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22m, 몸무게는 50t나 되는 거대한 인간이 35초에 한 번씩 망치질을 한다. 서울 새문안로 흥국생명 사옥 앞의 조형물, 미국의 설치미술가 조너선 보롭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이다. 크기는 다르지만 같은 제목을 단 작가의 작품들은 오늘도 세계 11곳의 도시에서 허공을 향해 망치질 중이다. 흥미로운 건 서울의 작품이 가장 크고 힘이 센 데다 망치질 속도 또한 빠르다는 것. 망치질 속도는 설치 당시인 2002년만 하더라도 1분 17초 만에 한 번씩이었다. 길 가던 시민들이 속도를 좀 더 빠르게 해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2008년경 작가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빠르게 조정해야 했다.
여전히 OECD 국가들 중 가장 장시간 노동을 자랑하고 그럼에도 '빨리빨리'를 외치는 현실을 대변하는 우리 시대의 노동자상이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에는 가축을 기르고 저녁 식사 후에는 토론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전문적인 사냥꾼, 낚시꾼, 목동 혹은 평론가가 될 필요는 없는 사회"를 꿈꾸었다.
우리는 과연 그런 노동 '해방'의 시대, 노동과 노동을 통한,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먼저 롤란드 파울센이 '텅 빈 노동 Empty labor'를 규정했다. 빈둥거리기, 시간 늘리기, 일 늘리기, 일 꾸며내기.
이것만으로는 '텅 빈 노동'과 '진짜 노동'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덴마크의 서로 다른 정치 진영 출신인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아네르스 포그 옌센이 "전혀 힘들지는 않더라도 잔뜩 스트레스 주는 업무,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업무, 누가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포괄한, '텅 빈 노동'이라는 개념의 대안으로 <가짜 노동>이라는 적당한 용어를 찾아냈다." 불행하게도 '가짜 노동'은 실제로 존재하며 이는 인간에게 시간의 낭비와 좌절감을 불러일으킨다.
2020년 갤럽이 덴마크에서 조사해 봤다. 응답자의 무려 76%가 '어느 정도 가짜 노동에 익숙하다'고 답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계가 발명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총력을 기울여왔다. 어리석었지만 영원히 어리석게 지낼 이유는 없다." (버트런드 러셀) 과연 그러한가. 그렇게 사고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가.
<가짜 노동>의 후속편인 <진짜 노동>은 데니스 뇌르마르크의 단독 저작이다.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 Sapere aude" 임마누엘 칸트에게로 돌아간다.
노동이야말로 인간의 존엄 자체이자 궁극의 질문이어야만 한다.
전체댓글 0