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가 심해지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노동자 내부를 분리하는 것임에도, 정주노동자들의 의식엔 차별과 배제가 내면화되어가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넘기 위해 노력하는 현장도 있습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이주노동자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노동자 내의 단결과 연대를 고민하고자 '불법 사람은 없다'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죽음의 조선소
조선소 앞에 없어지지 않는 수식어가 바로 '죽음'이다. 노동조건이 열악해서다. 코로나19를 지나 조선업종은 호황이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음에 몰려있다. 아직 상반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조선소에서 일하는 산재 사망노동자만 12명이다. 지난달 24일 거제 한화오션(과거 대우조선)에서 30대 잠수 노동자가 숨졌다. 노동자는 작업지시서 명단에도 없었다. 하청업체가 가짜 명단을 올렸고 원청은 이를 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선업이 침체기와 코로나 정국을 거쳐 다시 조선소가 활황기를 맞고 있지만 안전 인력은 부족하니 산재는 이어진다. 무엇보다 노동조건이 열악할 뿐 아니라 다단계 하청구조는 죽음을 앞당긴다. 산재사망자의 대부분은 하청노동자다. 하청노동자 중 이주노동자도 포함된다.
5월 13일 부산 사하구 다대동의 한 조선소의 가스누설로 인한 폭발로 2명이 사망했는데 사망자 중 한명은 베트남 이주노동자다. 고용노동부가 5월 1일 발표한 '2023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 현황'에서도 외국인 사고사망자는 85명이나 된다.
2016년 조선산업 위기를 맞아 정주 노동자들을 비롯해 이주노동자들 또한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다. 조선소의 활황은 숙련공 노동자들을 끌어당기지 못한다. 2022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삭감된 임금을 회복하고 차별을 철폐하라는 요구를 걸고 51일 동안 파업을 했지만 대우조선과 정부기관이 산업은행은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파업 투쟁으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차별 속에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알게 되었고, 이후 정부는 조선소 차별 해소를 위해 상생협의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가 하청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하청노동자들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조선소 문제점 중 하나인, 숙련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하지 않고 떠나간 숙련공의 빈자리를 이주노동자로 대체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산재 사고를 늘리는 요소 중의 하나가 장시간노동이다. 이주노동자들 중에는 물량 목표를 달성하려고 62시간을 일하는 경우도 있다. 주 52시간(초과근로시간 포함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비율이 상당히 높다. 2023년 부산이주민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산재인정 시간인 주 60시간 이상 비율도 21.3%(남성-24.2%, 제조업-24.3%, 비전문취업(E-9)-25.4%)나 된다.
산재가 나도 제대로 치료받기도 어렵다. 다치고 아파도 강제 송환될까 참고 숨기며 일하는 노동자들. 산재 신청을 해도 부족할 판에 자기 돈 들여가며 눈치 보며 치료받으러 가는 노동자들. 그들이 바로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다. 조선소를 처음 접하고 한국어를 몰라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는 이주노동자들. 그런 이주노동자들을 방관하며 그저 일만 부리는 기업이 그들의 건강과 생명을 걱정하고 지켜줄 리가 만무하다.
조선소에서의 이주노동자 차별
위험한 상태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일상적인 차별에 시달린다. 이주노동자든 정주노동자든 작업이 다르지는 않기에 현장에서 자주 만난다. 그런데 관리자가 이주노동자를 대우하는 것은 다르다. 관리자는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무조전 반말과 욕설을 일삼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관리자가 작업 지시만 하고 식당 위치를 알려주지 않아, 이주노동자가 점심시간에 주변에 식당 위치를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차별은 조선소 생산구조와 연관되어 있다. 조선소 생산 구조를 보면 맨 위에 정규직, 다음이 사내하청. 그 다음이 사내하청업체 소속의 소규모 물량팀과 사외업체 단기 계약 노동자들. 그리고, 맨 밑바닥이 이주노동자들이다. 조선산업 이주노동자 정책의 가장 큰 목적은 노동자들의 고용구조를 다변화해 노동자들이 뭉치지 못하게 개인화하고, 그로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해소해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통한 고수익을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들은 어렵게 한국으로 일하러 온다. 조선소 이주노동자들은 특정 활동을 위한 기능비자(E7-3)를 받아 온다. 한국에 올 때, 이주노동자들은 적으면 수백만 원, 많으면 수천만 원이 넘는 돈을 브로커에게 주고 한국으로 온다고 한다. 심지어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는 노동자들도 있다.
그렇게 돈을 내고 한국에 왔지만 조선소 이주노동자들에겐 직업 선택의 자유와 이동의 자유가 없다. 고용허가제 때문에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회사가 허락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직장을 옮길 수가 없다. 한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조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들을 현대판 노예제에 동조하는 공범으로 만들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일부 정주노동자들 중에도 이주노동자들을 차별하거나 적대시 하는 경우가 있다. 조선소 정주노동자들, 특히나 하청노동자들은 이주노동으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하기도 하고, 이주노동자 유입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정주노동자들도 있다. 자본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나들고 경쟁을 위해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이주하게 해 경쟁구조에 몰아넣는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조합원들에게 이주노동자도 존중해야 한다고 많이 말하고 교육한다. 이주노동자도 조합원으로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종종 들어오는 상담도 성실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의 불안한 처지 때문인지, 회사가 불이익을 줄까 우려해서인지, 노조에 가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직 노동운동 세력도 국가의 이주노동자 정책과 기업의 이윤 논리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자본가들이 만든 이 경쟁 체제를 거부할 힘은 많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원칙적인 이야기를 멈출 수는 없다. '이주노동자도 사람이고 그들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싸워야 할 동지들'이라고. 국민국가라는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통한 무한 경쟁체제를 뚫는 것도 결국 우리 노동자들의 실천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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