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는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며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을 예고했다. 이 기획부처의 핵심 역할은 저출생 원인으로 등장한 '과잉 경쟁'을 개선하는 것으로, 지방균형발전 정책과 사회구조 개혁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기존의 칸막이식 정책 추진이 아니라 교육‧노동‧복지를 아우르는 정책을 수립하고 저출생을 국가 아젠다로 만들겠다는 포괄적 접근은 타당해 보이는 면이 있다. 현재 저출생을 비롯한 인구 변동이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고 있으며 말 그대로 복합적이고 거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 또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시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기획원을 모델 삼아 저출생에 대한 공격적이고 강력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겠다고 하니, 실행력 있는 정부 조직을 통해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의지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제1차 저줄산‧고령사회 기본계획('새로마지플랜') 보완책이 발표되었던 2009년 당시에도 사회경제적 구조 개혁은 중요한 대응 방향이었고, 저출산‧고령화의 원인과 영향이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에 단일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문제설정 또한 등장한지 최소 15년이 지났다. 지난 정부들 역시 '개혁'을 반복적으로 선언해왔다. 사실 신생 부처의 신설 여부는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2005년 '저출산‧고령화기본법' 제정을 기점으로 저출산‧고령화가 이미 지난 20여 년 동안 진영을 초월한 국가 아젠다로 설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사회가 현재까지 사회재생산에 거듭 실패하고 있는가이다. 그 근원에는 '저출산은 국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문제설정에 도전해오지 못한 '국가 역할'의 위기가 있다.
저출생이 위기인가
한국에서 인구재생산 문제는 늘 '국가 위기'라는 불안을 내포하고 있었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인구과잉은 1990년대까지도 경제발전 및 선진국 도약의 불안 요소로 여겨졌고, 이에 따라 인구는 '제한'의 방식으로 조절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정반대로 인구감소로 인한 인구 절벽, 지방 소멸, 축소사회, 국가 소멸까지 이르는 재생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모든 방안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대 정부가 관철해 온 해법의 기조는 사회구조적 개혁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인구 위기의 진원지로는 언제나 '가족 위기'가 호출되었고, 이 위기의 요인은 '저출산'으로 지목되었으며, '출산율 제고'는 인구 위기 대응의 우선순위 목표였다.
'저출산‧고령화기본법'의 목적과 기본이념에 담긴 국가주의, 발전주의, 경제주의적 관점은 저출산‧고령화가 '위기'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전제했다. 가정의 중요성, 혼인‧출산‧육아의 사회적 중요성 인식 및 가족해체 예방을 위한 노력이 명시된 사회구성원의 책무는 전통적인 가족가치관을 강화하는 정책 실행의 근거로 작용해왔다.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출산율 '회복'을 목표로 내세운 참여정부, 그 연장선에서 낙태방지 기조가 뚜렷했던 이명박 정부, '아이가 행복한 사회'를 아동의 권리 확보 관점에서가 아니라 청년세대의 결혼 촉진으로 대체했던 박근혜 정부, 출산율 제고가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질'로 패러다임 전환을 내세웠지만 젠더불평등을 외면했던 문재인 정부의 한계는 바로 이러한 조건에서 구조화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재생산 대응이 기존의 '가족 유지'를 전제하는 한 저출산‧고령화 위기→인구 위기→국가 위기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의 대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우려와 냉소를 오간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현 가족과 출산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없어도 된다고 응답한 기혼여성의 25.3%는 그 이유를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라고 말했다. 자녀 출산‧양육에 대한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더 높게 나왔다는 사실은 여성 자신의 생애전망뿐만 아니라 미래를 포함한 사회전망이 극도로 불안함을 보여준다. 유사한 진단은 이미 쏟아지고 있다. 기존의 저출산 정책들은 비용 편익의 관점에서 결혼‧출산을 둘러싼 경제적 제약요소를 제거하거나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한 연구는 청년층의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이 사회경제적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신뢰 수준, 공정한 기회와 평등의 수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가족 구성과 자녀 양육은 개인 차원의 선택과 행위이지만, 동시에 “사회공동체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사회는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공동체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지금의 초저출생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회재생산 위기의 중핵이다. '새롭게 태어나는 아이부터 마지막 노년까지' 희망차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라고 내모는 사회, 사람이 인간답게 살 만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 지금 대대수 사회구성원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다.
그런데도 작년 3월 발표된 ‘윤석열 정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과제 및 추진 방향’의 핵심 비전 역시 '결혼과 출산, 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정상가족 형성과 출산율 늘리기가 목표인 윤석열 정부의 역량 총동원,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과연 사회구조적 개혁을 향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현재의 인구 위기 대응은 인구 변동의 핵심적인 진원지에 바로 '가족 변동'이 있으며, 이를 주조한 한국사회 자본주의 구조적 변동과 신자유주의 질서로의 재편이 있음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사회라는 공동체의 유일한 가치가 자기 경영과 경쟁, 생존으로 재구조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위기' 대응이 실패한 자리
<압축적 근대성의 논리>의 저자 장경섭은 가족에게 생존을 위임해 온 한국사회의 근대화가 압축적 경제성장과 압축적 사회박탈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짚은 바 있다. 바로 그 압축적인 성장과 박탈의 모순이 가장 집약된 주체가 바로 여성이다. 산업자본주의 시기에는 국가가 생산과 재생산 영역의 구분하고 가족제도를 통해 임금노동-남성과 돌봄-여성이라는 성별 역할에 기반해 노동력을 배치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산업구조의 변화는 노동의 유연화, 비정규직화, 노동력의 지구적 이동을 본격화했으며, 특히 경제위기 이후 불안정한 노동력 벨트는 더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 벨트의 상당수를 차지한 것은 가족에서 주로 돌봄을 담당했던 여성들이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임금노동의 급격한 증가는 일면으로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재구조화를 목표로 한 페미니즘의 성과이기도 했지만, 남성 1인 생계부양자 모델-임금으로는 가족 생존이 불가능해진 노동시장 구조적 변화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완전고용의 이상이 가능하지 않게 되었고, 저고용과 불안정 노동의 심화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노동시장 지위를 가장 중요한 핵심 생존수단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돌봄 위기와 같은 '신사회 위험'이다. 물론 일정 시기는 사실상 노동시장에 '진출'했다기보다 노동시장과 가족을 분주하게 오가는 많은 여성들의 생애경로에 의존해 이 위기를 모면, 적응해왔다. 하지만 2015년 1.24명을 기점으로 매년 최저 수준을 기록하며 작년 0.74명을 찍은 합계출산율은 압축적인 '가족 변동'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숫자다. 자녀 출산‧양육 및 부양이라는 기존의 핵심적인 가족 기능은 당연하거나 감당해야 할 생애경로가 아니라 개개인들의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로 빠르게 자리매김했다. 이는 돌봄‧사회재생산 위기가 본질적으로 가족구조와 연동된 노동구조의 문제를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가족변동이라는 조건의 변화 속에서 저출산에 대한 성평등 전략으로 등장하는 '일‧가정 양립' 지원은 적절한 대응일까? 여성들은 더 이상 가족 내 위치에서 임금노동자로 이동하면서 경제적 자립과 가족 내 유대를 모두 성취하기 위해 분투하거나 아예 선택지에서 삭제한다. 2015~2016년 즈음부터 유배우 여성의 출산율이 급감하고 무자녀 비율이 증가한 것은 일‧가정 이중노동에 대한 유보 혹은 거부를 보여준다. 비혼과 비출산은 사회경제적 경쟁과 생존 압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가 되었다. 물론 최근 등장한 '일‧생활 양립' 지원은 돌봄 및 재생산의 단위로서 가족이 아닌 개인을 설정하면서도 법률혼에 기반하지 않고도 다양한 친밀성과 유대 관계의 결합을 실천하는 이들을 포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노동구조를 변화시키지 않고 '오래 일하지 않기, 똑똑하게 일하기, 제대로 쉬기'라는 일‧생활 양립은 비혼‧기혼 할 것 없이 여성을 유연근무제에 밀어 넣으며 시간주권을 빼앗고 빈곤으로 몰아넣는 결과만을 반복하기 쉬운 조건을 만든다.
더구나 사회재생산 위기로 지목된 많은 의제들이 진전 없는 젠더 관계와 가족 변동, 노동구조와 결부되어 있다. 수도권 과밀집중화와 지역 청년 인구 유출 문제는 2010년대 중반 이후 20대 여성의 급격한 서울 이동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여성 선호 일자리와 산업구조를 조정하고 성역할‧가족 규범이 상대적으로 강한 지역사화 문화를 바꿔나가려는 노력 없이 '지역소멸' 대응은 가능하지 않다. 가족‧인구 통치 하에서 수립된 4인 정상가족 주택체계를 전환하지 않고서 비혼‧청년‧1인 가구의 주거권이 보편적 권리로 보장될 수 없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성별임금격차를 승인하는 노동구조의 재편 없이 남성-자가, 여성-월세의 주거 격차가 해소될 수 있을까. 아동의 기본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학력‧학벌을 경쟁 우위 수단으로 삼는 교육체제를 변화시키지 않고서 사교육비에 많은 소득을 지출하고 돌봄 시간빈곤에 시달리는 가족구성원의 장시간 노동이 해결될 수 있을까. 사회구성원들의 생애 기획이 '과잉 경쟁'에 매몰되지 않도록 '교육‧노동‧복지를 아우르는 정책'은 사실상 젠더-페미니즘의 관점 없이는 다양한 위기의 모순을 포착할 수도 없다. 또한 살아갈 만한 사회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제시하지 않고서는 자기경영-경쟁-생존의 압력을 전환시킬 수 없다.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가 단지 여성정책의 축소가 아니라 국가 아젠다에 대한 젠더 관점의 삭제였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사회재생산 위기 대응은 실패로 귀결할 수밖에 없다.
전환, 젠더-페미니즘 관점으로부터
많은 이들이 초저출산 현상은 경쟁 압력이 높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들의 합리적 선택이 집합된 결과라고 말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직업경력을 중요시하면서 생애전망이 탈젠더화되고 특히 여성 청년들은 가족이 아니라 노동을 중심에 둔 생애전망을 구상하고 있다는 진단과도 일맥상통한다. 여성을 비롯한 개개인들이 가족보다 노동 중심의 생애전망을 가질 때, 경쟁 압력과 생애 불안이 높은 사회에서 극저출산은 생존 전략의 하나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특정한 친밀성과 유대, 돌봄 관계를 유보해야 하는 삶 자체는 재생산 권리가 보장되는 지속가능한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앞선 진단들 역시 사회의 구성단위가 가족이 아닌 개인으로 전환되고,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변동에 대응하는 국가의 역할이 '인구 늘리기'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삶의 경로를 지지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재생산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의 목표는 더더욱 삶의 생산과 재생산 모두가 가능한 체제를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체제를 구상하기 위해서라도 혼자 살거나 다른 방식으로 가족을 구성한 사람도, 출산하지 않는 사람도, 아이를 양육하지 않는 사람도, 장애가 있거나 질병이 있거나 고령자도, 일터에서 생산노동을 하면서, 가족 혹은 가족 외 누군가를 돌보면서, 공동체에 필요한 사회적 역할과 활동을 하면서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재생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젠더 관점은 사회재생산을 위해서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회구성원들이 가족에 대해서 어떤 특정한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교정하려 애쓴 국가의 문제를 제기해왔다. 또한 생산노동 혹은 출산 여부가 기본적인 시민권 보장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 친밀성과 돌봄의 가치가 사회운영의 기본 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 기반해서 사회재생산을 '누가' 해야 하는지로부터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 역할의 이동이야 말로 가장 갈급한 사회구조적 개혁의 선결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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