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성관계 입막음 돈 관련 형사재판에서 30일(이하 현지시간) 전·현직 미 대통령 중 처음으로 유죄 평결(배심원단의 유·무죄 결정)을 받았다. 이번 평결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층이 대거 이탈할 것이라는 전망은 크지 않지만 부동층 표심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앨빈 브래그 뉴욕 맨해튼 지검장은 이날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 뒤 기자회견에서 "피고인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선거를 부패시킬 계획을 감추고자 사업 기록을 위조한 34건의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2006년 포르노 배우와 가진 혼외 성관계 전력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헨을 통해 해당 배우에게 13만달러(약 1억8000만원)를 지불하고 이를 은폐하려 사업 기록을 조작한 것과 관련해 34건의 중범죄 혐의로 지난해 3월 전·현직 미 대통령 중 처음으로 형사 기소됐다.
사건 수사와 기소를 주도한 브래그 지검장은 이날 회견에서 "이 피고인(트럼프)은 미국 역사상 다른 어떤 피고인과도 달랐"지만 이 사건이 "모든 다른 사건과 똑같은 방법"으로 "두려움이나 호의 없이, 법과 사실에 따라" 다뤄졌다고 강조했다.
이날 앞서 뉴욕 주민 1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이틀간의 심의를 마친 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제기된 34개의 혐의 모두 유죄라고 판단했다. <AP> 통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평결문이 낭독되는 동안 무표정하게 아래를 내려다 보며 앉아 있다가 낭독이 끝나자 배심원단을 바라봤다고 전했다. 이번 유죄 평결에 대한 1심 형량 선고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될 예정인 공화당 전당대회 4일 전인 7월 11일에 이뤄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평결 뒤 법정 밖에서 기자들에게 행한 짧은 연설에서 "나는 결백한 사람"이라며 재차 무죄를 주장하고 유죄 평결을 내린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는 "조작된 재판"이며 "진짜 평결은 11월5일(미 대선일) 국민들이 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실형을 선고 받을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 평결을 받은 34개 각 혐의엔 최대 4년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미 NBC 방송은 전 연방 검사인 척 로젠버그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고령의 초범임을 고려할 때 "어떤 형태로든 감금형이 선고된다면 매우 놀라울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보도했다.
투옥 대신 보호관찰, 가택 연금 등이 선고될 수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항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처벌이 유예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변호인 윌 샤프는 유죄 평결 뒤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대한 빨리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항소는 7월11일 선고 뒤 제기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 유죄 평결이 대선 판도를 뒤흔들지 주목된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직에 중범죄자 출마를 제한하고 있지 않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전히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정치분석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가 대선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 평균을 낸 결과 30일 기준 트럼프 전 대통령(41.2%)이 바이든 대통령(39.5%)을 1.7%포인트(p) 앞서고 있다.
유죄 평결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존 지지층이 대거 이탈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이달 5일 공개된 ABC-입소스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 중 이번 사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를 받을 경우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밝힌 응답자는 4%에 불과했다. 이에 더해 16%만이 지지를 재고하겠다고 했고 대다수인 80%는 지지를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 캠프는 이날 유죄 평결이 나온 뒤 "너무 많은 미국인들이 기부를 위해 움직여" 기금 모금 웹사이트가 다운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공개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등록 유권자의 64%가 이번에 유죄 평결이 내려진 혐의를 "심각하다"고 보고 있어 전체 유권자로 범위를 넓히면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조사에서 유권자들은 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형사 기소된 2020년 대선 결과 전복 시도 등 다른 세 형사 사건의 심각도를 더 높게 봤지만 다른 사건들은 대선 전에 선고를 기대하기 어렵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에 더해 이번 유죄 평결이 아직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했거나 제3의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짚었다. 제3의 후보는 선거 막바지가 되면 유권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유권자들은 결국 양당 후보 중 하나를 택하게 되는데 이 때 이번 평결이 변수로 꼽힐 수 있다는 것이다.
파이브서티에이트에 따르면 30일 기준 제3의 후보인 무소속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후보에 대한 지지율 평균은 10% 가까이 돼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 격차를 크게 웃돈다.
간호사이자 텍사스 유권자인 스티븐 가너(24)는 <AP>에 자신은 아직 11월 대선에서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않았지만 이번 평결이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번 평결 세부 사항을 자세히 살펴볼 예정인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은 법원 시스템에 크게 신경쓰지 않거나 관련해 그(트럼프)에게 동의하는 이들"이라며 유죄 평결이 이미 마음을 정한 유권자들을 크게 흔들 것으로 보진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재판이 정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말을 아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SNS)에 이번 평결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 집무실에서 쫓아낼 유일한 방법은 투표 뿐"이라며 선거 자금 기부를 촉구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이언 샘스 백악관 대변인도 "우리는 법치를 존중하며 추가 논평은 없다"고만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