 문제를 방치하면서 또다시 주택 구입 자금 대출과 청약 범벅의 대책을 제시하는 것은 정부는 저출생 위기를 말하지만 정녕 무엇이 위기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고백"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의 전세대출을 이용했던 청년들은 연 소득 3500만 원이라는 소득 기준 안에서 최대 1억 원을 대출받아 그 이자를 내는 것이 월세보다는 저렴하리라 기대했던 청년들"이라면서 "정부는 주택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시장 질서를 방치한 채, 더 싼 대출 상품을 만들어주는 대출 상담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입자들의 보증금으로 집값 상승을 견인하고, 더 많은 돈을 가진 이에게 더 많은 돈을 싸게 빌려주는 대출로 주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집 구입 할인 쿠폰이 아니라 주거권이라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사회적 권리"라며 "집을 탈상품화시키고 공공임대를 확대하고 민간 임대에 대한 공공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조치하는 정부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저임금 외국인 가사관리사 공급 확대? 외국 인력 차별하면 국민이 부메랑 맞는다"
가사‧돌봄유니온 송미령 사무국장은 정부는 돌봄 수요 충족, 양육 비용 절감을 위한 외국인력 공급을 확대 방안을 비판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에 외국인 가사노동자 1200명을 들이겠다는 계획이다.
송 사무국장은 이같은 방안에 대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가족에게까지 확대하는 본격 사업"이라며 "우리는 '양육 비용 절감'이 아니라 '가정 내 돌봄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자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읽는다"고 했다.
이어 "외국인력을 차별하면 그것이 부메랑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하느냐"면서 "차별하는 사람은 차별을 당하기 마련"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이번 대책에서 민간기관의 중개 기능을 활성화하겠다는 발표에 주목한다. 민간 직업소개소가 외국인력을 개인 가정에 직접 공급하겠다는 뜻"이라며 "이 경우 최저임금, 산업안전, 공정계약 등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비공식 노동을 더욱 확산하겠다는 퇴행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돌봄은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 위에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는 돌봄 국가책임이 강화될 때까지, 가사‧돌봄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멈출 때까지 끝까지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인구의 증감 자체가 정책 목표가 될 경우 인구 통제라는 구시대적 정책 운용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성차별적인 노동시장의 문제 해결을 비롯한 한국 사회 전반의 젠더 불평등 해소, 주거‧돌봄의 공공성 강화, 이주민에 대한 차별 철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 등 모든 시민들의 평등하고 안전한 삶의 기반을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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