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우위 미국 연방대법원이 2020년 대선 전복 시도 혐의 관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기한 면책 주장을 일부 수용해 파장이 인다. 소수 의견을 낸 진보 대법관은 이번 판결로 대통령이 "법 위에 군림하는 왕"이 됐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결정으로 해당 사건 재판이 대선 전 열릴 가능성이 희박해지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련 부담을 크게 덜게 됐다.
1일(현지시간) 미 대법원은 "대통령 권력의 본질에 따라 전임 대통령은 (재임 당시) 그의 확실하고 배타적인 헌법적 권한 내의 행위에 대해선 형사 기소에 대해 절대적 면책권을 가지며 모든 공적 행위에 대해선 적어도 추정적 면책권을 가진다. 공적 행위가 아닌 경우엔 면책권이 없다"고 결정했다.
대법관 9명 중 보수 성향 6명이 찬성한 이번 결정에서 다수 의견을 대변해 결정문을 작성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활기차고 독립적인 행정부"를 보장하기 위해 이 같은 면책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상 모든 대통령은 마약, 총기, 이민, 환경 관련 연방법 일부분을 불충분하게 집행했다는 비판을 받는다"며 "새 정부의 진취적인 검사는 전임 대통령이 그러한 광범위한 법령을 위반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면책권 없이는 전 대통령에 대한 이러한 유형의 기소가 금세 일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기준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 중 2020년 대선 뒤 법무부 당국자들과 진행한 논의에 대해선 절대적 면책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혐의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선 하급 법원으로 판단을 넘겼다.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에서 허위 친트럼프 선거인단 구성에 연루됐다는 혐의 및 트럼프 지지자들의 2021년 1월6일 미 의회의사당 공격과 관련된 혐의에 대해선 하급 법원이 해당 행위들이 공적인 것인지 판단해 면책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에게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에 대한 의회 인증을 막으라는 압력을 가한 혐의에 대해선 일단 추정적 면책이 적용되는 것으로 판단했지만 이에 대한 기소가 행정부 권한과 기능을 침해하는지를 하급 법원이 살핀 뒤 결정해야 한다고 봤다.
지난해 8월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로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행위는 퇴임 뒤에도 면책특권 적용 대상이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해석을 의뢰했고 1·2심 법원은 트럼프 대통령 쪽 주장을 기각했다.
진보 대법관 3명은 다수 의견에 격한 반대를 표명했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거의 30분 간 이어진 반대 의견 낭독을 통해 "법원이 사실상 대통령 주위에 무법지대를 만들었다"며 "모든 공권력 사용에 있어 대통령은 이제 법 위에 군림하는 왕이 됐다"고 맹비난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 따르면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그의 공적 권한을 사용하면 형사 기소로부터 보호될 것"이라며 "해군 특수부대(Navy’s SEAL team 6)에 정적을 암살하라고 명령한다면? 면책. 권력 유지를 위해 군사 쿠데타를 조직한다면? 면책. 사면을 위해 뇌물을 받는다면? 면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대법원 결정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겐 지난주 첫 방송 토론 뒤 고령 이미지가 강화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후보 사퇴 압박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또 한 번의 호재다.
우선 대법원이 선거 전복 시도 사건 혐의에 대해 하급 법원이 면책 여부를 판단하게 해 해당 혐의에 대한 재판이 대선 전 열릴 가능성은 더 멀어졌다. <로이터> 통신은 미 조지타운대 법학 교수인 에리카 하시모토가 "법원의 의견과 그 적용 방식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대선 전 재판이 열릴 가능성은 없다"고 전망했다고 전했다.
더불어 대법원이 전임 대통령 면책 주장을 일부 수용한 이유로 정권이 바뀐 뒤 정치적 보복이 일어날 가능성을 들며 지난 5월 뉴욕에서 유죄 평결을 받은 혼외 성관계 입막음 돈 지불을 위한 사업 기록 조작 사건을 포함해 4건의 형사 기소에 대해 모두 바이든 정권에 의한 정치적 박해를 주장하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 쪽에 힘이 실리게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법원 결정 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헌법과 민주주의를 위한 대승"이라며 자축했다. 그는 대법원의 "역사적 결정"에 유죄 평결을 받은 뉴욕 사건이 포함된다며 자신에 대한 "조 바이든의 마녀 사냥"을 종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에 대해 제기된 "가짜 사건들"은 "조 바이든의 정적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AP> 통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 쪽이 대법원 판결 몇 시간 만에 뉴욕 법원 유죄 평결을 뒤집으려 시도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자사가 입수한 서한에 따르면 트럼프 변호인단이 해당 사건을 맡고 있는 후안 머천 판사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며 해당 판결이 뉴욕 사건에 미칠 영향을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오는 11일로 예정된 형량 선고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미 ABC 방송도 트럼프 쪽 변호인단이 뉴욕 사건 재판 과정에서 배심원단이 이번 대법원 결정에 의하면 면책권이 적용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증거를 봤기 때문에 평결이 폐기돼야 한다는 취지의 서한을 머천 판사에게 보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통해 대법원 판결을 강하게 규탄했다. 그는 "미국엔 왕이 없고 우리 모두는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도, 미국 대통령조차 법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며 "오늘 대통령 면책권에 대한 대법원 결정으로 이것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오늘 결정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제한이 사실상 없다는 것을 거의 확실히 의미한다"며 대법원이 "법치를 훼손"하고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를 포함해 모든 대통령은 이제 자유롭게 법을 무시할 수 있다"며 "이제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언제든 더 대담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미국 국민은 그에게 다시 한번 대통령직을 맡길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