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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시대정신(Zeitgeist)과 사모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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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시대정신(Zeitgeist)과 사모펀드

[김영수의 사모펀드 이야기] <9>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말은 철학자 헤겔이 유행시킨 단어로, 단순한 유행이나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서 그 시대의 가치관, 사고방식,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빅토리아 시대의 시대정신은 엄격한 도덕률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가 특징이었고, 1960년대의 시대정신은 자유와 평등, 반문화 운동이 중심이었다. 현대의 시대정신은 디지털 혁명과 지속 가능성을 대표한다.

지난 100여년 간 별로 사용되지 않았던 '시대정신'이라는 개념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8-2009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때였다.

이 시기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전 세계 선진국에서 일어났다. 이 운동은 목표와 주체가 명확하지 않고 구호도 통일되지 않아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현재 경제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부란 무엇이며,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고, 기존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신자유주의 등 틀에 박힌 해답들이 모두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진 슈퍼스타 그룹이 등장하는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존엄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예를 들어, 초강대국 미국에서마저 파산 가구의 절반이 의료비 문제가 원인이라는 말도 나왔다.

부유함 속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아껴 쓰는데도 왜 계속 가난에 허덕여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정치인과 경제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비주류 경제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데이비드 그래버(David Graeber)는 그의 저서 '부채: 그 첫 5000년(Debt: The First 5000 Years)'에서 '부(돈)'는 누군가에 대한 채권이고, 그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부채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의 부채가 통화인 것처럼, 부가 늘어나면 누군가의 부채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즉, 지난 5000년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빚’이라는 이야기를 이 저자는 하고 있는데…

관련하여 필자 자신의 주장을 좀 전개하자면, 많은 부자가 출현하면 사회는 필연적으로 채무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부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재화와 자산이 집중된다는 뜻이며, 그 결과 부를 축적하지 못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 채무자들은 빚을 내어 사업을 시작하고, 성공적으로 이윤을 창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빚을 갚기 어려워져 불량채무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들은 경제적 자유를 잃고,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실질적인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불균형이 심화되면, 사회는 결국 붕괴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유대 민족을 포함한 중근동의 문명권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권을 탕감하거나 면제하는 제도를 정기적으로 시행해 왔다. 예를 들어, 희년을 선포하여 50년이나 70년 주기로 채무를 면제하면서 문명의 정체성을 수천 년 동안 유지해왔다. 그러나 로마 제국 시대, 특히 신약 성경이 쓰여지기 시작한 즈음부터 인류는 더 이상 희년을 선포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특히 네로 황제 때부터 금이 본격적으로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인간의 무한한 탐욕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비인간적인 방법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로마 문명권은 외부에서 노예를 공급받는 것뿐만 아니라, 채무/채권의 제도를 통해 시민들 사이에서도 노예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최초의 문명권이었다.

필자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로마적 시대정신’이라고 부른다. 이는 무희년(무용서/무관용), 무한한 탐욕, 금의 무한 축적, 그리고 타인의 무한한 노예화가 그 특징이다. 이러한 로마적 시대정신은 로마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체로, 이후 미 대륙과 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로 퍼지면서 지금은 지구상에서 절대적인 보편적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았다. 21세기는 이러한 시대정신 아래에 있는 사회들이 뿌리부터 붕괴되기 시작하는 시점이며, 우리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탄생하고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점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로마제국의 전성기와 거의 동시대에 탄생한 기독교에서는 로마에서 이러한 독특한 시대정신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포착하고, 로마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이 세대의 패턴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했다(로마서 12:1).

필자가 보기에, 로마적 시대정신에 억눌려 실질적인 노예 상태에 빠져가는 세대가 이를 거부하는 수단이 바로 출산율 저하이다. 출산율 저하는 기본적인 존엄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불공평한 사회에 대한 인간의 최후의 방어수단이자, 전 세대를 걸쳐 드러내는 항의의 표현이다.

자유를 꿈꾸는 노예들이 적어도 후손에게는 자유를 누리게 하고 싶어 자유의 나라로 도피하는 것이 원 출신국에 대한 판결이라면, 현재 전 세계를 지배하는 무자비하고 불공평한 시대정신에 대한 판결은 다음 세대를 이 체제의 노예로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바로 출산율 저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집단적 자살이며, 사회 구조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저항이다.

미국의 경우, 빈곤층조차도 자신이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뿐, 곧 부자가 될 것이라는 사회적 세뇌로 인해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진국 이상의 국가에서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중세 흑사병 직후 15세기 유럽이 경험한 상황과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가 약 1/3 감소한 후,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은 분쟁이 발생한 재산 문제를 처리한 변호사들이었다고 한다. 순식간에 사망하는 질병으로 인해 유언을 남길 겨를도 없이 사망한 사람들이 많았고, 후손도 함께 사망한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해 공중에 떠 있는 재산이 많아졌고, 이를 처리하는 변호사들이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2024년 현재 사모펀드의 가장 큰 황금시장이 "기업 후계 문제 해결 서비스 제공"이라고 확신한다.

기업은 결국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다. 사람은 늙고, 결국 죽는다. 그렇다면 기업에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자손이 없거나, 자손이 있어도 부모가 하던 사업을 하기 싫어하거나, 혹은 적합한 능력이 없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자나 양녀를 들이는 경우도 있다. 2024년 현재 일본에는 후계자가 없어 고민하는 고령의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가 150만 개에 달한다.

미국과 독일에서도 소유자 및 최고 경영자의 고령화가 이미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사람은 늙고, 결국 죽는다. 그렇다면 내가 하던 기업은 어떻게 될까? 대책이 없는 걸까?

세대중첩모델(Overlapping Generations Model)에 따르면, 인간은 대개 자신이 설마 죽겠는가 하고 살아가며, 막상 죽음이 임박해도 이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때 잉여 재산을 남기게 되고, 이는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후계 계승 계획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에도 이러한 상황에 처한 기업이 많다.

기업 승계 전문가 김선화 씨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후계자가 없어 폐업하는 중소기업이 연간 7만 곳에 달하며, 그 중 상당수의 알짜 기업들이 중국에 헐값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면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사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좀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매년 7만 개의 사장 자리가 새로 나온다는 점을 명심하고, 열심히 노력하길 바란다.

기업의 승계나 후계를 돕고 상속세를 낼 자금을 마련하며, 그 다음 단계로 회사의 도약을 돕는 사모펀드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모펀드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다. 첫째, 한국의 일부 스타 사모펀드처럼 규모를 크게 키우며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려는 방식이다. 둘째, 미국 중서부의 지역형 사모펀드처럼 규모를 키우지 않고, 잘 아는 분야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후자 스타일이 기업 후계 문제 해결에 적합한 사모펀드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후계나 상속을 위한 사모펀드를 운영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이러한 상황에 처한 기업들은 대개 장부가 정확하지 않다. 부정직하게 장부를 작성한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는 장부상의 실적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을 수도 있고,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부외부채가 많을 수도 있다. 이는 기업 승계나 상속을 돕는 사모펀드 업무에서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실사를 철저히 해야 하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작은 기업의 경우 실사 비용을 과도하게 지출할 수 없으므로, 저렴하게 실사를 할 수 있는 유능한 실사팀이 필요하다.

둘째, 이미 사양산업에 들어가 있거나 성장 잠재력을 모두 소진한 기업들도 많다. 기업도 생명 주기가 있어 경제적 생명을 다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기업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내가 잘 아는 분야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좋다. 기계나 화학 분야에서 독점적 위치를 확보한 기업이나 안정된 고객을 가진 기업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반면, IT 분야는 권하고 싶지 않다.

셋째, 대부분의 이러한 기업들은 인력, 특히 고위직 인력 충원이 어렵다. 내부 승진으로 고위직 업무를 감당할 사람이 없으며, 외부에서 유능한 경영자를 영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오너가 은퇴하거나 사망하면, 좋은 직원들이 이직할 가능성도 크다. 업계의 경쟁사 간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두는 것이 유리하다. 필자의 경우, 과거 사모펀드를 운영하면서 호텔 인수 합병 후 경영 개선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경쟁 호텔 간부들과 친분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통해 커리어를 발전시키고자 했고, 덕분에 나는 질 좋은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었다.

넷째, 대부분의 오너들은 일인 독재식 경영을 해왔고, 카리스마가 강하다. 이러한 오너에게 상당한 지분이나 발언권을 남겨두면, 심각한 의견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전 경영자의 도움을 받는 것은 필요하지만, 심한 의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처음부터 단계적으로 퇴진을 준비해야 한다. 특정 시점에 오너의 지분을 인수하는 옵션을 고려할 수 있다.

다섯째, 후손들 간의 상속 재산 분배에 관한 분쟁은 거의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유류분 분쟁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유서와 가족들의 동의가 있어도, 나중에 재산 분배에 대한 재논의가 일어나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상장되지 않은 기업의 가치를 계산하는 것은 복잡하며, 분쟁이 시작되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준비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를 피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이미 회사에서 5-10년 동안 일하며 임직원의 신망을 얻은 자손이 있고, 회사의 전망도 밝으며, 자손이 회사를 키워보고자 하지만 상속 자금이 부족한 경우, 사모펀드로 승부를 걸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후계 도우미 프로젝트는 보통 5년 정도 걸리며, 사모펀드 프로젝트의 수명도 보통 5년이라는 점에서 기간이 일치하는 이점이 있다.

기업 오너가 직접 후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수명을 과대 평가하는 경향과 더불어, 중간 규모의 동물원을 경영하는 주인이 직접 정육점화를 하거나 사파리 파크로 발전시키기는 어려운 것과 같다. 산업 전체가 이러한 선택을 앞에 두고 있다면, 제3자가 나서서 그 일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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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미국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캐나다 앨버타 상과대학 금융학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도요타그룹 등을 거쳐 현재 캐나다에서 당뇨병치료제품을 만드는 Eastwood Bio-Medical Research Inc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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