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 개혁이 막판 이슈로 급부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가 끝나기 전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먼저 조정(모수개혁)하는 연금개혁안을 처리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구조개혁을 아울러 22대 국회에서 처리하자고 맞서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 에서 "이번 국회에서 연금 개혁을 반드시 매듭을 지어야 함에도 여당과 정부는 한사코 미루자고 고집하고 있다"며 "무작정 다음 국회에서 논의하자는 것은 연금 개혁을 하지 말자는 소리와 마찬가지"라고 여권에 날을 세웠다.
이 대표는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모두 22대 국회에서 처리하자는 국민의힘 주장을 반대하며 "왜 미뤄야 하나. 이번에 미루면 위원회 구성 등으로 1년이 지나가고 곧 지방선거와 대선이 이어질 텐데 연금 개혁을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소득대체율을 44%로 하는 여당 안을 수용했다. 부족하더라도 개혁안을 좌초시키는 것보다는 반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게 낫기 때문"이라며 "야당의 양보로 여야의 의견이 일치된 모수개혁부터 처리하면 된다. 이조차 거부하는 것은 말로만 연금 개혁을 얘기하며 국민을 두 번 속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25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민연금 개혁 논의와 관련해 국민의힘 내부에서 절충안으로 거론돼온 소득대체율 44% 방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표는 "여당이 제시한 소득대체율 44%를 전적으로 수용하겠다"며 "연금 개혁을 공언한 대통령의 약속을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대통령은 민주당의 제안을 즉각 받아달라"고 했다.
소득대체율은 가입자의 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을 뜻하는 것으로, 보험료율과 함께 국민연금 개혁 논의의 양대 축이다. 아주 간단하게 말해 보험료율은 연금 보험으로 내는 돈, 소득대체율은 소득 대비 연금으로 받는 돈을 말한다.
여야는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는 데는 합의한 상태지만, 소득대체율에서는 합의를 보지 못해왔다. 하지만 이 대표가 지난 25일 여당의 소득대체율 타협안인 44%를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가 급부상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모수개혁부터 하고 더 어려운 구조개혁을 이어가자는 것을 거부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뜻"이라며 "일하려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일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는 말이 떠오른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정운영을 이런 식으로 할 것이면 연금개혁 약속은 도대체 왜 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도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이 대표가 지난 영수회담에서 윤 대통령에게 연금개혁 공론화에서 두 가지 안이 집약됐다(고 말했다)"며 "연금개혁한다고 하면 대통령 결단만 남은 것 아니냐, 우린 그것에 대해 충분히 받아들이고 접근할 용의가 있다는 부분을 명확히 밝혔다"고 지난 영수회담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연금개혁 논의가 모수개혁, 구조개혁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하기 때문에 22대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모수개혁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한번 결정하면 적어도 20~30년은 지속해야 하는 개혁이기 때문에 모수개혁만으로 일단락 짓고 다시 구조개혁을 한다면 서로 모순과 충돌이 생기고 세대 간 갈등 등 우려되는 것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황 비대위원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두 개혁을 한 뭉텅이로 해야 한다는 게 저희의 입장"이라며 "모수개혁에 대해 의사가 합치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전제로 조속히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정쟁을 떠나 국민 대통합과 개혁의 입장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하나의 안으로 조속히 결론을 내려 난제를 해결하는 멋진 국회가 되자"고 말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민주당은 다수당의 힘으로 이틀 남은 21대 국회에서 시간에 쫓겨 밀어붙이지 말고 이틀 뒤에 시작할 22대 국회에서 진짜 연금개혁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며 "이제 멈춰주길 바란다. 이제는 브레이크를 잡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당 지도부와 달리 이재명 대표의 모수개혁 주장에 긍정적인 입장이 공개적으로 개진되기도 했다. 여당 수도권 중진인 윤상현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모수개혁에 합의만 하는 것도 대단히 긍정적"이라며 "여야 간에 (연금개혁에 대한 모수) 합의라도 빨리 하자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재명 대표의 타협안 수용이) 정략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도 읽히기도 하지만 저는 이 대표가 이렇게 전격적으로 수용한 것에 대해 '이거라도 하는 건 낫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근식 국민의힘 전 당 비전전략실장도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의 정략적 의도가 있든 없든 간에 양보를 해서 이 모수개혁에 합의를 한다면 이거라도 일단 첫걸음으로서 합의를 해주는 게 맞다"며 "구조개혁이 안 돼서 안 된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의대 정원 이야기하는 거랑 사실 논리적으로 모순이 되는 거"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능한 것부터 먼저 하고 그래서 실제로 이 어려운 연금개혁을 우리가 풀어나갈 수 있ㅇ구나라는 걸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그런 순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모수개혁의 첫걸음이라도 합의를 하면 돈 내는 걸 더 높인다는 의미가 있다. 이게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 지금까지 9% 내던 걸 13%인가를 올린다는 것인데, 17년 동안 못 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수 진영에서도 이재명 대표의 모수개혁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날 <조선일보>는 '연금 내는 돈 13% 합의 먼저 처리하자는 국회의장의 제안' 제하 사설에서 "이번에 여야가 의견 접근한 '내는 돈, 받는 돈 조정안'을 처리해 우선 급한 불을 끄고 다음 국회에서 차분하게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관계 등 구조 개혁을 논의하자는 국회의장의 제안이 합리적"이라고 꼬집었다.
<조선>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개혁안을 미뤘다가 후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더 늘려 놓기만 했다"며 "윤 대통령과 여당도 국민 뜻을 받들어 제대로 된 개혁을 하자고 하다가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도 사설을 통해 "여당과 대통령실은 '구조개혁을 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수개혁도 안 하면서 더 큰 걸 얘기한다"며 "지금까지 구조개혁의 밑그림을 제대로 내놓은 적도 없다. 그러다 이제야 구조개혁을 들고나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 사설도 "정부 여당의 주장은 궁색해 보인다"며 "정부 여당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22대 국회로 미뤘다가 모수개혁도, 구조개혁도 다 무산될 경우 그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이러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여야 원내대표는 이날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의장실에서 회동했으나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무리한 특검법 추진에 동의할 수 없기 떄문에 본회의 의사 자체에 대해 합의할 수 없다. 연금과 관련해서도 이번 국회 내에 처리하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저희들은 분명히 말씀드렸다"(추경호 원내대표)고 한 반면, 민주당은 "연금개혁 협의가 이뤄져야 하고, 내일 반드시 본회의를 열겠다"(박찬대 원내대표)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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