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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발전소가 폐쇄된다고 노동자들의 삶까지 폐쇄될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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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석탄발전소가 폐쇄된다고 노동자들의 삶까지 폐쇄될 순 없습니다"

[인터뷰] '제1회 정의로운 전환 어워드' 수상자 '정태모'

"태안 화력발전소는 27~8년간 일한 추억이 지금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한테는 '애물단지' 내지는 '지구의 운명을 위협하는 악당'이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다는 걸 생각 못해서, 그런 오해를 하는 거다.

지구를 생각하고 우리 모두를 생각해 발전소를 폐쇄해야 하는 건 맞다. 그렇지만 그 안에 있는 노동자의 삶까지 폐쇄해야 하나. 노동자의 삶은, 일자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이재백 씨와 김영훈 씨를 18일 서울 마포의 한 책방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이날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녹색연합·프레시안이 공동 주최한 '제1회 정의로운 전환 어워드' 수상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

이 씨는 1996년 한국전력 입사 후 줄곧 발전소 노동자로 살았다. 지금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산업 노조 부위원장으로 서부발전본부장도 맡고 있다. 김 씨는 발전소를 일터 삼은 지 8년 차인 2차 하청업체 노동자로, 태안에서 나고 자랐다. 2021년 하청업체로는 처음으로 노조를 만들었으며, 현재 KPS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이다.

나이도 이력도 차이가 있는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정.태.모. 정태모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태안 화력발전 노동자 모임'의 줄임말이다. 2022년 9.23 기후정의행진을 계기로 그해 10월 6일 만들어진 정태모는 발전소 폐쇄 및 기후위기와 같은 현안에 대응하기 위한 노조 간 연합체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초월한 모임이다.

▲ 김영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KPS 비정규직지회 지부장(왼쪽)과 이재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오른쪽). 두 사람은 '정태모'(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태안 화력발전 노동자 모임)라는 노조 간 연합체에서 활동하며 발전소 폐쇄와 그로 인한 고용 문제에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프레시안(이명선)

김 씨는 정태모 결성 후 동료 노동자들에게 기후위기에 따른 발전소 폐쇄 소식과 그에 따른 일자리 및 인구 감소,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사실 등 변화를 알리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발전소 폐쇄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였다. 3000명 노동자 대부분이 몰랐고, 발전소 안에서부터 이를 알리기 시작했다. 발전소가 여의도 면적 크기지만, 몇 개월이면 충분했던 것 같다.

발전소 폐쇄가 단순히 발전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현안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에 더 많은 힘이 모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태안 지역민들에게도 알리기 시작했다. 태안 터미널 앞에서 캠페인도 하고 홍보물도 나누어주면서 발전소 노동자의 문제가 곧 지역의 문제라는 걸 강조했다."

'탄소중립 2050 계획’에 따라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 59기 중 28기가 2036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된다. 지난해 1월 발표된 전력수급기본계획(10차)에 따르면, 내년인 2025년에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1·2호기가, 2028년에 3호기, 2029년에 4호기, 2032년에 5·6호기가 순차적으로 폐쇄된다.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 용역 결과, 발전소 폐쇄로 태안은 11조900억 원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을 볼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2020년 12월 보령화력 1·2호기가 폐기된 뒤 보령시는 인구 10만 명이 붕괴되는 등 직접적인 피해를 겪고 있다.

김 씨는 노조 차원에서도 발전소 폐쇄에 따른 대응을 고민해 왔지만, 2017년 처음 발전소 폐쇄 얘기가 나올 때만 해도(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고 했다.

"누군가가 '발전소 폐쇄된다는데 대책이 뭐냐?'라고 노조 지도부에게 대책을 요구했었는데, 그때 비로소 알았다. 기후 위기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그래도 당장이 아니라 7~8년 뒤 2025년의 일이라고 하니까 여유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엔 지도부도 노동자들도 절박함은 크지 않았다."

변화에 따른 적극적인 행동은 정작 노동자들에게서 나왔다. 석탄 및 온실가스에 대한 인식, 기후위기의 심각성, 상황에 따른 대응 및 대안을 공부하고 토론하며 '노동운동'을 '기후운동'으로 확대해 나갔다.

"작년 9.23 기후정의행진을 앞두고 모였는데, 충남에 석탄화력발전소가 많이 모여 있으니까 충남만의 결의를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 끝에, 12월 말 제안서가 나왔다. 이걸 계기로 기후 활동가들도 적극 결합했다.

처음에는 300명 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 하여튼 조직마다 동네마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목소리를 키우고 힘을 모으다 보니 1000여 명 규모로 커졌다. 그렇게 '3.30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이 이뤄졌다."(이재백)

지난 3월 30일 태안 시내는 석탄이 묻은 방진복을 입은 노동자와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의 삶은 멈출 수 없다'는 손팻말을 든 시민들로 가득 찼다. 전국 151개 단체 및 1000여 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은 '석탄화력 폐쇄하고 공공재생 에너지 확대하라!'라는 현수막을 필두로 1000여 명이 태안군청에서 한국서부발전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행진 중간중간에 '다잉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정태모가 벌인 일이었다.

▲ 정태모에서 만든 1호 소식지 갈무리. ⓒ정태모

이들은 노동자들이 정의로운 전환에 목소리를 내는 건, "절박하기 때문"이라며 "발전소에서 일하는 단 한 명의 노동자도 해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021년 7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에 따른 전환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고용 안전망 강화를 추진했다며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을 발표했지만, 직무전환 교육을 확대하겠다는 선언 뿐이다. 그나마도 하청업체 비정규직에 대한 대책은 없다.

정태모 활동을 통해 어떤 변화가 있었냐는 질문에 김 씨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옆 자리 사람들이 발전소 폐쇄 얘기를 하는 걸 들었다"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옆 자리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발전소 폐쇄 얘기를 하고 지역 상점 얘기를 하는 걸 들으면서 '그래도 우리가 좀 많이 알리긴 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얘기 들으면서 '진짜 우리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도 하게 됐다.

태안 시내는 어느 정도 알렸다고 생각되지만 시내 외 다른 지역 지역민들에게는 아직 '정의로운 전환'이 왜 필요한지를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키워서 군의회에, 충남도의회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이 씨는 노동 조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한편 자본의 편에 선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우리가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출발했지만, 결국은 '지구인'으로 지구 환경을 생각 안 할 수 없다. 정의로운 전환 문제와 기후위기 문제를 헤쳐 나가는 게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노동자와 환경론자의 구분 없는 연대 투쟁 속에서 행정력을 가진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도 정부는 노동자를 위한 대책을 알고 있다. 노동자들이 힘이 없으니까,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일방적으로 자본을 위한 정책만 펼치고 있다.

노동자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 중심이 서야 그 옆에 지역 주민도, 시민도 함께할 수 있다. 그렇게 같이 정의로운 전환을 얘기하다 보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본다."

김 씨도 정의로운 전환에 있어서는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현안에 있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 노동자와 시민을 구분 지을 필요도 없다. 어쨌든 대한민국 모두의 문제다. 다 같이 한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불볕 더위와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때 아닐까. 광주만 하더라도 역대 6월 중 두 번째로 더운 날이라고 하고 그리스 등 유럽은 6월 중순에 이미 40도가 넘었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피부에 와닿는 기후위기이고 우리 실생활과 떼려야 뗄 수는 없는 전기와 관련된 문제니까 정의로운 전환에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주면 좋겠다."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모두에게 '정의로운'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개념이다.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지역과 산업을 지원하고 노동자와 중소상인 등 일자리를 잃거나 낙오되는 이들이 없도록 한다는 취지다. 2015년 파리협정 전문에 포함된 용어이자 국회가 2021년 9월 제정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도 정의로운 전환이 명시되어 있다.

▲ 김영훈 지회장(왼쪽 두 번째)과 이재백 부위원장(왼쪽 세 번째)은 인터뷰 후 '제1회 정의로운 전환 어워드' 시상식 및 토크쇼에 참여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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