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가 심해지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노동자 내부를 분리하는 것임에도, 정주노동자들의 의식엔 차별과 배제가 내면화되어가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넘기 위해 노력하는 현장도 있습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이주노동자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노동자 내의 단결과 연대를 고민하고자 '불법 사람은 없다'를 연재합니다.(편집자 주.)
"우리는 인종차별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많은 비백인 강사들은 단지 피부색 때문에 임금도 덜 받고, 처우도 나쁘고 때로는 부당해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백인 교사들만 고용하겠다는 구인 광고를 내기도 합니다. 이 부끄러운 차별은 한국에서 여전히 합법입니다."
4월 28일,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날에 전국민주일반노조 회화강사 노동자 앨리슨(Allison)의 발언이 있었다. 영어회화 강사라고 하면 다른 직종에 비해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조직된 힘으로 차별적인 현실을 바꾸기 위해 원어민 강사들이 노조를 만들었다.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노조에 가입한 이주노동자들이 있지만, 원어민강사라는 직종이 민주노총 안에서 조직을 만든 사례는 없었다, 지난 2월 18일에는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외국어교육지회 출범 총회가 진행되었다.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
지회 명칭을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원어민 강사들이 중심이 된 이 조직의 명칭을 결정한 것은 원어민 강사들이었다. 원어민 강사지회라고 하면 한국인 강사들이 가입하지 못하고, 강사라는 명칭을 쓰게 되면 강사가 아닌 미화, 시설, 기사 노동자 등 외국어학원에 근무하는 다른 직종의 노동자들이 가입하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원어민 강사만이 아니라 한국인 강사와 강사 아닌 다른 직종의 노동자도 가입시키려는 포부로 노조 명칭을 '외국어교육지회'라고 결정했다. 노동조합이 직종과 인종, 국적을 뛰어넘어 함께 모여 단결된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현재는 소수의 한국인 강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원어민 강사로 60여 명이 가입되어 있다.
노조를 만들게 된 인연은 2021년 부산일반노조 신라대지회 투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대 청소노동자들의 집단해고에 맞서 신라대 본관에서 24시간 농성을 진행하던 당시 부산‧경남지역의 청년학생들이 신라대투쟁지원청년학생공대위를 구성해서 연대했다. 신라대 투쟁이 직접고용으로 승리한 다음, 청년학생들은 부산일반노조에 가입하여 청년위원회를 만들었다. 청년노동자들은 부산일반노조의 각종 집회, 선전전, 기자회견, 조직사업에 참여하여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청년위에 몇 명의 원어민 강사들이 가입하면서 인연이 만들어졌다. 노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대응하게 됐다. ㄹ 어학원의 연차수당 미지급 문제가 발생했고, 이에 대해 청년위가 노동청에 진정서를 넣고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주변의 원어민 강사들의 상담이 이어졌다. 부산일반노조 청년위가 원어민 강사들에게 일종의 노동상담소의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그 후 2023년 7월 부산일반노동조합은 전국민주일반노조 부산본부로 조직 전환을 하였고,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차원에서는 부산본부만이 아니라 서울본부에서도 원어민 강사들이 조직되어 있기도 하다.
2023년 11월 9일 MBC 뉴스에는 전남 여수의 한 외국어학원에서 원장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여성 원어민 강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사실이 보도되었다. "노예근성 있는 것들은 맞아야 해"라는 충격적인 폭언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11월 14일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부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폭언, 폭행에 관한 전수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2024년 1월 31일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외국어 교육노동자 연차 유급휴가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기도 하였다.
2022년부터 원어민 강사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지회를 출범시켰다. 이 지회 활동의 목표는 두 가지다. 먼저 시군 민간위탁 사업장 노동자들과 함께 단체협약을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두 번째는 원어민 강사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기자회견 형식으로 여론을 조성할 예정이다. 일반노조는 상급단체로서 외국어교육지회의 여러 일정에 참여하고, 외국어교육지회에 함께하는 원어민 강사들은 일반노조 투쟁사업장에서 연대 발언을 하며 만나고 있다. 이주와 정주 노동자의 단결을 실천하는 과정이다.
체류자격으로 노동자를 가르는 차별에 맞서는 노조가 되길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많은 종류의 비자로 한국 사회의 곳곳에서 일하고 있다. 체류자격이 차별과 폭력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재 일부 정주노동자들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태도도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주노동자 배제는 19세기 후반에 여성노동에 대한 일부 남성노동자들의 태도와 닮아있다. 당시 남성노동자들은 여성노동자들을 단결의 대상이 아니라 남성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이들로 인식하여 여성노동자들을 산업현장에서 배제하려 했다.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를 가르는 제도와 분위기는 누가 만드는지 생각해야 할 때다.
외국어교육지회의 출범과 활동은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아니며, 일반노조의 정신인 노동자는 하나라는 신념의 실현이다. 나아가 민주노총 내 일부 노조에서 벌어지는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잘못된 일이라는 사실을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조 집행부나 상급 단체가 어떤 방향으로 조합원을 설득하고 실천을 기획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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