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KBS)·문화방송(MBC)·한국교육방송공사(EBS)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방송3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가운데, 언론학계가 공영방송 이사진 외부 확대 및 증원이 공영방송의 정치 독립성을 보장하기보다는 "정치적 후견주의의 온상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인권센터는 28일 서울 중구 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22대 국회의 언론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제76차 언론인권포럼을 열었다.
포럼은 정인숙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의 사회로, 조항제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의 발제 후 토론으로 진행됐다. 토론에는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김경환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강사, 김성순 변호사,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참여했다.
이날 토론회는 시작부터 현행 9~11명인 공영방송 이사회를 21명으로 늘리는 안에 대한 문제 제기가 쏟아졌다. 지난 25일 법사위를 통과한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 수를 21명으로 늘리되 정치권 추천 5명 외에 16명은 미디어 학회, 피디 등 직능단체, 각 방송사 시청자위원회가 추천하게 하자는 내용이다.
발제를 맡은 조항제 교수는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의 원칙은 정파적이거나 친기업적인 걸 배제하고 공공성을 수용하는, 특권과 사익을 배제하고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면서 "여야 이사회 구성이 KBS는 7대 4, MBC는 6대 3으로 다수결 결정이다. 이 결정이 임명권자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는 형태의 다수결이기 때문에, 정치적 후견주의의 온상이 된다. 결국은 정치가 후견인이 되고 방송이 정치의 지시를 받는 피후견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민주당은 유관성과 전문성에 기초해서 추천권을 부여하고, 달리 이야기하면 정치권을 배제할 수 있는, 시청자위원회 같은 곳이 사회 각계를 조금은 대변하지만 다 대변하지 못한다"면서 "(이사회 구성이) KBS나 MBC 경영 전반을 감시하는 감시기구라기보다는 방송에 대한 자문위원회 성격이 더 강하다"고 지적했다.
강형철 교수는 "KBS 이사회의 경우 중요한 의사결정 기구(executive community)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사 21명을 언론단체가 추천하고 시민단체가 추천하고 해서 똑같이 맞춰서 하는 게 모양상으로 좋을 것 같지만 현실에서 그렇지 않다"며 "지금 방송3법은 이사회만 바꾸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공영방송 이사회는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꼬집었다.
김경환 교수는 "이사회가 21명이 되면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될까? 아니다"라면서 김용원·이충상 인권위원의 전횡으로 매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한 명이라도 (회의에서) 이렇게 하면(인권위 위원들처럼 하면) 이사회 30명이 있어도 (회의) 분위기가 싸늘해진다"고 덧붙였다.
그는 공영방송 이사회 증원이 현실화 되면, "(각계 인사 30명으로 구성된)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처럼 논의를 해도 결론은 나지 않는, 결론이 도출되지 않은 데 대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형태로 운영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토론회 참여자들은 특히 민주당이 방송3법을 독주하며 속도전으로 진행하고 있는 데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김동원 강사는 국민의힘을 협의 테이블로 끌어와야 한다며 '공영방송법'으로 논의를 확대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방송법 등 관련 조항을 위한 특별위원회, 한시적인 특위를 만들어서 '특위 활동 기간에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계획을 연기하자'라는 식의 정치적인 협상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이론이나 정책보다는 정치적 판단과 정치적인 협상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언론중재법은 허위·조작 보도(가짜뉴스)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 2021년 9월 여야 간 접점을 찾지 못해 결국 국회 본회의 상정이 철회됐다. 하지만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 달 30일 방송3법과 함께 언론중재법을 재발의했다. 이에 언론 및 시민단체에서는 '끼워 팔기' 꼼수라고 비판했다.
강형철 교수는 "방송3법과 언론중재법이 똑같다고 보고 있다"며 두 법안 모두 정권의 언론 장악을 강화시키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항제 교수도 '언론 개혁을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마라"면서 "어떤 면(언론의 자유)에서는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다. (정권이) 언론을 장악할 뿐"이라고 했다.
이준웅 교수는 "(진보 성향의) 언론을 상대로 남용될 게 너무 자명하기 때문에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같은 시민사회단체가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언론 예외 조항을 선언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징벌 손배 추진에서 언론 조항은 제외한다'는 문구를 구체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이어 "언론중재법 (논의가) 비대해 지면서 포털 쪽에서도 포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이러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새로운 지옥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발언의 자유를 만드는 법을 만들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순 변호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현행 위자료 손해배상 산정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언론 쪽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가 소속된 민변은 지난 2021년 8월 당시 '언론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와 같은 입장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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