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기사들도 최저임금 보장받나…계산기 두드리는 플랫폼들(24.05.24 매일경제)
"뉴욕처럼"...배달라이더도 최저임금 적용 가능할까 [전민정의 출근 중](24.05.25 한국경제)
경제신문들이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비슷한 시점에 내보내는 일이 종종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논의가 시작되면서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첫 전원회의에서 노동자위원들은 배달 라이더 등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이날 안건이 상정되었으므로 앞으로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그동안 최저임금제도 밖에 있으면서 저임금에 시달렸던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적용 여부와 그 적용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매일경제>는 "배달 플랫폼들도 관련 논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배달 라이더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소개했다. 법적 근거란 최저임금법 5조 3항이다.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해져 있는 경우로서 시간급 최저임금을 정하기가 적당하지 않으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 <매일경제>는 "그동안 사실상 사문화됐기는 하나 현행 법 체계 내에서도 '시간당 최저임금 1만 원'이 아닌 ‘음식배달 1건당 최저 3000원’과 같은 형태로 최저임금을 정할 수는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매일경제>는 배달플랫폼 업계의 입장도 함께 전했다. 현실에서는 라이더의 수요와 공급, 배달 거리에 따라 배달 수수료가 달라지기 때문에 배달 수수료 최저한도가 정해지더라도 "선언적인 의미에 그칠 뿐 라이더들이 체감할 수 있는 소득 증대로 이어지기는 힘든 것 아니냐"는 반론이었다.
<한국경제>는 최저임금 적용범위 확대라는 사안을 보다 자세히 다뤘다. 역시 노동계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최저임금법 5조 3항을 언급했고, 배달노동자의 경우 화물차 기사에게 적용됐던 안전운임제와 같은 형태로 최저임금을 보장하자는 주장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미국 뉴욕시에서 지난해부터 시행된 배달 라이더 최저임금제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한국경제> 기사에 따르면 플랫폼 업계는 플랫폼 노동자 최저임금 도입에 부정적이다. 그런데 그들의 반대 논리는 생각보다 빈약하다. "플랫폼 특고 종사자는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기를 원하는 만큼, 최저임금 산정 기준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컨대 배달 피크 시간에는 배달의민족으로 음식 배달을 하다가, 단가가 낮은 논피크 시기에는 단가가 높은 쏘카 알바 한다던가, 야간 대리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배달, 운송, 대리운전 등은 업종별로 수수료 체계, 수요와 공급 기준 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최저임금 기준을 정하기가 애매하다는 거죠."
애매하지 않다. 왜? 그 이유는 해당 기사의 앞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뉴욕시 사례처럼 노동자의 대기시간을 포함한 시간당 임금 하한선을 정하거나, 건당 임금 하한선을 정하면 될 일이다. 최저임금법 제5조 3항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최저임금법 시행령에 따르면 "해당 근로자의 생산고(生産高) 또는 업적의 일정 단위에 의해" 최저임금액을 정하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매일경제> 기사에도 나온 내용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노동자를 한번 상상해보자. 오후 시간에 쏘카 알바를 하고, 저녁시간대에 음식배달을 하다가 야간에 대리운전을 한다? 업무를 전환하는 정신적 피로도 크고 육체적 휴식도 부족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장기간 일하다가는 몸이 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노동자에게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하기 위해 최저임금이 필요하다(최저임금법 제1조). 산정 방식은? 배달은 배달대로, 쏘카는 쏘카대로, 대리운전은 대리운전대로 건당 최저임금 또는 대기시간을 포함한 시간당 최저임금을 정하면 된다.
그리고 애초에 이 노동자가 이렇게 여러 앱을 껐다 켰다 하면서 일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자. 이 노동자의 일정표는 '자유로운 선택'이라기보다 생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피크 시간에 건당 임금을 높여서 노동자를 불러 모으는 대신 논피크 시간에는 건당 임금을 확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논피크 시간대 임금만으로 어느 정도 생활 보장이 되는데 피크 시간대에 더 얹어주는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논피크 시간대의 임금은 터무니없이 낮다. 단적인 예로 배달의민족은 최근 일부 지역에서 기본배달료를 2000원대로 떨어뜨려 라이더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대리운전의 경우 "10년 전 운임"으로 일하고 있으며 "1시간 일해서 국밥 한 그릇도 못 사먹는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이런 식의 운영은 기업 입장에서는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기 위한 전략이겠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계인 '임금'이 예측불가능하게 변동하는 것이다. 이번 주에 얼마를 벌게 될지 모른다. 피크 시간에 바짝 일해서 돈을 벌어야 생활이 된다. 장시간 노동과 위험 운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플랫폼 노동자 최저임금이 필요하다.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 최저임금 액수는 현재의 논피크 최저금액이 아니라 노동자가 체감할 수 있게 인상된 금액이어야 한다. 대리운전 노동자와 쏘카 핸들러의 경우 콜 대기 시간과 콜을 잡아 이동하는 시간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필요하다. 그런데 플랫폼 기업들은 바로 이런 부분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자의 임금은 최대한 낮게 유지해서 비용을 줄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의 노동자에게도 기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매년 최저임금이 몇 퍼센트 오른다고 떠들썩해도 플랫폼 노동자의 소득은 제자리에 머물렀다. 오히려 플랫폼 기업의 '약관 변경' 같은 일방 통보로 하루아침에 임금 삭감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것은 옳지 않다. 법과 제도를 통해 기업의 욕망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
법과 제도의 적절한 개입의 사례가 <한국경제> 기사에 잠시 언급된 뉴욕시 배달노동자 최저임금일 것이다. 뉴욕시 사례는 국내 언론에도 몇 번 소개된 바 있다.
뉴욕시 배달 라이더도 ‘최저임금’ 보장받는다…한국은?(경향신문 23.06.12)
하루 4시간 일하면 한 달에 300만원…배달라이더 천국된 美도시(아시아경제 23.09.29)
배달앱이 방해·보복해도…라이더 '최저임금' 이뤄냈다(경향신문 24.05.14)
앞의 두 편은 지난해 뉴욕시의 배달 라이더 최저임금 제도가 처음 시행되었을 무렵의 기사들이다. <경향신문>은 "뉴욕시의 결정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전했다. <아시아경제>는 기사 제목에서 뉴욕시가 "배달라이더 천국"이 되었다고 했지만 기사의 본문에서는 "최저임금 적용에 대한 배달 근로자들의 해석은 엇갈리고 있다"면서 배달 주문이 줄어들거나 팁이 없어질 것에 대한 우려를 자세히 소개했다. '천국'은 좋은 뜻으로 쓴 단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뉴욕시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자세한 후속 보도는 <경향신문>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경향신문>은 뉴욕시 배달라이더 최저임금이 지난해 시간당 17.96달러였다가 올해 4월부터 19.56달러로 인상됐고 내년 4월에 또 인상된다고 보도했다. 또 뉴욕시 배달라이더노조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최저임금 시행 이후 앱 기반 배달노동자 전체가 주 평균 1630만 달러를 더 벌고 있다"고 전했다.
NYC delivery workers see pay raise as minimum wage increases (24.04.01 CBS)
Mayor Adams Announces First Annual Increase In Minimum Pay Rate For App-Based Restaurant Delivery Workers (24.04.01 뉴욕시 공식 홈페이지)
Labor Gains: Delivery Workers Say New Minimum Wage Lets Them Ride Safely(24.01.03 STREETSBLOG)
미국의 거리 환경 개선에 특화된 매체인 <스트리츠블로그>에 1월 3일자로 올라온 기사는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뉴욕시 배달노동자들이 속도를 늦추고, 빨간 신호에 멈추고, 도로에서 규칙을 지킬 유인이 생겼다고 전했다. "나는 서두르지 않으면서 돈을 더 많이 벌어요. 예전에는 배달 건수를 최대한 늘려야만 했지요. 이제는 과속하지 않아도 됩니다." 도어대시와 우버 앱을 통해 일하는 알레한드로 그라할레스의 증언이다. 배달 오토바이에 대해 불평하는 시민이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배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면 우리의 도로도 그만큼 안전해질 수 있다.
미국 CBS의 보도와 뉴욕시 공식 홈페이지는 뉴욕시 라이더 최저임금 제도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첫째, 뉴욕시는 라이더 최저임금 제도 시행 이후에도 처음에 했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경향신문>이 보도한 대로 올해 4월 1일에는 인플레이션율 3.15%를 반영해 라이더 최저임금을 시간당 19.56달러로 인상했다. 제도 시행 전과 비교하면 시급이 평균 5.39달러 인상된 셈이다. 미국에는 팁이 있어서 복잡하긴 하지만 팁을 제외한 주급 기준으로 165퍼센트 인상이다.
둘째, 제도 도입 이후 플랫폼 업체들의 꼼수가 나타났다. 플랫폼 업체들은 라이더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되자마자 고객이 팁을 주는 방식을 변경해서 주문이 이뤄진 다음, 또는 배달이 완료된 다음에 팁 선택지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라이더들이 집으로 가져가는 팁의 액수가 크게 낮아졌다. 뉴욕시 소비자노동자 보호국은 이를 묵과하지 않고 플랫폼 업체들의 새로운 팁 정책을 조사하는 중이다.
셋째, 뉴욕시 소비자노동자보호국은 라이더 최저임금 제도가 잘 지켜지는지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한다. 그러기 위해 뉴욕시 배달 시장의 95퍼센트를 점유하는 우버이츠, 도어대시, 그럽헙에게서 데이터를 받아서 분석한다.
뉴욕시의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라이더 최저임금 제도를 시행한 이후에도 주당 주문 건수와 배달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수는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반면 노동자들이 배달 사이에 대기하는 시간은 감소했다. 배달앱들이 노동자 수는 그대로 유지하되 노동자의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뉴욕시 분석에 따르면 소비자와 음식점들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우버이츠, 도어대시, 그럽헙 3개 업체의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배달 건수는 주당 260만 건으로 제도 도입 전후에 변화가 없었다.
넷째, 뉴욕시 당국자들은 노동의 가치를 안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 시장은 지난 4월 1일 라이더 최저임금 인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전화기를 집어 들고 우버이츠로 주문을 하면, 음식의 신이 하늘에서 그걸 내려보내 주는 게 아닙니다. 지금 저의 뒤에 서 있는 이 남성과 여성들에게서 오는 겁니다. (…) 그들은 여러분에게 (음식을) 배달하고, 여러분이 가족을 배불리 먹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그들의 권리를 옹호해서 그들도 가족에게 음식을 먹일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뉴욕시 부시장 미에라 조시는 라이더의 노동 덕분에 "뉴욕 시민이 온종일 신속한 룸서비스를 받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뉴욕시 시의회 대변인은 "우리 시에서 열심히 일하는 헌신적인 배달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의 가치를 반영하는 최저임금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특별한 말들은 아니지만 신선하게 느껴진다.
뉴욕시 당국자들의 언어는 한국 정치인들의 언어와 무엇이 다를까? 배달노동자를 "노동약자"로 규정하지 않고, 노조를 기득권으로 몰지도 않는다. "소비자 부담"이나 "업계의 우려"를 앞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배달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의 배달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도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 노동의 가치에 대한 정확한 인정이 아닐까.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 최저임금 도입 여부를 논의할 때 플랫폼 '업계'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둬도 될 것 같다. 뉴욕시의 3대 배달앱 업체들, 멀쩡하게 영업 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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