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 중진 유승민 전 의원에게 "감세 중독"이라는 비판을 듣는 장면이 연출됐다. 민주당의 기조가 증세와 확장재정이고, 감세는 보수진영의 신념에 가까운 점을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된 셈. 유 전 의원은 KDI 교수 출신으로 경제 전문가로 꼽힌다.
유 전 의원은 3일 SNS에 쓴 글에서 "2023년 국세수입은 예산 대비 56.4조 원 줄었고, 2022년 실적 대비 51.9조 원 줄었다. 올해 1~4월 국세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4조 원 또 감소했다"며 "2024년에도 세수 펑크, 재정적자가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인데도 윤석열 정부는 감세 페달을 더 세게 밟으려 한다"고 우선 윤석열 정부를 비판했다.
유 전 의원은 "지난 2년간 법인세 인하, 종부세 인하, 가업상속공제 확대, 세액공제 확대를 해온 결과, 감세 효과는 시행 후 5년간 70조 원의 세수 감소로 추정된다"며 "그런데 지금도 금투세 폐지, 상속증여세 인하, 종부세 폐지를 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유 전 의원은 이어 "민주당에서 '종부세 폐지'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민주당도 '감세 중독'에 전염된 모양"이라며 "맨날 부자감세, 세수 펑크를 비난하던 민주당에서 총선 압승 후 '증세' 얘기는 한마디도 안 나온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표는 전 국민에게 25~35만 원 주겠다고 큰소리친다"고 꼬집었다.
유 전 의원은 "윤석열 정부도, 여도 야도 세수가 펑크나고 재정적자, 국가부채가 악화되는 상황은 눈에 안 보이는 모양"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불경기로 세수 펑크가 심각한 이 때 계속 감세만 외치면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쳐서 보유세를 재산세로 단일화하자', '종부세의 불합리한 부분을 고치자', '중산층의 상속증여세 부담을 합리적으로 줄여주자', '법인세를 낮춰서 기업투자를 유도하자' 등 다 타당한 말이고 언젠가는 해야 한다. 그러나 감세도 때가 있는 법"이라며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가뜩이나 세수가 줄어드는 마당에 계속 감세만 외쳐대면 윤석열 정부나 민주당이 약속한 수많은 사업들은 무슨 돈으로 할 것이며, 복지는 무슨 돈으로 할 것이냐"면서 "감세도 도그마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민주당이 총선 후 '종부세 완화' 가능성을 언급하자, 대통령실과 세정당국도 종부세·상속세 개편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 정부, 종부세 '다주택 중과' 손질…상속세도 완화?)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금투세 폐지 입장을 재강조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이복현 "금투세 시행시 해외주식 쏠림 심화, 단기매매 촉발")
그러나 기재부 안팎에서는 올해 역히 10조 원대 세수 결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 기사 : 종부세·금투세 깎아주자더니…2년 연속 세수 '펑크' 가시화)
민주당은 앞서 박찬대 원내대표, 고민정 최고위원 등 지도부 인사들로부터 종부세 등 부동산 세제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말이 나와 눈길을 끌었으나, 5월 말경부터는 '속도 조절론'이 나오며 사실상 내놓은 주장을 거둬들이는 모양새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불교방송(BBS) 라디오에 나와 "서울 지역에 있는 아파트 부동산 가격이 워낙 오르다 보니까 이걸 조정해 줄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있었고, 여론을 받아서 부분적으로 수정할 건 수정하고 잘못된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면 바꿔주는 것이 정당의 역할 아니겠느냐"면서도 "지금은 타이밍은 아닌 것 같다. 민생 회복, 국정 기조 전환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민주당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어느 정도 선행돼서 해결돼야 될 문제가 아니냐"고 했다. "종부세는 추후에 논의될 문제"라는 것이다.
박 수석부대표는 "국정 기조 전환, 또 민생회복지원금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적"이라며 "종부세는 지금 여러 논의들이 있지만 추후에 민주당 안에서 종합적인 채널을 통해서 한번 검토할 단계는 분명히 있을 것 같지만 지금 단계는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다.
당 내에서도 종부세 문제를 건드리는 데 대해 비판이 나오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같은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실이 앞장서서 종부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를 추진하는데, 사실은 정부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지금이 그럴 때인가"라며 "1분기 관리재정수지를 보면 적자 폭이 75조 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종부세도 폐지하고 상속세도 완화하면 세수가 더 줄지 않나"라고 유 전 의원과 거의 흡사한 지적을 했다.
최 의원은 "민주당의 경우도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나서서 '나는 종부세 폐지다', '민주당이 이념 정당에서 탈피해야 된다' 이럴 일이 아니고,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을 주도하는 게 지도부가 아닌가 싶다"며 "지금은 채해병 특검과 민생 지원을 위한 입법을 서둘러야 될 때라고 본다. 이것(종부세)을 이 시기에 의제화하는 것에 대해서, 좀 아까 정부·여당이 종부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하는 것과 같이 정치 타이밍을 잘못 맞춘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도 연일 민주당을 겨냥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2일 "부자감세로 조세수입이 감소해서 복지 지출이 축소되었다고 비판한 민주당이 이제는 앞장서서 부자들 세금 깎아주기에 나서고 있다. 윤석열 정부나 국민의힘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관련 기사 : "부자감세 앞장서는 민주당, 국민의힘과 뭐가 다른가")
3일에는 청년, 세입자, 주거시민단체로 구성된 주거권네트워크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부세 폐지·완화를 주장하는 거대 양당을 규탄한다는 취지의 회견을 열었다.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세입자114 센터' 센터장 이강훈 변호사는 회견에서 "2022년 119.5만 명이던 종부세 납부자는 2023년 41.2만 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윤석열 정부가 이렇게 종부세 대상자를 축소하다 종국에는 폐지시키려는 것이 아닌지, 많은 시민들이 우려를 하고 있다"며 "거대 양당이 부자감세에 앞장서다가는 무주택 서민들에게 거센 역풍을 맞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종부세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부동산 과다 보유자의 이익을 대변해왔기에 (이들의) 종부세 개악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나, 민주당은 '민생을 챙겨야 한다',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정당이 종부세 개악을 언급한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며 "개악 시도를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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